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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심사 일원
증심사는 지원동에서 무등산 중머리재를 향하는 무등산 산길의 왼쪽에 있다. 사찰 자료에 의하면 철감선사 도윤(澈鑑禪師 道允
798∼868)이 860년(신라 헌안왕 4)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094년(선종11) 혜조국사(慧照國師)가 중건한 후 1443년(세종25)
金倣이 중수하였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1609년(광해군1) 釋經, 修裝, 道光의 세 선사가 다시 중수하였다. 그 후 여러번 보수되었는데
6·25동란 때 五百殿과 노전(爐殿 : 四聖殿)만 남기고 모두 불타 버린 것을 다시 복구하였다. 그러나 6·25동란 때 불탄 건물들은 冥府殿,
極樂殿, 會僧殿, 翠栢樓등 조선중기 건물들이며, 전각에 봉안되어 있던 불상, 탱화, 범종, 탑 등을 비롯한 귀중한 문화재도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당시 국보 제 211호 금동석가여래입상(金銅釋迦如來立像)과 제 212호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등이 함께 분실되었다. (그 뒤 국보
정리때 분실 국보는 삭제)
1970년에 대웅전을 준공하고 1989년까지 각종 부속건물을 복원하였다. 증심사의 현재 건물은 五百殿(유형문화재 제13호)을 비롯하여
大雄殿, 地藏殿, 毘盧殿, 講院, 鐘閣, 一柱門, 療舍體등이다. 또한 철조비로사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131호),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1호), 석조보살입상(石造菩薩立像 유형문화재 제14호)등 지정문화재와 오층석탑, 범자칠층석탑(梵字七層石塔),
월암당대사민성탑(月岩堂大師敏性塔), 수월당보문탑(水月堂普文塔), 규봉당부도(圭峯堂浮屠), 산신각(山神閣)등의 비지정문화재들이
있다.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원래 대웅전 왼쪽에 있던 것을 지장전 앞으로 옮긴 것이다. 기단갑석(基壇甲石)은 파손이 심하고 4층 屋蓋石과
屋身石은 결실되었다. 1933년 해체 복원하였는데 , 이때 금동불상 2軀와 오층철탑(높이 19㎝), 소형철불 2軀, 수정 1점,
청옥세주(靑玉細珠)23점이 수습되었다. 금동불상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6·25동란때 분실되었다. 屋身石 각면에 梵字가 새겨진 소형의
범자칠층석탑은 조선시대 작품으로 석조보살입상과 함께 오백전 옆에 있다. 증심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호남읍지(湖南邑誌)등에
징심사(澄心寺)로 기록되어 있어 본래 명칭은 징심사 였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