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 성경 묵상] 마태복음 27:11~26
2010년 3월 31일 수요일 마태복음 27:11~26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님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11-14절) 빌라도의 경이
빌라도는 법정에서 무수한 무고의 소리를 듣고서도 침묵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놀람을 갖는다. 도대체 말도되지 않는 무고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죄를 짊어지는 이유가 무엇이란말인가? 또 감히 유대의 치리지 로마의 총독 앞에서 대범하게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그 대답 또한 긍정이 아닌, 스스로 고백한것처럼 말하는 기괴한 답변에서 빌라도는 놀람의 놀람을 갖는다.
(참고, NIV "Yes, it is as you say," Jesus replied.와 KJV And Jesus said unto him, Thou sayest의 번역의 약간의 차이가 있다. NIV가 "Yes"로 대답함으로 예수께서 '예'라고 긍정적인 대답을 한 것으로 번역했지만, KJV처럼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대답한 것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쉬운성경은 예수님께서 “네가 말하였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아무리 놀람이 있어도 믿음으로 이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놀람을 경험한다할지라도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길은 십자가의 삐뿌림의 은혜를 입은 길 뿐입니다.
(15-26절) 빌라도의 판결: 십자가 형
1. 왜 빌라도는 예수를 석방시키지 못했는가? 빌라도는 예수가 무고한 시기와 모함에 의해서 법정에 올라온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고, 심문과정에서 독특한 예수의 형태에 놀람을 갖았습니다. 빌라도가 자기의 권세를 제대로 행한다면 그냥 주님을 풀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시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식민지의 단순한 종교지도자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땅의 백성들이 거부한 무가치한 존재로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를 십자가형으로 보낸다고 해서 자기에게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 식민지 백성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느낄 수 없는 사소한 것입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들의 충성맹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에서 황제에게 가장 충성된 사람은 총독이어야 하는데, 식민지 백성들이 충성을 맹세함으로 거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황제에게 진정 충성하는 것은 총독은 바르게 재판하는 것입니다.
2. 빌라도: 정치인으로 계속해서 협상을 통해서 답을 찾으려 함.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습니다. 더우기 아내까지 나서서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십자가형을 요구했습니다. 먼저 가장 악독한 강도 바라바와 예수를 비교해서 군중들이 바라바보다 예수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우둔하여 자기의 생각되로 될 것이라고 여기지만, 결국은 되지 않게 됩니다. 둘째, 빌라도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백성들에게 주기로 반 협박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그 저주를 받겠다고 선언합니다. 무지의 극치와 정치의 극치를 볼 수 있습니다. 무지와 정치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님을 십자가 형으로 외침. 빌라도의 법정에서 법 집행의 주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로마의 총독의 관전에서 이스라엘이 법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무법적인 행동에 대해서 법의 집행자는 빌라도는 통제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십자가 형으로 죽이라고 촉구합니다. 예수님은 극랄한 정치법으로 십자가형을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손으로 예수를 죽이지 않음으로 예수를 선지자의 반열에 올라가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4. 십자가 형: 빌라도의 판결. 빌라도가 아무리 석방의 노력을 하였고, 책임이 없다고 손을 씻었어도 예수님을 십자가 형으로 언도한 사람은 빌라도입니다. 성경의 독자가 빌라도에게 호의적이고 연민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에서 '본디오 빌라도'를 명시하였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전적인 책임은 빌라도에게 있습니다. 진리는 정치적인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거래나 모종의 합의로 죽일 수 없습니다. 빌라도는 그러한 행동을 하다가 결국 예수를 십자가형으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은 아무리 피하려고 노력했다할지라도 빌라도의 일차적 책임입니다.
[적용] 아담의 후손들은 조상의 죄를 따라 핑계와 자기 변명(방어)를 항상 준비하고 시도합니다. 결정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감당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한 부류로 여겨집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주의 제자가 됩시다.
고경태 목사 010-8525-0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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