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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헌 칼럼]머슴살이

형람서원 2025. 3. 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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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까지 머슴의 제도가 있었다. 머슴은 부농의 집에 고용되어 숙식을 제공 받고 농사일을 돌보았다. 가사도우미인 식모도 마찬가지였다. 최초 기록은 중종 22년(1527년)에 발간된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 고공(雇工)이 머슴으로 표기되어 머슴의 어원이 오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고종 31년(1894년)에 있었던 갑오경장 이후에는 많은 노비를 머슴으로 전환하였고, 호칭도 머슴으로 불려 일반화 되었다. 머슴은 노동력과 농사경험에 따라 상머슴·중머슴, 보조역할을 하는 꼴머슴으로 구별했다. 근대사회에서는 꼭 농사일만 거드는 것이 아닌, 고용주 집에서 거주하며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를 일컬었으며, 고공(雇工)·고용(雇傭)·용인(傭人) 등이 있었다. 

   고용기간에 따라 일 년 단위로 고용되던 연머슴, 달머슴(月傭)과 계절 고용의 반머슴(季節傭)이 있었다. 고지(雇只)머슴은 일정한 토지나 가옥, 또는 식량을 대여 받고 일정 기간의 노동을 하거나 일정 작업량을 수행해 주기도 했다. 

8·15이후 1950년에 남한에 27만578명의 머슴이 있었다. 6·25전쟁을 겪은 다음에도 계속되어 1960년에 21만9157호에 24만4557명이나 되었다. 이는 당시 전체 농가의 약 10%에 달했다. 이렇게 1960년대 까지 머슴은 보편화된 고용형태였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머슴으로 살려고 했다. 숙식만 제공되면 어느 곳에서든지 몸을 바쳐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안수 후 목양지가 없을 때, 어느 교회에 관리인 자리에 이력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제왕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님의 진정한 머슴살이를 하고 싶어 실버선교사를 꿈꾼다. 진짜 타향살이다운 이역만리 머슴으로 남은 생애를 바치고 싶다. 

우리의 인체도 머슴살이를 하고 있는 것을 아는가? 생존을 위해 모든 지체는 충실한 머슴살이를 한다. 몸은 뇌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다.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어느 지체도 불평하거나 반항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들은 자기만 살려고 머슴살이를 거부하고 반항하며, 가출(가나안성도라고 불리는)하여 외곽에서 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모두 충실한 머슴살이 한 번 해보자! 

임동헌 목사,광주 첨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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