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성경(scriptura)에 근거해서 신학함
성경 = 신학의 형식적 원리(principium formale)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기록된 말씀 계시이다. 기록된 계시인 성경 밖에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만날 수 없고, 계시로 알 수 있는 다른 계시가 따로 있지도 않다. 따라서 신학을 할 때에는 성경계시에 의존해야 한다. 종교개혁에서는 성경을 신학의 형식적인 원리로 삼았다. 성경에서 모든 하나님 지식이 나올 뿐 아니라, 모든 신지식의 바름과 거짓의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한다.
1. 성경 = 신지식의 원천(norma normans)
성경은 하나님의 최종 계시이다. 성경 계시가 완료된 후에는 새로운 계시는 오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마지막 말을 인류에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계시의 완성이고 계시의 절정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계시로 성경을 보충할 필요가 전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궁극적 계시이다. 성경은 완전하고 종결된 계시임으로 더 이상의 계시의 보완이 필요없다.
하나님은 성경에 자기의 존재와 그의 작정을 다 계시하셨다. 성경에는 창조와 사역을 알리시고 해석하셨다. 구원자(구원의 경륜), 구원의 방식(구원의 동참), 구원의 실제(구원의 효과)를 다 알리셨다. 그리스도께서 속죄제사를 통해서 자기백성을 모으시고 형성하여 은혜의 왕국을 설립하셨다. 백성 형성이 완성되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역사가 완결되고, 심판으로 정화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성경에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의 사역에 관한 지식은 성경에서만 도출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에 이른다. 이 모든 계시가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왔으므로 참 신직식이고, 이 지식의 원천은 성경이다.
창조와 인간 의식에서 도출한 신지식은 바른 신지식이 결코 될 수 없고, 인간의 종교심에 투사에 불과하다. 오직 성경에 의해서만 바른 신지식을 추구할 수 있다.
신지식의 원천은 성경이다. 인간 이성, 종교 경험이 신지식의 원천이 될 수 없다. 헤겔은 인간 이성1)을 신지식의 원천으로 삼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이성으로 철학 체계를 구성하였는데, 성경이 말하는 창조주와 구속주 하나님의 지식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이성의 사고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신개념으로 성경이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에 도달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을 추구하는 방법이 전혀 다르므로 철학과 성경이 합치된 신지식을 도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 스콜라 신학에서는 아리스텔레스의 철학 체계에 신학을 접목함으로 기형적인 기독교를 창출하였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 부합되는 [신학대전]을 완성하여 기독교 배교의 완성된 체계를 창출하였다. 완성된 체계는 자체 합리성을 가짐으로 합리적 인간 이성에 호소하여 교양 있는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간의 종교심도 많은 종교를 생산하여 인간 존재의 구조에서도 종교심이 표현된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우상 종교가 되어 하나님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의 종교 의식은 하나님의 지식의 원천이 될 수 없다. 슐라이에르막허은 인간 경험인 절대의존감정에서 신지식이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성경은 구원의 진리를 말할 뿐만 아니라 종교 경험의 표준을 제시하고 그 표준에 따른 종교 경험들을 생산한다. 즉 믿음의 내용만 성경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경험도 성경이 제시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표준대로 믿고 경험하는 것이 정통주의이다.
이에 반해서 특별한 종교경험을 표준으로 삼고, 성경을 특별경험의 증거로 제시하는 신앙의 길을 신비주의라고 한다. 신비주의는 특수한 개인 경험을 강조하는데, 개인적인 경험이기에 합리적 산물로 신비가 무산된 신비주의만 남는다.
자유주의 신학은 보편 종교경험을 표준으로 삼아 성경을 이 보편경험으로 전부 해석한 것이다. 특수한 종교 체험이 아니라, 보편적인 종교 경험이 표준이 되면, 성경의 신비와 초자연적인 요소들이 재해석되어 무효화가 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은 정통 기독교 신학이 되지 못하고, 자연주의 기독교가 되었다. 표준이 인간의 종교 경험이고 인간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종교 경험을 강조하는 주관주의나, 보편적 인간 의식을 강조하는 내재주의는 인간 중심의 종교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경험을 강조한 주관주의(경건주의)에서 내재주의인 자유주의 신학이 태동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 된다. 주관주의와 자유주의의 근거가 인간의 경험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신학 작업은 자기의 종교적 의식을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내용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한 본문의 분석과 이해를 추구하는 성경신학이고, 교의신학(조직신학)은 하나님의 전 경륜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믿음의 체계를 이루는 일을 한다. 이 일을 할 때에는 교회의 교리(dogma ecclesiae)를 2차적 규범(norma normata)2)으로 삼아 일한다. 교회는 교리를 규범으로 삼기 때문에 처음부터 신학 작업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며, 성경 전체를 수집해서 믿음의 내용을 체계화시키는 것이 아니다.3) 교리가 규범으로 서 있으므로 계시 내용의 이해를 증가시킨다. 이 때 교의학자의 자기-의식의 작용이 많이 일어나게 됨으로 성경이 원규범으로 역사하여 바른 신학이 되게 하고, 교회의 신앙과 일치하게 한다.
2. 성경 = 신지식의 외적 원리(principium cognoscendi externum)
성경은 신지식을 제공하는 원천일 뿐 아니라 신학의 표준이고 심판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자체 권위를 갖고서 심판관의 역할을 한다. 즉 성경이 모든 신학의 원리이다. 성경은 완결된 계시이므로 신적 권위로 역사한다. 어떤 신학이 바르게 성경 계시를 재생산했는지를 판결하는 것도 성경이다. 성경은 신학의 심판관(judex theologiarum)이다.
성경은 영감에 의해, 즉 하나님께서 호흡하심으로 무오하게 기록되었다. 그래서 바르고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의 교리가 바른 성경 계시의 권위 근거되어 있는지를 판결하는 원칙으로 역사한다.
성경과 무관하거나 성경과 문화를 혼합하여서는 바른 신앙고백과 교회의 신학이 될 수 없다. 어떤 신학이 성경의 구원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고 생산하였는지의 여부도 성경에 의하여 결정한다. 성경이 자기가신성(自己可信性=성경의 자증, autopistia)을 갖기 때문에 성경에 의하여 신학이 판단 받는다. 성경의 가기가신성은 성경의 문장이 외부의 강제나 가르침 없이도 스스로 그 내용대로 믿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자기 판단에 따라서 신학을 판단하게 된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sui ipsius interpres)
성경은 자기 해석자(scriputra interpres sui)여서 성경 외에 다른 유전(traditio-로마교회)과 교회의 가르침에 의해 명료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학을 할 때 성경 외에 다른 해석자(alter interpres)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성경은 교회의 가르치는 직분에 의해 그 뜻을 명료화받고 믿음의 내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근거하고 성경의 명료한 가르침에 의하여 신학한다. 이 신학 작업에서 성경이 원규범(norma normans)으로 역사하고, 교회의 교리가 이차적 표준(norma normata)으로 역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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