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스크랩] [신학칼럼] 복음서를 향해서 “신학화”라는 말을 사용함에 대해서

형람서원 2013. 6. 2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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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는 ‘이야기’인가? ‘신학’인가? 과거에는 ‘신학화’됨 혹은 ‘신화화’됨으로 평가했고, 작금에서는 ‘이야기, 내러티브(설화, narrative)’로 말하기도 한다. 본 글에서는 복음서가 신학화되었는가?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세계 4대 성인의 특징 중에 하나는 모두가 자기 저술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대의 제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공통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는 소크라테스, 부처, 공자와 전혀 다른 형태이다. 첫째 예수는 직계 제자들에 의해서 경전이 집필되었다. 동양의 공자는 공자 이전에도 경전이 있고,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스승에 대해서도 저술했지만 자신의 저술로도 유명한 철학자이다. 둘째 예수를 저술한 저자들은 탁월한 학자들이 아니었다. 플라톤은 철학의 신의 위치로 탁월했고, 맹자도 스승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마태나 마가는 교회 밖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위인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저술가들에 의해서 집필된 성경이 세계의 구도와 흐름을 결정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플라톤을 찾고 있다. 셋째 제자들은 저술의 목적이 분명했다. 성경을 집필한 제자들의 집필 목적은 “예수를 바르게(누가) 믿도록(요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에서부터 복음서의 신학화 혹은 신화화(불트만)를 주장했다. 저술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저술의 목적이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로 제시하기도 했다. 제자들이 선생인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저술한 책이 복음서가 되기도 한다. 즉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지 않고 교회를 건설했다는 것이 비판의 중요 요지이기도 하다.

 

복음서의 신학화의 주장 중에 하나는 “교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함의되어 있다고 본다.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면서 “교회”를 비판하는 성동격서의 형태이다. 복음서는 신학화되지 않았다. 복음서는 목적은 단순하다. 사도의 주와 구주이신 예수를 믿도록하는 성령의 영감이며, 사도의 가르침이다. 복음서는 신학화되지 않고 성령께 영감된 사도들의 기록이다. 선생과 제자에서 사후에 선생을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문자로 기록된 형태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제자들의 지혜가 아니라 전적인 성령의 인도하심으로만 가능한 신비이다.

 

고경태 목사(주님의 교회)

크리스찬타임스. www.ctimes.or.kr의 신학칼럼에 기고한 글 

출처 : 개혁신학 연구원
글쓴이 : 경태윤희-건은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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