본래 역사 탐구는 기원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원 탐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래서 역사 탐구의 목적이 바뀌었다. 역사 탐구는 현재 이해와 미래 제시에
있다. 과거를 이해하는 방식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에 불과하다. 근원(과거)이 어떻게 되었든지 상관없다. 실재 과거가 중요하지 않는
역사다.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가
하나되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합의로 가능하다. 그러나 기원이 명확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의 일치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다원화가 불가피하다. 다원화를 거부하려면 과거 이해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단정해야 한다.
기독교는 두 가지 방식의
역사 이해가 있다. 한국성경연구원은 확정된 과거 역사를 추구한다. 하나님의 성육신이 베들레헴에서 일어났고, 그 분이 예루셀렘 골고다에서
죽으셨고, 삼일에 부활하셨고, 승천하셨다. 그리고 천상제사를 완료하신 후에 좌정하시어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를 이루셨다. 그리고 자신의 몸된 교회를
다스리신다. 주의 몸된 교회는 주의 영의 교통으로 주님의 백성으로 설립되며 유지된다. 이 역사 이해는 불변의 과거 사실로 이해한다. 그리고 4대
공회의(325년, 381년, 431년, 451년)를 절대 진리로 받는다. 이와 연결된 신앙고백서가 16~17세기에 네델란드와 영국에서
형성되었다.
대한민국은 역사에서 몇
차례에 분서(焚書)가 발생했다. 정확한 것은 우리의 국권을 강탈하며 세운 조선총독부가 조직적으로 고서를 수집하여 분서하고 자료를 일본으로
유출했다. 우리의 역사를 탐구할 수 없도록 한 것이고, 조작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역사교과서를 기초로 현재 역사 교과서가
이루져있다면?
그리고 우리 역사학계는 그
좁은 범위의 역사사료도 읽지 않고 역사를 가르치는 것 같다. 아직도 조선왕조실록을 연구하면서도 다양한 해석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 상영된 영화
"사도"도 영조와 사도 세자에 대한 다른 역사 이해로 작품화한 것이다(경종독살, 정순황후의 복선까지). 역사학자는 사료에 대한 탐독과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더 정확한 역사로 재해석해야 한다. 그것도 명확한 역사를 갖는 기독교인도 마찬가지다.
불변의 역사이지만 이해의 깊이는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뛰어난 믿음의 선진들이 있지만, 나는 초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선진들의 업적에
필적하지는 못하겠지만 탐구의 열정까지 부족하지는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중국 사료를 탐독하며 우리의 역사의 기원을 탐구하는 도전적인 역사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며.. 그리고 우리의 사료들을 잘 밝혀
우리의 민족성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라며.. 나는 대한민국 사람으로 우리 민족의 신비성을 말하고 싶다. 소련은 우리 민족의 근원을
뽑기 위해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고려인). 그래서 1세기가 지난 고려인은 민족의 정통성을 거의 상실해버렸다. 겨우 아리랑 몇
소절을 기억할 뿐이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자치주를 이루고 있지만 언어의 명맥만을 유지하며 생존만하고 있는 것 같다. 재일동포는 강제로 이주된
동포이며 일본에서 생존만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의 모든 동포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민족 역사관을 수립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