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서 법

[스크랩] 이어령, 디지로그로 다시 만나다

형람서원 2006. 4. 1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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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어령을 떠올리며...

 

이어령이라는 이름은 한 때 한국의 지식인을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였다. 내 어머니도 젊은 시절 이어령선생의 글을 읽었고 이제 사십대인 누님도 그의 글을 읽으며 자랐다. 반면 삼십대 중반인 나는 이어령선생의 글을 그리 많이 읽지 못했다. 차라리 우리 세대는 이문열이나 장정일, 이외수와 같은 소설가들이 훨씬 친근하다. 1934년 아산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그의 경력은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서울신문, 경향신문,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을 역임했고 20년이 넘게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90년 제 1대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 시절까지 그는 언론의 관심을 받는 중요 인물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대중의 요구를 바꿨고 대중은 새로운 것을 원했다. 자연스럽게 그도 한동안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무언가를 연구 중이었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최근 나는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선생의 글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IT 업계는 작년 늦가을부터 웹 2.0이라 불리는 화두를 풀어내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웹 2.0과 관련한 각종 서적과 컨퍼런스, 논의가 이어졌다. 그 즈음 중앙일보를 통해 '디지로그'라는 새로운 단어가 표출되었다. 언뜻 들었을 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웹 2.0만 해도 충분한데 또 신종어를 만들어 내는군이라 생각하며 다소 씁쓸한 심정으로 그 글을 읽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예상보다 진지했고 외국에서 수입된 개념인 웹 2.0보다 훨씬 한국적이었다. 비로소 누가 글을 썼나 다시 확인해 보았다. 이어령이었다.

 

디지로그 연재가 계속되는 동안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웹 서비스를 제작하고 컨설팅하는 직업을 가진 내게 선생의 풍부한 경험과 식견은 한국적 웹 서비스를 만드는데 더없이 훌륭한 나침반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칭을 뭘로 해야하지?

 

작가? 전 장관? 교수? 고문? 인터뷰 날짜가 잡히고 나서 이어령님의 호칭을 뭘로 해야할까부터 걱정이 되었다. 내 입에 가장 익숙한 호칭은 이어령 교수지만 현재 그의 공식 직함은 중앙일보 고문이다. 고문이라. 하지만 난 그냥 선생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왜냐면 작가나 전직 문화부 장관이나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아니라 '디지로그'라는 개념을 설파하는 선배의 고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디지로그라는 개념에 대한 30회에 걸친 연재가 끝난 직후인 2월 하순에 중앙일보에 본사에서 2시간 30분 가량 진행되었다.

 

 


첫인상

 

 

작은 키의 이어령 선생은 좋은 풍채와 여유로운 태도로 환영해 주었다. 70세를 넘긴 노인이라기엔 허리를 꼿꼿했고 눈빛도 맑았다. 노령에 의해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지만 그만한 연세의 노인들과 비교할 수 없는 또렷한 음성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말씀드리니 상의에서 빗을 꺼내 머리칼을 다듬었다. 인터뷰 노트북에 이렇게 썼다,

 

'시작하자 마자 머리를 넘기심. 센스쟁이~'

 

그는 인터뷰 내도록 자신이 했던 이야기에 대한 방향성을 잃지 않았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더라도 길지 않았고 다시 이론적인 측면으로 복귀하곤 했다. 오랜 시간 강의와 강연, 글쓰기를 통해 훈련된 모습이 자주 보였다. 최근 주장하고 있는 디지로그에 대한 개념부터 질문을 시작했다.

 

 


디지로그라는 개념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인가?

 

이어령 : 아날로그의 세계에 디지털이 적용되며 세상이 변화하고 있고 변화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둘을 구분하고 대립시키려 한다. 순수한 아날로그도 순수한 디지털도 없다. 선과 악을 완벽히 구분할 수 있는가? 자연계에서도 이런 구분이 어려운데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나눌 수 있으며 대립시키려는 건 문제가 있다.

 

디지로그라는 단어가 신조어라고 부르기엔 식상하지 않나? 그는 디지로그와 유사한 표현이 있었다고 말하며 특별히 아나디지(ana-digi)라는 단어를 예로 들었다. 이 단어가 잘못된 조합이라는 국문학자로서 견해도 덧붙였다.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충돌을 비판하는 개념인가?

 

이어령 : 인터넷의 현상을 논하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과 양극화, 분절화에 대해 자주 말한다. 현상적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대립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날로그라고 불리는 것 자체도 디지털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연속성과 접점을 강화하는 것이다.

 

 

연이어 디지로그를 말하고 있는 자신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 물었다,

 

이어령 : 말하는 사람에 의해 단어는 규정된다. 이어령의 '디지로그'는 어떤 이미지가 있다. 나는 오랜 시간동안 한국 문화와 디지털 문화에 관심을 가져 왔고 실제로 많은 일을 해 왔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새로운 개념이 나왔다는 게 중요하다. 초기에 인터넷과 디지털을 밀어주던 내가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다시 밀어주려는 것이다.

 

문화부 장관 시절이나 이전에도 컴퓨팅을 즐겨해 왔고 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디지털 문화의 문제점이 부각되자 그것을 비판하고 아날로그와 대립시키려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립이 아니라 화해와 이해가 필요하며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로그를 대표하는 사례는 무엇이 있는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적절히 결합한 성공적 사례를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애플의 아이튠즈(Itunes)를 언급했다,

 

이어령 : 애플의 아이팟(iPod)과 인터넷 음악 서비스인 아이튠즈(Itunes)는 디지로그적 발상에 의해 성공한 케이스다. 디지털로써 개별 상품이 무엇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상품의 가치가 달라진다. 이런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하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종간 결합을 디지로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서양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디지로그의 개념을 체화하고 있다. 이런 개념을 우리가 먼저 이야기해서 기선을 잡아야 한다.

 

그는 매우 다양한 디지로그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흔히 듣는 것도 있었고 새로운 발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대해 다른 논객이 말하는 것과 달리 한국적 정서와 문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어령 : 디지로그도 완성된 개념은 아니다. 내가 개념의 토론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로그의 개념을 제시하고 토론하며 검증하는 가운데 디지로그는 바뀌기 시작한다. 우리 나라 문화의 토양에 디지로그가 있다. 우리 속에 있는 기본을 토론하고 확대하여 살릴 필요가 있다.

 

디지로그는 흔히 웹 2.0과 비교된다. 그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웹 2.0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어령 : 팀 오레일리(주: 웹 2.0의 주창자)는 2.0이라는 숫자로 어필했다. 마케팅적인 요소가 있지만 2.0이라는 숫자를 이야기함으로써 과거와 단절된 개념을 설파한 것이다. 그러나 그도 결국 아날로그 속에 디지털이 있고 디지털 속에 아날로그가 있다고 말한다. 서양의 닫힌 세계관과 동양의 열린 세계관의 차이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양은 디지털의 문제를 경험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열린 세계관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게 웹 2.0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런 세계관을 충분히 경험했고 역사적, 문화적으로 축적하고 있다.

 

 

 

소리바다는 극단적 자유

 

 

그는 디지로그가 인터넷 산업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문명론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음원 저작권에 대해 디지로그의 입장에서 재해석을 요청했다.

 

이어령 : 디지로그는 문명론에 대한 이야기다. 공자의 '중용의 세계'와 같은 과거의 이야기들이 현재에 와서 재해석되고 있다. 음악 저작권과 관련하여 소리바다와 아이튠은 다르다. 소리바다가 극단적 자유라면 아이튠은 저작권도 지키며 싸게 다운로드 받아서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런 의미에서 소리바다는 1과 0 즉 on과 off의 충돌이다. 소리바다와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충돌하지 말고 서로 해결할 수 있으려면 발상을 바꾸면 되지 않는가. 문제를 혁명의 방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했다.

 

그는 현재 적용되고 있는 인터넷 저작권 관련 법령 제정에도 직접 관련을 했다. 그런데 과거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뒷짐을 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소리바다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려고 노력했어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순히 중간적 입장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중용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어령 : 현재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충돌하는 현상을 문명의 문제로 봤을 때는 모든 제조업에서 조직이론까지 다 포함된다.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을 분리와 충돌이 아닌 협력과 조화의 개념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점이다. 종전에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진부하다고 했는데 오늘날 인터넷 문명이 벽에 부딪치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나는 과거의 언어를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 낸 것이다.

 

 

 

블로그에 대하여

 

그는 블로그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 블로그를 직접 쓰시냐고 묻자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계속 블로그를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블로그에 대한 아이디어와 견해도 피력했다.

 

이어령 : 지역 코드가 포함된 개인 프로필 코드가 있다면 어떨까? 구글과 같은 곳이 서적 공급자와 제휴하는 것처럼 지역 스트링이 붙어 있으며 흥미로운 것이다. 블로그의 성격을 코드화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금붕어를 쓰는 사람들은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 태그와는 또 다른 개념이다.

 

블로그를 너무 긍정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나는 90%의 로그는 쓰레기라고 말했다. 의미없는 주절거림이나 잡담이 콘텐트로써 가치를 갖겠는가?

 

이어령 : 물론 쓰레기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의 어떤 학생이 블로그에 쓸 게 없어서 자기가 매일 먹은 걸 계속 올렸다. 그걸 4년 동안 계속한 것이다. 그랬더니 엄청난 가치 자료가 되어 버렸다. 이건 통계 자료로써 굉장한 가치가 있다. 블로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갖는 구조다. 다만 정말 쓰레기도 존재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재해석하는 메타 블로그가 필요하다.

 

 

블로그에서 흔히 일어나는 무단 도용이나 악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어령 : 블로그에서 내 글을 옮겨간 걸 자주 본다. 그런데 활자는 소유자가 분명하지만 인터넷은 복제와 복제를 반복하며 재해석이 된다. 내가 쓴 글을 나보다 훨씬 더 명징한 경험으로 재해석하여 배경 그림과 음악을 넣은 글을 본다. 이건 단순히 저작권으로 뭐라 말하기 힘들다. 악플의 경우엔 글에 대해 좀 더 잘 알 필요가 있다. 자기 글의 최초 독자는 자신이다. 자신이 가장 먼저 읽는데 어떻게 악플을 달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인격이 분열되어서는 안된다.

 

그는 블로그에서 좋은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어령 : 블로그에서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남에게 보여줄만한 글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보여주려고 쓴 글은 프로가 보면 가짜인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이 글을 읽었을 때 어떨까라고 생각하고 쓰면 좋은 글이 나온다.

 

 

 

포탈에 대하여

 

최근 국내 포탈 웹 사이트는 뉴스의 중심에 있고 일상 생활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에게 포탈의 이런 현상에 대해 물어 보았다,

 

이어령 : 요즘 포탈들은 너무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각 포탈이 개별적인 특성이 있어서 개성적인 서비스가 나오면 그것이 디지로그다. 포탈의 경쟁력은 협력하며 경쟁하는 관계일 때 의미가 있다. 포탈 자체는 위협을 받고 있다. 검색 엔진 때문에 대문이 아니라 각종 다양한 경로로 포탈의 각 페이지에 접속하고 있다. 한국적 정서나 사용자들의 정 때문에 한번 정이 붙으면 여간해서 포탈을 안 바꾸려는 성향이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정이란 게 없다고 흔히 말하지만 그런 게 있다.

 

포탈이 어떤 공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이어령 : 네이버같은 회사가 검색엔진으로 세계 재패할 수 있도록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각자 서로 다른 비전과 철학을 제안하여 왜 우리가 성공했는 가를 알리는 자기 정립을 했으면 좋겠다.

 

향후 국내 인터넷의 전망에 대해 질문했다, 정확히 향후 5~6년 사이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이어령 : 이 기간동안 문화 콘텐트 사업이나 문화 컨셉의 사업이 중흥할 것이다. 사용자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과 인터페이스의 구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혁명적 변화는 나중에 닥쳐올 것이다. 많은 미래학자가 2020년을 또 한 번 큰 혁명이 일어날 시기로 본다.

 

이어서 한국의 콘텐트 문화와 포탈의 서비스 베끼기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했다,

 

이어령 : 현재 한국 인터넷의 '문화 콘텐트'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쓸만한 게 없다. 외국에는 수 백권의 고전을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지만 우리는 겨우 조선왕조실록 정도 밖에 볼 게 없다. 디지털로 할 만 한 게 없다. 사이버 스페이스로 가는 길과 그것이 다시 리얼 스페이스로 나올 수 있는 비전과 비지니스 모델을 갖고 추진해야 포탈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내야지 포탈끼리 아이디어를 잡아 먹는 모방은 하지 말라. 이렇게 해서 인터넷 사업이 망하면 앞으로 누가 새로운 시도를 하겠는가?

 
 
 
 
 

좋은 글을 쓰려면

 

이제 선생님이 많이 잊혀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니 "옛날엔 길거리에서 '어머, 이어령이야'라고 외치며 털썩 주저앉는 여성도 있었다"며 사실 70대를 넘은 사람이 무슨 욕심이 있겠냐며 웃었다. 그는 자신이 문자로 인기를 누리던 마지막 세대라며 겸양의 표현을 했지만 그는 여전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긴 인터뷰를 끝내며 후학들을 위해 선배로서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조언해 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줬다.

 

초등학생과 글짓기

 

내 딸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의 이야기였다. 어떤 학교의 글짓기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간 적이 있었다. 선생이 선정한 글을 감수하는 역할이었는데 그 뽑아논 글이라는 것이 하나같이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탈락시킨 글을 읽어 봤는데 주옥과 같은 글이 많은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나와 병아리> 정도의 제목이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병아리를 좋아한다. 할아버지 집에 놀러갔다 병아리를 받아와서 키우기 시작했다. 병아리가 커져서 똥도 많이 싸서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가족들이 병아리가 너무 컸다고 잡아 먹자고 했다. 나는 절대로 안된다고 했는데 어느날 학교를 다녀왔더니 병아리가 없었다. 나는 울며 불며 난리를 쳤다. 어머니가 밥을 먹으러 오라고 했지만 안 먹겠다고 소리를 쳤다. 저녁이 되자 배가 너무 고팠다.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하여 굶어 죽을 것 같아 갔더니 닭고기가 있었다. 닭고기를 먹었더니 너무 맛있었다."

 

이런 좋은 글을 왜 탈락 시켰냐고 선생에게 물어봤더니 앞뒤가 안 맞는 글이라 탈락시켰다는 것이다. 병아리를 좋아했다면서 닭고기를 먹었을 때 맛있었다니 이런 논리가 안 맞는 글을 어떻게 뽑을 수 있냐는 것이다. 이런 선생은 학교에 있지 않는 게 좋다.

 

생각해 보라. 아이가 두 끼나 굶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나. 그런 상황에 맛있는 닭고기를 먹었으니 맛이 있지. 그런데 그걸 선생의 입장에서 끼워 맞추니 논리가 안 맞았겠지. 좋은 글이란 게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인데 기존 교육 풍토는 그런 걸 나쁘다고 몰아댄다.

 

이어령선생의 디지로그에 대한 글은 최근 책으로 출판되었다. 지난 2월 인터뷰를 한 후 책은 언제 나옵니까?라고 여쭈어보니 "글쎄, 빨리 내야죠. 안되면 내 돈으로 낼 겁니다"라고 하시더니 결국 책이 나왔다. 노학자의 책은 쉽다. 풍부한 이야기가 있다.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날카로움과 풋풋함, 설레임은 부족하지만 혼란스러운 현상을 꿰뚫는 혜안은 있다. 물론 그건 순전히 누가 읽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 디지로그는 또 다른 혼란스러움이거나 궤변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에게 디지로그는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선택과 이해는 자신의 몫이다.

 

** '블루문'은 인터뷰어의 필명이다. IT 전문 블로거이며 www.i-guacu.com에서 '이구아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출처 : 시사
글쓴이 : 블루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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