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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데살로니가전서 5 : 23 – 28
하나님의 특별한 사물(=조물造物)은 아담과 하와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존재로 지으셨다. 그 아담과 하와가 사람들의 조상이다. 그 조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성경에 하나님의 형상바울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고(고후4:4,골1:1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새롭게 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정의하였다(골3:10,엡4:24). 하나님의 형상 개념이 무엇인가? 로마교회에서는 지성적 성품과 도덕적 성품이라 말한다. 이는 인격 자체가 아니고 인격의 기능일 뿐이다. 하나님을 반영하는 상이 되지 못한다. 상에는 원본이 반영되어야 한다. 유대교에서는 형상이 사람의 얼굴에 반영되었다고 주장하며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일이어서 초상화 금지함.
에 대한 정의가 없다. 다만 창세기 1장 26절-27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인격에 맞고 어울리는 인격으로 지으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인격적인 존재 간에만 섬김과 교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그 아담과 하와 그 후손이 피조물 수준에서 하나님을 반영하고 반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방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그의 사역을 반복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서 하나님의 형상이 되도록 하셨다.
이런 하나님의 모방과 그의 사역 반복은 인격체로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인격을 지칭한다(지.정.의가 인격의 요소/자기 의식과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 그 실체와 본성이 구현됨이 인격이다(인격의 주된 특징은 자기 의시과 자기결정/인격은 자기결정과 실행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 인격을 소유한 아담과 하와에게 창조물의 통치도 위임하셔서 교제와 섬김받으셨다(창1:28).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신성 자체로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인격으로 계시고 인격으로 구현된다. 고로 사람의 인격이 하나님의 신성을 잘 나타내 보이게 하셨다(=현시). 고로 그 인격이 하나님을 반사하는 것이다(=반역 전 아담). 곧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님의 인격이다(서철원박사).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인격이시므로 자기의 인격을 따라 사람을(=아담을) 인격체로 지으셨다. 사람이 하나님과 유사하고 하나님을 반사하는 것은 인격에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인격인 면에서 성립한다. 사람이 인격이어서 말하고 행동하고 사고하고 결정한다. 사람이 자유의지를 갖고 결정하므로 자기의 결정과 행동은 자기의 책임이 된다. 사람은 자기가 일을 결정하고 일을 이루고 그 결과를 책임질 때 인격으로 인정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곧 인격의 반사체라는 증표는, 사람이 자기 인격에 대해 존엄 의식을 갖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곧 인격의 반사체로 지어졌기 때문에 자기 존엄 의식을 나타낸다. 사람이 자기 인격에 대해서 갖는 존엄 의식은 자기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의식의 발로이다. 이런 존엄 의식은 인격에만 타당하다. 사람은 자기의 인격에 큰 가치를 두기에 무시되거나 침해되었다고 느낄 때 심한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 이유는 사람이 자기 인격에 대해 갖는 존엄 의식의 방어 본능 때문이다.
사람의 인격이, 정당한 인격으로 인정받으려면 일을 결정하고 진행할 때 하나님의 뜻 곧 영광을 목표하고 결정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 인격을 그대로 그려내는(=모사) 반사체이므로 언제나 사람의 인격적인 결정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선은 창조 목적과 언약의 법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곧 선이란 창조주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김의 직임을 행하는 것이다(하나님 섬김=선=영생, 언약 맺음-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백성 삼으심의 약정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반역한 죄인 된 아담의 후손이다. 아담이 타락 전에는 모든 결정과 행동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였으므로 다 선했다. 그러나 타락 곧 반역죄인 된 아담과 그 후손은 모두 죄인이 되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죄인이 되었다.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를 거부한 죄인이 되었다. 고로 그 죄과의 죄책으로 심판받아 저주와 죽음 아래 놓이게 되었다. 지금도 그 저주와 죽음이 해제되지 않았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만 그 저주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저주와 죽음을 벗어나야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인격 반사체가 되어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23절 뒷부분을 보자.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23下).” 이 말씀에서 먼저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에 대한 말씀을 알아보자.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인간의 구성요소가 세 가지로 되었음을 말함이 아니라, 구원받은 전인의 성화성화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날까지 영과 혼과 몸에 있어서 곧 지성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 없이 순결하게 보전되는 것이다.
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말씀이다(칼뱅). 성경의 가르침에는 인간 구성요소를 영과 혼과 몸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 구성요소 3분설은 희랍철학의 영향으로 나온 것이다희랍철학에 의하면 ‘영’이 ‘혼’보다 더 고상하여 신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혼(=영혼)’은 ‘몸(육체)’과 ‘영’의 중간 정도로 보았다. ‘몸’은 순전히 물질이어서 ‘영’과 모순개념으로 보았다. 그래서 ‘영’과 ‘몸’이 합칠 수 없는데 ‘몸’에도 어느 정도 가깝고 ‘영’에도 가까운 ‘혼’이 ‘영’과 ‘몸’이 합치는 것을 돕는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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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에는 ‘혼’(=영혼)혼이란 사람의 몸속에 거하는 불멸의 영혼을 말한다.
과 같은 실체이면서 더 높은 실체인 ‘영’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구성요소는 영혼(=혼)과 몸(육체)이다. 영혼과 몸이 완전히 연합하여 한 인격이 되었고 둘로 분열되지 않는다. 영혼과 몸은 하나로 연합하여 한 인격이 되고 한 주체가 되었다. 영혼과 몸이 한 인격이 되었으므로 인간이 되었다. 인간 본성은 영혼과 몸을 둘로 구분하고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간 본성은 몸이 있어야 한다. 몸과 영혼이 연합되어 인간이기에 몸 없는 영혼을 인간이라 생각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몸의 형성과 동시에 영혼이 존재하고 그 연합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고로 ‘몸’이 영혼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인간의 본성이 되었다.
-영혼은 무에서 창조된 영적 실체이다. 영혼은 영적 실체이므로 창조된 후에는 그 자체로 존재하고 해체되지 않는다. 해체되지 않으므로 영생할 수 있다. 영혼이 죽지 않는 존재로 창조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따라서 영적 실체로서 불사하고 영생할 수 있다.
-영혼은 아담의 몸 형성과 동시에 창조되었다(창2:7). 영혼과 몸이 시간적 간격 없이 동시에 구분 없이 창조되어 한 인간일 수 있었다. 몸은 영혼이 함께 할 때 살게 되므로 영혼과 몸이 동시적으로 창조된다.
-개인의 경우에도 영혼영혼은 영과 혼을 말하는 데 영과 혼은 다른 실체가 아니다. 단지 영이라고 할 때는 생명과 행동의 원리로서 영혼을 지칭하고 혼은 인간의 통일요소로서 행동의 주체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다.
은 몸의 형성과 동시적으로 창조되어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시작한다. 각각 개인마다 영혼이 창조되어 몸과 연합한다. 영혼은 몸 밖에서 창조되어 몸 안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고 몸의 형성 시작 곧 잉태와 동시에 몸 안에서 창조된다.
-영혼은 개인의 사후에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영적 실체다(눅16:20-30). 개인의 영혼은 사후에도 기억과 모든 의식을 가진다(눅16:25-28). 기억과 의식이 사라지면 영혼의 존재가 소멸하고 영혼으로 기능할 수 없다. 따라서 영혼은 몸과 분리되어도 그 존재와 기능을 다 한다. 즉 기억과 의식을 가진다.
그러한 까닭에 구원받은 사람은 ‘영’ 곧 지성이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 잘못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아는 것과 생각하고 판단으로 산다. 고로 그리스도인들도 잘못 알고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선입견과 편견이 판단작업에 들어온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성향에 따라서 판단하기 쉽다. 따라서 영 곧 지성이 자기 성향 때문에 잘못함이 없어야 함을 말씀하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사고방식과 판단으로 살지 않고, 성경적으로 판단하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영이 흠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의 뜻이다. 특히 죄를 작정하고 죄를 선택하는 일이 없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 ‘혼’은 영혼을 말하고 모든 삶의 주체이고 행동 원리이다. 영혼은 인격을 말한다. 따라서 각 사람의 삶을 주관하고 결정하는 주체가 영혼이다. 그래서 인격과 영혼은 일치한다. 그 인격이, 영혼이 생명의 주체이고 행동의 주체이다. 고로 삶의 방향과 방식에 대해서 말할 때 영혼을 혼으로 말하기도 한다. 바로 그 혼이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삶의 방향과 목표와 방식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함을 말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봉사하도록 지어졌으므로, 하나님을 영순위 곧 우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이 오류에 빠져들고 그릇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의 방향설정과 그 진행에 잘못이 없어야 함을 혼이 흠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씀의 뜻이다.
-우리는 몸으로 산다. 따라서 몸으로 죄를 짓고, 죄의 욕망을 몸으로 느끼며 몸으로 죄의 욕망을 이루고 이루기를 원한다. 따라서 몸이 흠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몸으로 죄의 욕망에 사로잡히고 몸이 죄짓는 도구가 되지 않아야 함을 말한다.
-구원받은 우리의 영혼이, 인격이, 전신이, 흠 없이 보전되어야 할 이유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구원받은 사람과 심판받을 사람이 나뉠 때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서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우리의 전인(全人) 모든 부분에서 흠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평화로운 삶이 영원하게 된다.
- 그 평화로운 삶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마음에서 죄가 제거되어 하나님과 화해하여 오는 마음의 고요함과 쉼을 말한다. 죄가 있는 마음은 참 평화가 없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세상의 형편 때문이다. 상황이 바뀌면 평화롭다가도 불안하고 두려워서 평화로운 삶을 잃는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피로 제거되어 하나님과 화해했으므로 마음이 참으로 평온하고 고요하며 쉼을 갖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영원히 소유하는 평화로운 삶이다. 이 평화로운 삶은 하나님으로부터서만 오므로 영원한 평화로움이 된다. 우리 마음에 죄가 들어오지 않는 한 늘 마음이 평온한 쉼을 누린다. 이것이 참된 평화로움이요. 영원한 평화로운 삶이다. 그리스도인과 세상의 평화로움은 죄의 완전한 제거로 가능하다. 죄의 제거는 하나님만이 하신다. 따라서 죄를 제거하고 참 평화로움을 가져오실 이는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을 평화로운 하나님이라 칭하는 것이다.
-주 예수의 다시 오심은 죄의 완전한 제거와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다. 그 구원의 완성자이신 주님 앞에 구원받은 백성들이 선다. 그때까지 우리의 전인이 흠이 없는 삶이 계속되기를 바라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교제와 섬김의 본분을 다하여 우리가 된다. 우리의 존재 목적과 존재 가치를 성취하게 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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