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사에서 “유다와 베냐민의 관계”는 신비 중 하나이다. 구원사(Heilsgeschichte,救援史, Salvation History, history of redemption, redemptive history, 救贖史)란 하나님의 구원 계시를 시간(창세기~요한복음-성경 마지막 책)에서 직접 밝히 보여주는 사건이고 말씀이다. ※salvation은 구원(救援, salutis)으로, redemption은 구속(救贖, redemptio)으로 번역하고 있다.
혹자들은 창세기 44장에서 유다가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유다의 고백으로 요셉의 모든 응어리가 풀렸고(창 45장), 모든 가족은 애굽에서 상봉하여 430년을 거주하게 되었다(46장). 유다가 베냐민을 보호하는 장면은 모세오경이 편집되었다는 주장이 등장할 정도로 파격적인 장면이다. 여로보암 때에 10지파가 분리될 때 베냐민 지파가 분리되지 않고 유다 나라를 함께 이루었다.왕권을 빼앗긴 지파가 빼앗은 지파와 함께 연맹한 것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역사에 에피소드를 만들어서 해소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에서 사울을 왜 선택하셨는지도 큰 의문이다. 사사기 마지막에서 가장 강력한 지파는 베냐민 지파였다. 11지파 동맹군과 싸워서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고 대항하였다. 결국 베냐민 지파가 전몰 위기까지 몰렸지만, 겨우 생존권을 확보하였다. 그런 베냐민 지파에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등극한 것이다. 그런데 사울은 겸손을 버리고 백성보다, 자기 언약보다, 하나님보다 왕의 보좌를 더 사랑하였다.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고, 두려움 때문에 제사를 범하는 죄를 지었다. 지위를 벗어난 사울을 대신할 왕을 다윗을 선택하였다. 사울은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다윗은 사울을 왕으로 존중하였다.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는 한 왕좌를 놓고 혈투를 벌리게 되었다. 그런데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은 다윗과 사울의 관계와 전혀 달랐다. 요나단은 왕좌보다 언약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다윗을 생명을 걸고 보호하였고, 여호와의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걸고 나갔다. 사울과 요나단은 블레셋과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애가(哀歌)를 불러 조의(弔意)를 표하였다. 사울의 죽음에도 사울의 후손(이스보셋)으로 왕조를 이루었고, 다윗은 헤브론에서 왕으로 등극하였다(7년 6개월). 사울 왕가는 반역으로 자멸하고,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은 다윗의 자녀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형제 관계를 이루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평화와 번영을 누렸지만, 이방의 모든 우상들을 도입하는 폐단도 낳았다. 그래서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에게 반역하여 10 지파가 북이스라엘로 분리하였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는 이탈하지 않고 유다 지파에 남았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여 (혼합정책) 사마리아인이 되었고,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70년이 지나고 바사왕 고레스에 의해서 귀환하였다. 북이스라엘은 사마리아인으로 유다인에 의해서 철저하게 분리되었다. 현재 이스라엘에 사마리아인을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500여명이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세 왕인 사울, 다윗, 솔로몬은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로 왕국을 운영하였다. 북이스라엘은 에브라임 지파인 여로보암의 통치로 시작하였지만, 혈통이 유지되지 않아 무슨 지파가 왕이었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유다 지파는 다윗의 후손이 왕으로 통치하였고, 베냐민 지파는 항상 함께 있었다. 다윗의 후손인 예수의 통치로 교회를 이루었고, 베냐민 지파의 사울(바울)에 의해서 땅끝까지 예수 복음(그리스도의 나라)이 전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