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광주

광주역<상>

형람서원 2008. 8. 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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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상>
'광주역' 이름에도 식민의 아픔 서려있어
   
  ▲ 지금도 `구역’으로 불리는 대인동 동부소방서 일대에는 1969년까지 광주역이 있었다. 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광주광역시  
수많은 안내책자에도, 예쁜 그림지도에도, 그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지만 광주 사람들끼리는 곧잘 알아듣는 암호 같은 말들이 있다. 우다방, 구시청사거리, 구호전, 런던약국 사거리, 차고약별장, 송정리 영광통. '구역'도 그런 이름들 가운데 하나에 낀다.

물론 아직도 이 말을 못 알아듣는 광주사람을 생각해 한 마디 보태자면, 구역은 지금 동구 대인동 동부소방서 일대를 일컫고, 한때 이곳에 광주역이 있었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곳에 광주역은 1920년대 초엽부터 60년대 말엽까지 50여 년간 있었다. 처음 정거장이 `영업 개시’를 했던 날은 1922년 7월1일 토요일이었다.

이 날 태어나신 어르신들은 많겠지만 첫 열차가 광주역을 떠나던 광경까지를 기억하시는 분은 거개 고인이 되셨을 것이다. 그만큼 오래 전에 생겨나 1969년 7월에 지금의 중흥동, 신역자리로 옮기기 전까지 광주역은 그곳에 있었다. 줄잡아 두 세대에 가까운 세월 동안 있었던 일이니 누구라도 머리 속에 굵게 새겨놓은 이곳에 대한 기억을 갈아엎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통 당시 정거장 이름은 광주역이었다. 당시 광주면에 있던 유일한 정거장이었으니 당연히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정거장 운영은 마산에 본점을 둔 민간회사 남조선철도가 맡았다. 그런데 1930년 이 곳 노선이 총독부 철도국으로 이관됐다. 이른바 국유화가 된 것인데 이 즈음에 돌연 정거장 이름을 전남광주역으로 바꿨다.

광주역의 개명은 훗날 신광주역을 남광주역으로 바꿔 부른 것과는 사뭇 다른 이유에서였다. 당시 광주의 일본식 발음은 '코슈'였다.

일본어는 한자를 음독과 훈독 두 가지 방식으로 읽는데, 코슈는 광주를 음독과 훈독을 뒤섞어 읽을 때 나는 발음이다. 일제 초기에 광주를 찍은 사진들의 아랫단에 광주를 한결같이 영문자로 'Koshu'로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코슈로 읽든 광주로 읽든 그건 우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인들에게는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예로부터 사과로 유명했던 황해도 황주(黃州)라는 곳이 있다. 이 곳에도 일찍부터 경의선 철도가 통과하는 정거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 황주 역시 일본인들은 `코슈’로 읽었다. 이처럼 한반도에 코슈라는 이름의 정거장이 두 곳이나 되니 어리벙벙한 일본인이라면 자칫 전라도 광주로 가는 열차표를 끊어놓고 황해도 황주로 가는 열차에 오를 판이었다. 이런 이유로 두 정거장 앞에 도명(道名)을 붙여 광주역은 전남광주역으로, 황주역은 황해도황주역으로 바꿔 부르게 했던 것이다.

정거장 이름 하나 바뀐 것이 뭐 대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곰곰 따져보면 거기엔 서글프고도 씁쓸한 구석이 있다. 개통 1달 동안 광주역을 이용한 승객은 2만명 남짓. 한국인과 일본인들 가운데 누가, 얼마만큼 광주역을 자주 이용했는지에 대한 자료는 없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추 이런 유추는 가능하다. 1930년대초 광주면 인구 가운데 10명 중 2명꼴로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았다. 다른 8명의 한국인에겐 아무렇지도 않는 정거장 이름을 남은 2명을 위해 뜯어 고쳤던 것이다. (본 기사는 '광주드림'사의 제공에 의해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

조광철 <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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