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준 목사
제 목 : 복음 선포자를 공경하고 약한 자를 붙들어주고 선을 행하라(250126)
성 경 : 데살로니가전서 5 : 12 -15
이번 주가 설 명절 주간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 명절 이야기를 먼저 한다. 미국은 ‘추수감사절’이 큰 명절이다. 미국의 최초의 추수감사절은 1621년이며, 미국의 남북전쟁 중이던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11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하는 날로 정하자고 제안하여 추수감사절로 정하였다. 그 후 11월 넷째 주를 추수감사절로 지키며 칠면조 요리를 먹으며 가족과 친인척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정(情)을 나누며 즐거워하는 날이다(우리나라 추석, 참고로 미국의 명절은 새해와 부활절 추수감사절).
유럽의 큰 명절은 ‘크리스마스’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며 가족과 친인척이 함께 모여 감사 찬송하는 날이다. 특히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웃어른들이 아래 사람들에게 용돈을 주는 정(情)문화가 있다. 그리고 아시아의 태국의 큰 명절은 4월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송 크란’ 설날이다(4월 내내 축제). 캄보디아도 4월 13일부터 15일까지 ‘쫄츠남’ 설날을 맞이해서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과 쌀 등을 나누는 정(情)문화가 있다.
베트남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같은 날에 설을 쇠며 선물과 용돈을 나눈다[뗏'응우옌'단(Tết Nguyên Đán. 올해는 2025.01.25.-02.02 9일간). 베트남 설날의 특징은 "Mồng 1tết cha" 곧 첫째 날은 아버지 측의 친족을 방문하여 정(情)을 나누고, "(Mồng 2tết mẹ)" 둘째 날은 어머니 측의 친척을 방문하여 정(情)을 나누고, "Mồng 3tết thầy" 셋째 날은 스승께 찾아서 존경을 표하는 날로 자기를 가르쳐 주신 스승을 매우 귀하게 여기는 뿌리 깊은 정(情)문화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매우 귀한 정(情)문화가 있다, 그 정(情)문화는 어버이는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고, 자녀는 어버이를 공경하고, 스승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에 약한 사람을 붙들어주는 향약 향약은 지방에서 자치적으로 농민들은 향약을 통해 착한 일을 서로 권하고, 예절로써 서로 사귀며, 나쁜 일을 서로 일깨워 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왔다.
품앗이와 두레는 바쁜 농사철에 공동으로 협력하기도 하고, 모자라는 일손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계경제생활을 서로 돕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마을이나 집안을 중심으로 조직하였다. 협동 생활 정신 곧 정(情)문화다.
라는 정(情)문화가 있다. 그 정(情)문화는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문화다. 그 문화가 우리나라의 정(情)문화로 정착되었다. 새마을 운동, 1980.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주먹밥 나눔, 1998. 금 모으기, 2024.12.3 계엄 선포 후 커피와 어묵 등 나눔, 명절 때마다 현금과 쌀 나눔 그리고 선물 등 그 정(情)문화가 우리 생활에 스며 있고 몸에 배 있다.
이러한 정(情)문화는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강하게 요구된다. 마태복음 22장 37절부터 40절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의 핵심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다. 그리고 에베소서 6장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는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에게 주는 첫 계명이다. 이 첫 계명을 준수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종들아! 그리고 상전들아! 상호 간에 그리스도께 하듯 순종하라.” 갈라디아서 6장 6절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이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도리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
와 인간관계를 정립하여 살라는 권면의 말씀이다. 부부(夫婦),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이웃 등은 정(情)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 정(情)을 나눈 사람들끼리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라는 말씀이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이런 도리와 관계가 바로 세워져야 살만한 사회요. 서로 응원하고 지지하며 살 수 있다.
12절, 13절을 보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12)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13).”
12절, 13절 말씀은 갈라디아서 6장 6절의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는 말씀 해석과 같다. 갈라디아서 6장 6절의 가르침은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봉사자에게 생활의 필요를 채워주라는 말씀이다. 말씀 봉사자는 세상일을 하지 않는다. 말씀 봉사의 일이 세상일을 하면서 남은 시간으로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사도 바울과 같은 말씀 봉사자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사도적 선포를 계승한 말씀 봉사자가 있을 뿐이다. 바로 그 사도적 선포를 계승한 말씀 봉사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믿는 믿음으로 죄가 용서되고 의롭게 되고 구원받고 부활하고 영생의 몸을 입게 하는 말씀을 전하는 일이다. 성경대로 가르치기를 바라는 말씀 봉사자는 세상일을 하면서 말씀 봉사자의 일을 바르게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의 말씀 봉사자는 신자들의 구원 신앙 시작과 성장과 성숙하도록 수고하는 사람이다. 그 수고하는 말씀 봉사자가 성경대로 가르치느냐? 가르치지 않느냐에 따라서 교회의 성격이 달라지고 신자의 성장과 성숙의 정체성이 결정된다. 또 말씀 봉사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타락한 사람들을 다시 하나님 백성으로 돌이키게 하는 일이다. 고로 말씀선포에 전심전력하는 말씀 봉사자를 알아주어야 한다. 곧 인정해주어야 한다. 말씀 봉사자를 알아주고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 말씀 봉사자가 생활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채워주라는 의미와 존중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교회의 장로와 권사와 같은 직분을 가지신 분들도 신자들에게 말씀 봉사자의 가르침대로 믿음 생활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권면하는 일을 하신다. 남을 지도하여 바른 신앙인으로 살 수 있도록 권면하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없다. 장로와 권사와 같은 직분을 가지신 분들의 권하는 말은 말씀 봉사자의 선포대로 살도록 권하고 잘 못 행할 때는 그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고치도록 하는 일이다.
따라서 장로와 권사와 같은 직분을 가지신 분들도 알아주어야 한다. 종교개혁 교회의 장로는 목사가 설교한 대로 살고 행하도록 신자들을 심방 하고 권면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또 장로는 권징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세워졌으므로 자기 자신부터 바로 살고 그리스도인의 빛을 드러내고 향기를 풍겨야 한다. 따라서 생명의 말씀을 전달하여 타락한 사람들로 주 예수를 믿게 하고, 이미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므로 귀하게 여겨야 한다. 종교 개혁자 루터가 “목사 되기를 독사 피하듯 피하라”고 말한 것은 사람 살리는 일 곧 영혼 구원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는 일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로 다툼과 싸움이 날 수도 있다.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은 인격과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네가 무슨 권세와 자격으로 남의 생활에 이래라저래라하느냐며 다툼과 싸움이 날 수 있기에 가르치는 사람이나 가르침을 받는 사람끼리 화목 곧 평화롭게 지내라고 사도 바울이 권면하는 것이다(13).
14절, 15절을 보자.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잘못함이 없도록 타일러 주의시킴.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14)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15).”
한 교회 안에 게으른 사람도 있고 연약한 사람도 있다. 그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사도 바울이 권면하고 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그 게으른 사람들을 고쳐서 자기 생존과 다른 약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도록 가르치라고 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자기와 가정을 바르게 세우고 자녀를 양육하며 살 수 있다. 또 남에게 짐이 되지 않고 살 수 있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낙심하고 뒤로 물러난다. 그런 사람들은 위로하고 격려해서 용기와 담력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도록 힘을 북돋우어야 한다. 우리 곁에는 힘이 약한 사람 곧 생활력이나 지능이 부족해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약한 사람들을 붙들어주고 보탬이 되어주어야 한다. 믿음 생활에도 성장과 성숙에 더딘 사람이 있다. 계속하여 힘을 북돋우어서 바로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오래 참아 기다려야 한다(14).
우리는 나에게 좋게 해주는 사람에게 좋게 하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악을 악으로 갚는 마음을 갖고 있고 실제로 악으로 악을 갚는다. 그게 우리의 본성이다. 이런 본성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나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악으로 갚고자 하는 마음이 행위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은 자연인이 아니다.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한 달란트 빚은 탕감해주어야 한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해 줘야 한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것을 명령받았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대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심장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죄짓는 삶이 본성으로 남아서, 나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본성적으로 악으로 갚고 싶다. 따라서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그 신기하고 신비한 일은 내 심장의 판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판단하게 된다. 고로 악을 선으로 갚게 된다.
악(惡)은 다른 사람의 생존을 막고 불행하게 하는 모든 행동과 마음이다. 선(善)은 다른 사람의 생존을 돕고 행복하게 하는 모든 행동과 마음가짐을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아무쪼록 다른 사람의 생존을 돕고 잘되게 해줘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사는 방법이다. 내가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잘못되기를 바라면 그 심리적인 법이 내게 적용되어서 내가 잘못되게 된다.
내가 선을 바라고 행하면 다른 사람이 잘된다. 그 잘됨이 내게도 영향을 미쳐서 나도 잘되게 된다. 남이 잘되도록 돕는 것이 내가 잘되는 법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요 질서다. 따라서 선을 행하는 것이 가정이 잘되고 사회가 잘되는 길이다. 고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권면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며 살아서, 나 때문에 구원받는 사람이 교회에 더해지도록 살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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