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집무실에... 콜라 버튼과 앤드류 잭슨 초상화 배치에 대해서...
앤드류 잭슨(1767~1845) 미국 7대 대통령.... 달러 지폐 20달러의 초상의 인물
잭슨 전 대통령은 군인 출신의 전쟁 영웅이자, 미국 역사에서 논란이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의 초상화는 과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대통령이 걸어둔 바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당시에도 이를 백악관에 걸어둘 정도로 특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 경향신문 보도 -
트럼프 집무실에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 초상화 배치에 대한 평가 쇼츠....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백악관 집무실도 몇 시간 만에 새 단장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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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대통령 집무실에도 대통령이 존경하는 "한 초상화"를 배치하면 좋겠다...
영미 전쟁과 인디언 대학살[편집] - 위키백과 -
잭슨은 1801년 테네시주에서 대령 계급의 민병대 사령관으로 임명받았다. 윌리엄 헨리 해리슨과 재커리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그는 오직 철저한 인디언 대학살로 군 경력을 쌓게 된다.
1812년의 영미전쟁에서 테쿰세는 앨라배마 북부와 조지아의 레드 스틱 크릭 족 인디언들에게 백인 개척민을 공격하자고 선동했다. 포트 밈스 학살에서 400명의 백인 개척민들이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미국 육군은 크릭 족을 공격하여, 크리크 전쟁이 시작되었다. 잭슨은 미국 육군을 지휘했지만, 그 휘하에 테네시 백인 민병대뿐만 아니라 미군과 동맹을 맺은 체로키 족, 촉토 족과 남부 크릭족이 포함됐다.
잭슨은 1814년 호스슈 벤드 전투에서 크릭 부족의 전통파 저항 전사 집단인 레드 스틱스를 격파했다. 800여명의 레드 스틱스 크릭 인디언이 학살되었지만, 잭슨은 투항한 윌리엄 웨더포드 추장을 구명했다.
이 전쟁에서는 크릭 족에 대해 잭슨 대령은 철저한 대량 학살을 지시했다. 남자도, 여자도, 아이라도 잭슨은 용서하지 않고 몰살했다. 어린 아이를 포함한 약 800명의 크리크 족을 죽이고, 죽인 인디언의 시체에서 코를 베어 전리품으로 삼았다. 여성과 아동을 포함한 인디언의 시체에서 살을 벗겨져, 군마 고삐로 사용했다. 또한 "여자가 살아남으면 부족이 늘어난다"는 생각으로 특히 여자(소녀, 아동 포함)를 철저하게 죽이도록 전군에 지시했다. 이 모두 앤드루 잭슨의 지휘였다.[6]
샘 휴스턴과 데이비드 크로켓이 잭슨의 휘하에서 이 작전에 참가했다. 승리를 거둔 후에 잭슨은 크릭 족에게 잭슨 요새 조약에 조인을 강요했다. 잭슨을 도와 같이 싸운 크릭 족의 추장들은 항의했지만, 결과는 크리크 부족이 81,000 km2의 땅을 미국 정부에 할양시킬 수 있게 되었다. 잭슨은 이 작전의 성공으로 소장에 임명되었다.
뉴올리언즈 전투 (1815년). 앤드루 잭슨 장군이 영국군을 물리치고 쌓아올린 방어용 난간에 서 있다., 1910년작
영미 전쟁에서 잭슨의 업적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영국군이 뉴올리언즈를 위협하자 잭슨이 도시의 방어를 지휘했다. 그 휘하에는 일부 서부 주와 준주의 민병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가혹한 장교였지만, 부하 병사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는 군대에서 명성을 얻었고 숲 지대의 전장에서 "오래된 히코리 같이 튼튼한" "tough as old hickory"라는 애칭을 얻었다. 1815년 1월 8일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휘하의 5,0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7,500명 이상의 병력을 가진 영국군에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부상자 2,037명, 사망자 291명(고위 장교 3명 포함), 1,262 경상, 484명이 포로로 잡히거나 혹은 실종되었다. 미군은 부상자 71명, 사망자 13명, 경상자가 39명, 실종자 19명에 불과했다.
이 전투에서 승리로 잭슨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815년 2월 27일, 잭슨은 의회 감사 성명과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다음과 같이 잭슨을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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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잭슨은 대통령으로 성장했고, 그는 오직 20년 전에 쟁취한 뉴올리언즈 성벽의 승리의 추억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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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잭슨(1767~1845)…‘서민대통령’ 자처한 미국판 ‘노무현’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비주류’ ‘서부’ 출신 대통령 2009년 5월 세상을 뜬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했던 미국 대통령은 링컨으로 알려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란 책을 펴내며 벤치마킹해야 할 이상적인 대통령상으로 링컨을 꼽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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