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old O. J. Brown. Heresies. 『교회사 안에 나타난 이단과 정통』. 라은성 역. 서울: 그리심. 2006.
제1장 조명된 이단
이단자란? ‘이단’과 ‘이단자’라는 영어적 의미를 가진 헬라 단어는 ‘선택 행위’또는 ‘부속물’이란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한동안 하이레시스(hairesis)는 ‘당파’(‘부분’에서)또는 ‘분파’(라틴 동사 ‘자르다’)라는 뜻이었지만 어떤 경멸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정통’은 ‘바르다’, ‘영예롭다’라는 헬라 단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기독교적 의미에서 ‘이단’이란 말은 거짓 교리라는 뜻이다. 정통이 이단과 이단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통에 대하여 역행하는 모습이 있어야만 한다. 종교적인 면에서 볼 때, 정통은 정통을 세우기 위해 신빙성있는 종교적 지식의 근원이 있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하면, 신빙성있는 신적 계시,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단’이란 용어가 다른 종교보다도 계시종교, 즉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원리론적인 면에서 볼 때,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을 ‘정경 종교’라 할 수 있는데, 이들 모두는 분명한 계시, 즉 무엇이 옳고 무엇이 정통이며, 무엇이 거짓되고, 무엇이 이단적인지에 대한 분명한 교리와 사상을 제시하고 있다. 실질적인 면에서 볼 때, 기독교는 이단들에 의해 성격이 잘지워지고, 유대교나 이슬람교보다도 이단들을 억압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 이유는 기독교가 교회라는 제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교회가 모임, 연합 또는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믿는다. 교회는 믿음을 산출할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신조까지 산출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모든 기독교인은 구원받기 위해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교회는 제도적인 의미보다 영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입장에서 보면, 교회는 방주로서 특징지어진다. 방주에 오른다는 것은 홍수의 범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단은 기독교 교리를 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음흉한 수단으로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방주를 침몰시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한다.
1. 이단 정의
앞에서 밝혔다시피, 영어 ‘heresy’라는 용어는 헬라어 hairesis(하이레시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고, 그 의미는 음흉한 ‘당파’라는 의미를 가진다. 사도행전 5:17, 15:5 그리고 26:5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이단’은 거짓 믿음에서 나온 분리 또는 파당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전11:19; 갈5:20). 다시 말하면, 이단은 기독교 교회의 단일성을 파괴시키는 일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교리나 그 교리를 고수하는 무리로 일컬어졌다. 초대교회에서 이단은 단순히 교리적 불일치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기독교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근저를 도려내는 그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질적인 면에서 볼 때, 신론과 그리스도론과-후에는 ‘특별한 신학’과 ‘기독론’으로 불리는 것과-이단은 필연적으로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2. 이단의 긍정적인 면
하지만 우리의 할일은 정통이 이단에 빚을 졌다는 것에 주목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단이 정통의 존재를 가능케 했다는 의미이다. 이단이 정통을 전제로 삼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바 있다. 다시 말하면, 정통이 기원적이고, 이단은 반영적이란 말이다. 이단이 먼저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통이 먼저 있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수세기동안 영속된 옛 관습이라는 측면에서 전통적 종교라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전통의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라틴어 traditio(트라디티오)는 ‘매매하다’(trade)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전달의 과정, 즉 문자적으로 말하면, 물건을 넘겨주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수세대동안 전해준 첫 번째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성경이다. 두 번째는 간결하고 신비로운 성경구절들의 의미를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지금 우리가 정통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전통적 이해를 말한다. 과연 정통은 항상 올바른 것일까? 이단이 정통보다 먼저 있었고 정통에 의해서 제재를 받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이단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면, 이단 자체는 정통에 종속되어 있으며 정통의 반작용임을 알게 된다.
제2장 이단은 왜 일어나는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성경의 메시지와 그 성경에 입각한 초대교회의 선포는 놀랍게도 간략했다. 가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어구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어구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생명을 걸만큼 중요한 슬로건이었다. 하지만 충분한 문맥에서 그것을 보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그 슬로건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하게 보인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가? 하나의 인격체이시거나 개념이나 상징이신가? 또 “주님”이시라는 의미는? 그리고 하나님은?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의 하나님, 아니면 유일하신 하나님이신가?
기독교 교리는 복음의 중요한 개념을 명쾌하게 설명하려 했고 개인과 세상의 관계 속에 그 중요한 개념을 두려고 했다. 기독교 교리 문서들 중 가장 정통한 진술은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은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서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한 내용은 하나님, 성부 그리고 모든 것의 창조자시라는 문맥이다. 하지만 사도신경은 설명하지 않고 단지 정의할 뿐이다. 예수님은 성부의 “외아들…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분이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니케아 신조(325)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일하신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분과 인류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칼케돈 신조(451)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성인 측면에서 우리와 같은 분이시며 우리와 동일한 본질로서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기독론의 이단이 없었을 것이고 칼케돈 신조의 필요성도 없었을 것이다. 만일 후기 기독교인들이 칼케돈 신조에 관심을 가지거나 그것을 설명하려고 계속해서 노력하지 않았다면, 칼케돈 이후 어떠한 기독론 이단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칼케돈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의 단일성을 1,000년 동안 유지하게끔 만들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칼케돈이후 기독교 신앙은-적어도 1517년에 시작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전에 있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1,000년 동안 안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과 그런 믿음을 반대했던 로마 가톨릭주의는 도래했던 정통시대에 매우 자세하게 그것을 설명해야함을 강요받았다. 루터, 츠빙글리, 칼빈 그리고 그 외의 종교개혁자들은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칼케돈 기독론을 수용하는 명에서 로마 가톨릭 적대자들과 동의했다. 하지만 16세기에 나타난 지적 자유와 종교적 해방으로 인하여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욕구가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이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은-니케아와 칼케돈에 대한 설명이 아직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옛 문제가 일어나게 되었다. 16세기에 들어서서 고대 기독론의 모든 이단들이 일어난 것은 아닐지라도, 또 그들의 모든 적대자들이 생명을 걸고 투쟁하지는 않았겠지만, 많은 자들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종교개혁 이후 3세기 동안 칼케돈의 교리들은 계속해서 기독론 정통의 시금석이 되었다. 1,100년동안 정통을 지키며 이단을 억제하기 위해 임했던 전투는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거룩한 임무와 당위성이었다. 그것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다서3)를 지키기 위한 임무였다.
1. 유대인과 이교도에 대한 시각들
유대교와 같이 기독교는 그리스도, 나사렛 예수님의 역사적 인물과 사역과 같은 일련의 사건을 기초로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그분의 사역, 죽음, 그리고 부활등은-불과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목격되었을 뿐이었다. 그분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과 그분의 사역에 대하여 들었을 뿐이고,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된다. 출애굽과 같은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출애굽은 당대에 생존했던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목격된 것이고, 이집트나 고대 근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스도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의 사건들은 단지 적은 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목격되었기 때문에 곧 국가와 종교 지도자들과 충돌을 빚게 되었다.
2. 예수 그리스도 인격의 중요성
기독교라는 이름은 이를 시작하셨던 그리스도의 이름에서 유래된다. 불교도 그 종교의 창설자의 이름을 따르지만 모슬렘은 이슬람 모하메트교로 불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교나 이슬람교는 모두 석가와 모하메트의 가르침에 우선적으로 기반을 둔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우선적인 기반을 둔다. 기독교 신앙은 그분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가르침을 믿는다. 예수님을 믿기보다는 “예수님께서 믿으셨던 것처럼 믿기를” 원하는 프로테스탄트 자유주의자들은 기독교의 본질적 속성을 극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1) 유대교를 직면하여
교회는 회당의 딸이라는 점에서 모친과 닮은 점이 많다. 하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점에서 회당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 역사는 옛 종교와 그 종교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태도 속에 있는 두 극단 사이에서 망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극단적인 면에서 유대인들을 그리스도를 죽인 자로 여겨 통렬히 비난하고 핍박했던 종교적 인종적이고 반셈족주의로 지향했다. 이러한 극단은 국립교회들, 즉 로마 가톨릭주의, 동방정교 그리고 기존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일어났다. 다른 극단적인 면에서 모든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보려는 순수한 셈족주의는 그들이 무슨 견해를 가졌든지 간에 그들을 개종시키고 구원시키려 한다. 기독교인들의 해석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메시아적 예언은 이미 성취된 것이다. 이러한 극단은 전자보다 약해 보이지만 프로테스탄트 열적적 근본주의의 부흥주의와 경건주의 가운데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2) 기독교에 끼친 유대교의 공헌
“원시적”보다는 “고등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소개되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네가지 근본적 개념을 전수 받았다. (1) 유일신론, (2) 하나님의 인격성, (3) 축어적 계시개념, (4) 인간사의 시․ 공간에 실재로 간섭하시는 하나님 사상, 역사적 유대교가 위의 네가지 없이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기독교도 무너지고 만다. 전통적 유대교처럼 기독교는 윤리적 경직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성경적으로 위대한 두 종교에 있는 윤리적 오리엔테이션은 일반적으로 창조론에 근거하며, 모든 우주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이성적 존재로서 사람들이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일치하려 한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유대교와 기독교에 있는 이러한 일반적 오리엔테이션은 역사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당위성은 그분의 계명이 공정하다는 일반적이고 철학적인 통찰력에서가 아니라 (그러한 통찰력이 격하되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역사 속에 행하셨던 그 어떤 것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임무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이러한 행위는, 유대인들을 출애굽 시키신 일에서부터 기인되었고, 바로의 손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은 십계명의 시작이고, 하나님 율법의 가장 근본적인 기초가 된다(출20:2). 이것은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으로서 매년 유월절에 온 민족이 이를 기억하기 위해 기념한다.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출애굽은 너무나 단순한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종 되었던 애굽에서 탈출시키셨기에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순종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의 도덕적 당위성은 출애굽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경험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부활절 아침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건에 근거한다. 부활이라는 사건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절 아침, 부활하신 분 안에 근거한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처럼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한다. 유대인들이 모세의 법을 따르기 위해 모세를 알 필요가 없었지만 기독교인들은 정확하게 그분이 누구셨고 누구신지 알아야만 한다. 유대교는 “모세론”을 가지지 못했지만, 기독교 기독론은 필수불가결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교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이러한 비교에서 알 수 있다. 그래서 유대교는 역사적이기는 하지만 교의적이지는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성격상으로 반교의적인 사람들은 기독교에서 불편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교의와 깊은 연관없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3) 다른 종교에 직면한 기독교
근본적으로 기독교는 당대의 다른 모든 종교보다 유대교와 흡사한 점이 많았다. 대부분의 이교 체제가 교의적이지 못하고 원리상 예수님의 선언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와 이교 간에 빚은 갈등은 달랐다. 유대교는 원리상 역사에 도래하실 메시아가 “본디오 빌라도 하에”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특별한 한 인간,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한 인정은 아니었다. 이교도는 중개자의 사상을 수용하고 그러한 일을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본디오 빌라도하에” 있을 특별한 역사에 단 한번 있을 것이고 특정한 사람이 온 보편적 일을 감당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황제는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했으며, 헬라 지역의 왕족들 역시 하나님이나 신들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마 정부는 황제와 로마의 수호신을 경배하는 시만, 국가 종교에 순응하는 종파인 경우에는 새로운 종교라 하더라도 수용했다. 로마 제국이 그렇게 오랫동안 기독교를 반대한 뚜렷한 이유는 영적 단일성을 도모하며 지배력을 손상시킨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요구된 로마법에 따라 형식적으로 황제를 경배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제국의 안정과 단일이 유지되는 그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로마제국은 인류에게 안정과 복지를 제공하는 세력이었기 때문에 황제나 제국 수호신의 경배를 거절하는 행위는 인류를 증오하는 처사였다. 기독교인에 대한 고대 세계의 인식은 새로운 종교라는 것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로서 모든 종교의 적대자였다. 로마제국 내에서 서로 다투는 개인 구원을 위한 많은 종교들과 비교해 볼 때, 기독교는 절대적 주장, 즉 참 하나님만 경배해야 하고 유일한 참 진리만 고수했었다. 고대 이교도에게 비방 받는 이유는 특별한 기독교 교리나 견해가 아니라 기독교만이 참되고 그 외의 종교는 모두 거짓되고 무용지물이라는 독단론 때문이었다. 기독교는 종교적 복수주의를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수주의 이론이 다양한 견해를 수용한다고 하지만 종교적 복수 사회가 기독교를 수용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4) 기독교가 직면한 고대 인문주의와 도덕적 철학
기독교 윤리와 유대교가 그 이면에 동기의 차이점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유사한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의 자연법과 바울은 동시대 스토아 철학의 도덕성, 즉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것과 흡사하다. 바울과 세네카의 사상은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문학적 위조, 즉 두사람 간에 허상적인 일치성이 있었다고 한다.
동기나 효율적인 면에서 기독교 도덕은 고대 이교철학과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성과 스토아 철학의 도덕성의 목적은 덕망 있는 개인의 삶, 개인적 영혼의 위대성이었다. 그러한 목적은 행동의 높은 기준을 만들 수 있지만 성격상 어떤 고귀성을 산출할 때만 가능했다. 기독교는 주위에 있는 문화보다 다소간 염세적이었다. 짧은 시간에서 보면 염세적이지만 긴 시간에서 보면 보다 낙관적이라 할 수 있다. 이교도들은 부유한 세네카처럼 특별히 아무런 물질적 걱정을 하지 않더라도 술과 장미의 세월로 존재를 이상화할 수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존재를 눈물과 피의 베일로 보았다. 인생이 얼마나 즐겁고 우아하든지 간에 반드시 그 끝은 반드시 찾아온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고후4:17)이라는 입장을 기독교인들이 취하고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만이 “생명이요 부활”이시기 때문이다(요11:25). 가장 고귀한 이교도들은 영웅적으로, 금욕적으로, 슬프게 죽었을 것이지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려”(고후4:17)는 기독교인들은 소망을 가지면서 죽을 수 있었고, 실제로 죽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영광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서 다스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 가끔 죽어야만 했던 경우를 직면했기 때문에 그들이 믿었던 그분을 보다 정확하게 아는 것이(딤후1:12) 필요했다. 또 그분이 누구셨고, 누구시며, 무엇을 하시며, 무엇을 하실 것인가가 매우 중요했다. 믿음을 위해 죽어야 할 상황에 늘 직면했고 늘 불안해 있었기 때문에 교리를 만드는 일이 초대교회에 중요했다. 또 그들은 이단을 자신의 구원을 담보로 하는 거짓 교리를 너무나 두려웠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약속하기를,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안다”(요일3:2)고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가 누구셨고 누구와 같은지를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이다.
3. 교리의 중요성과 정확성
많은 종교들을 점검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은 올바른 행동이나 규율이다. 기독교는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고 특별한 교리로 가득차 있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중요하게 보이지만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모든 교리를 대동소이 하다고 보았다. 부분적 이유로서는 모든 교리가 하나님의 틀림없는 계시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만일 신적인 계시가 아니라면 교리가 될 수 없으며, 신적인 계시라면 평범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에서-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의 신성론과 같은 것에서-중심되는 여러 교리들은 4세기나 5세기까지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최소한, 최대한도로 가능한 답변으로서는 그 교리들이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명시되었지만 처음부터 기독교 신앙 안에 내재해 있었다는 것이다.
1) 교리적 믿음과 신뢰적 믿음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은 교리적 믿음과 신뢰적 믿음을 양분시키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면과 “가장 멀리 있는 자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는” 능력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어떤 주장들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구원에 필요한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는 어떤 교리의 문맥에서만 이해되며 그것들이 그분의 사역에 대하여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 신조의 중요성
초대 기독교인들의 매일 예배와 삶에서 신조는 매우 귀중한 부분이었다. 20세기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렵겠지만 초대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에 대한 특별한 진술을 알고 수용한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신조가 너무도 중요했기에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것들을 마음으로 배우고 항상 반복해야만 했었다. 신뢰의 믿음과 특별한 교리를 수용하는 믿음 간의 현대 이원론은-대개 ‘융통성이 없는 교리’의 요구가 없어도 ‘신뢰’의 믿음을 위해 선입관을 강하게 직면하게 되는 이원론-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특별한 것이 진실하다고 이해되었기 때문에 핍박가운데서라도 그리스도를 신뢰할 수 이었던 초대기독교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4. 교리의 발생
믿음은 기독교인을 만들지만 교리는 교회를 만든다. 명백한 교리적 바탕이 없어도 교회가 오랫동안 견딜 수 있고, 초기 교리적 바탕에 반응할 수 있지만 명백하고 중요한 교리 없이는 교회가 어떤 면에서도 일어나지 못한다. 그것이 “교의”든 “교리”든지 간에 교의라 부르는 어떤 근본적 진술의 진리성을 믿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 종교적 공동체가 어떤 특별하고 잘 정의된 가르침을 고수하지 않고서는 점점 사라질 것이고 기독교 공동체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교의적 논쟁이 너무 중요하여 공동체를 분리시키는 경우에 이르게 될 때 그것을 이단이라 부른다. 그것을 거부하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정통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단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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