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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뱅의 예정론의 전개
- Geneva에서의 첫 정주기(定住期)를 중심으로 -
The Evolvement of Calvin's Doctrine of Predestination
강 정 진
Joseph J. Kang
Ⅰ. 들어가는 말
주지(周知)하는 바와 같이 예정(predestination)이라는 용어는 깔뱅의 적대자들이었던 미카엘 세르베투스(Michael Servertus,1511-1553)의 화형과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Stefan Zwig, Castellio gegen Calvin, Fischer, 1996 참조-를 정죄했던 깔뱅에 대한 부정적이고 편향적인 이미지 때문에 대단히 부정적인 용어로 경화되었었다. 따라서 예정론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주제를 논구하게 된 이유는 그것이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성경에 명백히 제시되어 있는 교리이기 때문이었다.
칼빈신학교의 도서관 사서(Librarian)인 피터 드 클래르크(Peter De Klerk)가 일찍이 1961년에 “Calvin Bibliography”를 Calvin Theological Journal에 기고하면서부터 천명한바 있듯이 깔뱅 사상에 대한 문헌이 매우 풍부하게 출간될지라도(20세기의 Calvin Renaissance) 그의 예정 교리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도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깔뱅은 흔히 예정교리를 자신의 신학체계의 중심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사실상 그의 대작(Magnum Opus)인 「기독교 강요」를 세밀히 연구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추정을 확신하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Alister McGrath). 분명 깔뱅은 예정교리에 대해 조심스러운 접근방식을 수용했으며 단지 4개의 장에서만 예정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Inst, Ⅲ-21-24).
「기독교 강요」의 1559년 최종판에 나타난 예정에 대한 깔뱅의 주장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는 바 그것은 은총론에 대한 그의 해설이후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정교리 연구의 중요한 단초(端礎)가 된다. 깔뱅이 이 당혹스러운, 두려운(horrible)예정이라는 주제에 대한 고찰로 방향을 급선회한 것은 믿음에 대한 칭의교리와 같은 주제들이 상세히 고찰된 후에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볼 때 예정은 이러한 분석에 선행되어야만 한다. 분명 예정은 개인이 선택된 배경을 정초시키고 나아가 개인의 칭의와 성화가 그 뒤를 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깔뱅은 이러한 논리적 규범을 따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깔뱅의 예정에 대한 분석은 관찰된 사실들로부터 전개된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믿으나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바로 예정교리의 일차적 기능은 왜 어떤 사람들은 복음에 반응하고 어떤 사람들은 복음에 반응하지 않는가?하는 문제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은 은총에 대한 다양한 인간의 반응을 설명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분명 깔뱅의 예정교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선입견(先入見)에 근거하여 추론된 교리라기 보다는 성경적 입장에서 해석된, 인간경험의 자료들에 대한 논구로 간주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정에 대한 신념은 본래 믿음의 조항이 아니고 경험이라는 수수께끼의 입장에서 각 개인에게 미치는 은총의 결과에 대한 성경적 고찰로 획득된 최종적 결론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이것이 교회사적으로 볼 때 결코 신학적 갱신은 아니었다. 그는 기독교 신학의 영역속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학자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중세 후기의 다수의 신학자들중, 특히 리미니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of Rimini)와 오르비에토의 위골리노(Hugolino of Orvieto)등과 같은 당시의 아우구스티누스 학파(Augustinian School)의 학자들은 이미 절대적 이중예정교리(絶對的 二重豫定敎理)를 가르쳤었는바 깔뱅이 중세후기의 아우구스티누스학파의 이러한 경향을 전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사료된다. 분명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주의는 깔뱅의 가르침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정교리는 깔뱅사상의 주요한 전제(前提)는 아니다. 예정교리는 복음의 선포결과에 수반되는 당혹스러운 문제에 대해 설명하려할 때 제기되는 부수적인 교리일 뿐이다. 그러나 후대의 깔뱅주의자들이 새로운 지적인 발전의 입장에서 깔뱅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개조하려고 시도했을 때 그의 기독교 신학구조에 불가피한 변화가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최근에 이르러 깔뱅신학에 있어서 예정교리의 중심성의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 경향이 있는데 본고에서는 예정교리의 중심성과 그 위치, 즉 구원론적(soteriological)인 위치에 정향(定向)시켜 논구하려하는데 본고에서는 깔뱅과 관련된 세 가지 전제(前提)들을 논구의 단초(端礎)로 삼으려한다.
첫째, 예정론은 구원론(성령론적)적인 교리라고 하는 점이다. 깔뱅의 생애 전체를 살펴 볼 때, 예정론은 구원교리와는 불가분리한 그런 교리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예정론을 구원론의 시각에서 조망한 이것은 초기 작품인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도 구원론과 예정론의 불가분리성이 드러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후기 저작인 1559년 판 「기독교강요」에서도 그 불가분리성이 전보다 더 충일하고 정확하게 접합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예정론의 주된 작업은 공로주의를 떠나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칭의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의 근본적인 교리를 보호하고 강화하는데에 있는 것이다.
예정교리는 기본적으로 교회론적, 또는 신학적인 교리와는 대조되는 구원론적인 교리이다. 우리가 신학적인 교리로서 예정론을 말할 때, 예정론적 견해가 만사와 만물은 미리 결정되어졌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 대한 예정을 다루는 견해라는 점을 주지(周知)해야 할 것이며, 이 교리는 하나님 자신에게서 즉각적으로 도출되어진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만사와 만물의 운명이 미리 결정되어졌다는 그러한 이해는 구원론적인 맥락에서 예정론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보편적 결정론에 더 많은 강조를 둔다. 이 견해에서는 예정론이 전반적인 신적 결정의 단순한 한 가지 양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예정론은 신적 섭리의 특수한 적용이 된다. 혹자는 Thomas Aquinas의 견해를 생각하기도 한다, Summa Theologica I. Qu. 22-23; Huldrich Zwingli, De Providentia Dei. 참조.
깔뱅은 예정론이 신적 섭리의 특수한 적용이라는 그런 일반적인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예정교리에 구원교리를 주입시킨 것은 섭리와 예정론과의 관계에서 볼 때 섭리교리는 예정교리의 특별한 적용으로 간주될 수 있을 정도까지 섭리교리가 예정론이 가지고 있는 구원론적인 모습으로 형성되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은 먼저 예정론은 근본적으로 교회론적인 교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예정론 속에는 교회론적인 요소가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교회를 선택받은 자의 공회로 정의하는 깔뱅의 정의를 연상케 한다. 비록 초기와 후기의 저술에서 다소 교회론적인 강조가 눈에 띤다고 할지라도, 구원론적인 관심이 초기의 작품에서는 더 두드러진다. 제2장은 교회론적인 강조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예정론이 교회론적으로 설정된 모습은 구원론적으로 예증되어 있기 때문에 연역법적인 실례의 문제를 인용하기도 한다. 명확히 이것은 가시적인 교회의 틀 안에서 선택받은 자를 결정하는 문제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가시적인 교회의 성원이 누구이며, 누가 구원을 받았는지 알고자 하기 때문에 결국 구원론적인 문제로 귀착된다. Calvin의 연역법적인 실례에 대해서는 Wilhelm Niesel의 “Syllogismus Practious?" Aus Theologie und Geschichte der Reformerts Kirche. gestembe für E.F.K. Muller (Neukirchen, K. Moors, 1933), pp. 158-79와 독일어로 개정한 Harold Knight가 번역한 The Theology of Calvin을 보라 (Phil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56), pp. 170-81. Oorthuys도 ”de beteekenis van het nieuve leven voor de sekerheid des geloofs, volgens Calvijns Institute." onder Eigen Vaandel, XIII (1938), p. 264에서 동의 하고 있다. 더 적절한 것은 G. C. Barkouwer, Hugo Bekker가 번역한 Divine Election, (Studies in Dogmatics Series: Grand Rapids, Mich.: W.B. Eerdmans Publishing Co., 1960), pp. 288-90과 Fred N. Klooster, Calvin's Doctrine of Predestination (Calvin Theological Seminary Monograph Series," Vol III: Grand Rapids, Mich.: Calvin Theological Seminary, 1961), p. 34.
그의 신학적 전개에서 알 수 있듯이, 깔뱅의 주된 관심은 반복해서 구원론적 모습을 드러내는데에 있었다. 바로 이것은 깔뱅과 그의 반대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된 이슈가-일반적으로 개혁자들과 카톨릭 신학 사이-교회론이 아니라 구원론적인 문제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예정론은 더욱 철저히 교회론적인 관심 보다는 구원론적인 관심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깔뱅의 예정교리는 구원론적인 문제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논쟁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만약에 구원론이 주된 문제라면 예정론은 구원론을 가장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된다. 깔뱅은 반복해서 개혁주의 신학의 구원론을 수호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예정론의 논증적 이슈들을 사용한다. 따라서 예정론과 그 기능을 깔뱅의 신학적 틀 안에서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원론이 반대자들과의 공방을 통해서 잘못된 견해임을 입증할 수 있는 논쟁적 방법을 그 구원론적인 촛점에 첨가시켜야만 한다.
세째, 기독교 강요의 구원론적인 성격과 논쟁적 기능으로 인하여 예정론은 드디어 깔뱅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예정론은 깔뱅 신학의 구원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교리가 되었던 것이다. 예정론의 영향력은 심대한 것이고,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 이미 주장되어 왔었던 견해들과도 일치하는 이유는 바로 구원론적인 진술들에 기인한다. 이러한 모습과 영향이 구원론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지배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그 구원론의 틀 안에서 예정론의 영향력은 언제나 그 구원론에 활력을 불어넣어 약화되거나 절감되지 않도록 한다. 또 한 편, 교리 형성에 있어서 구원론의 영역을 넘어서서 다른 교리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구원론적 진술에 대한 예정론의 영향은 심대한 것이어서 다른 교리에 대한 구원론적. 방법론적 틀 안에서 구원론적인 진술을 넘어 깔뱅 신학의 조직화된 원칙의 일부가 된다.). 예정론은 일반적교리 또는 어떤 특별한 교리를 신학화 하기 위한 출발점이 됨으로서 이러한 역할을 감당한다: 차라리 예정론은 다른 교리를 진술하고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진다. 예정론은 깔뱅에게 있어서 구원론의 핵심이 된다고 하는 의미에서 조직적인 원칙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교리적 틀이 세워지는 원칙도 된다. 더욱이 예정론은 구원론과 교회론의 시금석이 된다. 예정론은 깔뱅 신학(구원론과 교회론)의 고유한 순서에 있어서 신학적 우선성을 확립하고 있으므로 다른 교리들은 언제나 그 예정론적인 어떤 진술을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깔뱅 신학에 대해 이미 연구되어온 교리들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 세 가지 상호 관련된 확신들에 대한 근본적인 지식이 되고 있다. 조직신학에 영향을 끼치거나 당대 신학적 관심이 부적당하게 강조되어지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에, 또 예정론에서 공연히 흠을 잡는 것으로 인하여 그 중요한 신학 운동 중 하나에 근거해서 깔뱅의 예정론 교리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예정론에 대한 연구는 예정론이 스스로를 연구하도록 한다. Paul Jacobs, Predestination und Verantwortlichkeit bei Calvin ("Beiträge zur Geschichte und Lehre der Reformiortan Kirche," vol. I: Neukirchen: Neukirchener Verlag des Ersiehungsvereins, 1937), pp. 20-40, "speculative," "religious," and "speculative-religious"의 제목 하에 19세기 중엽 Alexander Schweizer로부처 자기시대까지 예정론에 대한 Calvin의 학문이 조직신학적 연구에 의해 영향받아 왔던 제 방법들을 검토하였다. 좀 더 최근에 Niesel은 Calvin의 예정 교리를 포함해서 전 Calvin신학을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으로 이해하였다. A. Dowey는 The Knowledge of God in Calvin's Theolog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52)에서 상호관련 속에서 그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였다. 또 한편, J.K.S. Reid는 “The Office of Christ in Predestination,"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I(1948), pp. 5-12에서 Calvin의 예정론 교리를 비난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교리는 충분히 그리스도 중심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연구들은 이러한 오류를 어느 정도 범해 왔기 때문에, 그들은 16세기의 신학 논쟁들은 가장 우선하는 구원론적 성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깔뱅의 예정론 교리가 보다 커다란 논쟁과 관련하여 어떻게 작용하는가, 또는 어떻게 평가되어져야 하는 가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에 실패했던 것이다.
깔뱅의 예정론 교리가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 하는 과정을 검토해 보면, 제1부는 신학적 용어와 그 논쟁에 있어서 고조되는 정확성을 설명하고자 할 뿐만아니라 깔뱅의 예정교리가 가지고 있는 논쟁적이며 공격적인 성격이 예정교리에 대한 깔뱅의 이해를 변경시키지는 못했지만(예정론이 나중에 가서는 그다지 구원론적은 아니었지만), 그 정확성과 논쟁적 성격은 맨 처음에 암시적으로 주장되어 왔었던 구원론과 예정론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데에 도움을 준 결과, 구원론과 예정론을 단단하게 결속시키는데 이바지 하였다. 제2부는 이렇게 구원론적 강조를 맨 앞에 두는 것이 예정교리의 어떤 특정 부문에서 깔뱅의 견해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또한 논쟁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예정교리를 이용해서 깔뱅은 예정론이 가지고 있는 구원론적 성격을 어떻게 역설해 왔는가를 다룬다. 이러한 작업은 예정론이 섭리교리에 대해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연구하는 것에 의해서, 선택과 유기교리의 대등성과 그 순서에서 나타나는 영향을 조사함에 따라, 예정론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Ⅱ. 연구의 범위와 모티프
깔뱅의 예정론은 크게 3시기로 전개되어진다. (1) 제네바에서의 첫 정주(1536-38), (2) 스트라스부르그의 막간시절(1538-41); (3) 논쟁의 시기(1551-59). 등인데 초기사역기간인 제네바에서의 첫 정주기(1536~38) 동안의 발달에 촛점을 맞추어 논구하려한다.
예정론의 발달로 인한 전반적인 공박은 처음 구원론적인 확신들로부터 두, 세 번째 시기까지 고조되어 온 신학적 정확성과 논증적인 강조까지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정확성이 고조된다고 해서 초기의 예정론을 이미 제안한 논지와 배치되게 왜곡시키지는 않았다. 깔뱅은 그 최종 형태를 하나님에 관한 교리에서 이끌어 왔는데, 그 최종 형태를 구원론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Heins Otten, Calvins Theologische Anschauung von der Prädestination (Forschunggen zur Geschichte und des Protestantismus, vol. IX. N.1: Munich: Chr. Kaiser Verlag, 1938), pp. 130-35,에서 이러한 견해를 주로 옹호했다. Heinrich Quistorp는, "Sichtbare und unsichtbare Kirche bei Calvin," Evangelische Theologie, IX (1949-50), p. 95,에서 마찬가지로 옹호하였다. 좀 더 조심스러운 것은 Johannes Dantine은, "Die Prädestinationslehre bei Calvin und Beza" (unpublished Doctoral Dissertation, Göttingen, 1965), p. 34,에서 그 자신이 여러 가지 면에서 동의 하고 있는 Calvin과 Beza에 대한 연구로서 Otten이 행한 구별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예정론과 구원론의 불가 분리성을 인식하였다.
달리 설명한다면, 깔뱅의 이러한 변화는 예정교리를 실천적이고 종교적인 방향에서 좀 더 이론적이고 사색적인 방향으로 추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만약 이것이 그 경우라면, 깔뱅은 그의 전 생애 동안 예정론에 대한 두 개의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결론짓는 것이 좀 더 올바를 수도 있다. 깔뱅의 예정교리를 하나님에 관한 교리 쪽으로 좀 더 밀접하게 이끌어 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전문용어를 사용할 필요성이 고조된다 할지라도--예컨대, 하나님의 명령, 근접.원접 원인 사이의 차이점, 그리고 하나님의 숨겨진 의지--그렇게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의 의도도 아니었고, 또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해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가지 주지해야 할 것은 깔뱅의 예정론에 대한 논쟁은 항상 구원론적 맥락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점이다. 더욱이 그 의도와 결과에 있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시기 동안에 일어났던 정확성의 요구는 자신의 예정 교리에 대한 기본적인 구원론적 공박을 보호하고 자세히 밝히는 것뿐이었다. Calvin의 예정론에 대한 전개와 요약을 위해서는 Otten Max Scheibe의 Calvins Prädestinationslehre: Ein Beiträge zur Wurdigung der Eiganart einer Theologie und Religiönitat (Halle: M. Niemeyer, 1897): Andrios D. R. Polman. De Praedestinatieleer von Augustinus, Thomas von Aquino en Calvijn: sen Dogmatrische Studie (Vraneker. T. Wever N.V., 1936), pp. 313-56을 보라.
따라서 그 전개와 발달은 그 어떤 중요한 단절도 포함하지 않는다. 1537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나타나는 유기 교리에 대한 그 어떤 교리적인 것들도 1536년 판 「기독교강요」와 급한 단절을 결코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후기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것을 예상할 수가 있다.
정확성에 따른 이러한 경향은 교리발달에 관한 깔뱅의 일반적인 견해와 모순되지 않는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Walter G. Hards의 번역본에서 그 자세한 인용이 나온다: “A Critical Translation and Evaluation of the Nuclsus of the 1536 Edition of Calvin's Institutes" (Unpublished Th.D. dissertation,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1955). 그리고 그 인용들은 쭉 비교되어 왔었던 표준 라틴판과 마찬가지로 Hards로부터 인용되었다.: (1) Gulielmus Baum, Eduardus Cunits, Eduardus Reuss, I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59 vols.: Corpus Reformatorum. vols XXIX-LXXXVII: Brunvigae: C. A. Schwetachke et filium, 1853-1900), I. cols., 1-252: 이후부터 씨리즈가 아니라 Calvin의 작품 중 어느 부분을 책 표지판을 가진 CO로서 인용하였음: 그리고 (2) 좀 더 최근의 비평판--라틴 각주를 달고 있는-- Peter Barth와 Wilhelm Niesel, Johannis Cavini Opera Selecta (5 vols: Munich: Chr. Kaiser Verlag, 1926-62), I, 19-283: 그 이후부터는 책 넘버와 페이지에 따라 참조로서 OS로서 인용되었다.
깔뱅은 이러한 연구로 인한 예정론의 발달과 전개에 관하여 결론지을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하였다. 깔뱅은 아리우스 논쟁을 언급하면서 교부들이 직면한 반대자들의 애매모호한 용어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CO. I, 61; OS, I, 74.
그 반대자들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서 교부들은 예리하게 자신의 견해를 진술하였다. 예를 들자면,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였다. 아리우스는 자신이 교부들과 일치하는 것처럼 가장하였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피조되어진 첫 번째 피조물로 진술하였다. 아리우스주의를 씻어내 버리기 위해서 깔뱅은 “교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Ibid.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와 동질의 아들이시고 영원하신 아들이심을 선언하였다”고 논증한다. 처음부터 아리우스주의자들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진정으로 고백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동일본질임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결론짓는다. 그 사소한 단어가 신실한 그리스도인과 신성모독적인 아리우스주의자들을 구별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Hards, p. 157; CO, I, 61; OS, I, 74: "Quod is principio, Christum confessi essent sincere et ex animo, Deum, non inficiati essent patri esseconsub- stanialem . . . Jt voculo illa distinguebat inter purao fidei Christianos, et sacrilegos Arianos."
깔뱅의 예정교리를 교부들의 방법론에 적용하여 본다면, 그 발달과정에서 나타난 신학적 정확도는 반드시 교부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깔뱅에게 있어서 예정교리의 충실한 발달과 전개는 반대자들의 오류를 밝히 규명해주는 구원론적 확신들을 명확하게 만든다.
Ⅲ. 제네바에서의 첫 정주기
- 선택을 통해 규정되는 예정론 -
1536년에서 1538년까지, 깔뱅은 선택교리의 관점에서 예정론을 우선적으로 다루었는데, 그는 거기에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논평을 가했다. 유기교리는 깔뱅 신학에서 어떤 통합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론 논의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두 가지 저작들은(1536, 1537년 판 「기독교강요」) 이중 예정론을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깔뱅의 신학이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은 이 기간 동안의 발달 전개로 볼 때 명백하다. 이러한 점에서 후자는 더 명백하다. 그러나 「기독교강요」는 종종 인정되고 있는 것 보다 그 진술에 있어서 명백치 못할지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이중 예정론을 더욱 세밀하게 담고 있다. 이 두 가지 진술들을 분석하는 예에 한 가지 덧붙여서, 1536-37년까지의 「기독교강요」의 세 번째에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선택과 유기에 대한 어떤 언급이 비록 없었다고 할지라도, 숙고할 가치가 있다고 사료되어지기 때문이다.
1. 1536년 판 「기독교강요」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 totam fere pietatis summon et quid est in doctrins salutis cognitu nesessarium complectens, omnibus peitatis studiesis lectu aignissimum opus ac recens editum. Basel, 1536. Bernnard Speiss가 독일어로 번역하였음; Christliche glaubenslehre nach der Alteaten ausgabe vom Jahre 1536 (Weisbaden: Limbarth, 1877). Paul Hanry는 번역에 길다란 인용문을 포함시켜 이 번역본을 장별로 번역하였다: The Life and Times of John Calvin, The Great Reformer, Henry Stobbling 역 (2 vols. in 1: New York: Robert Carter Brothers, 1859), I. 69-87.
이 작업에 있어서 선택에 대한 깔뱅의 견해가 후자가 하나님의 법령에 대한 Calvin의 이해와 밀접히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선택이라는 용어는 예정론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이 범주의 논의 속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독립된 논문으로 취급되진 않았으나 Calvin이 독립된 교리로써 선택에 대한 교리를 다루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에 대한 논평에 대해서는 Polman p. 319를 보라: Paul Jacobs, Prädestination und Varantwortlichkeit bai Calvin ("Beiträge zur Geschichts und Lehre der Roformierten kirche," vol. I: Neukirchen: Neukirchener Verlag des Erziehungavereins, 1937), p. 61: Ernst Wolf, "Erwählungslshrs and Prädestinationsproblem," Die Predigt yen der Gnadenwahl (Theologische Existenz heute, N.F. vol. XXVIII: Munich: Chr. Kaiser Verlag, 1951), p. 93.
구원론이라는 폭넓은 논의 하에 군데 군데 삽입되어졌다(제 1 장: “신경”). Calvin은 그의 서문에서 (CO, II, 9-12 OS III, 9) 이 편집본의 목적이 다음의 두 가지 관심사 보다 더 폭이 넓다고 밝힌다. 그 첫 번 째는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 주장되어져 온 전반적인 기독교 교리에 대한 기본적인 서문을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두 번째는 교리 문제로 말미암아 프랑스에서 처형된 사람들에 대한 변증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Francois Wendel, Calvin: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His Religious Thought, translated by Philip Mairet (London: Collins, 1963), pp. 145-6: Jean-Daniel Benoit--1560년도 판 편집본에 대한 서론적 논평에서--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estisnne (5 vols.: Bibliotheque des texts philosopiques: Paris, Librairie Philosopique J. Vrin, 1957-63), I, 11-12;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2), p. 124: I. J. Hesselink, "Development and Purpose of Calvin's Institutes, Reformed Theological Review, XXIV (Oct., 1965), pp. 65-72; and Alexandre Ganoczy, La jeune Calvin; genese et evolution de za vocation reformatrice (Veroffentlichungen des Instituts fur Europaische Geschichte Mainz, vol. XL; Weisbaden: F. Steiner, 1966), p. 207. 이 편집본에 대해서는 물론 그 제목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Karl Reuter, Das Grundverständnis der Theologia Calvins unter Einbosiehung ihrer geschichtliehen Abhangigkeiten (Beiträge zur Geschichte und Lahre der Roformiorten Kirche, vol. XV pt. I; Noukirchen: Neukirchener Verlag des Erziehungsvereins, 1963), p. 94에서 그 기간 동안의 다른 작품들은--Marsilio Ficine, 1474; Petrus Ramus, 1576; and Johannes Manheim, 1560--기독교에서의 가르침이라는 용어를 관련시키고 있거나, 또는 목적상 Calvin과 비슷하거나 「기독교 강요」와 동등한 용어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학문적 철학적 신학 방법론과 그들의 작품을 구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경건성에 강조를 두기 위해서. 그 문학적 역사와 Calvin의 「기독교 강요」의 변천을 위해서는 Benjamin B. Warfield를 보라. "The Literary History of Calvin;s Institutes", Presbyterian and Reformed Review, X, N. 38 (1899), pp. 193-219.
선택교리가 가지고 있는 논쟁적 측면이 이러한 구원론적인 논의와 직조되어 왔던 것이다. Gottfried Thomasius, Die Christliche, Dogmengeschichte als entwicklungegeschichte des Kirchlichen Lehzbegriffs (2 vols.; 2d. ed.; Erlangen: A. Deichert, 1886-89). II, 647-48에서 이 용어들에 대해서 똑같은 현상을 지적한다: "Es ist also ein doppeltes Interesse, von welchem aus Calvin hier die Prädestinationslehre versicht, einmal um jede kathclisierende Betonnung des eigenen Verdienstes durch den Hinweis, dassunser heil lediglich von einem ewigen Akt Gottes absuschneiden; sodamn aber, um den Christen, der in der Gemeinschaft Jesu lebt, Zu vergewissen, indem begründet auf Gottes ewigen Ratzchluss, das Heil des Menchen sehlechthin sicher stellt".
예를 들자면, 1장의 문맥 안에서 깔뱅은 카톨릭의 공로주의에 대항해서 선택교리의 변증적 모습에 주의를 기울였다. 깔뱅은 선택교리는 그러한 공로주의를 철저히 배제시킨다고 말한다. Armand A. La Vallee, "Calvin's Criticism of Scholastic Theology" (unpublished Ph. D. dissertation, Harvard University, 1967), pp. 250-53; 「기독교 강요」의 여러 편집본에서 스콜라적 신학에 대한 Calvin의 비판을 위한 것들. Otto Ritschl, Die Reformeirte Theologie des 16 und 17 Jahrunderts in ihrer Entstehung und Entwickiung (Dogmensgeschichte des Protestantismus, vol. III; Go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26), p. 166에서 그는 공로주의에 의한 구원에 대한 공박으로서 Calvin의 선택견해를 정당하게 간주한다.
교회론적 맥락 안에서 깔뱅은 선택받은 자와 가견적 교회를 동등하게 간주하는 경향을 지닌 재세례파들을 반대한다. 이러한 교회론적 특색은 로마에 교회 중심을 두고 가견적 교회와 참 교회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카톨릭을 공박한다.
깔뱅에 대한 연구는 1536년 논문이 마치 교회 정의에 국한된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가 교회론적 진술과 마찬가지로 구원론적인 것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Paul Wernle, “Calvin” (Der Evangelische Glaube nach den Hayptachrifen der Reformatoren. vol. III; Tübingen: J. C. B. Mohr [Paul Siebeck], 1919, p. 278에서 선택이라는 용어가 1536년도 교회론의 논의에서 20번이나 사용된 반면에 율법을 다룬 장에서의 구원교리 중의 하나인 선택사상과는 단 한 군데도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G. Oorthuys 역시 교회론적 맥락만을 다룬다; De Leer der Praedestinatie (Wageningen: H. Veenman en Zonen, 1931), p. 207; P. Barth, Die Erwählungslehre in Calvins Instituto von 1536, (München: Chr. Kaiser Verlag, 1936), p. 434; and Jacobs, p. 61.
예를 들자면 빌헬름 니젤(W. Niesel)은 구원론 부분에서 선택교리를 간과했다. 그는 (1) 깔뱅의 선택교리에 관한 본질적인 것들이 1536년도 판 「기독교강요」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서 교회론과 구원론의 불가분리성에 덧붙여서 교회론적 논평들을 활용하였다. (2) 또한 그는 제2장의 「사도신경」 4부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 선택교리를 언급할 필요가 있기 이전에 이미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진술할 수 있을 때까지 선택에 대한 논문을 연기하였다. Niesel은 다음의 두곳에서 이 논증을 사용한다: Calvin, p. 165와 “Calvins Erwählungslehre”, Reformiarte Kirchenzeitung, LXXXII (1932), p. 218..
그의 견해는 세 가지 비평을 받는다: (1) 선택교리는 교회에 대한 정의편까지 연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I장의 구원론 편에서 간단히 언급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언급되어진다. (2) 그의 견해는 자신의 의도 속에 짙게 깔려있는 것이 제일 먼저 언급되어야 한다는 논지에 근거하고 있다; (3) 교회론과 관련해서조차, 선택교리는 참 교회의 성격에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실성 같은 구원론적 관심 속으로 함께 용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 선택과 율법. 깔뱅의 선택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율법의 장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십계명에 대한 그의 강해의 서문의 한 부분에서 등장한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은 이 율법들을 성취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제시되어져야 한다. 따라서 율법을 성취함으로서 획득되어지는 의롭다함이 아닌 다른 방법이 다른 곳에서 발견되어져야 할 것이다. 깔뱅이 말하고자 하는 그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만이 획득되어지는 의로움의 전가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력은 개 개인에게 하나님에 의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의 의로움을 전가받는 것을 가능케함으로서 죄 용서와 평화 그리고 화해를 인간에게 전가한다. CO, I, 30; OS, I, 40.
2) 양자됨과 유기. 선택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그러한 공력을 유효케 하는 성령의 역할을 논하는 장에서 나타난다. 선택과 관련된 두 가지 개념인 양자됨과 유기를 통해서 행해지는 간접적인 공력이 바로 그 것이다. 하나님의 어린 백성 가운데로, 은혜로 양자됨은 Ibid.: "in filios Dei gratutio adoptamur . . . ."
성령에 의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은혜인 것이다. 그렇게 양자됨은--양자됨의 배후에 놓여있는 선택의 개념--그리스도와의 교통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를 단단히 움켜쥠으로서, 그리고 견고하고 신뢰할만한 신앙으로서만이 획득되어지는 것이다. CO, I, 31; OS, I, 41; 견고한 신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So certa fide ea amplectimur et accipimus, magna fiducia divinae bonitai innixi, et velut in cubentes, nihilque haesitantes, quin verbum Dei virtus sit et veritas, quod nobis s omnia pollicetur."
그러나 이 시점에서 깔뱅은 이러한 신앙의 원인이나 원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유기에 관한 첫 번째 언급이 즉각적으로 뒤따르는데. 깔뱅은 유기된 자의 지위를 다음의 두 가지 상태로 묘사한다: (1)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성취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에 유기는 모든 사람들의 법적 상태라고 하는 점, Ibid., I, 56; OS, I, 68.
(2) 특별히 죄 속에 계속 머물러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 정립에 실패한 사람들의 끔찍한 참상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 편, 그가 누가 되었든지,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든지 간에, 그가 무엇을 어떻게 행사하고 노력했던지 간에, 그리스도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은 회복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영원한 심판을 피할 도리가 없으며, 하나님에 의해서 거절당한 것이며, 구원에 대해서는 모든 희망도 사라져 버린 사람이라는 점이다. Hards, p. 76; CO, I, 31 OS, I, 41: "Rursum qui parten in Christo non habent, quales sint, quidquid agant vol moliantur, in exitium tamen ac confusionem, astemasque mortin iudicium abeunt, a Deo abiecti, et omni salutis expextatione exclusi."
이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의한”이란 말일 것이다. 명확하게도, 유기의 영역은 전적으로 그 말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말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신적 행위가 다소간 유기 속에 함축되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에 의한” 유기는 개개인의 율법 성취에 대한 실패라고 하는 사실의 확인에 불과하거나, 또는 율법성취에 대한 실패의 원인으로서 신적 교리를 통하여 하나님 스스로도 관련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즉 이런 강조가 유기 속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유기라고 하는 것이 양자되는 것과 병행되어 나타나기 때문인데, 개혁자로서의 깔뱅의 생애 동안에는 선택교리와는 별로 큰 연관성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 예정론이 발달할 가능성은 이미 나타났으며, 선택에서 나타난 신적행위의 명확화는 유기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역할에 대한 명확화가 결과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3) 칭의의 변증으로서의 선택교리. 선택에 대한 두 번째 언급은 아주 변증적이다. 선택교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죄용서의 교리에 이론적 변론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에 의한 칭의의 교리이다. 자력 공로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율법으로 간주하는 오해는 만물에 대한 부정확한 신학적 숙고의 결과인 것이다. CO, I, 51; OS, I, 63.
율법에 순종한다는 것은 인간의 죄성으로 볼 때, 원래 가능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칭의의 신학을 율법의 순종에 근거시키는 것은 기독교 교리 전반을 거짓된 기초 위에 세우는 것과 같다. 깔뱅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 교리와 구원, 이 양자의 참된 기초는 그리스도에 의해 놓여진 것 밖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그 기초란 말인가? 그리스도가 어떻게 구원을 가져오는가?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의롭다고 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실제로 결코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그리스도에 의해 놓인 참 기초는 우리의 공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즐겨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세상이 놓이기 전, 영원전부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았다고 하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죽음의 선고로부터 구속받았을 뿐만 아니라 멸망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된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로서 아버지에 의해 양자와 상속자가 된 것이며, 그리스도의 보혈로 아버지와 화해된 것이며,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게 되어 멸망당하거나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에게 접목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의 분여자가 된 것이며, 소망을 통해 하나님 왕국의 시민이 된 것이다. Ibid.: "Sed quod in eo electi ab aetemo sumus ante mundi constitutionem, nullo nostro merito, sed secundum propositum beneplaciti Dei, quod eius morte ipsi a mortis damnations redepti ac liberti a perditione sumus, quod in ipso adoptati a patre sumus, in filios et haeredes, quod per ipsius sanguinem patri reconciliati, quod illi a patre in custodiam dati sumus ne unquam pereamus aut exicidamus, quod ita illi inscrti iam vitae aetemae quodammodo sumus pqrticipes, in regnum, Dei per spem ingressi texts."
따라서 적당한 신학적 용어의 정립이 요청되는데, “선택받았다(택함받았다), 구속받았다, 양자되었다, 화해되었다, 접붙여졌다(접붙힘은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는 말과 동의어), 또는 견인되었다”는 표현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순종 또는 불순종 여부에 달려 있다기 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위해 깔뱅은 신약성경 본문을 선택교리와 융합시키고 있다. 다음의 본문들은 장 말미에 라틴어 판으로 인용되어졌는데 Hards는 여기에 몇 몇 구절들을 첨가하고 있다: 엡 1:4-5; 롬 9:11; 딤후 1:9; 요 1:12-13; 엡 1:7: 3:6-11; 롬 5:1-2; 고후 5:18-19; 요 10:14-18; 17:12.
우리는 성경구절들의 단순한 반복으로 그러한 인용들의 의미를 흐리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깔뱅은 성경 언어들을 학문적인 언어들 보다 더 선호하고 있다. 그것은 성경구절들이 더욱 확실할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정당한 교리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깔뱅이 성경구절만을 고집한다 할지라도,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명백하게 전달하지 않을지라도, 성경구절이 더 명백하고, 그리고 잘 배열되고 정선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숙지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구절들이 내포하고 있는 교리적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그가 천명한 바 있듯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놓여진 그 기초의 성격상, 이러한 구절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도는 칭의에 대한 깔뱅의 이해를 논증적으로 옹호하는데에 있다. 그것은 공로주의에 대한 공박까지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방어를 위해서 다음의 몇가지 사실들이 주목되어져야 할 것이다.
1. 그는 칭의를 선포하고 있는 여러 성경본문과 인용들을 통해서 신앙에 의한 칭의를 변호하고자 의도하지는 않았다.: 즉 교리 자체로부터가 아니라 차라리 성경 밖의 것으로부터 변론을 시도하고 있다: 즉 그것은 선택이라는 교리에서이다. 선택은 칭의의 결과로 간주되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칭의를 설명하는 데에 가장 편리한 방법은 의지가 죄에 속박됨으로 말미암은 당연한 결과로 선택을 설명하는 것이다. Dantine에게 있어서도 다소 유사하다: Die Prädestinationslehre, p. 38; Dantine 이전에 있어서도 Scheibe는 이에 대해 정당하게 결론짓는다. “Das für die allgemein gedanken über die aweitseitige Prädestination und über die Erwänger hatte, bedarf keiner weiteren Begründung”.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다양한 자료에 대해서는 Wendel의 책 pp. 122-143을 보라; Ganoczy, La jeune Calvin, pp. 132-134; Reuter, pp. 74-75: Ganoczy, pp. 140; 261-62, D. Nauta, Calvin and Luther, Free University Quarterly, II (1952-53), pp. 14-15 (에서 Nauta는 독립되어진 것을 따라 의존적인 것과 유사한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Friedrich Loofs를 참조하라; Leitfaden zum Studien der Dogmengeschechte (4th rev. ed.; Haller; M. Niemeyer, 1906), pp. 877-78: Wernle, Calvin, p, 165; McNeill, History, p. 125; J. Köstlin, "Calvins Institutio nach Form und Inhalt in ihrer geschichtlicher Entwicklung", Theologische Studien un Kritiken, XLI, . Nos. 1 & 3 (1868), p. 21ff. (에서 Köstlin은 매 첫 네장이 Luther에 의존되어진 것임을 주장하였다; E. F. K. Müller도 동의한다, Symbolik: Bergeiohande Darseliung der christlichen Hauptkirchen nach ihrem Grundzüge und ihren wesentlichen Lebensäusserungen (Erlangen: A. Deiohertische Verlagsbuchandlung, 1896), pp. 383f.; Paul Tschackert, Die Entstehung der lutherischen und der reformirten kirchenlehre, samt ihren Innerprotestantischen Gegensätzen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10), p. 391.
더욱이 1537년 판 「신앙고백서」와 1539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깔뱅은 인간론적 숙고로부터도 모든 인간이 이 정당한 복음을 청종하지 않는다는 선택교리를 계속해서 진술하고 있다.
2. 선택교리는 구원받은 사람이 영원 전부터 택함받았다는 진술 속에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이러한 진술은 하나님의 의지가 최상의 원인이 되는 영역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의 명령은 이러한 진술을 명백하게 하지 않는다.
3. 후기 저작에서는 선택의 원인으로서 공로에 대한 예지를 거부한 요소가 함축되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이미 발생했었던 선택은 하나님의 즐거움에 기초한다는 진술 아래 이러한 설명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깔뱅이 나중에 가서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들을 명백하게 한 것은 놀랄만한 일이 못된다. 1539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깔뱅은 선택에 대한 근거로서 공로주의뿐만 아니라, 만약 실제 공로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그러한 예지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공로주의에 대한 예지도 배제시키고 있다. 죄악된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에 대한 예지이기 때문인 것이다. 선택의 원인으로서 예지에 대한 문제와 선택교리에 관하여 이 시점에서 일어났던 견해와 후기 저술에서 나타났던 것들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었다. 후기 작품에서는 보다 큰 정확성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처음으로 진술되었던 것보다는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는가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나중의 견해로 방향 선회하고 있다.
4. 전반적으로 볼 때, 인용구절들은 이 당시 선택교리의 특질이었던 구원론적, 교회론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았다고 구원론적으로 말하는 것에 덧붙여서, 깔뱅은 교회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졌고, (2) 이러한 접붙힘의 결과로서 인간은 결코 멸망당하거나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즉, 교회론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선택은 세상과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무한한 위로와 힘을 부여하는 견인 교리를 포함해서 불가항력적인 은혜인 것이다.
4) 선택과 성화. 제1장에서 선택교리에 대한 세 번째 언급은 아주 명백한데, 칭의라기 보다는 차라리 성화를 언급하면서도 그 문맥적 흐름은 구원론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몽학선생으로서의 율법의 제3사용(third use of the law)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Emil Doumergue, La Pense Religiuse de Calvin (Jean Calvin: les hommes et les choses de son temps. vol. IV; Lausame: Georges Bridel et Cie., 1910), p. 352, Heinz Otten, p. 16; and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69 (모든 사람들은 이 첫 번째 언급을 선택에 대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깔뱅은 공로주의에 대한 거부로서 하나님과의 친교를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거룩한 삶을 배제시키는 것은 신앙에 의한 칭의를 믿는 사람들의 도덕적 관심사의 부족성을 지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한다. 깔뱅은 성화의 중요성을 확신하면서, 거룩한 삶이 천상적 왕국의 영광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따르는 그 선택받은 사람이 그들의 하나님에 의해서 그 동일한 영광으로 인도함 받는다고 우리가 생각한다면, 거룩한 삶이 결코 불편한 것이 아니라고 진술한다. Hards, p. 139; CO, I, 55; OS, I, 67: Sic et nihil erit incommodi, si vitae sanctitatem existimenus esse viam, non quidem quae ducat, sed qua electi a Deo suo in gloriam regni coelestis ducantur: quoniam haec eius voluntas est, glorificare quos sanctificavit.
깔뱅에 의하면 택함받은 사람에게서는 그들이 화해되어졌다는 열매로써 비난스러운 행위나 나태한 행위를 발견할 수 없고 오히려 삶의 거룩함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성화). Doumergue, Jean Calvin, IV, 352: 그는 택함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는 성화의 열매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une inteintion religieuse et pratique a pour but de couper ä sa racine le doctrine des oeuvers, so funeste (disasteriou) ä la piete et á la morale”.
로마서 8:30을 인용해서 결론짓는 완곡한 암시--“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는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구절이 성경본문과 이미 전에 인용했었던 인용문과 융합되어 바로 그 옆에 놓여질 때, Supra, p. 20.
로마서 8:30은 그러한 본문들에 대한 깔뱅의 조직적인 모델이 된다. 로마서의 ”예정된 자들“이란 말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영원 전부터 선택받은 사람이란 말과 동등하다; 의롭다함을 입은 사람이란 말은 구속받은 사람, 화해했다는 말, 그리고 영광화되었다는 표현과 영생에 참여했다는 말, 접붙임을 입은사람이란 말과 같은 말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선택교리가 가지고 있는 구원론적 모습에 대한 강해인 1536년 판 「기독교강요」는 로마서 8:30의 바울에 의해 공식화된 구원의 서정에 상응하는 것이 된다. 깔뱅의 후기 선택교리를--이후부터는 예정론으로 부른다--구성하는 주된 요소는 구원론적, 교회론적 주제에서 도출되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 본문에서 알 수가 있는데 바로 이런 점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깔뱅의 예정론 교리에 있어서 전개의 연속성의 또 다른 예가 있다.
5) 선택과 교회. 이 주제는 구원의 확실성과 견인 교리의 제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과 교회의 선택교리에 대한 가장 길다란 논증이 될 것이다. 깔뱅은 이 문제점들을 「사도신경」에 나오는 제4부를 그의 책 2장에서 다루고 있다. 교회론 중에서 선택에 대한 주된 논의는 Karl Barth가 주목했던 것처럼 Calvin은 4편 중에서 첫 머리에 둔다, The Doctrine of God, edited by G. W. Bromiley and T. F. Torrance and translated by T. H. L. Parker &Others (Church Dogmatics, Vol. II. Pt, 2; Edinburgh: T. & T. Clark, 1957), pp. 81-85; 이후부터는 「교회 교의학」으로 인용됨. 선택교리에 주어진 또 다른 세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기독론 다음에 곧바로 나온다(1537년 판 「기독교강요」와 「신앙 고백서」): 2) 죄에 관련되어 나타나고(1559 Gallican Confession): 3) 구원론의 말미에 나온다(1539, 1554, 특별히 1559년도 판 「기독교강요」). Barth 자신은 특별히 제2항을 선호한다.
거룩한 공회를 다루고 있는 교회 교의학의 이 부분은 성령, 아들, 아버지를 다루고 있는 다른 세 부분들과는 다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필요로 하는 신앙의 관점에서 가견적이고 기구적인 교회와 깔뱅을 연계시켜서는 안된다. 가견적 교회를 믿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삼위일체와 마주 서 있는 교회에 적용되어진 Calvin의 교리는 Hards의 신조와 대립되어있는 Lombard의 신조이다: Hards, p. 298.
“사도신경”에서 이렇게 구별한 깔뱅은 그 가시적인 교회에 어떤 절대성이나 궁극적 충성을 부여하는 위험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한 충성은 구원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 성령의 역사를 위해서만 유보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논증은 깔뱅으로 하여금 교회의 본성에 대한 다른 이해를 갖느니 보다 차라리 강력하게 선택교리에 대해서 말하게 하였던 것이다. 선택교리에 합당한 믿음의 결과로서 비록 교회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가시적 교회는 이 시점에서 신학적 우선성에 있어서 부차적인 것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깔뱅이 가시적 교회의 이차적 성격에 대해 끊임없이 주장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차적인 성격은 충분히 제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시적 교회의 기능은 대부분 유효한 것으로 남아 있다; 교회의 최종적 근거는 비가시적이다. 교회는 선택의 교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선택교리는 교회의 본질인 것이다. Wernle, Calvin, p. 50.
교회를 정의함에 있어서, 깔뱅은 제일 먼저 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논구하고 있다: 그것은 선택받은 사람의 회집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 교회를 하나가 된 것, 보편적인 것, 그리고 거룩한 것으로 칭하였다. 깔뱅은 가시적 교회의 계급 구조와 쉽게 관련되는 개념인 사도적인 것으로 교회를 보지 않았다: 첫째, 교회가 천사들의 모임이 되었든지, 사람의 회집이 되었든지 간에 선택받은 사람들의 모임인 거룩한 공의회라고 하는 (에베소서 1:9-10: 골로새서 1:16); 산 자가 되었든 죽은 자가 되었든지 간에, 그들이 어디에 거주했던지 간에, 그들이 세상 어디에 흩어져 있었든지 간에, 실제로 한 몸의 머리인, 우리들의 주이신 그리스도가 왕이시고 지도자인 한 사회와 한 교회만이 존재한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함을 받은 것에 따라서 하나님의 왕국에 그들은 모인다. 이 교회는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다. 왜냐하면 둘이나 셋 이상의 교회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선택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 결속되어진다. 따라서 그들이 한 머리에 의존하는 것처럼 한 몸에 결합되어진다. 이러한 결속에 따라 그들은 한 몸의 지체로 연합된다. 실제로, 영원한 생명의 동일 상속자로서 부름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동일한 성령 안에서, 사랑과 소망, 한 신앙 안에서 동일시대를 살고 있는, 실제로 하나가 된 것이다(로마서 13:4-5, 고린도 전서 10:16-17; 12:12-27; 에베소서 4:4-6). 교회의 성원이 되도록 하신 영원한 섭리에 의해 선택함을 받은 교회는 주님에 의해 거룩케 되었기에 교회는 거룩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요한복음 17:17-19: 에베소서 5:25-32). Hards, p. 187; CO, I, 72-73; OS, I, 86: "Primum credimus sanctam catholicam, hoc est, universum electorum numerum, sivi angeli sint, sivi homines . . . : ex hominibus, sivi adhuc vivant; ex veventibus, quibuscunque in terris agant, aut ubivis gentium dispersi sint: unam esse ecclesiam ac societatem et unum Dei populum cuius Christus, Dominus noster, duminus noster, dux sit et princeps, ac tanquam unius corporis caput; prout in ipso divina bonitate electi sunt, ante mundi constitutionem, ut in regnum Dei omnes aggregaentur. Haec autem societas catholioa est, id est, universalis, quia non duas aut tras inverire liceat, verum electi dei sic omnes in Christo uniuntur ac cohaerentes, qua eiusdem corporis membre; vere unum facti, vivunt, in eandem viate aetemae haereditatem vocati . . . . Sanota etia est, quia quotquot aetema Dei providentia electi sunt, ut in ecclesiae membra cooptarentur, a Domino omnes sanctificantur . . . ."
1. 선택교리를 교회론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이러한 정의 속에서 나타난다. 실제로, 그러한 관심은 선택교리에 대한 정의라기 보다는 교회의 정의에 더욱 적합하다. 한편, 교회의 정의는 개 개인의 운명에 관한 그 가장 익숙한 구원론적 관심을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함을 입었다,” 택함받았다는 구절이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론적인 것을 배제시키고 교회론적인 것을 강조한 것을 보기 위해서는 Dantine을 보라: Prädestinationslehre, p. 42, 27.
부르크하르트(Burkhart)는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대하여 선택교리가 개개인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언급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고 지나친 진술을 하고 있다. “Kingdom, Church and Baptiam: the Significance of the Doctrine of the Church in the Theology of John Calvin” (unpublished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1958), p. 105.
2. 구원에 있어서 두 기둥이 한 몸의 지체로 선택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신적 선하심과 영원한 섭리가 바로 그 두 기둥에 해당된다. 후자는 언급할 필요성이 있는데, 첫째, 이 본문에서 영원한 섭리라는 말은 2위 하나님과 동의어로도 사용되어질 수 있으며,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적 섭리를 통해서 선택교리를 보충함으로서 섭리라는 용어가 예정과 동의어로서도 사용되어질 수 있다고 하는 점이고, 좀 더 일반적이지만 선택교리로서도 추정되어진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정의를 위해서는 동의성의 예들을 보라; Supra, p. 26. n. 1 그리고 1539년 판 「기독교강요」를 참조하라: CO, II, 700; OS IV, 397: "veniant omnes filii Adam: cum suo creatore contendant ac discepent, quod setema illus providentia, ante suam generationem, perpetuae calamitati adicti fuerint": CO, II, 703; OS, IV, 400: "Siquis causetur, nullam eis inferri necessitatem ex Dei providentia, sed potus ea conditione ab ipso esse creatos, quoniam futuram eorum pravitatem praeviderit: neque nihil dicit, deque totum." 예정론과 섭리론을 다루는 장의 예정론 부분에서 이 모든 것이 나타난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선택과 섭리라는 용어를 상호 교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예정론과 섭리라는 용어 역시 상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포괄적인 섭리 교리로부터 예정론을 도출하기 때문에 깔뱅이 예정론에서 결정론적 견해를 주장한다는 비평을 받는 것은 깔뱅 자신의 후기 진술에 있어서 섭리론과 예정론이 중복되고 애매모호한 것에 기인하며 그 이유는 이러한 교호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1559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깔뱅은 구속주로서의 하나님 아래에 예정론을 놓고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섭리 하에 위치시킴으로서 이러한 모호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두 개념은 끝까지 평행을 이루는 것 같다. 그렇게 된 것은 신학적 비전문성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깔뱅 자신의 마음속에 그 용어들이 원래부터 실제로 동의어였다고 하는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예정론이 충분히 발전하였을 때, 왜 결정론에 근접해가는가 하는 신학적 이유를 추구한다면, 그 원인은 예정론과 섭리의 상호 교환성을 허용한 일반적인 이해 안에서 예정론이 형성되었다는 데에 부분적으로 그 원인이 있다. 이 상호 교환성이 확립되었을 때(하나를 또 다른 하나에서 분리시킬 수 없었음에 기인하지만), 깔뱅의 예정론이 결정론과 유사한 관계에 있는 견해인 원인율을 강조했다는 사실에 의해 결정론적 경향이 재촉받게 되어졌던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론 교리와 선택교리 사이의 후기에 가서 발생한 긴장 관계의 일부가 이 초기의 동의성으로 추적될 수가 있다.
3. 교회를 선택받은 자의 회집으로서 규정한 결과로 깔뱅은 이 지상에 언제나 참된 교회가 있어 왔고,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한다. CO, I, 74; OS, I, 87.
비록 누가 그 가견적인 교회에 속하는 가를 알 수 없다 할지라도, 참된 교회의 명확한 표지는 언제나 존재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정된 성만찬이 행해지는 곳이면 어디든지 참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Ibid., 77; 91.
그 이상의 자세한 것은 실상 파악되기 힘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의 존재를 믿는 것”과 “교회 자체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정반대가 되고 있으며, 깔뱅은 자신의 이러한 확신에 신학의 총체를 걸고 있다. “교회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떤 가시적 징표에 근거해서 선택받은 자들의 불가견적 교회가 이러한 징표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어떤 가시적인 것에 고정되거나 어떤 장소에 제한되거나 아니면 우리들의 감각에 나타날 수 있는 육감적인 것이 아니라고 진술할 때, 이러한 견해에 대한 논쟁적 비난은 인정되어진다. Hards, p. 201; CO, I, 77: OS, I, 91: "Que planum fit non rem osze carnalem, quae sensibus nostris sublici; aut certo apatio circimscribi, aut in sede aliquua figi debeat."
6) 교회론적 배경에서의 구원론적 관심. 깔뱅은 선택받은 자와 참된 교회의 개념과의 관계는 로마서 8:30에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한다는 것을 덧붙인다--선택, 부르심, 칭의 그리고 영화--그것에 의해서, 궁극적인 교회에 대한 관심을 구원론적인 것과 연합시킨다. 실제로, 그것은 구원론적인 성찰이며, 선택교리의 추후 논의를 지배 할 가견적 교회에 대한 교회 교의학적 맥락 안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구원론적 공격은 Jacobs에 의해 강조된다, Prädestination, p. 62 그리고 Heinrich Quistorp, Sichtbare, p.95.
깔뱅이 구원론적 성찰을 드러내기 위해서 전환한 선택교리의 모습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자들과 공동체가 연합하고 하나됨에 있는데, 그것은 부르심, 칭의, 성화, 그리고 영화의 결과에 의한 것이다. 택함 받은 자와 하나님이 예견한 거절된 자들과의 분리인 것이다. 견인은 택함 받은 자와 거절된 자들의 징표가 된다. Jacobs, p. 61; 이에 대해서는 역시 Polman, p. 320을 보라.
깔뱅은 교회에 대한 정의를 해설하는 부분에서 바울의 구원의 서정을 설정한다. 비록 거룩한 공회의 회원이 궁극적으로 선택에 그 근거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선택받은 자의 삶이 부르심, 칭의, 영화를 통해서 역사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선택교리에서 출발하고 부르심과 칭의의 역사적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이 깔뱅의 최종결론에 다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깔뱅은 말하기를 주가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시킬 때, 선택함을 받은 사람들을 중생시키기로 결정하는 근거인 영원한 선택교리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것을 선포할 수 없는 것이다. 주께서 모든 사람들 중에서 그들만을 선별하시는 예외적인 것을 제외하면, 이런 방식으로 그들을 선택했다고 하는 사실을 나타내시기 때문에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지 아니 한 그 어떤 사람도 그 거룩한 왕국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이다. Hards, p. 189; CO, I, 73; OS, I, 87: "itaque Dominu, dum scus vocat, justificat, glorificat, nihil aliud quan aeterman suam electionem declarat, qua huc eso destinaverat, antequam nascerentur. Quare nullus in gloriam coelestia regni, unquam ingresaurus est, qui non in hunc modum cocatus et juatificatus, quando sine ulla exeptions in cunctis hominibus justificatus, quando sine ulla exceptions in cunctis ques elegit, suam electionem Dominus ad eum modum profert et manifestat."
여기에서 교회에 대한 정의의 시금석으로서 선택교리로부터 개인 구원의 기초로서, 가견적 교회의 틀 안에서 선택교리의 그 역사적 성찰에 대한 강조의 초점이 전환되고 있다.
7) 견인교리와 구원의 확실성. 가견적 교회 내에서 선택받은 자의 영생에 대한 묘사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논의로 이끌어진다. 첫째, 믿음에 있어서의 견인교리의 근원은 무엇인가? 두 번째, 구원의 확실성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는가? 왜냐하면 깔뱅은 선택받은 자의 회집이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그 택함 받은 자 역시 결코 멸망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선택교리는 견인 교리의 적절한 보증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Ibid., p. 190; Scheibe 역시 같은 주장을 하였다; pp. 7-9; Otten, p. 17.
구원의 확실성은 그 택함 받은 자의 견인교리의 연장에 불과한 것이다. Willy Lüttge, Die Rechtfertigungslehre Calvins und ihre Bedeutung für seine Frommigkeit (Berlin: Verlag von Reuther und Reichard, 1909), p. 90, Calvin은 1536년도 판 「기독교강요」에서 선택교리가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증명서가 된다고 말하는 것에 의해서 그 반 논증을 간과하고 있다.
깔뱅은 객관적이고 실재론적인 용어로 견인교리에 대해서 말한다. 개인 구원의 확실성은 개인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나 주관적인 것 보다는 차라리 견인교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Anfechtung(불안-Luther의 용어)이란 용어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위안을 구하는데 있는 것이며, 주관적으로 개인적으로 위안을 구하는데 그 목표가 있는 것이다.
선택교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주된 언급들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문제의 문맥에서 나타난다. 여기에서 깔뱅은 선택자로서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택함이 연합되어지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택함 자체는 성부 하나님의 사역이란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깔뱅은 주가 선택한 사람들은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돌보심과 신실하신 보호 하에 놓여진다고 말한다. CO, I, 73; OS, I, 87: "ques Dominus elegit, eos Christo filio suo in fidem ac custodiam tradidit…"
일단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들이 잘못을 범한다 할지라도 잃어버림을 당할 수는 없다.
선택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몇 가지 질문을 야기시킨다. 이 질문과 다른 질문이 4장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 해도,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이 시점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료들을 여기에서 지적하고 주목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특징들과 그리스도에게로 그 택함 받은 사람들이 보호받기 위해서 위탁되어지는 것은 성부 성자 사역의 그 어떤 긴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택함받은 사람들 가운데 있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와 친교를 갖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성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후 성부에게로 바쳐지는 사람들을 돌보는 단순한 관리자로 그리스도를 좌천시키면서까지 아들의 사역을 무시하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깔뱅은 이런 질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답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에 간접적으로 그와 반대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반론에 대하여, 그 답을 마치 이삭 줍듯 수집하고 있다: 어디에서 구원의 확신을 발견할 수 있는가? 깔뱅은 구원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인간 자신에게서 그 확신을 구하는 것에 대해 깔뱅은 경고를 발한다. 사람은 구원의 원인을 그리스도 밖에서 찾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생명과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를 그리스도에게서만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Hards, p. 192; CO, I, 74; OS, I, 88: "Quando itaque in uno Christo bonam Dei patris erga nos voluntatom, vitam, salutem, et ipsum denique regnum coelorum inverimus . . . ."
따라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Ibid.; "solus ipse satis superque . . . esse debet."
그 이상을 알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엄위하심의 심연과 Ibid.
그의 진노를 유발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은 그 이상을 알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아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그 아버지가 의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말한다면, 사람은 깔뱅이 창조역사에 있어서 성자와 성부의 관계에 관해서 말한 것을 상기한다면, 성부께서 의도하신 것과 아들이 행하시는 것 사이에는 아무 모순도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고 우리가 말할 때, 성자가 참된 하나님이시고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우리는 주장할 수가 있다. 우리가 성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아들에게도 우리들의 전 신뢰를 바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교리의 첫 조항과 관련하여 볼 때, 성부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의미에서 천지의 창조주라고 불리워지는가? Hards, p. 165; CO, I, 64; OS, I, 77: "Quando igitur Deus filius, unus atque idem cum patre Deus est, habomus verum esse Deum creatorem coeli et terrae (Hebr. 1). Atque ut fiduciam amnem in patre contituimus, ita et in filio constituenda est, cum unus sit Deus. Quod autem hic peculiariter cosli ac terrae creator pater dicitur . . ."
깔뱅이 보기에 삼위의 위 사이의 독립된 행위들의 특성은 삼위 간의 동의나 행위의 일치를 불명료하게 한다. 이러한 사실을 선택교리와 구원의 확실성에 적용하여 본다면, 성부와 성자,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함께 의도된 것 이외에는 달리 그 어떤 것도 성자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구현된 것을 발견할 수가 없다.
게다가 구원의 확실성의 맥락 내에서 조차, 깔뱅은 택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그 선택받은 자를 위한 관리자와 수령자의 역할에 제한시키지 않지만은, 성부 하나님께서 그 택함받은 자를 아들을 통해서 선택하신 것으로 간주한다.: 성부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자를 그의 백성이 되도록 예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원도 되도록 의도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를 가지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하심 가운데 있었다는 명확한 언약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논하고 있는 것들은 아버지의 불변하시는 진리와 동일한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그리고 언제나 항상 아버지의 원하시는 바를 참되게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는 진리를 결코 의심해서는 안될 것이다(요1:1; 14:7-11).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주께서 영원 전부터 택하시고 언제나 항상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가 멸망에 이르도록 내버려두시지 않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은 너무나 확실한 것이다 (롬 8:31-39). Ibid., p. 193; 74, 88: "Cum enim Christus Dominus noster is sit, in quo pater ab aetemo elegit quos voluit esse suos, ac in ecclesiae suae gregem referri, satis clarum testimonium habemus, nos et inter Dei electos, et ex ecclesia esse, si Christo communicamus. Deine, cum wit ipse idem Christus, constans et immutabilis patris veritas, minime haesitandum est, quin eius sermo vere nobis enarret patris voluntatem, qualis ab initio fuit et semper futura est (Ion. 1. 14). Quando itaque Christum et quidquid eius fratres ac consortes, ut eiusdem simus haoreditatis participes; ob id certi quoque simus, nos inter ecz eseo, quos Dominus ab aetemo elegit, quos semper set protesturtus, quos nunquam perire sinet (Rom. 8)."
따라서 택함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 간에 긴장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질문에 답함에 있어서,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선택은 아버지에 의해 그리스도만을 통하도록, 삼위 안에서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역에 의해서만이 이루어지도록 하셨다. 물론 이 것이 모든 긴장을 해소하지 않지만, 깔뱅은 선택을 단순히 수령하거나 보충적인 역할을 하는 그 이상을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다고 주장했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구원의 확실성은 구원론적으로나 교회론적으로 중요하다. 만약 구원의 확실성이 없다면, 교회의 보편성은 결여된다. 개개 교회의 구성원이 교회에 소속된다는 확실한 믿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교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Ibid.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의 보편성은 가견적 교회의 일반적 개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교회는 확실하게 구원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견해 이면에 내재해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교회는 우주적-보편적이어야만 하기 때문에 교회는 아주 가시적이어야만 하며, 그러한 가시성 때문에 추상적 관념 이상의 것이어야만 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서 교회는 구성원들이 구원받았다는 확실성에 근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실성은 선택교리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면 깔뱅에게 있어서, 구원의 확실성이란 구원론적 성찰임과 동시에 개개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교회론적 차원도 갖고 있는 것이다.
8) 선택과 유기. 선택교리와 마찬가지로 유기 역시 독립적으로 다루어져서는 안된다. 유기교리는 교회와 선택교리 그리고 구원의 확실성과의 내적 관련성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의 한 부분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Jacob의 책 p. 61에서 선택교리와 교회를 다루는 장 전체에서 선택이라는 용어가 15번, 유기란 단어가 3번이나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을 요한다.
선택교리에 대한 논의는 참된 교회의 성원을 확인코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기교리는 선택교리의 어두운 부분을 나타내는 주변적이거나 가장자리의 것 이상이다.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43.
차라리 그 유기된 사람들은 택함받은 교회 안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며 그들의 신분은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의 이중 예정론에 P. Barth, "die biblische Grunlage der Prädestinationslehre bei Calvin," De I'slection éternelle de Dieu; Actes du Juin 1936, edited by Jacques Courvoiser, Max Dominicé and Jean de Sausurre (Geneva: Editions Labor, 1936), p. 29,에서 말하기를 관심의 초점이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스러운 선택에 근거한다 할 지라도, Calvin은 저주의 가증성을 그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다; also Ibid., "Die Erwählungslehre," p. 437 Inst. 1536판 「기독교 강요」를 다시 읽고 P. Barth의 글을 주석한 Jean Rillet에게서 이 이중 예정론에 대한 글이 다시 발견된다.
대한 글들은 바로 이러한 관점 하에서 쓰여졌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불가해한 지혜를 이해할 수도 없고 그분의 영원한 지혜에 의해서 그 누가 택함받았고 유기되었는가 확인한다는 사실 자체가 실상은 우리에게 속한 일이 아니다. Hards, p. 192; CO, I, 74; OS, I, 87-88: "Comprehendere quidem non possumus incomprehensible Dei sapientiam, nec eam excultere nostrum est; ut nobis conset, qui aetemo eius consilio, qui reprobati sint (롬 11)."
깔뱅은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지는 구속을 받거나 또는 율법을 순종하는 데에 실패한 사람들의 운명으로서의 유기를 요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즉 유기는 원래가 인간 스스로가 빠져 들어간 그 상태 속에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두신 결과처럼 보인다. 비록 유기가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 자신에 의해서 타락한 상태에 남아 있도록 허락한 결과로서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유기를 단순히 허용하신 이상으로 신적 행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Otten은 p. 19에서 그런 견해를 받아 들이면서, 1536년 판 「기독교강요」 만큼이나 초기의 글에서 Calvin은 그 책망의 저주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고 말한다: ein Handeln Gottes".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과로서 단순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조차 깔뱅에게는 선택과 유기 양자가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로 말미암은 것으로 보여진다. 깔뱅이 받아들인 그 견해는 선택교리가 하나님의 지혜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하지만, 유기는 하나님께서 그 충분한 원인이 되도록 허용하신 그 허용과 인간의 범죄함이 쌍을 이루어 발생한 것이다.
비록 여기에서는 명확하다 할지라도, 이중 예정론을 제시하는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나오는 구절들은 명확치 못하다: 하나님께서 그 믿는 자와 교통하시는 은혜를 말하면서--오직 선택된 자만이 성령으로부터 받은 은혜--교통의 은혜와 그 은혜를 받지 못하는 저주에서 드러나는 신적 행위를 지적하고 있다. CO, I, 77-78; OS, I, 91: "tamotsi Dei dispensatione id uni peculiariter datum est, nonaliis."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주시지 않음을 결정하는 신적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유기의 구절이 근본적인 형태에서 이중 예정론의 후기 교리를 담고 있다 할지라도, 깔뱅의 관심은 이 교리를 설명하는 데에 있지 않고 교회 내에서 택함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확인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법적 신분은 그들 자신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로부터 확실성을 유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깔뱅의 논증은 대단히 강력한 것이 된다. 깔뱅은 마태복음 16:1-19이 누가 택함 받았고 유기되었는가 알 수 있도록 하는 근거 구절이라고 말하는 카톨릭을 공박한다. Ibid., p. 74-75; 88-89.
그러나 그러한 견해에 대한 공박은 유기의 영역에 신적 인과율을 도입함이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유기된 자는 단순히 그들 자신의 운명에 그대로 남겨질 수도 있는 것이며 그 이론적인 공박은 필요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깔뱅은 유기를 신적 인과율과 연결시킬 수 있는 정도까지 최대한 연결시켰으며, 그 유기가 어떻게 발생되었는가 하는 과정을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깔뱅의 주석은 선택받은 자를 인식하는데에 대한 카톨릭의 견해를 공박하는 것을 뛰어넘는 어떤 확신을 담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9) 선택과 유기 교리의 징조들. 깔뱅은 선택과 유기의 표징들을 되도록 삼가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알기를 원하시는 그 범위 내에서, 우리가 이방인들과 책망받을 자들과 하나님의 아들들 그리고 택함 받은 자들을 어떤 뚜렷한 표징들에 의해 구별할 수도 있게 하셨다. Hards, p. 195; CO, I, 75; OS, I, 89; "certas quasdam notas nobis describit. . . quibus electos et filios Dei a reprobis et extraneis distinguamus, . . . “
이러한 표징들은 신앙의 고백과 모범적인 삶, 그리고 성례전에 참여함을 포함한다. 이러한 표징들에 참여한 사람들을 택함 받은 자로 간주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자비 하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두드러진 표징들에 의해서 성경이 우리들을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 하나님의 자손들,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로 규정함으로써 우리도 그들을 알게 되는 것이다. Hards, p. 195; CO, I, 75; OS, I, 89: "certas quasdam notas nobis describit . . . quibus electos et filios Di a reprobis et extraneis distinguamus, . . . "
신앙에 있어서 동일한 고백을 하지 않거나 그 신앙의 고백을 행동으로 부정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판결이 취소되어질 것이다.
깔뱅은 그 책망의 표징들은 택함 받은 사람들의 표징보다 더 쉽게 눈에 띨 것으로 말한다. 고의적으로나 악의적으로 복음을 핍박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없애 버리고자 한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성령의 역사를 거부한 사람들은 바로 그 유기된 자들에 속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유기는 하나님의 행위가 아니라 성령에 대항한 자신들의 죄로 버림받는 것이다. 그러나 깔뱅은 모든 유기의 징조들이 나타나는 경우에서조차 이러한 사실을 특별한 경우들에 적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비록 자비의 판단을 그들에게까지 연장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말과 행위를 잘 판단해야 한다고 깔뱅은 충고한다. 이러한 궁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악한 자를 선한 자로 바꾸셨다는 성경의 증거 때문인 것이다. Ibid.: "His emin notis ac indiciis scriptura electos Dei, filios Dei, populum Dei, exxlesam Dei nobis definit, ut a nobis intelligi possunt."
10) 유기와 인간의 책임. 유기의 표징들에 대해 전술한 논의에 앞서 깔뱅은 그들 스스로가 택한 운명에 대한 책임을 다룬다. 에밀 두메르그(E. Doumergue)는 논쟁의 주된 초점을 섭리교리와 책망 사이의 관계에 의존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Doumergue, Jean Calvin, IV, p. 352.
그러나 그것은 부정확한 것이다. 비록 그 자료가 섭리 교리에 근거해서 나중에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포함되어졌다 할지라도,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있어서의 그 관심사가 섭리교리와 관계있는 것도 아니고 책망과도 관계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학을 형성할 때는 성경적 용어가 아닌 것을 사용하는 것이 유효한가 하는 문제였다. CO, I, 60; OS, I, 73; cf. Scheibe, p. 12.
책망받은 자들은 그들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깔뱅의 견해는 성경 외적인 용어를 유효하게 사용한 한 실례이다.
이 논쟁의 주된 화제는 삼위일체를 정의함에 있어서 ousia와 hypostasis와 같은 용어를 사용해도 무방한가 하는 것이었다. CO, I, 69; OS, I, 72.
깔뱅은 일반적인 규칙으로써 신학적 언어는 반드시 성경의 언어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나오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애매모호한 용어들을 좀 더 쉬운 말로 설명하는 것은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ousia와 hypostasis에 덧 붙여서 이렇게 실제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용인될 수 있는 두 가지의 실례가 있다: 첫째, 의의 전가와 둘째, 하나님과 악과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Ibid.
신앙에 의한 칭의, 즉 의의 전가에 대한 루터의 교리와 하나님과 악과의 관계에 대한 깔뱅 자신의 견해도 성경 언어들을 혼합하거나 또는 단순히 반복한 것은 아니라고 깔뱅은 주장한다; 차라리, 그 것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성경의 의미를 재진술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한다. 이 두 경우에 있어서 사용된 용어는 전체적으로 성경 자체의 언어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과 악과의 관계에 관하여, 깔뱅은 하나님께서 능동적으로 그 책망받은 자들 가운데서도 역사하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책망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역사를 일으키도록 그들 스스로가 행동한다는 것에 그들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야기시킨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악을 만드신 분이신가? 아니면 하나님은 인간이 저지르는 악의 원인자이신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책망하신다는 것은 부당한 것이 아닌가? 깔뱅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인간의 부정함이 동일 사건 속에서 함께 나타난다고 응답한다. 이것이 성경적인 견해가 될 것이다. 불충분하게 설명하여 애매모호한 두 가지 의미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깔뱅은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는 동일 행위 속에서 인간의 사악한 행위와 의로우신 하나님의 행위, 두 행위를 동시에 본다. 책망받는 자들은 악의 근원이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악하게 생각하고, 악을 행하고 악을 위해서 투쟁하여 악을 이룬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 속에 존재하고, 인간에게 전가된 악하고 범죄함, 그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 행위는 하나님을 반대하여 투쟁하여 온 것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 인간의 악함을 제어하기 위해서, 때때로 인간에게 성공과 권세를 주기 위해서 그 악한 생각과 행위를 야기시킨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당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Hards, p. 155; CO, I, 60; OS, I, 73: "in eodem factorespiciendum perversi hominis, ac iusti Dei opus. Hominem reprobum mali radicem in se habere fixam, a se malum cogitare, a se velle, a se conari, a se perpetare. Ideo illi imputandum, quidquid in opere mali ac culpae eat, quia consilio, voluntate, facto, contra Deum nititur. Deum vero malum voluntatem ac malum conatu, quo vult inflectrere, nunc coercere ac moderari, nunc auccessum dare et vires addere. Sed omnia juste." 바로는 이런 현상에 대한 한 예이다. 하나님의 사역과 그 동일한 자 속에서 역사하는 악마의 역사함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깔뱅의 논쟁 목적은 도덕적 실패에 대해서 인간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인간이 책임이 없다면 인간은 도덕적 실패에 대한 책임이 없게 된다. 부언한다면, 깔뱅은 하나님의 주권을 드높여 세우는 것에 그의 신학적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견해는 이중적이다: (1) 인간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하나님이 인간을 책망하신 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즉 유기교리는 원래 필요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2)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 보았을 때, 인간 자신도 스스로를 비난했을 그 사악한 의지와 행위를 하나님께서 야기시켰다는 것은 받아 들여져야 한다. 영원한 교리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저주하신 것은 단순한 조치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깔뱅이 이중 예정론을 취했을 때, 그는 계속해서 유기에 대해서 인간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의 두 군데에서--구원의 확신과 하나님과 악의 문제--영원한 유기교리가 급박하게 나타나고 있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와 1539년도 판 「기독교강요」에 나오는 그의 신학에 영향을 끼친 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이중 예정론이 어디에 진술되어 있든지 간에, 그 기본적인 골격은 이미 1536년 판에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가장 설득력있게 보여지는 외적 영향은 부쳐(Bucer)의 것인데, 그의 견해는 단지 하나의 가능한 외적 영향에 불과했으며 그것은 실제로 너무 제한된 것이었다. 그 효과는 단순히 깔뱅으로 하여금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암시적으로 나타났던 것을 명확한 용어로 표현하게 했던 것에 불과하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끼친 Bucer의 영향에 관하여 여러 칼빈주의 학자들의 견해에 대한 검토를 위해서는 Bucer의 영향이 너무 과대평가되었다고 주장하는 Wendel의 책 pp. 137-38을 보라; 그 유사성들 중 많은 부분이 Augustine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Karl Holl의 견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Wendel은 Calvin의 신학 형성에 있어서 Bucer의 영향은 지대했었다고 주장한다. Calvin의 교회교리에 끼친 Bucer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A. Lang의 "Die Entstehung und der ursprüngliche Sinn der Reformierten Demeindeordhung," Reformation und Gegenwart. Gesammelts Aufsätze vornehmlich sum Verständnis Calvins und der reformierten Kirche (Detmold: Meyersche Hofbuchhandlung, 1918), pp. 175-77; p. Scherding, "Calvin , der Mann der Kirche und die Bedeutung seiner Strassburger Aufenthalts," Calvin á Strasbourg, 1538-1938, edited by La Commission Synodale de 1'Eglise Réformé d'Alcace et de Lorraine (Stasbourg: Editions Fides, 1938), p. 83; 그리고 특별히 Ganoczy의 La jeune Calvin, pp. 168-170을 참조하시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Wendel은 그의 책 p. 142에서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가시적 그리고 비가시적 동기가 Bucer에게서 영향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Augustine으로부터도 영향받았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1539년도 판 「기독교강요」에 가견적 교회에 대하여 커다란 강조를 하였는데, 이는 Bucer로부터 받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깔뱅의 신학에 새로운 요소들을 삽입한 효과는 별로 없었다. 그가 이중 예정론이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나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아니면 모르고 있었느냐, 그것을 잘 알고 있었느냐, 아니면 이중 예정에 대해 진술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삼가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들은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증거들로서는 대답할 수도 없으며, 1536년 판 「기독교강요」가 쓰여진 시점까지 어떤 것에 의해서도 알 수가 없다. 지금 최대한도로 말할 수 있는 것은 1539년 판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견해가 수정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확장되어 보다 발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며,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증거로 보아서는 그 시점까지 이중예정론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11) 선택교리와 성례전. 선택교리는 성례전의 유효성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논의하는 깔뱅의 논쟁에서, 그 피상적인 것을 뚫고 깊게 추적되고 있다. 성령은 개개인에 있어서 성례전을 유효하게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성령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깔뱅 신학의 원칙이 되고 있다.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CO, I, 107; OS, I, 124: sed quem Dominum peculiariter suis confert . . . . ; Ibid., 138; 159.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택함 받은 자와 동의어가 되는 다른 용어들은 “하나님의 자손들”,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가 이에 해당된다: Ibid., 76;90. 이 모든 용어들이 동의어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인용들을 보기 위해서는 Supra, p. 42의 각주 2를 보라.
그렇게 볼 때, 성례전의 효력은 궁극적으로 선택교리에 의존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깔뱅의 신학은 세례와 신앙, 선택교리의 상호 관련성에 특별한 강조가 주어지고 있다. Burkhart, pp. 217-18.
깔뱅은 유아세례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 선택교리를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카톨릭과 재세례파의 교리를 공박하기 위해서도 그 선택교리를 사용하고 있다: 깔뱅은 유아의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 없는 한, 유아세례는 “ex-opere-operato"의 근거를 통해서 유효하다고 논증한다; 그러나 카톨릭이나 제세례파에 의하면 유아는 신앙이 없고 세례는 성인들처럼 신앙이 나타나는 경우에만 유효하므로 유아세례는 무효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깔뱅은 카톨릭의 견해를 거부하고 동시에 유아의 신앙을 방어한다. 깔뱅이 진술하는 신앙이란 어린 아이가 되었든 성인이 되었든지 간에 모든 택함받은 자에게서 발견된다고 한다; 신앙이란 구원이 실현되는 수단인 것이다. CO, I, 118; OS, I, 136; Scheibe, p. 9; Otten, p. 18.
결과적으로, 유아세례는 합법적인 실천인 것이다. 따라서 세례는 세례의 유효성을 위해서 선택교리에 의존된다.
12) 맺는 말.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깔뱅은 후기 저술에서도 발견되는 개념과 유사한 어떤 다른 교리들과 선택교리를 연계시키고 있다: 공로주의, 하나님의 선하심에 구원이 근착(根着)되어 있다는 것, 교회의 구조와 선택교리와의 관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실성과 선택교리의 구현, 불신자에 대한 문제 (후기 저작과 동일하지 않지만),성례전의 유효성 등의 다른 교리들과 선택교리를 연계시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이러한 관계들은 보다 더 넓은 구원론적인 교회론적인 맥락에서 나타나고, 구원론적인 것이 빈번하게 강조되며 때때로 적당한 논쟁적, 실천적 측면을 포괄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게다가, 선택교리의 타당성 있는 출발점을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찾고자, 선택교리에 대한 교황의 법령마저 언급하고 있을지라도, 깔뱅은 교황의 법령 따위는 전혀 강조하고 있지 않다. 교황의 법령은 교회 내에서 선택의 견인교리나 좀 더 실천적인 부분들에 의해서 쇄락하고 만다.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선택교리의 실천적인 부분을 강조한 Scheibe의 책 p. 13을 보라; Domurgue, Jean Calvin, IV, 353: Polman, p. 322: "De practisch-reliuze waarde der verkiezing ataat hier op den voorgrond, die in de kerkbeschouwing alleen een leidende plaats ineemt"; Otten, pp. 18-19: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42.
자비와 심판의 행사를 포함해서 이 모든 것들에 있어서, 깔뱅은 선택교리가 개혁자들에게 공통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Wendel, p. 265.
깔뱅은 자기 신학의 전 부분이 짜여지는 조직신학적인 원칙에서, 선택교리는 기독교 강요를 편찬함에 있어서 중심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교회와 구원의 확실성, 그리고 성례전의 유효성에 대한 정의와 옹호를 위한 최종적이고 논증적인 노선으로써 선택교리는 부수적 의미 이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깔뱅이 유기교리를 어떤 특별한 교리로써 인정했느냐 하는 것은 명확치 않으나, 선택교리는 이미 전술한 바 있는 것을 확장시켜, 후기 유기교리로 삼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하나님과 악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신적 행위의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덧 붙여서 말한다면, 선택교리에 있어서 신적 측면을 강조했었던 깔뱅이 선택교리를 다룸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 개념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특별히 주목되어져야 한다.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 영광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Josef Bohatec의 Budë und Calvin: Studien zur Gedankenwelt des französichen Frühhumanismus (Graz: H. Böhlaus., 1950), p. 341 과 Dantine은 Die Prädestinaitonslehre, pp. 44-45에서 하나님의 사랑, 선하심, 공의로우심, 권능, 엄위하심은 하나님의 권위와 같은 개념이며 하나님 영광의 개념과도 같은 동의어에 해당된다고 천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깔뱅은 선택교리를 신적 의지의 예속된 그 무엇이라기 보다는 소명과 구원의 확실성의 맥락에서 가장 명확하게 믿는 자와 관련시키고, 또 자신이 주장하는 칭의교리와 통합된 한 부분으로 관련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깔뱅은 신앙을 위한 선택교리의 중요성을 지적하고--1537년 판 「신앙고백서」에서 선택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공적 출발점이 된다--선택교리를 신적 의지의 예속과 연계시켜 암시하고자 했던 결정론적 의미를 피하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깔뱅은 교회 내에서의 인간의 책임성과 활동을 선택교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시키고자 했다. cf. Scheibe, pp. 16-16; Otten, pp. 124-25;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16 and Das christolische Problem im Rahmen der Prädestinationslehre von Theodor Beza, Zeitschrift Für Kirchengeschichte, Vicrte folge, XV, LXXVI, hft., 1-2 (1966), p. 82.
2. 1536-37년의 「신앙 고백서」 1537년 신앙 고백서와 이 문서와의 관계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Olivier Labarthe를 참조하라; La relation entre le premiër catëchisme de Calvin et la premiëreconfession de foi de Genëve: recherche historique á partir d "une comparison de textes catëchetiques et de particularitiës typographiques" (unpublished thése licentiate de théologie, Genéve, 1967).
제네바 도시 경계를 넘어 거주하는 사람들과 Confession de la foy laguelle tous bourgeois et habitans de Genéve et subiects du pays doibvant iurer de garder et tenir extraicte de linetruction dont on use en leglise de la dicte ville (XXII, 77-96; IX, 693-700)은 2개의 프랑스판과 라틴어판에서 발견된다. (V, 355-63) Calvin의 「저작전집」과 Opera Selecta I.418-26. 영문 번역판은 J. K. S. Reid의 책에서 발견된다: Theological Treatises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vol. XXII;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954), pp. 25. 이 작품은 1537년도 Instruction et confession de foy dont on use en l'eglise de Genéve (1537 또는 1538년도 신앙고백서라고 종종 불리워진다): CO, XXII, 5-74; OS, I, 378-417.
제네바 도시의 모든 주민들이 서면으로 동의한 이 고백서는 선택이나 유기 교리에 관한 어떤 언급도 담고 있지 않다. 이것은 교회의 교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536-37년 「신앙 고백서」에 선택과 유기교리가 빠져 있는 것은 두 가지 사실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신앙고백서의 저작성, 둘째로, 예를 들자면 「기독교 강요」와 반대되는 저술의 성격으로 볼 때 특별히 그렇다.
1. 비록 깔뱅이 아마도 그 최종판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라도, 이 고백서를 저작한 사람은 화렐이라고 현대 학자들은 동의한다. 깔뱅이 공들여 저술했다는 사실은 이책의 신학적 세련됨에 의해서도 알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200인 의회와 소의회에 이 두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알 수가 있다. Arthur C. Cochrane (ed.), Reformed Confessions of the 16th Century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6), p. 118. 저작권에 대해서는 Farel이 저자라고 인정하지만 만약 Farel이 유일한 저자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면 Calvin도 그 저술에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 J. K. S. Reid의 책 Theological Treatises, p. 25을 참조하라. Reid는 p. 119에서 Cochrane을 따르고 있다. 보다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Domergue의 책 Jean Calvin, II, 237-39와 CO, XXII에 나와 있는 Erickson-Rilliet discussion, pp. 10-18을 보라.
깔뱅이 화렐이 기록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가정할 때, 왜 그는 선택교리가 빠져 있는 것을 용인했을까? 그 당시 그 선택교리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문제는 즉각적으로 무시될 수가 있다. 왜냐하면 1537년 「신앙 고백서」에서--깔뱅이 「기독교 강요」의 발췌로써 간주했었던 그 연도의 저술임--선택교리와 유기에 대해서 이미 논한 바 있기 때문이다. 1537년 「신앙고백 서」는 1536년 판 「기독교 강요」보다 더 강력했었다. 아마 전폭적으로 선택교리와 유기를 탈락시킨 것은 그 당시 제네바 개혁에서 화렐의 탁월함에 기인 한 것으로 추정된다. CO, XXII, p. 18
2. 이 실제적인 이유에 덧 붙여서, 혹자는 이 「신앙고백서」를 깔뱅이 전체적으로 아니면 부분적으로나마 나중에 초안했던 것을 연계시켰다고 인용하기 때문이다. 이 후기 「신앙고백서」는 이중 예정론이 견고하게 확립되었고, 자기 신학의 일부분으로써 열렬히 옹호되었던 한 시기에 이루어졌던 것이기 때문에 오직 선택교리만 언급했던 것이다. 이 고백서들은 Calvin이 좀 더 다듬었거나 저작했던 것으로써 선택교리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으나 유기는 다루고 있지 않다: Consensus Tigurinus, 1559: Confession au Roy, 1557: Confession des escholiers, 1559; Confession des ëglises de france, 1559; Confession á présenter á l'émpereur, 1562.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것은 Catechismus Ecclesiae Genevensis, 1542/45인데 세례 지원자들에 의해서 고백되어지는 신앙의 내용을 이루는 지시문 중 필수적인 부분이 아니었다는 근거 하에서 유기에 대한 언급을 절제하고 있다. 이 해석은 물론 Niesel의 것과는 다르다; Calvin, p. 166. cf. Heinrich Voigt, Fundamental-dogmatick: eine zusammenhängende historische Untersuchung und apologetische Erorterung der Fundamentalfragen christlicher Dogmatik (Gotha: Triedrich Andreas Perthes, 1874), p. 470; Adam M, Hunter, The Teaching of Calvin: a Modern Interpretation (2d ed. rev.; London: J. Clarke, 1950), p. 94; and Doumergue, Jean Calvin, IV, 359.
따라서 깔뱅은 이 두 가지 신학적 저술과 이중 예정론을 구별해서 다룬 것처럼 보인다. (1) 만약 그 목적이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고백적인 것이라면, 유기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를 말하지 버림받은 사람이나 유기된 자에 대해서는 되도록 언급을 삼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교리는 마땅히 언급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것은 구원의 최종적 근거이기 때문에, 유기교리는 신앙의 고백을 위해서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언급될 필요가 없기 떄문이다. 그러므로 제네바를 뛰어넘어 사용되게 할 목적으로 고안된 이 신앙 고백문에서 유기교리를 생략한 것은 교회의 통일성 그 자체를 위한 신학적 내용을 타협하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저술의 목적상 생략한 것이다. Fitz Blanke, "Calvins Oekumenische Bedeutung," Reformatio, XIII, N. 10 (1964), p. 596.
(2) 한편, 만약 그 저술의 목적이 성경에 나오는 완벽한 교리적 내용 중 하나를 전달할 문답서라고 한다면--「기독교 강요」나 「신앙 고백서」 및 「요리문답서」에 나오는 개요, 그리고 다른 저술과 그 한 예외적인 것은 Calvin의 책 De Aetera Dei Pradestinatione (CO, VIII, 249-366)인데 그 책이 비록 해설과 교훈, 교리적인 관심사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라 할지라도 공적인 활동을 통해서 제네바 교회에서 수집되어지고 고백되어진 신앙의 부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논문은 이중 예정론의 가열된 논쟁으로 말미암은 특별한 경우였다. Wiley의 해석과 일치하는 것은 Pieter J. Muller의 De Godsleer van Calvin=jn uit religieus oogpunt beschoouwd en gewaardeerd (Göningen: J. B. Wolters, 1881), pp. 91-93인데 이중 예정론을 논하고 있는 1537년 「신앙고백서」를 우선적으로 고백적인 글로 간주하는 Scheibe의 책 pp. 83-84와는 배치된다; 그것은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발견된 그 정당한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쓰여진 개요였다. 따라서 라틴어로 된 제목을 가진 1538년 교리문답집은 초기 프랑스어판 보다 자료의 목적을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Instruction et confession de foy.
마찬가지로--유기와 그 교리에 대한 언급을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것들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의 전체적인 증거에 신실한 해설이나 교훈을 위해 필요했을 것이다.
3. 1537년의 「신앙 고백서」와 「기독교강요」 Instruction et confession de foy dont on use en l'église de Genéve (CO, XXII, 5-74; OS, I, 378-417); 1538년 교리 문답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교회의 사용을 위해서 라틴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그 제목은 다음과 같다; Catechismus sivi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 Genevensis ecclesiae (CO, V, 313-62). 그 번역은 Paul T. Fuhrmann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Instruction in Faith (1537, London: Lutterworth Press, 1949).
「기독교 강요」가 대중적인 요약을 위해 출판되어진 후, 이 작품은 어조에 있어서 긍정적이다. 1537년 판 「기독교강요」는 초기 작품에서 발견되는 카톨릭이나 다른 교파를 공박하는 것을 삼가고 있다. 따라서 이중 예정론에 대한 첫 번째 명확한 진술이 이 글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선택과 유기 교리에 대한 그 이전 진술들은 너무나 짙은 논쟁적인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중 예정론을 언급한 그 중요성은 지금 예정론, 이중 예정론 조차 깔뱅의 신학의 통합된 부분으로 간주되어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선언된 목적이 설명될 필요가 있다. Scheibe, p. 26.
이중 예정론에 대한 명확한 언급에 덧 붙여서 몇 가지 다른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나타난다: 그것들은 (1) 구원론에서 차지하는 예정론의 가치: (2) 예정론이 없었을 때와 대립되는 신앙을 통해서 깔뱅은 예정론의 논의를 도입하였다: (3)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개념과 이중 예정론과의 관계 등이다. Polman, p. 327.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발견할 수 있는 적당한 자료를 조사한 후, 깔뱅은 그 다음으로 타락과 타락의 결과,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획득하는가에 대해 숙고한다. 타락한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반(反)하여 마주 서 있다. 깔뱅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는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이 얻을 수 있다 (제 12 장). 그것은 깔뱅이 선택과 유기교리를 간단히 다루기 위해서 슬쩍 비켜 간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 어떻게 배분되는 가를 다음 장에서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12장에서 깔뱅은 그리스도 안에는 신앙과 불신앙 양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그런 다음, 그리스도를 추방자로서 묘사한 후, 신앙과 불신앙을 관찰해 볼 수 있는 현상에 대한 최종적 설명으로써 하나님에 의한 선택이 12장에서 나타난다. 이런 측면을 다룬 후, 깔뱅은 구원론에 해당되는 선택이라는 중요한 주제로 전환한다: 전가된 의롭다함과(16장) 성화(17장)에 의한 칭의를 인간으로 하여금 소유하게 한 하나님의 은총으로써 신앙의 법적 위치인 신앙의 참 성격 (14장)을 다룬다. 깔뱅은 신앙의 참된 성격과 신앙의 효력에 비추어서 그리고 신앙에 의한 칭의와 공로주의와의 관계에 의해서 구원론의 장을 회개와 갱신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주석으로 끝맺음한다. 그 논문의 나머지 부분에서, 깔뱅은 사도신경, 주기도문에 관해 숙고하고, 성례전, 목회, 인간 전통의 가치, 교회권징의 필요성, 그리고 그러한 순서로 지배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구한다.
1) 선택교리의 구원론적 맥락. 구원론적 맥락 안에서 선택교리의 위치는 후기 저작들에 나오는 선택교리와는 다르다: 「기독교강요」에서 나타나는 순서는 기독론, 선택, 신앙, 칭의, 그리고 성화였었다; 1539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깔뱅은 구원론의 논의가 다 끝난 다음에 선택교리를 논하고 그 다음에 성화를 다룬다. 학자들은 1537년 판 「기독교강요」의 그 순서가 왜 다른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일치하고 있지 않다. Wernle은 그의 책 Calvin, p. 279에서 그 당시까지 1539년 판 「기독교 강요」를 완성하고 좀 더 주의를 기울여 구원론의 마지막 장을 완성할 때까지 예정론을 유보한다 할지라도 이 신비를 어린아이들 같은 평신도들에게 소개할 교육적 이유를 위해서 구원론의 원칙 하에 예정론에 관한 장을 독립시켜 놓는다고 말한다. Otten은 그의 책 p. 19에서 후기의 변천이 예정론에서 나타나는 결정론적 공박을 필요 이전에 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주장하면서, Wernle의 견해를 반대한다. Jacobs는 그의 책 p. 62에서 율법과 구원론의 사이에서 1537년 신앙고백 및 문답집의 순서가 아주 적절한 것으로 생각한다.; Barth는, Church Dogmatics, II, pt, 2, 88,에서 이 순서를 가장 잘 배열된 것으로 Wernle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선택교리가 등장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아주 적절한 곳에 나타났으며, 가견적 교회 내에서 신앙과 불신앙의 원인에 대하여 실제적인 구원론적, 교회론적 의문 속에서 표면화 된 것은 참으로 자연스럽게 바로 그 장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후기에 가서야 깔뱅도 1537년 판 「기독교 강요」의 순서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것은 공로주의에 대항한 선택교리의 논증적 가능성을 극소화시킨 나머지, 신앙, 칭의 그리고 성화의 기본적인 구원론적 요소들을 따라 이루어지는 신학적 교리로서의 선택교리가 가지고 있는 그 정당한 위치를 선택교리에서 빼앗아 가버린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1559년 판 「기독교 강요」가 구원론을 다루는 장의 마지막에 예정론을 삽입한 것은 예정론을 부차적인 것으로, 빗나간 것으로 만드는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결과로 예정론은 신앙과 신학적 중요성에 있어서 정당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2) 선택과 예정론에 대한 용어들. 예정론과 선택교리에 관하여 진술하고 있는 제13장에서 선택이라는 용어는 선택하는 신적 행위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선택하심이 취소불능임을 가르키고, 인간이나 하나님에 의해서 조차 변경되어질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영원하신 선택에 의해서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만세 전에 예정하신 사람들에게서 그 열매가 맺는다” 고 하신다. CO, XXII, 46; OS, I, 390: "la semence da la parelle de Diew prent racine et fructifie en ceux la seulement lesquelz le Seigneur par son election eternelle a predestine pour ses enfans et heretiers du roualulme celeste."
이러한 구별에 의해서 알 수 있듯이, 각 용어를 중심으로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 어떤 주제를 깨닫게 한다. 그러한 선택에 관한 지식을 다루는 구절들은 선택교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그 택하심이 취소불능임을 묘사하는 구절들은 예정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예지, 운명, 기회, 교리의 성격과 신적 섭리에 관한 문제가 예정론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선택이라는 용어와 관련하고 있는 글들은 실제적이면서도 교회론적 모습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정론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좀 더 신학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 깔뱅에게 있어서, 각 용어는 다른 용어를 필요로 하고 있다; 즉 교회론적으로, 신학적으로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한편, 택하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취소불능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론은 신학적인 것에 근거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 택하심이 취소불능이기 때문에 선택교리는 견인교리의 교회론적 현상을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적인 것은 그 교회론적인 것과 단단하게 묶여 있게 된다. 깔뱅이 선택교리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 어떤 변하기 쉬운 것이나 인간의 변덕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차라리 변할 수 없는 신적 택하심의 결과라는 사실을 더욱 명확하게 한다. 예정론은 하나님이 자신의 선택하는 그 행위를 효과있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더욱 명확하게 나타낸다.; 하나님은 인간의 수용이나 또는 거절이나 신앙이나 거절, 또는 선한 행위나 선한 행위가 전혀 없는 것들 따위에 의해서 전혀 영향받지 않으신다.
3) 이중 예정론. 첫번째로, 깔뱅은 이 이중 예정론을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은 어떤 개인을 선택하시기도 하시고 유기하시기도 하신다.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깔뱅이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하등의 놀라운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뱅이 진술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중 예정론은 그것이 논해진 장에서조차, 그리고 1537년 신앙 고백서 및 교리문답에서조차 통일성 있게 주장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2장에서, 깔뱅은 그리스도는 신앙에 의해서만이 이해되어질 수 있다고 진술한다. 오직 신앙을 가진 자만이 그리스도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인 것이다: 인간은 그리스도가 선물로 주어졌을 때 그리스도를 거절하기는 불가능하며 그리스도가 인간을 불렀을때 인간은 그리스도를 뒤따르게 되어 있다. Ibid.: “ne le reiectent leur estant donne et le suyvent estans appellez de luy”.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언제나 설교되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에 의해서 강팍하게 되어 맹목이 된 사람들은 그러한 유일무이한 은혜를 무시한다. Ibid.: “plusieurs aveuglexz et endurois par incredulite mesprisent cests grace tant singuliere”.
이 장에서 그 어떤 것도 「기독교 강요」에서 발견되어진 것과 다른 그 무엇은 전혀 암시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 장에서 논하고 있는 사실들은 「기독교 강요」에 있는 이중 예정론의 함축된 의미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점에 대한 논쟁에서 개개인들은 그들 자신의 강팍해진 마음의 결과로 유기된 자들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깔뱅은 이런 상태에 대해서 하나님의 의지를 추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13장에서, 이중 예정론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신앙과 불신앙의 두 가지 반대되는 입장이 존재하게 된 것을 깔뱅은 정성들여 자신의 논지를 발전시킨다: 신자와 불신자의 대조되는 두가지 특성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커다란 비밀은 반드시 고려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그 뿌리를 가지고 있고, 그의 영원하신 택하심을 따라 주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예정하신 사람들에게서 반드시 그 열매가 맺혀야 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 이미 하나님의 영원하신 지혜에 의해서 유기된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에 대한 설교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왜 어떤 사람에게는 그의 자비가 내려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심판의 엄중함이 행사되어져야 하는가? 우리는 이에 대한 이유가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만이 알려지도록 남겨 놓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의 탁월한 의도에 의해 우리 모두로부터 이 비밀이 은닉되도록 작정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비록 우리에게 숨겨졌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구원과 멸망의 분배가 정당하고 거룩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이 멸망하도록 의도하셨다면, 그 분은 그렇게 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시며,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실 사람에게서만이 그의 주권적인 선하심이 숙고되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 곧 그 분의 자비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며(그들이 참으로 그러하기 때문에), 유기된 사람들은 그 분의 정당한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CO. XXII, 46-47; OS, I, 390-91: "En une telle difference est a considerer necessairment le grand secret ud conseil de Dieu: car la semence de la parolle de Dieu prent et fructifie en ceux la seulement lesquez le Seigneur par son election eternelle a presestine pour ese enfans et heritiers deil de Dieu devant la constitution du monde sont reprouvez, la claire et evident predication de verite ne peult estre la rgueur de son iugement envers les aultree, il nous en fault laisser la rayson estre ecgneue de luy seul, laquelle il nous a voulu a tous estre cells et non sans tesbonne cause . . . Seulement ayons cela resolu en nous que celle dispensation du Seigneur, combien quelle nous soit chachee, ce neantmoins elle est saincte et iuste; car sil vouloit perdre tout le genre humain, il a droict de le faire, et en ceux quil retire de perdition on ne peult rien contempler que sa souveraine bonte. Doncques recognoissons les eleuz eatre vaisseaux de sa misericorde (ainsi que vrayement ilz sont), et les reprouvex estre vaisseauz de son ire, laquelle toutesfois nest que iuste“.
왜 깔뱅은 이 시점에서 이중 예정론을 소개하는가? 이중 예정론이 후기에 가서 주석의 기본이 되어진 것은 로마서와 바울 서신서를 동시에 함께 묶어 강의한 영향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1535년에 멜랑히톤의 견해에서 나타난 위험 때문에 자기 자신의 견해를 더 예리하게 다듬어 피하고자 했던 것은 그런 위험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을까? 예정론 교리의 설명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어거스틴과 부쳐가 분석한 것과 관련하여 계속 점증하는 실천적 관심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모든 이러한 문제들은 이중 예정론이 왜 갑작스럽게 나타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되고 있다. 다양한 견해들을 평가.검토하기 위해서는 Scheibe, pp. 74-85;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29를 참조하라. Scheibe는 그의 책 p. 85에서 이중 예정론이 주장하고자 하는 하나님 주권 사상을 유지시키고자 한 Calvin의 욕구에 강조를 두었다; Dantine은 그의 책 p. 29에서 이스라엘의 배교에 대한 Augustine과 Bucer의 질문에 관한, 계속 늘어만 나는 관심에 강조를 두었다.
그 질문은 깔뱅이 설명했던 증거에 비추어 볼 때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깔뱅은 예정론을 이중적인 것으로 말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1536년 판 「기독교 강요」가 올바르게 해석되어진다면--이중 예정론의 등장에 강조를 둔--이중 예정론에 대한 소개는 그리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고 초기 진술과 단절된 것도 아니지만 하옇든 그러한 것들을 예시하여 왔다. 그러나 1536년 판 「기독교 강요」를 개략적으로 발췌한 문서에서 왜 깔뱅은 그 문서를 뛰어 넘고자 했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중 예정론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단일하게 해석(선택과 유기교리처럼)되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멜랑히톤의 1535년 Loci(강요)나 다른 그의 후기 저술물들은 그 훈계적 내용을 추천하고 있다는 어떤 외적 증거도 없었다. 1535년 늦여름에 「기독교 강요」의 초안을 완성한 시기와 깔뱅이 정기적으로 제네바에서 설교했었던, 1537년 판 「기독교강요」를 저술하던 시기 중간에 깔뱅은 복음 설교 문제와 관련한 응답으로 신앙과 불신앙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가장 믿을만한 외적 증거가 내재하고 있다. 깔뱅은 참 복음을 설교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누구에게 주어졌던지간에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의 불가항력적 은혜를 더한 복음의 진리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의지 이외의 다른 곳에서 신앙과 불신앙을 추적해 볼 수 있는 그 어떤 다른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Cf. Scheibe, p. 25; Doumergue, Jean Calvin, IV, 353; Hunter, p. 101; Otten, p. 20; Wendel, p. 266;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17.
이중 예정론에 대한 언급은 후기에 가서야 신앙과 불신앙의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교리 문답서는 경험상의 증거를 설명하는 주석과 함께 예정론을 소개하는 첫 번째 저술이다. 그후로 이 교리 문답서는 「기독교 강요」의 후기 편집본에서 표준이 되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중 예정론에 대한 논쟁은 신앙에 관한 토론의 와중에서 완전히 제거되었다--이러한 일은 1539년과 1539년 판 「기독교 강요」 사이에서 벌어졌다. 이러한 일들은 후기 관점만으로서는 이해되어질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행해졌지만, 구원론에 있는 다른 요소들을 따라 이중 예정론은 하나님의 의지에 견고히 뿌리박고 있었던 것이다. 1537년 교리 문답서에서 조차, 후기의 견해와는 다른 견해를 시사하고 있다; 첫 째로 깔뱅은 이중 예정론을 하나님의 영광과 연계시키고 있다. Calvin은 말하기를 선택받은 자와 유기된 자의 운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한 그 어떤 이유들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에 전혀 반대되고 있지 않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현시하는 두 개의 다른 근본적 요소인 것이다.
이중 예정론의 신적 유기의 부분은 구원의 확실성을 위한 필요를 강조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선택과 유기 양자는 하나님의 숨겨진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생은 택함받았다는 징표나 유기되었다는 어떤 징표도 없기 때문에 안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숨겨진 의지에 의해서 거절되었거나 선택되어졌기 때문이다. 선택받았다는 것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증거가 요구된다. 그러나 기독교 강요에서 나타난 것과는 다른 어떤 증거를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깔뱅은 하나님의 숨겨진 의지를 밝혀 드러내고자 하는 그 어떤 시도에도 경고를 반복하면서, 구원의 확실성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역할을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 이전보다 더욱 더 그리스도는 인간의 영원한 신앙의 대상으로 강조되고 있다; 어떤 환경 아래에서도 하나님의 숨겨진 의도는 밝혀질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수렴되고 확신되어진다. CO, XXII, 47-48; OS, I, 391-92.
구원의 확실성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깔뱅은 두 가지 새로운 용어들을 소개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지가 우리에게 현시되는 거울일 뿐만 아니라 생명이 인쳐지고 우리를 확신시키는 서약인 것이다. Ibid., 47; 391: "car Christ nest pas seulement un miroir par lequel la volunte de Dieu nous soit representee, mais un gaige par lequel elle nous est comme seellee et confirmes."
4)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신앙. 14장에서 깔뱅은 신앙과 불신앙으로 야기되는 이중 예정론에 대한 문제를 따로 다룬 후 신앙의 참된 성격에 대한 주된 화제로 그의 논지를 전환한다. 깔뱅은 신앙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으로 말한다.; 신앙은 하나님의 독특하고 귀중한 선물이다; 신앙은 인간의 이해가 조명되는 성령의 빛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성취하시는 믿음 안에서 인간을 확신시키는 성령의 빛인것이다. Ibid., 48; 392.
신앙이 선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함으로써, 깔뱅은 다시 한 번 더 후기의 논쟁을 활용한다. 경험상의 증거와 인간의 죄스러운 상황으로부터 출발한 후 깔뱅은 인간을 구원시키는 신앙이란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결론한다. 그러나, 깔뱅은 선택교리가 신앙에 앞선다든지 또는 선택받은 자에게만 신앙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할 때, 후기에 그의 논지를 주장할 때 처럼 신앙을 선택교리와 연결시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성령과 선택교리, 그리고 성령과 성례전과의 관계에 대하여 그의 논지를 펼쳐 나갔던 것에 근거해서 신앙이 선택교리에 의존한다는 것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가 예견한 것처럼 이 연결은 아주 명확하다. cf. 1539 Inst.: OS, IV, 413, 8-21; 414, 6-10.
1537년 「판 기독교 강요」의 이전 판에서 언급되어진 선택교리의 모든 양상과 모습을 우리는 1537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가견적 교회의 근거로서의 선택교리를 다소 약하게 언급한다. CO, XXII, 57; OS, I, 401.
더우기,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논쟁은 교회론의 범주로부터 신앙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받는다는 구원론적인 맥락으로 전환된다. 신앙과 불신앙의 강조는 이러한 논쟁의 원인이 된다. 「기독교 강요」에서와 유사하게 깔뱅은 삼위일체의 위격을 개별적으로 생각하는 부정확함에 대해 자신의 주석을 첨가한다. 깔뱅은 예수가 양자나 은총에 의한--믿는 자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것처럼--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그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이란 점에서 그 정확성을 더한다. Ibid., 52; 396-97.
그러나 결과적으로 예수의 인성에 있어서 그리스도 역시 양자라고 주장한다--즉, 선택되어졌다고 주장; 그의 신성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깔뱅에게는 그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로 남는다.
예정론에 대한 방대한 신학적 확장이 이 논문의 구원론적 부분에서 등장한다 할지라도, 간접적으로는, 예정론에 대한 교회론적 공박이 확장되고 있다. 일례를 들자면, 구원론적 추리는 교회론적 현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복음을 청종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견적 교회 안에서의 신앙과 불신앙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그렇다 할지라도, 그 의문이 교회론적으로 야기된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의지로 말미암은 선택과 유기가 그 근거가 되기 때문에 그 의문은 구원론적으로 답변되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말년에 가서 더욱 명확하게 되지만, 예정론에 대한 구원론적 모습에 더욱 강조를 두는 경향을 말해 준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와 1537년 판 「기독교강요」를 분석한 바를 조망할 때, 이중 예정론은 깔뱅의 신학에 있어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중 예정론은 조만간 취하게 될 가장 개연성있는 견해인 것이다. 그 증거는 1536년 판 「기독교강요」로까지 멀리 소급되어지는데, 이중 예정론이 암시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며, 「기독교 강요」에서 나타난 그러한 진술들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에서 그 증거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깔뱅에게 있어서 이중 예정론은 그 충분한 설명을 보충해야 할 그런 것으로 계속해서 남아 있게 된다. 그 주된 주제에 있어서 이러한 사실은 스트라스부르그에 그가 머무는 막간시절 동안에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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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뱅의 예정론의 전개
- Geneva에서의 첫 정주기(定住期)를 중심으로 -
The Evolvement of Calvin's Doctrine of Predestination
강 정 진
Joseph J. Kang
Ⅰ. 들어가는 말
주지(周知)하는 바와 같이 예정(predestination)이라는 용어는 깔뱅의 적대자들이었던 미카엘 세르베투스(Michael Servertus,1511-1553)의 화형과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Stefan Zwig, Castellio gegen Calvin, Fischer, 1996 참조-를 정죄했던 깔뱅에 대한 부정적이고 편향적인 이미지 때문에 대단히 부정적인 용어로 경화되었었다. 따라서 예정론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주제를 논구하게 된 이유는 그것이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성경에 명백히 제시되어 있는 교리이기 때문이었다.
칼빈신학교의 도서관 사서(Librarian)인 피터 드 클래르크(Peter De Klerk)가 일찍이 1961년에 “Calvin Bibliography”를 Calvin Theological Journal에 기고하면서부터 천명한바 있듯이 깔뱅 사상에 대한 문헌이 매우 풍부하게 출간될지라도(20세기의 Calvin Renaissance) 그의 예정 교리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도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깔뱅은 흔히 예정교리를 자신의 신학체계의 중심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사실상 그의 대작(Magnum Opus)인 「기독교 강요」를 세밀히 연구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추정을 확신하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Alister McGrath). 분명 깔뱅은 예정교리에 대해 조심스러운 접근방식을 수용했으며 단지 4개의 장에서만 예정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Inst, Ⅲ-21-24).
「기독교 강요」의 1559년 최종판에 나타난 예정에 대한 깔뱅의 주장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는 바 그것은 은총론에 대한 그의 해설이후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정교리 연구의 중요한 단초(端礎)가 된다. 깔뱅이 이 당혹스러운, 두려운(horrible)예정이라는 주제에 대한 고찰로 방향을 급선회한 것은 믿음에 대한 칭의교리와 같은 주제들이 상세히 고찰된 후에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볼 때 예정은 이러한 분석에 선행되어야만 한다. 분명 예정은 개인이 선택된 배경을 정초시키고 나아가 개인의 칭의와 성화가 그 뒤를 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깔뱅은 이러한 논리적 규범을 따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깔뱅의 예정에 대한 분석은 관찰된 사실들로부터 전개된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믿으나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바로 예정교리의 일차적 기능은 왜 어떤 사람들은 복음에 반응하고 어떤 사람들은 복음에 반응하지 않는가?하는 문제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은 은총에 대한 다양한 인간의 반응을 설명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분명 깔뱅의 예정교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선입견(先入見)에 근거하여 추론된 교리라기 보다는 성경적 입장에서 해석된, 인간경험의 자료들에 대한 논구로 간주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정에 대한 신념은 본래 믿음의 조항이 아니고 경험이라는 수수께끼의 입장에서 각 개인에게 미치는 은총의 결과에 대한 성경적 고찰로 획득된 최종적 결론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이것이 교회사적으로 볼 때 결코 신학적 갱신은 아니었다. 그는 기독교 신학의 영역속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학자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중세 후기의 다수의 신학자들중, 특히 리미니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of Rimini)와 오르비에토의 위골리노(Hugolino of Orvieto)등과 같은 당시의 아우구스티누스 학파(Augustinian School)의 학자들은 이미 절대적 이중예정교리(絶對的 二重豫定敎理)를 가르쳤었는바 깔뱅이 중세후기의 아우구스티누스학파의 이러한 경향을 전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사료된다. 분명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주의는 깔뱅의 가르침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정교리는 깔뱅사상의 주요한 전제(前提)는 아니다. 예정교리는 복음의 선포결과에 수반되는 당혹스러운 문제에 대해 설명하려할 때 제기되는 부수적인 교리일 뿐이다. 그러나 후대의 깔뱅주의자들이 새로운 지적인 발전의 입장에서 깔뱅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개조하려고 시도했을 때 그의 기독교 신학구조에 불가피한 변화가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최근에 이르러 깔뱅신학에 있어서 예정교리의 중심성의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 경향이 있는데 본고에서는 예정교리의 중심성과 그 위치, 즉 구원론적(soteriological)인 위치에 정향(定向)시켜 논구하려하는데 본고에서는 깔뱅과 관련된 세 가지 전제(前提)들을 논구의 단초(端礎)로 삼으려한다.
첫째, 예정론은 구원론(성령론적)적인 교리라고 하는 점이다. 깔뱅의 생애 전체를 살펴 볼 때, 예정론은 구원교리와는 불가분리한 그런 교리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예정론을 구원론의 시각에서 조망한 이것은 초기 작품인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도 구원론과 예정론의 불가분리성이 드러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후기 저작인 1559년 판 「기독교강요」에서도 그 불가분리성이 전보다 더 충일하고 정확하게 접합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예정론의 주된 작업은 공로주의를 떠나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칭의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의 근본적인 교리를 보호하고 강화하는데에 있는 것이다.
예정교리는 기본적으로 교회론적, 또는 신학적인 교리와는 대조되는 구원론적인 교리이다. 우리가 신학적인 교리로서 예정론을 말할 때, 예정론적 견해가 만사와 만물은 미리 결정되어졌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 대한 예정을 다루는 견해라는 점을 주지(周知)해야 할 것이며, 이 교리는 하나님 자신에게서 즉각적으로 도출되어진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만사와 만물의 운명이 미리 결정되어졌다는 그러한 이해는 구원론적인 맥락에서 예정론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보편적 결정론에 더 많은 강조를 둔다. 이 견해에서는 예정론이 전반적인 신적 결정의 단순한 한 가지 양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예정론은 신적 섭리의 특수한 적용이 된다. 혹자는 Thomas Aquinas의 견해를 생각하기도 한다, Summa Theologica I. Qu. 22-23; Huldrich Zwingli, De Providentia Dei. 참조.
깔뱅은 예정론이 신적 섭리의 특수한 적용이라는 그런 일반적인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예정교리에 구원교리를 주입시킨 것은 섭리와 예정론과의 관계에서 볼 때 섭리교리는 예정교리의 특별한 적용으로 간주될 수 있을 정도까지 섭리교리가 예정론이 가지고 있는 구원론적인 모습으로 형성되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은 먼저 예정론은 근본적으로 교회론적인 교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예정론 속에는 교회론적인 요소가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교회를 선택받은 자의 공회로 정의하는 깔뱅의 정의를 연상케 한다. 비록 초기와 후기의 저술에서 다소 교회론적인 강조가 눈에 띤다고 할지라도, 구원론적인 관심이 초기의 작품에서는 더 두드러진다. 제2장은 교회론적인 강조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예정론이 교회론적으로 설정된 모습은 구원론적으로 예증되어 있기 때문에 연역법적인 실례의 문제를 인용하기도 한다. 명확히 이것은 가시적인 교회의 틀 안에서 선택받은 자를 결정하는 문제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가시적인 교회의 성원이 누구이며, 누가 구원을 받았는지 알고자 하기 때문에 결국 구원론적인 문제로 귀착된다. Calvin의 연역법적인 실례에 대해서는 Wilhelm Niesel의 “Syllogismus Practious?" Aus Theologie und Geschichte der Reformerts Kirche. gestembe für E.F.K. Muller (Neukirchen, K. Moors, 1933), pp. 158-79와 독일어로 개정한 Harold Knight가 번역한 The Theology of Calvin을 보라 (Phil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56), pp. 170-81. Oorthuys도 ”de beteekenis van het nieuve leven voor de sekerheid des geloofs, volgens Calvijns Institute." onder Eigen Vaandel, XIII (1938), p. 264에서 동의 하고 있다. 더 적절한 것은 G. C. Barkouwer, Hugo Bekker가 번역한 Divine Election, (Studies in Dogmatics Series: Grand Rapids, Mich.: W.B. Eerdmans Publishing Co., 1960), pp. 288-90과 Fred N. Klooster, Calvin's Doctrine of Predestination (Calvin Theological Seminary Monograph Series," Vol III: Grand Rapids, Mich.: Calvin Theological Seminary, 1961), p. 34.
그의 신학적 전개에서 알 수 있듯이, 깔뱅의 주된 관심은 반복해서 구원론적 모습을 드러내는데에 있었다. 바로 이것은 깔뱅과 그의 반대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된 이슈가-일반적으로 개혁자들과 카톨릭 신학 사이-교회론이 아니라 구원론적인 문제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예정론은 더욱 철저히 교회론적인 관심 보다는 구원론적인 관심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깔뱅의 예정교리는 구원론적인 문제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논쟁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만약에 구원론이 주된 문제라면 예정론은 구원론을 가장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된다. 깔뱅은 반복해서 개혁주의 신학의 구원론을 수호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예정론의 논증적 이슈들을 사용한다. 따라서 예정론과 그 기능을 깔뱅의 신학적 틀 안에서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원론이 반대자들과의 공방을 통해서 잘못된 견해임을 입증할 수 있는 논쟁적 방법을 그 구원론적인 촛점에 첨가시켜야만 한다.
세째, 기독교 강요의 구원론적인 성격과 논쟁적 기능으로 인하여 예정론은 드디어 깔뱅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예정론은 깔뱅 신학의 구원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교리가 되었던 것이다. 예정론의 영향력은 심대한 것이고,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 이미 주장되어 왔었던 견해들과도 일치하는 이유는 바로 구원론적인 진술들에 기인한다. 이러한 모습과 영향이 구원론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지배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그 구원론의 틀 안에서 예정론의 영향력은 언제나 그 구원론에 활력을 불어넣어 약화되거나 절감되지 않도록 한다. 또 한 편, 교리 형성에 있어서 구원론의 영역을 넘어서서 다른 교리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구원론적 진술에 대한 예정론의 영향은 심대한 것이어서 다른 교리에 대한 구원론적. 방법론적 틀 안에서 구원론적인 진술을 넘어 깔뱅 신학의 조직화된 원칙의 일부가 된다.). 예정론은 일반적교리 또는 어떤 특별한 교리를 신학화 하기 위한 출발점이 됨으로서 이러한 역할을 감당한다: 차라리 예정론은 다른 교리를 진술하고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진다. 예정론은 깔뱅에게 있어서 구원론의 핵심이 된다고 하는 의미에서 조직적인 원칙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교리적 틀이 세워지는 원칙도 된다. 더욱이 예정론은 구원론과 교회론의 시금석이 된다. 예정론은 깔뱅 신학(구원론과 교회론)의 고유한 순서에 있어서 신학적 우선성을 확립하고 있으므로 다른 교리들은 언제나 그 예정론적인 어떤 진술을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깔뱅 신학에 대해 이미 연구되어온 교리들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 세 가지 상호 관련된 확신들에 대한 근본적인 지식이 되고 있다. 조직신학에 영향을 끼치거나 당대 신학적 관심이 부적당하게 강조되어지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에, 또 예정론에서 공연히 흠을 잡는 것으로 인하여 그 중요한 신학 운동 중 하나에 근거해서 깔뱅의 예정론 교리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예정론에 대한 연구는 예정론이 스스로를 연구하도록 한다. Paul Jacobs, Predestination und Verantwortlichkeit bei Calvin ("Beiträge zur Geschichte und Lehre der Reformiortan Kirche," vol. I: Neukirchen: Neukirchener Verlag des Ersiehungsvereins, 1937), pp. 20-40, "speculative," "religious," and "speculative-religious"의 제목 하에 19세기 중엽 Alexander Schweizer로부처 자기시대까지 예정론에 대한 Calvin의 학문이 조직신학적 연구에 의해 영향받아 왔던 제 방법들을 검토하였다. 좀 더 최근에 Niesel은 Calvin의 예정 교리를 포함해서 전 Calvin신학을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으로 이해하였다. A. Dowey는 The Knowledge of God in Calvin's Theolog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52)에서 상호관련 속에서 그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였다. 또 한편, J.K.S. Reid는 “The Office of Christ in Predestination,"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I(1948), pp. 5-12에서 Calvin의 예정론 교리를 비난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교리는 충분히 그리스도 중심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연구들은 이러한 오류를 어느 정도 범해 왔기 때문에, 그들은 16세기의 신학 논쟁들은 가장 우선하는 구원론적 성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깔뱅의 예정론 교리가 보다 커다란 논쟁과 관련하여 어떻게 작용하는가, 또는 어떻게 평가되어져야 하는 가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에 실패했던 것이다.
깔뱅의 예정론 교리가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 하는 과정을 검토해 보면, 제1부는 신학적 용어와 그 논쟁에 있어서 고조되는 정확성을 설명하고자 할 뿐만아니라 깔뱅의 예정교리가 가지고 있는 논쟁적이며 공격적인 성격이 예정교리에 대한 깔뱅의 이해를 변경시키지는 못했지만(예정론이 나중에 가서는 그다지 구원론적은 아니었지만), 그 정확성과 논쟁적 성격은 맨 처음에 암시적으로 주장되어 왔었던 구원론과 예정론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데에 도움을 준 결과, 구원론과 예정론을 단단하게 결속시키는데 이바지 하였다. 제2부는 이렇게 구원론적 강조를 맨 앞에 두는 것이 예정교리의 어떤 특정 부문에서 깔뱅의 견해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또한 논쟁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예정교리를 이용해서 깔뱅은 예정론이 가지고 있는 구원론적 성격을 어떻게 역설해 왔는가를 다룬다. 이러한 작업은 예정론이 섭리교리에 대해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연구하는 것에 의해서, 선택과 유기교리의 대등성과 그 순서에서 나타나는 영향을 조사함에 따라, 예정론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Ⅱ. 연구의 범위와 모티프
깔뱅의 예정론은 크게 3시기로 전개되어진다. (1) 제네바에서의 첫 정주(1536-38), (2) 스트라스부르그의 막간시절(1538-41); (3) 논쟁의 시기(1551-59). 등인데 초기사역기간인 제네바에서의 첫 정주기(1536~38) 동안의 발달에 촛점을 맞추어 논구하려한다.
예정론의 발달로 인한 전반적인 공박은 처음 구원론적인 확신들로부터 두, 세 번째 시기까지 고조되어 온 신학적 정확성과 논증적인 강조까지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정확성이 고조된다고 해서 초기의 예정론을 이미 제안한 논지와 배치되게 왜곡시키지는 않았다. 깔뱅은 그 최종 형태를 하나님에 관한 교리에서 이끌어 왔는데, 그 최종 형태를 구원론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Heins Otten, Calvins Theologische Anschauung von der Prädestination (Forschunggen zur Geschichte und des Protestantismus, vol. IX. N.1: Munich: Chr. Kaiser Verlag, 1938), pp. 130-35,에서 이러한 견해를 주로 옹호했다. Heinrich Quistorp는, "Sichtbare und unsichtbare Kirche bei Calvin," Evangelische Theologie, IX (1949-50), p. 95,에서 마찬가지로 옹호하였다. 좀 더 조심스러운 것은 Johannes Dantine은, "Die Prädestinationslehre bei Calvin und Beza" (unpublished Doctoral Dissertation, Göttingen, 1965), p. 34,에서 그 자신이 여러 가지 면에서 동의 하고 있는 Calvin과 Beza에 대한 연구로서 Otten이 행한 구별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예정론과 구원론의 불가 분리성을 인식하였다.
달리 설명한다면, 깔뱅의 이러한 변화는 예정교리를 실천적이고 종교적인 방향에서 좀 더 이론적이고 사색적인 방향으로 추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만약 이것이 그 경우라면, 깔뱅은 그의 전 생애 동안 예정론에 대한 두 개의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결론짓는 것이 좀 더 올바를 수도 있다. 깔뱅의 예정교리를 하나님에 관한 교리 쪽으로 좀 더 밀접하게 이끌어 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전문용어를 사용할 필요성이 고조된다 할지라도--예컨대, 하나님의 명령, 근접.원접 원인 사이의 차이점, 그리고 하나님의 숨겨진 의지--그렇게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의 의도도 아니었고, 또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해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가지 주지해야 할 것은 깔뱅의 예정론에 대한 논쟁은 항상 구원론적 맥락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점이다. 더욱이 그 의도와 결과에 있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시기 동안에 일어났던 정확성의 요구는 자신의 예정 교리에 대한 기본적인 구원론적 공박을 보호하고 자세히 밝히는 것뿐이었다. Calvin의 예정론에 대한 전개와 요약을 위해서는 Otten Max Scheibe의 Calvins Prädestinationslehre: Ein Beiträge zur Wurdigung der Eiganart einer Theologie und Religiönitat (Halle: M. Niemeyer, 1897): Andrios D. R. Polman. De Praedestinatieleer von Augustinus, Thomas von Aquino en Calvijn: sen Dogmatrische Studie (Vraneker. T. Wever N.V., 1936), pp. 313-56을 보라.
따라서 그 전개와 발달은 그 어떤 중요한 단절도 포함하지 않는다. 1537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나타나는 유기 교리에 대한 그 어떤 교리적인 것들도 1536년 판 「기독교강요」와 급한 단절을 결코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후기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것을 예상할 수가 있다.
정확성에 따른 이러한 경향은 교리발달에 관한 깔뱅의 일반적인 견해와 모순되지 않는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Walter G. Hards의 번역본에서 그 자세한 인용이 나온다: “A Critical Translation and Evaluation of the Nuclsus of the 1536 Edition of Calvin's Institutes" (Unpublished Th.D. dissertation,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1955). 그리고 그 인용들은 쭉 비교되어 왔었던 표준 라틴판과 마찬가지로 Hards로부터 인용되었다.: (1) Gulielmus Baum, Eduardus Cunits, Eduardus Reuss, I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59 vols.: Corpus Reformatorum. vols XXIX-LXXXVII: Brunvigae: C. A. Schwetachke et filium, 1853-1900), I. cols., 1-252: 이후부터 씨리즈가 아니라 Calvin의 작품 중 어느 부분을 책 표지판을 가진 CO로서 인용하였음: 그리고 (2) 좀 더 최근의 비평판--라틴 각주를 달고 있는-- Peter Barth와 Wilhelm Niesel, Johannis Cavini Opera Selecta (5 vols: Munich: Chr. Kaiser Verlag, 1926-62), I, 19-283: 그 이후부터는 책 넘버와 페이지에 따라 참조로서 OS로서 인용되었다.
깔뱅은 이러한 연구로 인한 예정론의 발달과 전개에 관하여 결론지을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하였다. 깔뱅은 아리우스 논쟁을 언급하면서 교부들이 직면한 반대자들의 애매모호한 용어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CO. I, 61; OS, I, 74.
그 반대자들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서 교부들은 예리하게 자신의 견해를 진술하였다. 예를 들자면,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였다. 아리우스는 자신이 교부들과 일치하는 것처럼 가장하였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피조되어진 첫 번째 피조물로 진술하였다. 아리우스주의를 씻어내 버리기 위해서 깔뱅은 “교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Ibid.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와 동질의 아들이시고 영원하신 아들이심을 선언하였다”고 논증한다. 처음부터 아리우스주의자들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진정으로 고백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동일본질임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결론짓는다. 그 사소한 단어가 신실한 그리스도인과 신성모독적인 아리우스주의자들을 구별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Hards, p. 157; CO, I, 61; OS, I, 74: "Quod is principio, Christum confessi essent sincere et ex animo, Deum, non inficiati essent patri esseconsub- stanialem . . . Jt voculo illa distinguebat inter purao fidei Christianos, et sacrilegos Arianos."
깔뱅의 예정교리를 교부들의 방법론에 적용하여 본다면, 그 발달과정에서 나타난 신학적 정확도는 반드시 교부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깔뱅에게 있어서 예정교리의 충실한 발달과 전개는 반대자들의 오류를 밝히 규명해주는 구원론적 확신들을 명확하게 만든다.
Ⅲ. 제네바에서의 첫 정주기
- 선택을 통해 규정되는 예정론 -
1536년에서 1538년까지, 깔뱅은 선택교리의 관점에서 예정론을 우선적으로 다루었는데, 그는 거기에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논평을 가했다. 유기교리는 깔뱅 신학에서 어떤 통합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론 논의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두 가지 저작들은(1536, 1537년 판 「기독교강요」) 이중 예정론을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깔뱅의 신학이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은 이 기간 동안의 발달 전개로 볼 때 명백하다. 이러한 점에서 후자는 더 명백하다. 그러나 「기독교강요」는 종종 인정되고 있는 것 보다 그 진술에 있어서 명백치 못할지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이중 예정론을 더욱 세밀하게 담고 있다. 이 두 가지 진술들을 분석하는 예에 한 가지 덧붙여서, 1536-37년까지의 「기독교강요」의 세 번째에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선택과 유기에 대한 어떤 언급이 비록 없었다고 할지라도, 숙고할 가치가 있다고 사료되어지기 때문이다.
1. 1536년 판 「기독교강요」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 totam fere pietatis summon et quid est in doctrins salutis cognitu nesessarium complectens, omnibus peitatis studiesis lectu aignissimum opus ac recens editum. Basel, 1536. Bernnard Speiss가 독일어로 번역하였음; Christliche glaubenslehre nach der Alteaten ausgabe vom Jahre 1536 (Weisbaden: Limbarth, 1877). Paul Hanry는 번역에 길다란 인용문을 포함시켜 이 번역본을 장별로 번역하였다: The Life and Times of John Calvin, The Great Reformer, Henry Stobbling 역 (2 vols. in 1: New York: Robert Carter Brothers, 1859), I. 69-87.
이 작업에 있어서 선택에 대한 깔뱅의 견해가 후자가 하나님의 법령에 대한 Calvin의 이해와 밀접히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선택이라는 용어는 예정론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이 범주의 논의 속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독립된 논문으로 취급되진 않았으나 Calvin이 독립된 교리로써 선택에 대한 교리를 다루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에 대한 논평에 대해서는 Polman p. 319를 보라: Paul Jacobs, Prädestination und Varantwortlichkeit bai Calvin ("Beiträge zur Geschichts und Lehre der Roformierten kirche," vol. I: Neukirchen: Neukirchener Verlag des Erziehungavereins, 1937), p. 61: Ernst Wolf, "Erwählungslshrs and Prädestinationsproblem," Die Predigt yen der Gnadenwahl (Theologische Existenz heute, N.F. vol. XXVIII: Munich: Chr. Kaiser Verlag, 1951), p. 93.
구원론이라는 폭넓은 논의 하에 군데 군데 삽입되어졌다(제 1 장: “신경”). Calvin은 그의 서문에서 (CO, II, 9-12 OS III, 9) 이 편집본의 목적이 다음의 두 가지 관심사 보다 더 폭이 넓다고 밝힌다. 그 첫 번 째는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 주장되어져 온 전반적인 기독교 교리에 대한 기본적인 서문을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두 번째는 교리 문제로 말미암아 프랑스에서 처형된 사람들에 대한 변증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Francois Wendel, Calvin: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His Religious Thought, translated by Philip Mairet (London: Collins, 1963), pp. 145-6: Jean-Daniel Benoit--1560년도 판 편집본에 대한 서론적 논평에서--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estisnne (5 vols.: Bibliotheque des texts philosopiques: Paris, Librairie Philosopique J. Vrin, 1957-63), I, 11-12; John 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2), p. 124: I. J. Hesselink, "Development and Purpose of Calvin's Institutes, Reformed Theological Review, XXIV (Oct., 1965), pp. 65-72; and Alexandre Ganoczy, La jeune Calvin; genese et evolution de za vocation reformatrice (Veroffentlichungen des Instituts fur Europaische Geschichte Mainz, vol. XL; Weisbaden: F. Steiner, 1966), p. 207. 이 편집본에 대해서는 물론 그 제목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Karl Reuter, Das Grundverständnis der Theologia Calvins unter Einbosiehung ihrer geschichtliehen Abhangigkeiten (Beiträge zur Geschichte und Lahre der Roformiorten Kirche, vol. XV pt. I; Noukirchen: Neukirchener Verlag des Erziehungsvereins, 1963), p. 94에서 그 기간 동안의 다른 작품들은--Marsilio Ficine, 1474; Petrus Ramus, 1576; and Johannes Manheim, 1560--기독교에서의 가르침이라는 용어를 관련시키고 있거나, 또는 목적상 Calvin과 비슷하거나 「기독교 강요」와 동등한 용어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학문적 철학적 신학 방법론과 그들의 작품을 구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경건성에 강조를 두기 위해서. 그 문학적 역사와 Calvin의 「기독교 강요」의 변천을 위해서는 Benjamin B. Warfield를 보라. "The Literary History of Calvin;s Institutes", Presbyterian and Reformed Review, X, N. 38 (1899), pp. 193-219.
선택교리가 가지고 있는 논쟁적 측면이 이러한 구원론적인 논의와 직조되어 왔던 것이다. Gottfried Thomasius, Die Christliche, Dogmengeschichte als entwicklungegeschichte des Kirchlichen Lehzbegriffs (2 vols.; 2d. ed.; Erlangen: A. Deichert, 1886-89). II, 647-48에서 이 용어들에 대해서 똑같은 현상을 지적한다: "Es ist also ein doppeltes Interesse, von welchem aus Calvin hier die Prädestinationslehre versicht, einmal um jede kathclisierende Betonnung des eigenen Verdienstes durch den Hinweis, dassunser heil lediglich von einem ewigen Akt Gottes absuschneiden; sodamn aber, um den Christen, der in der Gemeinschaft Jesu lebt, Zu vergewissen, indem begründet auf Gottes ewigen Ratzchluss, das Heil des Menchen sehlechthin sicher stellt".
예를 들자면, 1장의 문맥 안에서 깔뱅은 카톨릭의 공로주의에 대항해서 선택교리의 변증적 모습에 주의를 기울였다. 깔뱅은 선택교리는 그러한 공로주의를 철저히 배제시킨다고 말한다. Armand A. La Vallee, "Calvin's Criticism of Scholastic Theology" (unpublished Ph. D. dissertation, Harvard University, 1967), pp. 250-53; 「기독교 강요」의 여러 편집본에서 스콜라적 신학에 대한 Calvin의 비판을 위한 것들. Otto Ritschl, Die Reformeirte Theologie des 16 und 17 Jahrunderts in ihrer Entstehung und Entwickiung (Dogmensgeschichte des Protestantismus, vol. III; Go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26), p. 166에서 그는 공로주의에 의한 구원에 대한 공박으로서 Calvin의 선택견해를 정당하게 간주한다.
교회론적 맥락 안에서 깔뱅은 선택받은 자와 가견적 교회를 동등하게 간주하는 경향을 지닌 재세례파들을 반대한다. 이러한 교회론적 특색은 로마에 교회 중심을 두고 가견적 교회와 참 교회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카톨릭을 공박한다.
깔뱅에 대한 연구는 1536년 논문이 마치 교회 정의에 국한된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가 교회론적 진술과 마찬가지로 구원론적인 것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Paul Wernle, “Calvin” (Der Evangelische Glaube nach den Hayptachrifen der Reformatoren. vol. III; Tübingen: J. C. B. Mohr [Paul Siebeck], 1919, p. 278에서 선택이라는 용어가 1536년도 교회론의 논의에서 20번이나 사용된 반면에 율법을 다룬 장에서의 구원교리 중의 하나인 선택사상과는 단 한 군데도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G. Oorthuys 역시 교회론적 맥락만을 다룬다; De Leer der Praedestinatie (Wageningen: H. Veenman en Zonen, 1931), p. 207; P. Barth, Die Erwählungslehre in Calvins Instituto von 1536, (München: Chr. Kaiser Verlag, 1936), p. 434; and Jacobs, p. 61.
예를 들자면 빌헬름 니젤(W. Niesel)은 구원론 부분에서 선택교리를 간과했다. 그는 (1) 깔뱅의 선택교리에 관한 본질적인 것들이 1536년도 판 「기독교강요」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서 교회론과 구원론의 불가분리성에 덧붙여서 교회론적 논평들을 활용하였다. (2) 또한 그는 제2장의 「사도신경」 4부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 선택교리를 언급할 필요가 있기 이전에 이미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진술할 수 있을 때까지 선택에 대한 논문을 연기하였다. Niesel은 다음의 두곳에서 이 논증을 사용한다: Calvin, p. 165와 “Calvins Erwählungslehre”, Reformiarte Kirchenzeitung, LXXXII (1932), p. 218..
그의 견해는 세 가지 비평을 받는다: (1) 선택교리는 교회에 대한 정의편까지 연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I장의 구원론 편에서 간단히 언급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언급되어진다. (2) 그의 견해는 자신의 의도 속에 짙게 깔려있는 것이 제일 먼저 언급되어야 한다는 논지에 근거하고 있다; (3) 교회론과 관련해서조차, 선택교리는 참 교회의 성격에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실성 같은 구원론적 관심 속으로 함께 용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 선택과 율법. 깔뱅의 선택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율법의 장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십계명에 대한 그의 강해의 서문의 한 부분에서 등장한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은 이 율법들을 성취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제시되어져야 한다. 따라서 율법을 성취함으로서 획득되어지는 의롭다함이 아닌 다른 방법이 다른 곳에서 발견되어져야 할 것이다. 깔뱅이 말하고자 하는 그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만이 획득되어지는 의로움의 전가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력은 개 개인에게 하나님에 의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의 의로움을 전가받는 것을 가능케함으로서 죄 용서와 평화 그리고 화해를 인간에게 전가한다. CO, I, 30; OS, I, 40.
2) 양자됨과 유기. 선택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그러한 공력을 유효케 하는 성령의 역할을 논하는 장에서 나타난다. 선택과 관련된 두 가지 개념인 양자됨과 유기를 통해서 행해지는 간접적인 공력이 바로 그 것이다. 하나님의 어린 백성 가운데로, 은혜로 양자됨은 Ibid.: "in filios Dei gratutio adoptamur . . . ."
성령에 의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은혜인 것이다. 그렇게 양자됨은--양자됨의 배후에 놓여있는 선택의 개념--그리스도와의 교통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를 단단히 움켜쥠으로서, 그리고 견고하고 신뢰할만한 신앙으로서만이 획득되어지는 것이다. CO, I, 31; OS, I, 41; 견고한 신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So certa fide ea amplectimur et accipimus, magna fiducia divinae bonitai innixi, et velut in cubentes, nihilque haesitantes, quin verbum Dei virtus sit et veritas, quod nobis s omnia pollicetur."
그러나 이 시점에서 깔뱅은 이러한 신앙의 원인이나 원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유기에 관한 첫 번째 언급이 즉각적으로 뒤따르는데. 깔뱅은 유기된 자의 지위를 다음의 두 가지 상태로 묘사한다: (1)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성취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에 유기는 모든 사람들의 법적 상태라고 하는 점, Ibid., I, 56; OS, I, 68.
(2) 특별히 죄 속에 계속 머물러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 정립에 실패한 사람들의 끔찍한 참상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 편, 그가 누가 되었든지,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든지 간에, 그가 무엇을 어떻게 행사하고 노력했던지 간에, 그리스도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은 회복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영원한 심판을 피할 도리가 없으며, 하나님에 의해서 거절당한 것이며, 구원에 대해서는 모든 희망도 사라져 버린 사람이라는 점이다. Hards, p. 76; CO, I, 31 OS, I, 41: "Rursum qui parten in Christo non habent, quales sint, quidquid agant vol moliantur, in exitium tamen ac confusionem, astemasque mortin iudicium abeunt, a Deo abiecti, et omni salutis expextatione exclusi."
이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의한”이란 말일 것이다. 명확하게도, 유기의 영역은 전적으로 그 말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말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신적 행위가 다소간 유기 속에 함축되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에 의한” 유기는 개개인의 율법 성취에 대한 실패라고 하는 사실의 확인에 불과하거나, 또는 율법성취에 대한 실패의 원인으로서 신적 교리를 통하여 하나님 스스로도 관련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즉 이런 강조가 유기 속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유기라고 하는 것이 양자되는 것과 병행되어 나타나기 때문인데, 개혁자로서의 깔뱅의 생애 동안에는 선택교리와는 별로 큰 연관성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 예정론이 발달할 가능성은 이미 나타났으며, 선택에서 나타난 신적행위의 명확화는 유기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역할에 대한 명확화가 결과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3) 칭의의 변증으로서의 선택교리. 선택에 대한 두 번째 언급은 아주 변증적이다. 선택교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죄용서의 교리에 이론적 변론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에 의한 칭의의 교리이다. 자력 공로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율법으로 간주하는 오해는 만물에 대한 부정확한 신학적 숙고의 결과인 것이다. CO, I, 51; OS, I, 63.
율법에 순종한다는 것은 인간의 죄성으로 볼 때, 원래 가능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칭의의 신학을 율법의 순종에 근거시키는 것은 기독교 교리 전반을 거짓된 기초 위에 세우는 것과 같다. 깔뱅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 교리와 구원, 이 양자의 참된 기초는 그리스도에 의해 놓여진 것 밖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그 기초란 말인가? 그리스도가 어떻게 구원을 가져오는가?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의롭다고 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실제로 결코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그리스도에 의해 놓인 참 기초는 우리의 공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즐겨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세상이 놓이기 전, 영원전부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았다고 하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죽음의 선고로부터 구속받았을 뿐만 아니라 멸망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된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로서 아버지에 의해 양자와 상속자가 된 것이며, 그리스도의 보혈로 아버지와 화해된 것이며,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게 되어 멸망당하거나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에게 접목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의 분여자가 된 것이며, 소망을 통해 하나님 왕국의 시민이 된 것이다. Ibid.: "Sed quod in eo electi ab aetemo sumus ante mundi constitutionem, nullo nostro merito, sed secundum propositum beneplaciti Dei, quod eius morte ipsi a mortis damnations redepti ac liberti a perditione sumus, quod in ipso adoptati a patre sumus, in filios et haeredes, quod per ipsius sanguinem patri reconciliati, quod illi a patre in custodiam dati sumus ne unquam pereamus aut exicidamus, quod ita illi inscrti iam vitae aetemae quodammodo sumus pqrticipes, in regnum, Dei per spem ingressi texts."
따라서 적당한 신학적 용어의 정립이 요청되는데, “선택받았다(택함받았다), 구속받았다, 양자되었다, 화해되었다, 접붙여졌다(접붙힘은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는 말과 동의어), 또는 견인되었다”는 표현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순종 또는 불순종 여부에 달려 있다기 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위해 깔뱅은 신약성경 본문을 선택교리와 융합시키고 있다. 다음의 본문들은 장 말미에 라틴어 판으로 인용되어졌는데 Hards는 여기에 몇 몇 구절들을 첨가하고 있다: 엡 1:4-5; 롬 9:11; 딤후 1:9; 요 1:12-13; 엡 1:7: 3:6-11; 롬 5:1-2; 고후 5:18-19; 요 10:14-18; 17:12.
우리는 성경구절들의 단순한 반복으로 그러한 인용들의 의미를 흐리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깔뱅은 성경 언어들을 학문적인 언어들 보다 더 선호하고 있다. 그것은 성경구절들이 더욱 확실할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정당한 교리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깔뱅이 성경구절만을 고집한다 할지라도,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명백하게 전달하지 않을지라도, 성경구절이 더 명백하고, 그리고 잘 배열되고 정선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숙지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구절들이 내포하고 있는 교리적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그가 천명한 바 있듯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놓여진 그 기초의 성격상, 이러한 구절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도는 칭의에 대한 깔뱅의 이해를 논증적으로 옹호하는데에 있다. 그것은 공로주의에 대한 공박까지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방어를 위해서 다음의 몇가지 사실들이 주목되어져야 할 것이다.
1. 그는 칭의를 선포하고 있는 여러 성경본문과 인용들을 통해서 신앙에 의한 칭의를 변호하고자 의도하지는 않았다.: 즉 교리 자체로부터가 아니라 차라리 성경 밖의 것으로부터 변론을 시도하고 있다: 즉 그것은 선택이라는 교리에서이다. 선택은 칭의의 결과로 간주되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칭의를 설명하는 데에 가장 편리한 방법은 의지가 죄에 속박됨으로 말미암은 당연한 결과로 선택을 설명하는 것이다. Dantine에게 있어서도 다소 유사하다: Die Prädestinationslehre, p. 38; Dantine 이전에 있어서도 Scheibe는 이에 대해 정당하게 결론짓는다. “Das für die allgemein gedanken über die aweitseitige Prädestination und über die Erwänger hatte, bedarf keiner weiteren Begründung”.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다양한 자료에 대해서는 Wendel의 책 pp. 122-143을 보라; Ganoczy, La jeune Calvin, pp. 132-134; Reuter, pp. 74-75: Ganoczy, pp. 140; 261-62, D. Nauta, Calvin and Luther, Free University Quarterly, II (1952-53), pp. 14-15 (에서 Nauta는 독립되어진 것을 따라 의존적인 것과 유사한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Friedrich Loofs를 참조하라; Leitfaden zum Studien der Dogmengeschechte (4th rev. ed.; Haller; M. Niemeyer, 1906), pp. 877-78: Wernle, Calvin, p, 165; McNeill, History, p. 125; J. Köstlin, "Calvins Institutio nach Form und Inhalt in ihrer geschichtlicher Entwicklung", Theologische Studien un Kritiken, XLI, . Nos. 1 & 3 (1868), p. 21ff. (에서 Köstlin은 매 첫 네장이 Luther에 의존되어진 것임을 주장하였다; E. F. K. Müller도 동의한다, Symbolik: Bergeiohande Darseliung der christlichen Hauptkirchen nach ihrem Grundzüge und ihren wesentlichen Lebensäusserungen (Erlangen: A. Deiohertische Verlagsbuchandlung, 1896), pp. 383f.; Paul Tschackert, Die Entstehung der lutherischen und der reformirten kirchenlehre, samt ihren Innerprotestantischen Gegensätzen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10), p. 391.
더욱이 1537년 판 「신앙고백서」와 1539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깔뱅은 인간론적 숙고로부터도 모든 인간이 이 정당한 복음을 청종하지 않는다는 선택교리를 계속해서 진술하고 있다.
2. 선택교리는 구원받은 사람이 영원 전부터 택함받았다는 진술 속에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이러한 진술은 하나님의 의지가 최상의 원인이 되는 영역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의 명령은 이러한 진술을 명백하게 하지 않는다.
3. 후기 저작에서는 선택의 원인으로서 공로에 대한 예지를 거부한 요소가 함축되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이미 발생했었던 선택은 하나님의 즐거움에 기초한다는 진술 아래 이러한 설명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깔뱅이 나중에 가서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들을 명백하게 한 것은 놀랄만한 일이 못된다. 1539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깔뱅은 선택에 대한 근거로서 공로주의뿐만 아니라, 만약 실제 공로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그러한 예지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공로주의에 대한 예지도 배제시키고 있다. 죄악된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에 대한 예지이기 때문인 것이다. 선택의 원인으로서 예지에 대한 문제와 선택교리에 관하여 이 시점에서 일어났던 견해와 후기 저술에서 나타났던 것들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었다. 후기 작품에서는 보다 큰 정확성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처음으로 진술되었던 것보다는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는가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나중의 견해로 방향 선회하고 있다.
4. 전반적으로 볼 때, 인용구절들은 이 당시 선택교리의 특질이었던 구원론적, 교회론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았다고 구원론적으로 말하는 것에 덧붙여서, 깔뱅은 교회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졌고, (2) 이러한 접붙힘의 결과로서 인간은 결코 멸망당하거나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즉, 교회론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선택은 세상과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무한한 위로와 힘을 부여하는 견인 교리를 포함해서 불가항력적인 은혜인 것이다.
4) 선택과 성화. 제1장에서 선택교리에 대한 세 번째 언급은 아주 명백한데, 칭의라기 보다는 차라리 성화를 언급하면서도 그 문맥적 흐름은 구원론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몽학선생으로서의 율법의 제3사용(third use of the law)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Emil Doumergue, La Pense Religiuse de Calvin (Jean Calvin: les hommes et les choses de son temps. vol. IV; Lausame: Georges Bridel et Cie., 1910), p. 352, Heinz Otten, p. 16; and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69 (모든 사람들은 이 첫 번째 언급을 선택에 대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깔뱅은 공로주의에 대한 거부로서 하나님과의 친교를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거룩한 삶을 배제시키는 것은 신앙에 의한 칭의를 믿는 사람들의 도덕적 관심사의 부족성을 지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한다. 깔뱅은 성화의 중요성을 확신하면서, 거룩한 삶이 천상적 왕국의 영광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따르는 그 선택받은 사람이 그들의 하나님에 의해서 그 동일한 영광으로 인도함 받는다고 우리가 생각한다면, 거룩한 삶이 결코 불편한 것이 아니라고 진술한다. Hards, p. 139; CO, I, 55; OS, I, 67: Sic et nihil erit incommodi, si vitae sanctitatem existimenus esse viam, non quidem quae ducat, sed qua electi a Deo suo in gloriam regni coelestis ducantur: quoniam haec eius voluntas est, glorificare quos sanctificavit.
깔뱅에 의하면 택함받은 사람에게서는 그들이 화해되어졌다는 열매로써 비난스러운 행위나 나태한 행위를 발견할 수 없고 오히려 삶의 거룩함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성화). Doumergue, Jean Calvin, IV, 352: 그는 택함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는 성화의 열매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une inteintion religieuse et pratique a pour but de couper ä sa racine le doctrine des oeuvers, so funeste (disasteriou) ä la piete et á la morale”.
로마서 8:30을 인용해서 결론짓는 완곡한 암시--“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는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구절이 성경본문과 이미 전에 인용했었던 인용문과 융합되어 바로 그 옆에 놓여질 때, Supra, p. 20.
로마서 8:30은 그러한 본문들에 대한 깔뱅의 조직적인 모델이 된다. 로마서의 ”예정된 자들“이란 말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영원 전부터 선택받은 사람이란 말과 동등하다; 의롭다함을 입은 사람이란 말은 구속받은 사람, 화해했다는 말, 그리고 영광화되었다는 표현과 영생에 참여했다는 말, 접붙임을 입은사람이란 말과 같은 말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선택교리가 가지고 있는 구원론적 모습에 대한 강해인 1536년 판 「기독교강요」는 로마서 8:30의 바울에 의해 공식화된 구원의 서정에 상응하는 것이 된다. 깔뱅의 후기 선택교리를--이후부터는 예정론으로 부른다--구성하는 주된 요소는 구원론적, 교회론적 주제에서 도출되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 본문에서 알 수가 있는데 바로 이런 점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깔뱅의 예정론 교리에 있어서 전개의 연속성의 또 다른 예가 있다.
5) 선택과 교회. 이 주제는 구원의 확실성과 견인 교리의 제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과 교회의 선택교리에 대한 가장 길다란 논증이 될 것이다. 깔뱅은 이 문제점들을 「사도신경」에 나오는 제4부를 그의 책 2장에서 다루고 있다. 교회론 중에서 선택에 대한 주된 논의는 Karl Barth가 주목했던 것처럼 Calvin은 4편 중에서 첫 머리에 둔다, The Doctrine of God, edited by G. W. Bromiley and T. F. Torrance and translated by T. H. L. Parker &Others (Church Dogmatics, Vol. II. Pt, 2; Edinburgh: T. & T. Clark, 1957), pp. 81-85; 이후부터는 「교회 교의학」으로 인용됨. 선택교리에 주어진 또 다른 세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기독론 다음에 곧바로 나온다(1537년 판 「기독교강요」와 「신앙 고백서」): 2) 죄에 관련되어 나타나고(1559 Gallican Confession): 3) 구원론의 말미에 나온다(1539, 1554, 특별히 1559년도 판 「기독교강요」). Barth 자신은 특별히 제2항을 선호한다.
거룩한 공회를 다루고 있는 교회 교의학의 이 부분은 성령, 아들, 아버지를 다루고 있는 다른 세 부분들과는 다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필요로 하는 신앙의 관점에서 가견적이고 기구적인 교회와 깔뱅을 연계시켜서는 안된다. 가견적 교회를 믿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삼위일체와 마주 서 있는 교회에 적용되어진 Calvin의 교리는 Hards의 신조와 대립되어있는 Lombard의 신조이다: Hards, p. 298.
“사도신경”에서 이렇게 구별한 깔뱅은 그 가시적인 교회에 어떤 절대성이나 궁극적 충성을 부여하는 위험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한 충성은 구원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 성령의 역사를 위해서만 유보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논증은 깔뱅으로 하여금 교회의 본성에 대한 다른 이해를 갖느니 보다 차라리 강력하게 선택교리에 대해서 말하게 하였던 것이다. 선택교리에 합당한 믿음의 결과로서 비록 교회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가시적 교회는 이 시점에서 신학적 우선성에 있어서 부차적인 것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깔뱅이 가시적 교회의 이차적 성격에 대해 끊임없이 주장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차적인 성격은 충분히 제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시적 교회의 기능은 대부분 유효한 것으로 남아 있다; 교회의 최종적 근거는 비가시적이다. 교회는 선택의 교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선택교리는 교회의 본질인 것이다. Wernle, Calvin, p. 50.
교회를 정의함에 있어서, 깔뱅은 제일 먼저 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논구하고 있다: 그것은 선택받은 사람의 회집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 교회를 하나가 된 것, 보편적인 것, 그리고 거룩한 것으로 칭하였다. 깔뱅은 가시적 교회의 계급 구조와 쉽게 관련되는 개념인 사도적인 것으로 교회를 보지 않았다: 첫째, 교회가 천사들의 모임이 되었든지, 사람의 회집이 되었든지 간에 선택받은 사람들의 모임인 거룩한 공의회라고 하는 (에베소서 1:9-10: 골로새서 1:16); 산 자가 되었든 죽은 자가 되었든지 간에, 그들이 어디에 거주했던지 간에, 그들이 세상 어디에 흩어져 있었든지 간에, 실제로 한 몸의 머리인, 우리들의 주이신 그리스도가 왕이시고 지도자인 한 사회와 한 교회만이 존재한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함을 받은 것에 따라서 하나님의 왕국에 그들은 모인다. 이 교회는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다. 왜냐하면 둘이나 셋 이상의 교회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선택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 결속되어진다. 따라서 그들이 한 머리에 의존하는 것처럼 한 몸에 결합되어진다. 이러한 결속에 따라 그들은 한 몸의 지체로 연합된다. 실제로, 영원한 생명의 동일 상속자로서 부름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동일한 성령 안에서, 사랑과 소망, 한 신앙 안에서 동일시대를 살고 있는, 실제로 하나가 된 것이다(로마서 13:4-5, 고린도 전서 10:16-17; 12:12-27; 에베소서 4:4-6). 교회의 성원이 되도록 하신 영원한 섭리에 의해 선택함을 받은 교회는 주님에 의해 거룩케 되었기에 교회는 거룩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요한복음 17:17-19: 에베소서 5:25-32). Hards, p. 187; CO, I, 72-73; OS, I, 86: "Primum credimus sanctam catholicam, hoc est, universum electorum numerum, sivi angeli sint, sivi homines . . . : ex hominibus, sivi adhuc vivant; ex veventibus, quibuscunque in terris agant, aut ubivis gentium dispersi sint: unam esse ecclesiam ac societatem et unum Dei populum cuius Christus, Dominus noster, duminus noster, dux sit et princeps, ac tanquam unius corporis caput; prout in ipso divina bonitate electi sunt, ante mundi constitutionem, ut in regnum Dei omnes aggregaentur. Haec autem societas catholioa est, id est, universalis, quia non duas aut tras inverire liceat, verum electi dei sic omnes in Christo uniuntur ac cohaerentes, qua eiusdem corporis membre; vere unum facti, vivunt, in eandem viate aetemae haereditatem vocati . . . . Sanota etia est, quia quotquot aetema Dei providentia electi sunt, ut in ecclesiae membra cooptarentur, a Domino omnes sanctificantur . . . ."
1. 선택교리를 교회론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이러한 정의 속에서 나타난다. 실제로, 그러한 관심은 선택교리에 대한 정의라기 보다는 교회의 정의에 더욱 적합하다. 한편, 교회의 정의는 개 개인의 운명에 관한 그 가장 익숙한 구원론적 관심을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함을 입었다,” 택함받았다는 구절이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론적인 것을 배제시키고 교회론적인 것을 강조한 것을 보기 위해서는 Dantine을 보라: Prädestinationslehre, p. 42, 27.
부르크하르트(Burkhart)는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대하여 선택교리가 개개인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언급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고 지나친 진술을 하고 있다. “Kingdom, Church and Baptiam: the Significance of the Doctrine of the Church in the Theology of John Calvin” (unpublished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1958), p. 105.
2. 구원에 있어서 두 기둥이 한 몸의 지체로 선택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신적 선하심과 영원한 섭리가 바로 그 두 기둥에 해당된다. 후자는 언급할 필요성이 있는데, 첫째, 이 본문에서 영원한 섭리라는 말은 2위 하나님과 동의어로도 사용되어질 수 있으며,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적 섭리를 통해서 선택교리를 보충함으로서 섭리라는 용어가 예정과 동의어로서도 사용되어질 수 있다고 하는 점이고, 좀 더 일반적이지만 선택교리로서도 추정되어진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정의를 위해서는 동의성의 예들을 보라; Supra, p. 26. n. 1 그리고 1539년 판 「기독교강요」를 참조하라: CO, II, 700; OS IV, 397: "veniant omnes filii Adam: cum suo creatore contendant ac discepent, quod setema illus providentia, ante suam generationem, perpetuae calamitati adicti fuerint": CO, II, 703; OS, IV, 400: "Siquis causetur, nullam eis inferri necessitatem ex Dei providentia, sed potus ea conditione ab ipso esse creatos, quoniam futuram eorum pravitatem praeviderit: neque nihil dicit, deque totum." 예정론과 섭리론을 다루는 장의 예정론 부분에서 이 모든 것이 나타난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선택과 섭리라는 용어를 상호 교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예정론과 섭리라는 용어 역시 상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포괄적인 섭리 교리로부터 예정론을 도출하기 때문에 깔뱅이 예정론에서 결정론적 견해를 주장한다는 비평을 받는 것은 깔뱅 자신의 후기 진술에 있어서 섭리론과 예정론이 중복되고 애매모호한 것에 기인하며 그 이유는 이러한 교호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1559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깔뱅은 구속주로서의 하나님 아래에 예정론을 놓고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섭리 하에 위치시킴으로서 이러한 모호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두 개념은 끝까지 평행을 이루는 것 같다. 그렇게 된 것은 신학적 비전문성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깔뱅 자신의 마음속에 그 용어들이 원래부터 실제로 동의어였다고 하는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예정론이 충분히 발전하였을 때, 왜 결정론에 근접해가는가 하는 신학적 이유를 추구한다면, 그 원인은 예정론과 섭리의 상호 교환성을 허용한 일반적인 이해 안에서 예정론이 형성되었다는 데에 부분적으로 그 원인이 있다. 이 상호 교환성이 확립되었을 때(하나를 또 다른 하나에서 분리시킬 수 없었음에 기인하지만), 깔뱅의 예정론이 결정론과 유사한 관계에 있는 견해인 원인율을 강조했다는 사실에 의해 결정론적 경향이 재촉받게 되어졌던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론 교리와 선택교리 사이의 후기에 가서 발생한 긴장 관계의 일부가 이 초기의 동의성으로 추적될 수가 있다.
3. 교회를 선택받은 자의 회집으로서 규정한 결과로 깔뱅은 이 지상에 언제나 참된 교회가 있어 왔고,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한다. CO, I, 74; OS, I, 87.
비록 누가 그 가견적인 교회에 속하는 가를 알 수 없다 할지라도, 참된 교회의 명확한 표지는 언제나 존재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정된 성만찬이 행해지는 곳이면 어디든지 참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Ibid., 77; 91.
그 이상의 자세한 것은 실상 파악되기 힘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의 존재를 믿는 것”과 “교회 자체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정반대가 되고 있으며, 깔뱅은 자신의 이러한 확신에 신학의 총체를 걸고 있다. “교회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떤 가시적 징표에 근거해서 선택받은 자들의 불가견적 교회가 이러한 징표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어떤 가시적인 것에 고정되거나 어떤 장소에 제한되거나 아니면 우리들의 감각에 나타날 수 있는 육감적인 것이 아니라고 진술할 때, 이러한 견해에 대한 논쟁적 비난은 인정되어진다. Hards, p. 201; CO, I, 77: OS, I, 91: "Que planum fit non rem osze carnalem, quae sensibus nostris sublici; aut certo apatio circimscribi, aut in sede aliquua figi debeat."
6) 교회론적 배경에서의 구원론적 관심. 깔뱅은 선택받은 자와 참된 교회의 개념과의 관계는 로마서 8:30에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한다는 것을 덧붙인다--선택, 부르심, 칭의 그리고 영화--그것에 의해서, 궁극적인 교회에 대한 관심을 구원론적인 것과 연합시킨다. 실제로, 그것은 구원론적인 성찰이며, 선택교리의 추후 논의를 지배 할 가견적 교회에 대한 교회 교의학적 맥락 안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구원론적 공격은 Jacobs에 의해 강조된다, Prädestination, p. 62 그리고 Heinrich Quistorp, Sichtbare, p.95.
깔뱅이 구원론적 성찰을 드러내기 위해서 전환한 선택교리의 모습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자들과 공동체가 연합하고 하나됨에 있는데, 그것은 부르심, 칭의, 성화, 그리고 영화의 결과에 의한 것이다. 택함 받은 자와 하나님이 예견한 거절된 자들과의 분리인 것이다. 견인은 택함 받은 자와 거절된 자들의 징표가 된다. Jacobs, p. 61; 이에 대해서는 역시 Polman, p. 320을 보라.
깔뱅은 교회에 대한 정의를 해설하는 부분에서 바울의 구원의 서정을 설정한다. 비록 거룩한 공회의 회원이 궁극적으로 선택에 그 근거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선택받은 자의 삶이 부르심, 칭의, 영화를 통해서 역사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선택교리에서 출발하고 부르심과 칭의의 역사적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이 깔뱅의 최종결론에 다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깔뱅은 말하기를 주가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시킬 때, 선택함을 받은 사람들을 중생시키기로 결정하는 근거인 영원한 선택교리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것을 선포할 수 없는 것이다. 주께서 모든 사람들 중에서 그들만을 선별하시는 예외적인 것을 제외하면, 이런 방식으로 그들을 선택했다고 하는 사실을 나타내시기 때문에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지 아니 한 그 어떤 사람도 그 거룩한 왕국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이다. Hards, p. 189; CO, I, 73; OS, I, 87: "itaque Dominu, dum scus vocat, justificat, glorificat, nihil aliud quan aeterman suam electionem declarat, qua huc eso destinaverat, antequam nascerentur. Quare nullus in gloriam coelestia regni, unquam ingresaurus est, qui non in hunc modum cocatus et juatificatus, quando sine ulla exeptions in cunctis hominibus justificatus, quando sine ulla exceptions in cunctis ques elegit, suam electionem Dominus ad eum modum profert et manifestat."
여기에서 교회에 대한 정의의 시금석으로서 선택교리로부터 개인 구원의 기초로서, 가견적 교회의 틀 안에서 선택교리의 그 역사적 성찰에 대한 강조의 초점이 전환되고 있다.
7) 견인교리와 구원의 확실성. 가견적 교회 내에서 선택받은 자의 영생에 대한 묘사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논의로 이끌어진다. 첫째, 믿음에 있어서의 견인교리의 근원은 무엇인가? 두 번째, 구원의 확실성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는가? 왜냐하면 깔뱅은 선택받은 자의 회집이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그 택함 받은 자 역시 결코 멸망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선택교리는 견인 교리의 적절한 보증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Ibid., p. 190; Scheibe 역시 같은 주장을 하였다; pp. 7-9; Otten, p. 17.
구원의 확실성은 그 택함 받은 자의 견인교리의 연장에 불과한 것이다. Willy Lüttge, Die Rechtfertigungslehre Calvins und ihre Bedeutung für seine Frommigkeit (Berlin: Verlag von Reuther und Reichard, 1909), p. 90, Calvin은 1536년도 판 「기독교강요」에서 선택교리가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증명서가 된다고 말하는 것에 의해서 그 반 논증을 간과하고 있다.
깔뱅은 객관적이고 실재론적인 용어로 견인교리에 대해서 말한다. 개인 구원의 확실성은 개인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나 주관적인 것 보다는 차라리 견인교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Anfechtung(불안-Luther의 용어)이란 용어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위안을 구하는데 있는 것이며, 주관적으로 개인적으로 위안을 구하는데 그 목표가 있는 것이다.
선택교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주된 언급들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문제의 문맥에서 나타난다. 여기에서 깔뱅은 선택자로서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택함이 연합되어지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택함 자체는 성부 하나님의 사역이란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깔뱅은 주가 선택한 사람들은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돌보심과 신실하신 보호 하에 놓여진다고 말한다. CO, I, 73; OS, I, 87: "ques Dominus elegit, eos Christo filio suo in fidem ac custodiam tradidit…"
일단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들이 잘못을 범한다 할지라도 잃어버림을 당할 수는 없다.
선택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몇 가지 질문을 야기시킨다. 이 질문과 다른 질문이 4장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 해도,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이 시점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료들을 여기에서 지적하고 주목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특징들과 그리스도에게로 그 택함 받은 사람들이 보호받기 위해서 위탁되어지는 것은 성부 성자 사역의 그 어떤 긴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택함받은 사람들 가운데 있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와 친교를 갖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성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후 성부에게로 바쳐지는 사람들을 돌보는 단순한 관리자로 그리스도를 좌천시키면서까지 아들의 사역을 무시하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깔뱅은 이런 질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답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에 간접적으로 그와 반대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반론에 대하여, 그 답을 마치 이삭 줍듯 수집하고 있다: 어디에서 구원의 확신을 발견할 수 있는가? 깔뱅은 구원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인간 자신에게서 그 확신을 구하는 것에 대해 깔뱅은 경고를 발한다. 사람은 구원의 원인을 그리스도 밖에서 찾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생명과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를 그리스도에게서만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Hards, p. 192; CO, I, 74; OS, I, 88: "Quando itaque in uno Christo bonam Dei patris erga nos voluntatom, vitam, salutem, et ipsum denique regnum coelorum inverimus . . . ."
따라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Ibid.; "solus ipse satis superque . . . esse debet."
그 이상을 알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엄위하심의 심연과 Ibid.
그의 진노를 유발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은 그 이상을 알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아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그 아버지가 의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말한다면, 사람은 깔뱅이 창조역사에 있어서 성자와 성부의 관계에 관해서 말한 것을 상기한다면, 성부께서 의도하신 것과 아들이 행하시는 것 사이에는 아무 모순도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고 우리가 말할 때, 성자가 참된 하나님이시고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우리는 주장할 수가 있다. 우리가 성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아들에게도 우리들의 전 신뢰를 바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교리의 첫 조항과 관련하여 볼 때, 성부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의미에서 천지의 창조주라고 불리워지는가? Hards, p. 165; CO, I, 64; OS, I, 77: "Quando igitur Deus filius, unus atque idem cum patre Deus est, habomus verum esse Deum creatorem coeli et terrae (Hebr. 1). Atque ut fiduciam amnem in patre contituimus, ita et in filio constituenda est, cum unus sit Deus. Quod autem hic peculiariter cosli ac terrae creator pater dicitur . . ."
깔뱅이 보기에 삼위의 위 사이의 독립된 행위들의 특성은 삼위 간의 동의나 행위의 일치를 불명료하게 한다. 이러한 사실을 선택교리와 구원의 확실성에 적용하여 본다면, 성부와 성자,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함께 의도된 것 이외에는 달리 그 어떤 것도 성자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구현된 것을 발견할 수가 없다.
게다가 구원의 확실성의 맥락 내에서 조차, 깔뱅은 택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그 선택받은 자를 위한 관리자와 수령자의 역할에 제한시키지 않지만은, 성부 하나님께서 그 택함받은 자를 아들을 통해서 선택하신 것으로 간주한다.: 성부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자를 그의 백성이 되도록 예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원도 되도록 의도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를 가지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하심 가운데 있었다는 명확한 언약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논하고 있는 것들은 아버지의 불변하시는 진리와 동일한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그리고 언제나 항상 아버지의 원하시는 바를 참되게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는 진리를 결코 의심해서는 안될 것이다(요1:1; 14:7-11).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주께서 영원 전부터 택하시고 언제나 항상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가 멸망에 이르도록 내버려두시지 않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은 너무나 확실한 것이다 (롬 8:31-39). Ibid., p. 193; 74, 88: "Cum enim Christus Dominus noster is sit, in quo pater ab aetemo elegit quos voluit esse suos, ac in ecclesiae suae gregem referri, satis clarum testimonium habemus, nos et inter Dei electos, et ex ecclesia esse, si Christo communicamus. Deine, cum wit ipse idem Christus, constans et immutabilis patris veritas, minime haesitandum est, quin eius sermo vere nobis enarret patris voluntatem, qualis ab initio fuit et semper futura est (Ion. 1. 14). Quando itaque Christum et quidquid eius fratres ac consortes, ut eiusdem simus haoreditatis participes; ob id certi quoque simus, nos inter ecz eseo, quos Dominus ab aetemo elegit, quos semper set protesturtus, quos nunquam perire sinet (Rom. 8)."
따라서 택함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 간에 긴장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질문에 답함에 있어서,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선택은 아버지에 의해 그리스도만을 통하도록, 삼위 안에서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역에 의해서만이 이루어지도록 하셨다. 물론 이 것이 모든 긴장을 해소하지 않지만, 깔뱅은 선택을 단순히 수령하거나 보충적인 역할을 하는 그 이상을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다고 주장했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구원의 확실성은 구원론적으로나 교회론적으로 중요하다. 만약 구원의 확실성이 없다면, 교회의 보편성은 결여된다. 개개 교회의 구성원이 교회에 소속된다는 확실한 믿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교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Ibid.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의 보편성은 가견적 교회의 일반적 개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교회는 확실하게 구원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견해 이면에 내재해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교회는 우주적-보편적이어야만 하기 때문에 교회는 아주 가시적이어야만 하며, 그러한 가시성 때문에 추상적 관념 이상의 것이어야만 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서 교회는 구성원들이 구원받았다는 확실성에 근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실성은 선택교리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면 깔뱅에게 있어서, 구원의 확실성이란 구원론적 성찰임과 동시에 개개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교회론적 차원도 갖고 있는 것이다.
8) 선택과 유기. 선택교리와 마찬가지로 유기 역시 독립적으로 다루어져서는 안된다. 유기교리는 교회와 선택교리 그리고 구원의 확실성과의 내적 관련성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의 한 부분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Jacob의 책 p. 61에서 선택교리와 교회를 다루는 장 전체에서 선택이라는 용어가 15번, 유기란 단어가 3번이나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을 요한다.
선택교리에 대한 논의는 참된 교회의 성원을 확인코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기교리는 선택교리의 어두운 부분을 나타내는 주변적이거나 가장자리의 것 이상이다.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43.
차라리 그 유기된 사람들은 택함받은 교회 안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며 그들의 신분은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의 이중 예정론에 P. Barth, "die biblische Grunlage der Prädestinationslehre bei Calvin," De I'slection éternelle de Dieu; Actes du Juin 1936, edited by Jacques Courvoiser, Max Dominicé and Jean de Sausurre (Geneva: Editions Labor, 1936), p. 29,에서 말하기를 관심의 초점이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스러운 선택에 근거한다 할 지라도, Calvin은 저주의 가증성을 그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다; also Ibid., "Die Erwählungslehre," p. 437 Inst. 1536판 「기독교 강요」를 다시 읽고 P. Barth의 글을 주석한 Jean Rillet에게서 이 이중 예정론에 대한 글이 다시 발견된다.
대한 글들은 바로 이러한 관점 하에서 쓰여졌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불가해한 지혜를 이해할 수도 없고 그분의 영원한 지혜에 의해서 그 누가 택함받았고 유기되었는가 확인한다는 사실 자체가 실상은 우리에게 속한 일이 아니다. Hards, p. 192; CO, I, 74; OS, I, 87-88: "Comprehendere quidem non possumus incomprehensible Dei sapientiam, nec eam excultere nostrum est; ut nobis conset, qui aetemo eius consilio, qui reprobati sint (롬 11)."
깔뱅은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지는 구속을 받거나 또는 율법을 순종하는 데에 실패한 사람들의 운명으로서의 유기를 요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즉 유기는 원래가 인간 스스로가 빠져 들어간 그 상태 속에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두신 결과처럼 보인다. 비록 유기가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 자신에 의해서 타락한 상태에 남아 있도록 허락한 결과로서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유기를 단순히 허용하신 이상으로 신적 행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Otten은 p. 19에서 그런 견해를 받아 들이면서, 1536년 판 「기독교강요」 만큼이나 초기의 글에서 Calvin은 그 책망의 저주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고 말한다: ein Handeln Gottes".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과로서 단순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조차 깔뱅에게는 선택과 유기 양자가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로 말미암은 것으로 보여진다. 깔뱅이 받아들인 그 견해는 선택교리가 하나님의 지혜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하지만, 유기는 하나님께서 그 충분한 원인이 되도록 허용하신 그 허용과 인간의 범죄함이 쌍을 이루어 발생한 것이다.
비록 여기에서는 명확하다 할지라도, 이중 예정론을 제시하는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나오는 구절들은 명확치 못하다: 하나님께서 그 믿는 자와 교통하시는 은혜를 말하면서--오직 선택된 자만이 성령으로부터 받은 은혜--교통의 은혜와 그 은혜를 받지 못하는 저주에서 드러나는 신적 행위를 지적하고 있다. CO, I, 77-78; OS, I, 91: "tamotsi Dei dispensatione id uni peculiariter datum est, nonaliis."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주시지 않음을 결정하는 신적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유기의 구절이 근본적인 형태에서 이중 예정론의 후기 교리를 담고 있다 할지라도, 깔뱅의 관심은 이 교리를 설명하는 데에 있지 않고 교회 내에서 택함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확인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법적 신분은 그들 자신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로부터 확실성을 유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깔뱅의 논증은 대단히 강력한 것이 된다. 깔뱅은 마태복음 16:1-19이 누가 택함 받았고 유기되었는가 알 수 있도록 하는 근거 구절이라고 말하는 카톨릭을 공박한다. Ibid., p. 74-75; 88-89.
그러나 그러한 견해에 대한 공박은 유기의 영역에 신적 인과율을 도입함이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유기된 자는 단순히 그들 자신의 운명에 그대로 남겨질 수도 있는 것이며 그 이론적인 공박은 필요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깔뱅은 유기를 신적 인과율과 연결시킬 수 있는 정도까지 최대한 연결시켰으며, 그 유기가 어떻게 발생되었는가 하는 과정을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깔뱅의 주석은 선택받은 자를 인식하는데에 대한 카톨릭의 견해를 공박하는 것을 뛰어넘는 어떤 확신을 담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9) 선택과 유기 교리의 징조들. 깔뱅은 선택과 유기의 표징들을 되도록 삼가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알기를 원하시는 그 범위 내에서, 우리가 이방인들과 책망받을 자들과 하나님의 아들들 그리고 택함 받은 자들을 어떤 뚜렷한 표징들에 의해 구별할 수도 있게 하셨다. Hards, p. 195; CO, I, 75; OS, I, 89; "certas quasdam notas nobis describit. . . quibus electos et filios Dei a reprobis et extraneis distinguamus, . . . “
이러한 표징들은 신앙의 고백과 모범적인 삶, 그리고 성례전에 참여함을 포함한다. 이러한 표징들에 참여한 사람들을 택함 받은 자로 간주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자비 하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두드러진 표징들에 의해서 성경이 우리들을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 하나님의 자손들,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로 규정함으로써 우리도 그들을 알게 되는 것이다. Hards, p. 195; CO, I, 75; OS, I, 89: "certas quasdam notas nobis describit . . . quibus electos et filios Di a reprobis et extraneis distinguamus, . . . "
신앙에 있어서 동일한 고백을 하지 않거나 그 신앙의 고백을 행동으로 부정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판결이 취소되어질 것이다.
깔뱅은 그 책망의 표징들은 택함 받은 사람들의 표징보다 더 쉽게 눈에 띨 것으로 말한다. 고의적으로나 악의적으로 복음을 핍박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없애 버리고자 한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성령의 역사를 거부한 사람들은 바로 그 유기된 자들에 속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유기는 하나님의 행위가 아니라 성령에 대항한 자신들의 죄로 버림받는 것이다. 그러나 깔뱅은 모든 유기의 징조들이 나타나는 경우에서조차 이러한 사실을 특별한 경우들에 적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비록 자비의 판단을 그들에게까지 연장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말과 행위를 잘 판단해야 한다고 깔뱅은 충고한다. 이러한 궁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악한 자를 선한 자로 바꾸셨다는 성경의 증거 때문인 것이다. Ibid.: "His emin notis ac indiciis scriptura electos Dei, filios Dei, populum Dei, exxlesam Dei nobis definit, ut a nobis intelligi possunt."
10) 유기와 인간의 책임. 유기의 표징들에 대해 전술한 논의에 앞서 깔뱅은 그들 스스로가 택한 운명에 대한 책임을 다룬다. 에밀 두메르그(E. Doumergue)는 논쟁의 주된 초점을 섭리교리와 책망 사이의 관계에 의존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Doumergue, Jean Calvin, IV, p. 352.
그러나 그것은 부정확한 것이다. 비록 그 자료가 섭리 교리에 근거해서 나중에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포함되어졌다 할지라도,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있어서의 그 관심사가 섭리교리와 관계있는 것도 아니고 책망과도 관계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학을 형성할 때는 성경적 용어가 아닌 것을 사용하는 것이 유효한가 하는 문제였다. CO, I, 60; OS, I, 73; cf. Scheibe, p. 12.
책망받은 자들은 그들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깔뱅의 견해는 성경 외적인 용어를 유효하게 사용한 한 실례이다.
이 논쟁의 주된 화제는 삼위일체를 정의함에 있어서 ousia와 hypostasis와 같은 용어를 사용해도 무방한가 하는 것이었다. CO, I, 69; OS, I, 72.
깔뱅은 일반적인 규칙으로써 신학적 언어는 반드시 성경의 언어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나오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애매모호한 용어들을 좀 더 쉬운 말로 설명하는 것은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ousia와 hypostasis에 덧 붙여서 이렇게 실제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용인될 수 있는 두 가지의 실례가 있다: 첫째, 의의 전가와 둘째, 하나님과 악과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Ibid.
신앙에 의한 칭의, 즉 의의 전가에 대한 루터의 교리와 하나님과 악과의 관계에 대한 깔뱅 자신의 견해도 성경 언어들을 혼합하거나 또는 단순히 반복한 것은 아니라고 깔뱅은 주장한다; 차라리, 그 것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성경의 의미를 재진술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한다. 이 두 경우에 있어서 사용된 용어는 전체적으로 성경 자체의 언어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과 악과의 관계에 관하여, 깔뱅은 하나님께서 능동적으로 그 책망받은 자들 가운데서도 역사하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책망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역사를 일으키도록 그들 스스로가 행동한다는 것에 그들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야기시킨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악을 만드신 분이신가? 아니면 하나님은 인간이 저지르는 악의 원인자이신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책망하신다는 것은 부당한 것이 아닌가? 깔뱅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인간의 부정함이 동일 사건 속에서 함께 나타난다고 응답한다. 이것이 성경적인 견해가 될 것이다. 불충분하게 설명하여 애매모호한 두 가지 의미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깔뱅은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는 동일 행위 속에서 인간의 사악한 행위와 의로우신 하나님의 행위, 두 행위를 동시에 본다. 책망받는 자들은 악의 근원이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악하게 생각하고, 악을 행하고 악을 위해서 투쟁하여 악을 이룬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 속에 존재하고, 인간에게 전가된 악하고 범죄함, 그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 행위는 하나님을 반대하여 투쟁하여 온 것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 인간의 악함을 제어하기 위해서, 때때로 인간에게 성공과 권세를 주기 위해서 그 악한 생각과 행위를 야기시킨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당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Hards, p. 155; CO, I, 60; OS, I, 73: "in eodem factorespiciendum perversi hominis, ac iusti Dei opus. Hominem reprobum mali radicem in se habere fixam, a se malum cogitare, a se velle, a se conari, a se perpetare. Ideo illi imputandum, quidquid in opere mali ac culpae eat, quia consilio, voluntate, facto, contra Deum nititur. Deum vero malum voluntatem ac malum conatu, quo vult inflectrere, nunc coercere ac moderari, nunc auccessum dare et vires addere. Sed omnia juste." 바로는 이런 현상에 대한 한 예이다. 하나님의 사역과 그 동일한 자 속에서 역사하는 악마의 역사함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깔뱅의 논쟁 목적은 도덕적 실패에 대해서 인간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인간이 책임이 없다면 인간은 도덕적 실패에 대한 책임이 없게 된다. 부언한다면, 깔뱅은 하나님의 주권을 드높여 세우는 것에 그의 신학적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견해는 이중적이다: (1) 인간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하나님이 인간을 책망하신 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즉 유기교리는 원래 필요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2)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 보았을 때, 인간 자신도 스스로를 비난했을 그 사악한 의지와 행위를 하나님께서 야기시켰다는 것은 받아 들여져야 한다. 영원한 교리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저주하신 것은 단순한 조치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깔뱅이 이중 예정론을 취했을 때, 그는 계속해서 유기에 대해서 인간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의 두 군데에서--구원의 확신과 하나님과 악의 문제--영원한 유기교리가 급박하게 나타나고 있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와 1539년도 판 「기독교강요」에 나오는 그의 신학에 영향을 끼친 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이중 예정론이 어디에 진술되어 있든지 간에, 그 기본적인 골격은 이미 1536년 판에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가장 설득력있게 보여지는 외적 영향은 부쳐(Bucer)의 것인데, 그의 견해는 단지 하나의 가능한 외적 영향에 불과했으며 그것은 실제로 너무 제한된 것이었다. 그 효과는 단순히 깔뱅으로 하여금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암시적으로 나타났던 것을 명확한 용어로 표현하게 했던 것에 불과하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끼친 Bucer의 영향에 관하여 여러 칼빈주의 학자들의 견해에 대한 검토를 위해서는 Bucer의 영향이 너무 과대평가되었다고 주장하는 Wendel의 책 pp. 137-38을 보라; 그 유사성들 중 많은 부분이 Augustine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Karl Holl의 견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Wendel은 Calvin의 신학 형성에 있어서 Bucer의 영향은 지대했었다고 주장한다. Calvin의 교회교리에 끼친 Bucer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A. Lang의 "Die Entstehung und der ursprüngliche Sinn der Reformierten Demeindeordhung," Reformation und Gegenwart. Gesammelts Aufsätze vornehmlich sum Verständnis Calvins und der reformierten Kirche (Detmold: Meyersche Hofbuchhandlung, 1918), pp. 175-77; p. Scherding, "Calvin , der Mann der Kirche und die Bedeutung seiner Strassburger Aufenthalts," Calvin á Strasbourg, 1538-1938, edited by La Commission Synodale de 1'Eglise Réformé d'Alcace et de Lorraine (Stasbourg: Editions Fides, 1938), p. 83; 그리고 특별히 Ganoczy의 La jeune Calvin, pp. 168-170을 참조하시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Wendel은 그의 책 p. 142에서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가시적 그리고 비가시적 동기가 Bucer에게서 영향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Augustine으로부터도 영향받았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1539년도 판 「기독교강요」에 가견적 교회에 대하여 커다란 강조를 하였는데, 이는 Bucer로부터 받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깔뱅의 신학에 새로운 요소들을 삽입한 효과는 별로 없었다. 그가 이중 예정론이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나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아니면 모르고 있었느냐, 그것을 잘 알고 있었느냐, 아니면 이중 예정에 대해 진술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삼가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들은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증거들로서는 대답할 수도 없으며, 1536년 판 「기독교강요」가 쓰여진 시점까지 어떤 것에 의해서도 알 수가 없다. 지금 최대한도로 말할 수 있는 것은 1539년 판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견해가 수정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확장되어 보다 발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며,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증거로 보아서는 그 시점까지 이중예정론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11) 선택교리와 성례전. 선택교리는 성례전의 유효성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논의하는 깔뱅의 논쟁에서, 그 피상적인 것을 뚫고 깊게 추적되고 있다. 성령은 개개인에 있어서 성례전을 유효하게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성령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깔뱅 신학의 원칙이 되고 있다.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CO, I, 107; OS, I, 124: sed quem Dominum peculiariter suis confert . . . . ; Ibid., 138; 159. 1536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택함 받은 자와 동의어가 되는 다른 용어들은 “하나님의 자손들”,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가 이에 해당된다: Ibid., 76;90. 이 모든 용어들이 동의어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인용들을 보기 위해서는 Supra, p. 42의 각주 2를 보라.
그렇게 볼 때, 성례전의 효력은 궁극적으로 선택교리에 의존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깔뱅의 신학은 세례와 신앙, 선택교리의 상호 관련성에 특별한 강조가 주어지고 있다. Burkhart, pp. 217-18.
깔뱅은 유아세례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 선택교리를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카톨릭과 재세례파의 교리를 공박하기 위해서도 그 선택교리를 사용하고 있다: 깔뱅은 유아의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 없는 한, 유아세례는 “ex-opere-operato"의 근거를 통해서 유효하다고 논증한다; 그러나 카톨릭이나 제세례파에 의하면 유아는 신앙이 없고 세례는 성인들처럼 신앙이 나타나는 경우에만 유효하므로 유아세례는 무효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깔뱅은 카톨릭의 견해를 거부하고 동시에 유아의 신앙을 방어한다. 깔뱅이 진술하는 신앙이란 어린 아이가 되었든 성인이 되었든지 간에 모든 택함받은 자에게서 발견된다고 한다; 신앙이란 구원이 실현되는 수단인 것이다. CO, I, 118; OS, I, 136; Scheibe, p. 9; Otten, p. 18.
결과적으로, 유아세례는 합법적인 실천인 것이다. 따라서 세례는 세례의 유효성을 위해서 선택교리에 의존된다.
12) 맺는 말.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깔뱅은 후기 저술에서도 발견되는 개념과 유사한 어떤 다른 교리들과 선택교리를 연계시키고 있다: 공로주의, 하나님의 선하심에 구원이 근착(根着)되어 있다는 것, 교회의 구조와 선택교리와의 관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실성과 선택교리의 구현, 불신자에 대한 문제 (후기 저작과 동일하지 않지만),성례전의 유효성 등의 다른 교리들과 선택교리를 연계시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이러한 관계들은 보다 더 넓은 구원론적인 교회론적인 맥락에서 나타나고, 구원론적인 것이 빈번하게 강조되며 때때로 적당한 논쟁적, 실천적 측면을 포괄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게다가, 선택교리의 타당성 있는 출발점을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찾고자, 선택교리에 대한 교황의 법령마저 언급하고 있을지라도, 깔뱅은 교황의 법령 따위는 전혀 강조하고 있지 않다. 교황의 법령은 교회 내에서 선택의 견인교리나 좀 더 실천적인 부분들에 의해서 쇄락하고 만다.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선택교리의 실천적인 부분을 강조한 Scheibe의 책 p. 13을 보라; Domurgue, Jean Calvin, IV, 353: Polman, p. 322: "De practisch-reliuze waarde der verkiezing ataat hier op den voorgrond, die in de kerkbeschouwing alleen een leidende plaats ineemt"; Otten, pp. 18-19: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42.
자비와 심판의 행사를 포함해서 이 모든 것들에 있어서, 깔뱅은 선택교리가 개혁자들에게 공통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Wendel, p. 265.
깔뱅은 자기 신학의 전 부분이 짜여지는 조직신학적인 원칙에서, 선택교리는 기독교 강요를 편찬함에 있어서 중심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교회와 구원의 확실성, 그리고 성례전의 유효성에 대한 정의와 옹호를 위한 최종적이고 논증적인 노선으로써 선택교리는 부수적 의미 이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깔뱅이 유기교리를 어떤 특별한 교리로써 인정했느냐 하는 것은 명확치 않으나, 선택교리는 이미 전술한 바 있는 것을 확장시켜, 후기 유기교리로 삼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하나님과 악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신적 행위의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덧 붙여서 말한다면, 선택교리에 있어서 신적 측면을 강조했었던 깔뱅이 선택교리를 다룸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 개념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특별히 주목되어져야 한다.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 영광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Josef Bohatec의 Budë und Calvin: Studien zur Gedankenwelt des französichen Frühhumanismus (Graz: H. Böhlaus., 1950), p. 341 과 Dantine은 Die Prädestinaitonslehre, pp. 44-45에서 하나님의 사랑, 선하심, 공의로우심, 권능, 엄위하심은 하나님의 권위와 같은 개념이며 하나님 영광의 개념과도 같은 동의어에 해당된다고 천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깔뱅은 선택교리를 신적 의지의 예속된 그 무엇이라기 보다는 소명과 구원의 확실성의 맥락에서 가장 명확하게 믿는 자와 관련시키고, 또 자신이 주장하는 칭의교리와 통합된 한 부분으로 관련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깔뱅은 신앙을 위한 선택교리의 중요성을 지적하고--1537년 판 「신앙고백서」에서 선택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공적 출발점이 된다--선택교리를 신적 의지의 예속과 연계시켜 암시하고자 했던 결정론적 의미를 피하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깔뱅은 교회 내에서의 인간의 책임성과 활동을 선택교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시키고자 했다. cf. Scheibe, pp. 16-16; Otten, pp. 124-25;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16 and Das christolische Problem im Rahmen der Prädestinationslehre von Theodor Beza, Zeitschrift Für Kirchengeschichte, Vicrte folge, XV, LXXVI, hft., 1-2 (1966), p. 82.
2. 1536-37년의 「신앙 고백서」 1537년 신앙 고백서와 이 문서와의 관계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Olivier Labarthe를 참조하라; La relation entre le premiër catëchisme de Calvin et la premiëreconfession de foi de Genëve: recherche historique á partir d "une comparison de textes catëchetiques et de particularitiës typographiques" (unpublished thése licentiate de théologie, Genéve, 1967).
제네바 도시 경계를 넘어 거주하는 사람들과 Confession de la foy laguelle tous bourgeois et habitans de Genéve et subiects du pays doibvant iurer de garder et tenir extraicte de linetruction dont on use en leglise de la dicte ville (XXII, 77-96; IX, 693-700)은 2개의 프랑스판과 라틴어판에서 발견된다. (V, 355-63) Calvin의 「저작전집」과 Opera Selecta I.418-26. 영문 번역판은 J. K. S. Reid의 책에서 발견된다: Theological Treatises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vol. XXII;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954), pp. 25. 이 작품은 1537년도 Instruction et confession de foy dont on use en l'eglise de Genéve (1537 또는 1538년도 신앙고백서라고 종종 불리워진다): CO, XXII, 5-74; OS, I, 378-417.
제네바 도시의 모든 주민들이 서면으로 동의한 이 고백서는 선택이나 유기 교리에 관한 어떤 언급도 담고 있지 않다. 이것은 교회의 교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536-37년 「신앙 고백서」에 선택과 유기교리가 빠져 있는 것은 두 가지 사실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신앙고백서의 저작성, 둘째로, 예를 들자면 「기독교 강요」와 반대되는 저술의 성격으로 볼 때 특별히 그렇다.
1. 비록 깔뱅이 아마도 그 최종판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라도, 이 고백서를 저작한 사람은 화렐이라고 현대 학자들은 동의한다. 깔뱅이 공들여 저술했다는 사실은 이책의 신학적 세련됨에 의해서도 알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200인 의회와 소의회에 이 두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알 수가 있다. Arthur C. Cochrane (ed.), Reformed Confessions of the 16th Century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6), p. 118. 저작권에 대해서는 Farel이 저자라고 인정하지만 만약 Farel이 유일한 저자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면 Calvin도 그 저술에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 J. K. S. Reid의 책 Theological Treatises, p. 25을 참조하라. Reid는 p. 119에서 Cochrane을 따르고 있다. 보다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Domergue의 책 Jean Calvin, II, 237-39와 CO, XXII에 나와 있는 Erickson-Rilliet discussion, pp. 10-18을 보라.
깔뱅이 화렐이 기록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가정할 때, 왜 그는 선택교리가 빠져 있는 것을 용인했을까? 그 당시 그 선택교리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문제는 즉각적으로 무시될 수가 있다. 왜냐하면 1537년 「신앙 고백서」에서--깔뱅이 「기독교 강요」의 발췌로써 간주했었던 그 연도의 저술임--선택교리와 유기에 대해서 이미 논한 바 있기 때문이다. 1537년 「신앙고백 서」는 1536년 판 「기독교 강요」보다 더 강력했었다. 아마 전폭적으로 선택교리와 유기를 탈락시킨 것은 그 당시 제네바 개혁에서 화렐의 탁월함에 기인 한 것으로 추정된다. CO, XXII, p. 18
2. 이 실제적인 이유에 덧 붙여서, 혹자는 이 「신앙고백서」를 깔뱅이 전체적으로 아니면 부분적으로나마 나중에 초안했던 것을 연계시켰다고 인용하기 때문이다. 이 후기 「신앙고백서」는 이중 예정론이 견고하게 확립되었고, 자기 신학의 일부분으로써 열렬히 옹호되었던 한 시기에 이루어졌던 것이기 때문에 오직 선택교리만 언급했던 것이다. 이 고백서들은 Calvin이 좀 더 다듬었거나 저작했던 것으로써 선택교리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으나 유기는 다루고 있지 않다: Consensus Tigurinus, 1559: Confession au Roy, 1557: Confession des escholiers, 1559; Confession des ëglises de france, 1559; Confession á présenter á l'émpereur, 1562.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것은 Catechismus Ecclesiae Genevensis, 1542/45인데 세례 지원자들에 의해서 고백되어지는 신앙의 내용을 이루는 지시문 중 필수적인 부분이 아니었다는 근거 하에서 유기에 대한 언급을 절제하고 있다. 이 해석은 물론 Niesel의 것과는 다르다; Calvin, p. 166. cf. Heinrich Voigt, Fundamental-dogmatick: eine zusammenhängende historische Untersuchung und apologetische Erorterung der Fundamentalfragen christlicher Dogmatik (Gotha: Triedrich Andreas Perthes, 1874), p. 470; Adam M, Hunter, The Teaching of Calvin: a Modern Interpretation (2d ed. rev.; London: J. Clarke, 1950), p. 94; and Doumergue, Jean Calvin, IV, 359.
따라서 깔뱅은 이 두 가지 신학적 저술과 이중 예정론을 구별해서 다룬 것처럼 보인다. (1) 만약 그 목적이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고백적인 것이라면, 유기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를 말하지 버림받은 사람이나 유기된 자에 대해서는 되도록 언급을 삼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교리는 마땅히 언급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것은 구원의 최종적 근거이기 때문에, 유기교리는 신앙의 고백을 위해서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언급될 필요가 없기 떄문이다. 그러므로 제네바를 뛰어넘어 사용되게 할 목적으로 고안된 이 신앙 고백문에서 유기교리를 생략한 것은 교회의 통일성 그 자체를 위한 신학적 내용을 타협하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저술의 목적상 생략한 것이다. Fitz Blanke, "Calvins Oekumenische Bedeutung," Reformatio, XIII, N. 10 (1964), p. 596.
(2) 한편, 만약 그 저술의 목적이 성경에 나오는 완벽한 교리적 내용 중 하나를 전달할 문답서라고 한다면--「기독교 강요」나 「신앙 고백서」 및 「요리문답서」에 나오는 개요, 그리고 다른 저술과 그 한 예외적인 것은 Calvin의 책 De Aetera Dei Pradestinatione (CO, VIII, 249-366)인데 그 책이 비록 해설과 교훈, 교리적인 관심사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라 할지라도 공적인 활동을 통해서 제네바 교회에서 수집되어지고 고백되어진 신앙의 부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논문은 이중 예정론의 가열된 논쟁으로 말미암은 특별한 경우였다. Wiley의 해석과 일치하는 것은 Pieter J. Muller의 De Godsleer van Calvin=jn uit religieus oogpunt beschoouwd en gewaardeerd (Göningen: J. B. Wolters, 1881), pp. 91-93인데 이중 예정론을 논하고 있는 1537년 「신앙고백서」를 우선적으로 고백적인 글로 간주하는 Scheibe의 책 pp. 83-84와는 배치된다; 그것은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발견된 그 정당한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쓰여진 개요였다. 따라서 라틴어로 된 제목을 가진 1538년 교리문답집은 초기 프랑스어판 보다 자료의 목적을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Instruction et confession de foy.
마찬가지로--유기와 그 교리에 대한 언급을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것들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의 전체적인 증거에 신실한 해설이나 교훈을 위해 필요했을 것이다.
3. 1537년의 「신앙 고백서」와 「기독교강요」 Instruction et confession de foy dont on use en l'église de Genéve (CO, XXII, 5-74; OS, I, 378-417); 1538년 교리 문답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교회의 사용을 위해서 라틴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그 제목은 다음과 같다; Catechismus sivi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 Genevensis ecclesiae (CO, V, 313-62). 그 번역은 Paul T. Fuhrmann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Instruction in Faith (1537, London: Lutterworth Press, 1949).
「기독교 강요」가 대중적인 요약을 위해 출판되어진 후, 이 작품은 어조에 있어서 긍정적이다. 1537년 판 「기독교강요」는 초기 작품에서 발견되는 카톨릭이나 다른 교파를 공박하는 것을 삼가고 있다. 따라서 이중 예정론에 대한 첫 번째 명확한 진술이 이 글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선택과 유기 교리에 대한 그 이전 진술들은 너무나 짙은 논쟁적인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중 예정론을 언급한 그 중요성은 지금 예정론, 이중 예정론 조차 깔뱅의 신학의 통합된 부분으로 간주되어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선언된 목적이 설명될 필요가 있다. Scheibe, p. 26.
이중 예정론에 대한 명확한 언급에 덧 붙여서 몇 가지 다른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나타난다: 그것들은 (1) 구원론에서 차지하는 예정론의 가치: (2) 예정론이 없었을 때와 대립되는 신앙을 통해서 깔뱅은 예정론의 논의를 도입하였다: (3)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개념과 이중 예정론과의 관계 등이다. Polman, p. 327.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발견할 수 있는 적당한 자료를 조사한 후, 깔뱅은 그 다음으로 타락과 타락의 결과,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획득하는가에 대해 숙고한다. 타락한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반(反)하여 마주 서 있다. 깔뱅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는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이 얻을 수 있다 (제 12 장). 그것은 깔뱅이 선택과 유기교리를 간단히 다루기 위해서 슬쩍 비켜 간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 어떻게 배분되는 가를 다음 장에서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12장에서 깔뱅은 그리스도 안에는 신앙과 불신앙 양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그런 다음, 그리스도를 추방자로서 묘사한 후, 신앙과 불신앙을 관찰해 볼 수 있는 현상에 대한 최종적 설명으로써 하나님에 의한 선택이 12장에서 나타난다. 이런 측면을 다룬 후, 깔뱅은 구원론에 해당되는 선택이라는 중요한 주제로 전환한다: 전가된 의롭다함과(16장) 성화(17장)에 의한 칭의를 인간으로 하여금 소유하게 한 하나님의 은총으로써 신앙의 법적 위치인 신앙의 참 성격 (14장)을 다룬다. 깔뱅은 신앙의 참된 성격과 신앙의 효력에 비추어서 그리고 신앙에 의한 칭의와 공로주의와의 관계에 의해서 구원론의 장을 회개와 갱신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주석으로 끝맺음한다. 그 논문의 나머지 부분에서, 깔뱅은 사도신경, 주기도문에 관해 숙고하고, 성례전, 목회, 인간 전통의 가치, 교회권징의 필요성, 그리고 그러한 순서로 지배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구한다.
1) 선택교리의 구원론적 맥락. 구원론적 맥락 안에서 선택교리의 위치는 후기 저작들에 나오는 선택교리와는 다르다: 「기독교강요」에서 나타나는 순서는 기독론, 선택, 신앙, 칭의, 그리고 성화였었다; 1539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깔뱅은 구원론의 논의가 다 끝난 다음에 선택교리를 논하고 그 다음에 성화를 다룬다. 학자들은 1537년 판 「기독교강요」의 그 순서가 왜 다른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일치하고 있지 않다. Wernle은 그의 책 Calvin, p. 279에서 그 당시까지 1539년 판 「기독교 강요」를 완성하고 좀 더 주의를 기울여 구원론의 마지막 장을 완성할 때까지 예정론을 유보한다 할지라도 이 신비를 어린아이들 같은 평신도들에게 소개할 교육적 이유를 위해서 구원론의 원칙 하에 예정론에 관한 장을 독립시켜 놓는다고 말한다. Otten은 그의 책 p. 19에서 후기의 변천이 예정론에서 나타나는 결정론적 공박을 필요 이전에 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주장하면서, Wernle의 견해를 반대한다. Jacobs는 그의 책 p. 62에서 율법과 구원론의 사이에서 1537년 신앙고백 및 문답집의 순서가 아주 적절한 것으로 생각한다.; Barth는, Church Dogmatics, II, pt, 2, 88,에서 이 순서를 가장 잘 배열된 것으로 Wernle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선택교리가 등장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아주 적절한 곳에 나타났으며, 가견적 교회 내에서 신앙과 불신앙의 원인에 대하여 실제적인 구원론적, 교회론적 의문 속에서 표면화 된 것은 참으로 자연스럽게 바로 그 장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후기에 가서야 깔뱅도 1537년 판 「기독교 강요」의 순서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것은 공로주의에 대항한 선택교리의 논증적 가능성을 극소화시킨 나머지, 신앙, 칭의 그리고 성화의 기본적인 구원론적 요소들을 따라 이루어지는 신학적 교리로서의 선택교리가 가지고 있는 그 정당한 위치를 선택교리에서 빼앗아 가버린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1559년 판 「기독교 강요」가 구원론을 다루는 장의 마지막에 예정론을 삽입한 것은 예정론을 부차적인 것으로, 빗나간 것으로 만드는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결과로 예정론은 신앙과 신학적 중요성에 있어서 정당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2) 선택과 예정론에 대한 용어들. 예정론과 선택교리에 관하여 진술하고 있는 제13장에서 선택이라는 용어는 선택하는 신적 행위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선택하심이 취소불능임을 가르키고, 인간이나 하나님에 의해서 조차 변경되어질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영원하신 선택에 의해서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만세 전에 예정하신 사람들에게서 그 열매가 맺는다” 고 하신다. CO, XXII, 46; OS, I, 390: "la semence da la parelle de Diew prent racine et fructifie en ceux la seulement lesquelz le Seigneur par son election eternelle a predestine pour ses enfans et heretiers du roualulme celeste."
이러한 구별에 의해서 알 수 있듯이, 각 용어를 중심으로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 어떤 주제를 깨닫게 한다. 그러한 선택에 관한 지식을 다루는 구절들은 선택교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그 택하심이 취소불능임을 묘사하는 구절들은 예정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예지, 운명, 기회, 교리의 성격과 신적 섭리에 관한 문제가 예정론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선택이라는 용어와 관련하고 있는 글들은 실제적이면서도 교회론적 모습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정론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좀 더 신학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 깔뱅에게 있어서, 각 용어는 다른 용어를 필요로 하고 있다; 즉 교회론적으로, 신학적으로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한편, 택하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취소불능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론은 신학적인 것에 근거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 택하심이 취소불능이기 때문에 선택교리는 견인교리의 교회론적 현상을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적인 것은 그 교회론적인 것과 단단하게 묶여 있게 된다. 깔뱅이 선택교리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 어떤 변하기 쉬운 것이나 인간의 변덕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차라리 변할 수 없는 신적 택하심의 결과라는 사실을 더욱 명확하게 한다. 예정론은 하나님이 자신의 선택하는 그 행위를 효과있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더욱 명확하게 나타낸다.; 하나님은 인간의 수용이나 또는 거절이나 신앙이나 거절, 또는 선한 행위나 선한 행위가 전혀 없는 것들 따위에 의해서 전혀 영향받지 않으신다.
3) 이중 예정론. 첫번째로, 깔뱅은 이 이중 예정론을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은 어떤 개인을 선택하시기도 하시고 유기하시기도 하신다.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깔뱅이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하등의 놀라운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뱅이 진술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중 예정론은 그것이 논해진 장에서조차, 그리고 1537년 신앙 고백서 및 교리문답에서조차 통일성 있게 주장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2장에서, 깔뱅은 그리스도는 신앙에 의해서만이 이해되어질 수 있다고 진술한다. 오직 신앙을 가진 자만이 그리스도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인 것이다: 인간은 그리스도가 선물로 주어졌을 때 그리스도를 거절하기는 불가능하며 그리스도가 인간을 불렀을때 인간은 그리스도를 뒤따르게 되어 있다. Ibid.: “ne le reiectent leur estant donne et le suyvent estans appellez de luy”.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언제나 설교되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에 의해서 강팍하게 되어 맹목이 된 사람들은 그러한 유일무이한 은혜를 무시한다. Ibid.: “plusieurs aveuglexz et endurois par incredulite mesprisent cests grace tant singuliere”.
이 장에서 그 어떤 것도 「기독교 강요」에서 발견되어진 것과 다른 그 무엇은 전혀 암시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 장에서 논하고 있는 사실들은 「기독교 강요」에 있는 이중 예정론의 함축된 의미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점에 대한 논쟁에서 개개인들은 그들 자신의 강팍해진 마음의 결과로 유기된 자들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깔뱅은 이런 상태에 대해서 하나님의 의지를 추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13장에서, 이중 예정론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신앙과 불신앙의 두 가지 반대되는 입장이 존재하게 된 것을 깔뱅은 정성들여 자신의 논지를 발전시킨다: 신자와 불신자의 대조되는 두가지 특성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커다란 비밀은 반드시 고려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그 뿌리를 가지고 있고, 그의 영원하신 택하심을 따라 주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예정하신 사람들에게서 반드시 그 열매가 맺혀야 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 이미 하나님의 영원하신 지혜에 의해서 유기된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에 대한 설교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왜 어떤 사람에게는 그의 자비가 내려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심판의 엄중함이 행사되어져야 하는가? 우리는 이에 대한 이유가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만이 알려지도록 남겨 놓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의 탁월한 의도에 의해 우리 모두로부터 이 비밀이 은닉되도록 작정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비록 우리에게 숨겨졌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구원과 멸망의 분배가 정당하고 거룩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이 멸망하도록 의도하셨다면, 그 분은 그렇게 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시며,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실 사람에게서만이 그의 주권적인 선하심이 숙고되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 곧 그 분의 자비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며(그들이 참으로 그러하기 때문에), 유기된 사람들은 그 분의 정당한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CO. XXII, 46-47; OS, I, 390-91: "En une telle difference est a considerer necessairment le grand secret ud conseil de Dieu: car la semence de la parolle de Dieu prent et fructifie en ceux la seulement lesquez le Seigneur par son election eternelle a presestine pour ese enfans et heritiers deil de Dieu devant la constitution du monde sont reprouvez, la claire et evident predication de verite ne peult estre la rgueur de son iugement envers les aultree, il nous en fault laisser la rayson estre ecgneue de luy seul, laquelle il nous a voulu a tous estre cells et non sans tesbonne cause . . . Seulement ayons cela resolu en nous que celle dispensation du Seigneur, combien quelle nous soit chachee, ce neantmoins elle est saincte et iuste; car sil vouloit perdre tout le genre humain, il a droict de le faire, et en ceux quil retire de perdition on ne peult rien contempler que sa souveraine bonte. Doncques recognoissons les eleuz eatre vaisseaux de sa misericorde (ainsi que vrayement ilz sont), et les reprouvex estre vaisseauz de son ire, laquelle toutesfois nest que iuste“.
왜 깔뱅은 이 시점에서 이중 예정론을 소개하는가? 이중 예정론이 후기에 가서 주석의 기본이 되어진 것은 로마서와 바울 서신서를 동시에 함께 묶어 강의한 영향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1535년에 멜랑히톤의 견해에서 나타난 위험 때문에 자기 자신의 견해를 더 예리하게 다듬어 피하고자 했던 것은 그런 위험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을까? 예정론 교리의 설명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어거스틴과 부쳐가 분석한 것과 관련하여 계속 점증하는 실천적 관심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모든 이러한 문제들은 이중 예정론이 왜 갑작스럽게 나타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되고 있다. 다양한 견해들을 평가.검토하기 위해서는 Scheibe, pp. 74-85;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29를 참조하라. Scheibe는 그의 책 p. 85에서 이중 예정론이 주장하고자 하는 하나님 주권 사상을 유지시키고자 한 Calvin의 욕구에 강조를 두었다; Dantine은 그의 책 p. 29에서 이스라엘의 배교에 대한 Augustine과 Bucer의 질문에 관한, 계속 늘어만 나는 관심에 강조를 두었다.
그 질문은 깔뱅이 설명했던 증거에 비추어 볼 때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깔뱅은 예정론을 이중적인 것으로 말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1536년 판 「기독교 강요」가 올바르게 해석되어진다면--이중 예정론의 등장에 강조를 둔--이중 예정론에 대한 소개는 그리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고 초기 진술과 단절된 것도 아니지만 하옇든 그러한 것들을 예시하여 왔다. 그러나 1536년 판 「기독교 강요」를 개략적으로 발췌한 문서에서 왜 깔뱅은 그 문서를 뛰어 넘고자 했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중 예정론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단일하게 해석(선택과 유기교리처럼)되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멜랑히톤의 1535년 Loci(강요)나 다른 그의 후기 저술물들은 그 훈계적 내용을 추천하고 있다는 어떤 외적 증거도 없었다. 1535년 늦여름에 「기독교 강요」의 초안을 완성한 시기와 깔뱅이 정기적으로 제네바에서 설교했었던, 1537년 판 「기독교강요」를 저술하던 시기 중간에 깔뱅은 복음 설교 문제와 관련한 응답으로 신앙과 불신앙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가장 믿을만한 외적 증거가 내재하고 있다. 깔뱅은 참 복음을 설교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누구에게 주어졌던지간에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의 불가항력적 은혜를 더한 복음의 진리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의지 이외의 다른 곳에서 신앙과 불신앙을 추적해 볼 수 있는 그 어떤 다른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Cf. Scheibe, p. 25; Doumergue, Jean Calvin, IV, 353; Hunter, p. 101; Otten, p. 20; Wendel, p. 266; Dantine, Die Prädestinationslehre, p. 17.
이중 예정론에 대한 언급은 후기에 가서야 신앙과 불신앙의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교리 문답서는 경험상의 증거를 설명하는 주석과 함께 예정론을 소개하는 첫 번째 저술이다. 그후로 이 교리 문답서는 「기독교 강요」의 후기 편집본에서 표준이 되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중 예정론에 대한 논쟁은 신앙에 관한 토론의 와중에서 완전히 제거되었다--이러한 일은 1539년과 1539년 판 「기독교 강요」 사이에서 벌어졌다. 이러한 일들은 후기 관점만으로서는 이해되어질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행해졌지만, 구원론에 있는 다른 요소들을 따라 이중 예정론은 하나님의 의지에 견고히 뿌리박고 있었던 것이다. 1537년 교리 문답서에서 조차, 후기의 견해와는 다른 견해를 시사하고 있다; 첫 째로 깔뱅은 이중 예정론을 하나님의 영광과 연계시키고 있다. Calvin은 말하기를 선택받은 자와 유기된 자의 운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한 그 어떤 이유들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에 전혀 반대되고 있지 않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현시하는 두 개의 다른 근본적 요소인 것이다.
이중 예정론의 신적 유기의 부분은 구원의 확실성을 위한 필요를 강조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선택과 유기 양자는 하나님의 숨겨진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생은 택함받았다는 징표나 유기되었다는 어떤 징표도 없기 때문에 안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숨겨진 의지에 의해서 거절되었거나 선택되어졌기 때문이다. 선택받았다는 것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증거가 요구된다. 그러나 기독교 강요에서 나타난 것과는 다른 어떤 증거를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깔뱅은 하나님의 숨겨진 의지를 밝혀 드러내고자 하는 그 어떤 시도에도 경고를 반복하면서, 구원의 확실성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역할을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 이전보다 더욱 더 그리스도는 인간의 영원한 신앙의 대상으로 강조되고 있다; 어떤 환경 아래에서도 하나님의 숨겨진 의도는 밝혀질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수렴되고 확신되어진다. CO, XXII, 47-48; OS, I, 391-92.
구원의 확실성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깔뱅은 두 가지 새로운 용어들을 소개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지가 우리에게 현시되는 거울일 뿐만 아니라 생명이 인쳐지고 우리를 확신시키는 서약인 것이다. Ibid., 47; 391: "car Christ nest pas seulement un miroir par lequel la volunte de Dieu nous soit representee, mais un gaige par lequel elle nous est comme seellee et confirmes."
4)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신앙. 14장에서 깔뱅은 신앙과 불신앙으로 야기되는 이중 예정론에 대한 문제를 따로 다룬 후 신앙의 참된 성격에 대한 주된 화제로 그의 논지를 전환한다. 깔뱅은 신앙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으로 말한다.; 신앙은 하나님의 독특하고 귀중한 선물이다; 신앙은 인간의 이해가 조명되는 성령의 빛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성취하시는 믿음 안에서 인간을 확신시키는 성령의 빛인것이다. Ibid., 48; 392.
신앙이 선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함으로써, 깔뱅은 다시 한 번 더 후기의 논쟁을 활용한다. 경험상의 증거와 인간의 죄스러운 상황으로부터 출발한 후 깔뱅은 인간을 구원시키는 신앙이란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결론한다. 그러나, 깔뱅은 선택교리가 신앙에 앞선다든지 또는 선택받은 자에게만 신앙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할 때, 후기에 그의 논지를 주장할 때 처럼 신앙을 선택교리와 연결시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36년 판 「기독교 강요」에서 성령과 선택교리, 그리고 성령과 성례전과의 관계에 대하여 그의 논지를 펼쳐 나갔던 것에 근거해서 신앙이 선택교리에 의존한다는 것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가 예견한 것처럼 이 연결은 아주 명확하다. cf. 1539 Inst.: OS, IV, 413, 8-21; 414, 6-10.
1537년 「판 기독교 강요」의 이전 판에서 언급되어진 선택교리의 모든 양상과 모습을 우리는 1537년 판 「기독교강요」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가견적 교회의 근거로서의 선택교리를 다소 약하게 언급한다. CO, XXII, 57; OS, I, 401.
더우기,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논쟁은 교회론의 범주로부터 신앙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받는다는 구원론적인 맥락으로 전환된다. 신앙과 불신앙의 강조는 이러한 논쟁의 원인이 된다. 「기독교 강요」에서와 유사하게 깔뱅은 삼위일체의 위격을 개별적으로 생각하는 부정확함에 대해 자신의 주석을 첨가한다. 깔뱅은 예수가 양자나 은총에 의한--믿는 자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것처럼--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그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이란 점에서 그 정확성을 더한다. Ibid., 52; 396-97.
그러나 결과적으로 예수의 인성에 있어서 그리스도 역시 양자라고 주장한다--즉, 선택되어졌다고 주장; 그의 신성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깔뱅에게는 그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로 남는다.
예정론에 대한 방대한 신학적 확장이 이 논문의 구원론적 부분에서 등장한다 할지라도, 간접적으로는, 예정론에 대한 교회론적 공박이 확장되고 있다. 일례를 들자면, 구원론적 추리는 교회론적 현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복음을 청종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견적 교회 안에서의 신앙과 불신앙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그렇다 할지라도, 그 의문이 교회론적으로 야기된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의지로 말미암은 선택과 유기가 그 근거가 되기 때문에 그 의문은 구원론적으로 답변되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말년에 가서 더욱 명확하게 되지만, 예정론에 대한 구원론적 모습에 더욱 강조를 두는 경향을 말해 준다.
1536년 판 「기독교강요」와 1537년 판 「기독교강요」를 분석한 바를 조망할 때, 이중 예정론은 깔뱅의 신학에 있어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중 예정론은 조만간 취하게 될 가장 개연성있는 견해인 것이다. 그 증거는 1536년 판 「기독교강요」로까지 멀리 소급되어지는데, 이중 예정론이 암시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며, 「기독교 강요」에서 나타난 그러한 진술들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에서 그 증거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깔뱅에게 있어서 이중 예정론은 그 충분한 설명을 보충해야 할 그런 것으로 계속해서 남아 있게 된다. 그 주된 주제에 있어서 이러한 사실은 스트라스부르그에 그가 머무는 막간시절 동안에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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