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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1:1-16. 바울. 빌레몬. 오네시모
빌레몬서는 1장으로 짧은 본문이지만, 배경과 상황등을 상상하는 매우 넓은 책이다.
첫째, 세 사람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빌레몬과 오네시모는 골로새에 살고 있으며, 바울과 오네시모는 로마의 감옥에서 만났다. 만남의 신비가 빌레몬서에 있다. 골로새와 로마의 거리가 전혀 연관성이 없는 곳에서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났고, 그 골로새의 빌레몬와 깊은 관계가 있었다.
둘째, 바울과 빌레몬의 관계,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 바울과 오네시모의 관계의 교통정리를 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관계로 정립시키는 것이다....
셋째, 바울은 오네시모라는 '종'의 회복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1-3) 감옥에서 바울과 동역자는 빌레몬(압비아, 아킵보)에게 편지한다. 빌레몬의 집에서 교회가 회집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빌레몬과 가족 그리고 교회에 문안을 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부터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다. (참고, 디모데전서에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grace, mercy, peace-을 기원했다.)
(4-7) 빌레몬에 대한 바울의 기도와 동역. 바울은 항상 빌레몬을 말(기도)했다. 바울은 빌레몬에 대한 행동이 주 예수와 모든 성도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바울은 이러한 빌레몬의 믿음, 즉 모든 선한 일을 만드는 충만한 지식을 위한 열정을 나눔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동역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항상 동역으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믿음의 동역자로만 이루어진다. 목표의 동일성이 아니라, 성분의 동일성이 먼저이다. 중생된 백성이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동역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힘써야 될 일이며, 기쁨의 기쁨이 되는 일이다.
(8-16). 오네시모에 대한 바울의 소개.
(8-10절) 오네시모를 위해서 간청하는 바울.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용서할 것을 빌레몬에게 권면할 수 있다(8절). 그리고 빌레몬보다 연장자이기 때문에 권위적으로도 명령할 수 있다(9절). 바울은 자신이 갇혀있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빌레몬에게 사랑과 온유함으로 오네시모에 대해서 천거를 한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감옥에서 낳았다고 설명한다.
어떻게 감옥에 있는 바울과 오네시모의 만남이 이루어졌을까? 이것에 대해서 바울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배경이 아닌 현재 오네시모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이러한 뒷담화에 있는데, 성경은 뒷담화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래도 성경독자이며 인간으로 뒷담화의 즐거운 상상을 멈출수 없다. 칼빈은 헛된 상상(공상)을 멈추라고 했다. 그래도 뒷담화의 즐거움은 있는데,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 뒷담화가 필요하다. 이 뒷담화는 즐거움을 주지만 지극히 사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어서, 구원의 명료성을 증가시키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11-16) 권징의 원리. 권징의 기관에서 해벌을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원리에 의하면 하나님께 범죄한 것은 하나님께서 해벌해주어야 한다. 이 원리는 삼위일체 교리 결정에 주요한 원리중 하나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면, 우리의 죄를 사하신 구주도 하나님이 분명하다.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교회에서 사죄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고해성사).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도망간 종이고, 바울에게는 제자가 되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기의 정당한 제자로 삼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빌레몬의 용서와 화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빌레몬은 또한 같은 교회의 동역자다. 그렇기에 교회 사역의 일치에서도 맞지 않기에 더욱 빌레몬의 용서가 필요하다.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납하여 주기를 간청하며, 자신의 제자로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원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바울은 오네시모와 빌레몬이 이젠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형제의 관계로 개선되었음을 제시했다. 빌레몬에게는 아닌 밤중의 홍두깨처럼, 도망간 종이 형제가 되어서 돌아왔다. 바울은 이러한 과도한 부탁을 빌레몬에게 하기 때문에 간청을 하는 것이며, 빌레몬이 바울의 견해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답이 없다. 그러나 빌레몬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드렸다고 상상할 수 있다. 한 편지로 죽일 도망자에서 형제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은혜와 권위의 세계이기도 할 것이다.
빌레몬서는 1장으로 짧은 본문이지만, 배경과 상황등을 상상하는 매우 넓은 책이다.
첫째, 세 사람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빌레몬과 오네시모는 골로새에 살고 있으며, 바울과 오네시모는 로마의 감옥에서 만났다. 만남의 신비가 빌레몬서에 있다. 골로새와 로마의 거리가 전혀 연관성이 없는 곳에서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났고, 그 골로새의 빌레몬와 깊은 관계가 있었다.
둘째, 바울과 빌레몬의 관계,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 바울과 오네시모의 관계의 교통정리를 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관계로 정립시키는 것이다....
셋째, 바울은 오네시모라는 '종'의 회복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1-3) 감옥에서 바울과 동역자는 빌레몬(압비아, 아킵보)에게 편지한다. 빌레몬의 집에서 교회가 회집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빌레몬과 가족 그리고 교회에 문안을 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부터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다. (참고, 디모데전서에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grace, mercy, peace-을 기원했다.)
(4-7) 빌레몬에 대한 바울의 기도와 동역. 바울은 항상 빌레몬을 말(기도)했다. 바울은 빌레몬에 대한 행동이 주 예수와 모든 성도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바울은 이러한 빌레몬의 믿음, 즉 모든 선한 일을 만드는 충만한 지식을 위한 열정을 나눔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동역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항상 동역으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믿음의 동역자로만 이루어진다. 목표의 동일성이 아니라, 성분의 동일성이 먼저이다. 중생된 백성이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동역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힘써야 될 일이며, 기쁨의 기쁨이 되는 일이다.
(8-16). 오네시모에 대한 바울의 소개.
(8-10절) 오네시모를 위해서 간청하는 바울.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용서할 것을 빌레몬에게 권면할 수 있다(8절). 그리고 빌레몬보다 연장자이기 때문에 권위적으로도 명령할 수 있다(9절). 바울은 자신이 갇혀있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빌레몬에게 사랑과 온유함으로 오네시모에 대해서 천거를 한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감옥에서 낳았다고 설명한다.
어떻게 감옥에 있는 바울과 오네시모의 만남이 이루어졌을까? 이것에 대해서 바울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배경이 아닌 현재 오네시모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이러한 뒷담화에 있는데, 성경은 뒷담화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래도 성경독자이며 인간으로 뒷담화의 즐거운 상상을 멈출수 없다. 칼빈은 헛된 상상(공상)을 멈추라고 했다. 그래도 뒷담화의 즐거움은 있는데,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 뒷담화가 필요하다. 이 뒷담화는 즐거움을 주지만 지극히 사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어서, 구원의 명료성을 증가시키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11-16) 권징의 원리. 권징의 기관에서 해벌을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원리에 의하면 하나님께 범죄한 것은 하나님께서 해벌해주어야 한다. 이 원리는 삼위일체 교리 결정에 주요한 원리중 하나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면, 우리의 죄를 사하신 구주도 하나님이 분명하다.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교회에서 사죄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고해성사).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도망간 종이고, 바울에게는 제자가 되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기의 정당한 제자로 삼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빌레몬의 용서와 화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빌레몬은 또한 같은 교회의 동역자다. 그렇기에 교회 사역의 일치에서도 맞지 않기에 더욱 빌레몬의 용서가 필요하다.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납하여 주기를 간청하며, 자신의 제자로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원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바울은 오네시모와 빌레몬이 이젠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형제의 관계로 개선되었음을 제시했다. 빌레몬에게는 아닌 밤중의 홍두깨처럼, 도망간 종이 형제가 되어서 돌아왔다. 바울은 이러한 과도한 부탁을 빌레몬에게 하기 때문에 간청을 하는 것이며, 빌레몬이 바울의 견해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답이 없다. 그러나 빌레몬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드렸다고 상상할 수 있다. 한 편지로 죽일 도망자에서 형제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은혜와 권위의 세계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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