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형람서원] 에베소서 1장: 교회의 기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예정

형람서원 2024. 9. 16. 16:21
728x90
반응형

[형람서원] 에베소서 1장: 교회의 기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예정

1-14절, 하나님의 구원 사역

[1-2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To God’s holy people(saints, τοῖς ἁγίοις) in Ephesus, the faithful in Christ Jesus(πιστοῖς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평안]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Grace and peace to you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 맛싸역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뒤에 배치함으로 에베소서를 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되게 번역했다. 그러나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되도록 이해되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1절). 그가 무지하여 예수님 믿는 자들을 핍박했을 때, 주께서 그를 부르셨고 사도로 삼으셨다. 바울은 자기의 사도됨이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을 인식하고 교회에 소개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직접 세우신 특별한 직분(Extraordinary Office)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했다. 바울은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로 중복해서 표현했다. πιστοῖς 번역은 쉽지 않다. 영어에서는 the faithful로 우리말로는 "신실한 자"로 번역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새번역)로 직접 번역해야, 갈 2:16절과 연속적인 번역이 될 것 같다.

바울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안을 기원했다(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 ἀπὸ Θεοῦ Πατρὸς ἡμῶν καὶ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묶어서 이해할 수도 있다. 은혜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성화(聖化)의 은혜이며, 평안은 은혜에 근거한 영혼의 평안과 육신적, 물질적, 환경적 평안이다.

[3-6절] 찬송하리로다(Praise, Εὐλογητὸς),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ἐν Χριστῷ, in Christ)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εὐλογίᾳ)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εὐλογήσας)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ἐν Χριστῷ, in Christ)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ἐν ἀγάπῃ)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his pleasure and will)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ἐν τῷ Ἠγαπημένῳ, in the One he loves)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the praise(ἔπαινον) of his glorious grace)이라. * 3절 영역에서 praise와 blessed가 있는 것은 헬라어 어휘가 다르기 때문이다. NIV와 몇 번역만이 praise로 번역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의 일성을 하나님의 복되심(εὐλογητός)을 선언하며 시작한다. 'εὐλογία(유로기아)'는 εὐ (좋은) + λόγία(3051, 말/말하다)의 합성어로 "좋은 말, 혹은 말을 하다"이다. 약 3:10에 '유로기아'를 '찬송'으로 번역했는데, '복'으로 번역하는 것도 좋겠다. 팔복에서 '복'은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를 사용했다. 마카리오스는 "복이 있다", 즉 상태를 의미한다. '복'에 대한 히브리어는 ברך(바라크)인데, 기본 의미는 "무릎을 꿇다(kneel down)"이다. 즉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으려는 성향과 꿇은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과 친구들에게 무릎을 꿇는 자, 섬기는 자가 높아진다. '찬송'과 연결된 어휘는 praise(ἔπαινον)이다. 고전 16:1 연보, (λογία(3048), λογεία / collection).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복(εὐλογίᾳ),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in the heavenly realms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을 주신 것으로 말씀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복되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복되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들에게 독생자를 통해서 복되다고 말씀하신다. 그 아버지의 복 선언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다. 그것은 땅에 속한 것 곧 육신적, 물질적, 현세적 복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것 곧 영적, 내세적 복이다. 현세적 복도 복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죽으면 다 끝나는 복이다. 그러나 구원은 영원한 천국과 영생의 복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신 것이다. 그것은 ‘그의 사랑 안에서(In love)’ 된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심으로 그의 눈에 우리는 거룩하고 흠이 없게 보이실 것이다(NIV에서는 in his sight가 추가됨).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신 자이시며(요 8:58)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영광을 누리셨던 자이시며(요 17:5) 태초부터 계신 자이시며(요 1:1) 영원 전부터 계신(미 5:2) 신적 구주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실 죄인들을 택하시고 그들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전가(轉嫁)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죄를 대속(代贖)하시는 제물이 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었다.

하나님의 선택의 일차적 목적은 택자들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어야 함을 보인다. 죄는 사람 앞에서는 감출 수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혜롭고 거룩하고 의롭게 지음을 받았으나(전 7:29; 골 3:10; 엡 4:24) 범죄함으로 더러워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을 구원하셔서 다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를 계획하신 것이다. 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실패치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그들은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지만, 양자(養子)로서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얻었다(요 1:12; 롬 8:15).

하나님의 선택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선택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과 은혜이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죄인들은 지옥 갈 자신들을 택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할 것밖에 없다. 그런데 찬송하는 대상이 문장으로 명료하지 않다.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그리고 "그리스도"로 찬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찬송과 예배의 대상에 대해서는 깊은 묵상과 훈련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그 찬송의 대상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7절부터는 그리스도의 구속, 죄사함에 대해서 말씀한다.

[7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ἐν ᾧ, In him)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救贖)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창세 전에 택함 받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救贖), 죄사함을 받았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속(贖)함을 증거한다.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贖)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다(벧전 1:18-19).

피와 물과 성령은 하나이다(요일 5:8). 피로 사함받음은 곧 성령으로 사함받음이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다(요일 5:5). 예수 그리스도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이시고(요일 5:6), 이를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다(요일 5:7).

[8-10절] 이는(ἧς, 헤스, 그 은혜를, which]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wisdom and understanding)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때가 찬 경륜[계획]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to be put into effect when the times reach their fulfillment)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어(테부나), φρόνησις은 understanding, 총명으로 번역하고 있다. practical wisdom, prudence. 명철(明哲), 히브리어 테무나, '총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비나'(998)이다. 비나(998)은 둘 사이에 분별과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히브리어에서 안다는 야다(yada, 경험을 통해서 앎)를 기본으로, 비나와 테무나가 있다. 관찰이나 숙고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여 상호 관계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스도께서 택한 백성(우리)에게 그 은혜를 따라서 모든 지혜와 총명이 넘치게 하실 것이다(8절).

‘그 뜻의 비밀(the mystery of his will)’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과 영광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비밀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밝히 계시되었다(엡 3장). 구약 백성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러했다. 그들은 성령을 받은 후에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위한 구원의 유일한 길이시다(요 14:6).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는 시간이 있다. 아담, 아담 타락 이후 1천년 경에 노아라는 인물이 출생했다. 아담 후 2천년 경에는 아브라함이 출생했다. 아담 후 3천년 경에는 다윗이 출생했다. 아담 후 4천년 경이 되어 ‘때가 찬 경륜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갈 4: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자들 곧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때에 구원을 이루실 것이다. 디모데전서 2:5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증거했다. 그는 지금 천국에 있는 성도들이나 지상에 있는 성도들이나 다 한 몸, 한 가족, 한 교회, 한 나라를 이루시는 분이시다. 모든 택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교회가 된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ἐν τῷ Χριστῷ)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통일되게 하신다(10절).

[11-12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having been predestined)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ἐν τῷ χριστῷ, in Christ) 전부터 바라던[그리스도를 먼저 바랐던(혹은 믿었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In him we were also chosen(an inheritance, 기업, ἐκληρώθημεν), having been predestined(προορισθέντες) according to the plan of him who works out everything in conformity(순응, 일치) with the purpose of his will, in order that we, who were the first to put our hope in Christ, might be for the praise(ἔπαινον) of his glory.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役事)하시는 자’ 전능자이시고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께 예정을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자기 의지에 정확하게 부합하여 섭리하신다. 그 섭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수행하셨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신 것이다. 이 하나님의 예정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 곧 천국 백성이 되었다.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원어는 6절과 14절의 말과 동일한데, 그것은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 천국 백성된 최종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다.

[13-14절] 그 안에서(in Christ, ἐν ᾧ) 너희도 진리의 말씀(the message(word) of truth, τὸν λόγον τῆς ἀληθείας)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the gospel of your salvation, τὸ εὐαγγέλιον τῆς σωτηρίας)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τῷ ἁγίῳ, the promised Holy Spirit)으로 인치심(a seal)을 받았으니 이는[그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救贖)하시고[그 얻으신 것의 구속(救贖)의 때까지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who is a deposit guaranteeing our inheritance until the redemption of those who are God’s possession—to the praise of his glory - εἰς ἔπαινον τῆς δόξης-).

‘그 안에서’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뜻이다. ‘너희도’라는 말은 11절의 ‘우리가’라는 말에 이어진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에베소 교인 너희도 구원의 복음 진리를 듣고 그것을 믿었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 안에서 또한 믿어’라는 말은 ‘그것을 믿어’라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앞에 나오는 구원의 복음을 가리킨다. 성령께서는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셨다. 성령의 인치심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을 때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선택과 구속(救贖)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세 번째 단계이다.

14절의 ‘이는’(호스, 남성 관계대명사)이라는 말은 앞절의 성령을 가리킨다. τῷ ἁγίῳ은 중성명사인데, Holy Spirit, ‘성령’으로 번역했다. 남성 관계대명사가 사용된 것은 성령의 인격성을 증거한다. 성령의 인치심, 곧 성령께서 구원받은 성도 안에 거하시는 것은 성도가 끝까지 견디는 일에 보증과 보장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주께서 피흘려 구속(救贖)하시고 성령께서 인치신 자들은, 모두 다 끝까지 보존되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성화(聖化)를 이루다가 마침내 영광에 이를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안을 사모하며 받아 누리자.

둘째로, 우리는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자. 또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가 되도록 실제적으로도 힘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救贖)함을 얻은 것을 감사하며 찬송하자.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로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로 복음을 깨닫고 믿어 구원 얻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찬송하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救贖)하시고 성령께서 인치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자.

15-23절, 사도 바울의 기도

[15-16절]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in the Lord Jesus, 주 예수께 대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이를 인하여’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것에 대한 원인을 제시한 것이다. 주 예수를(in the Lord Jesus) 믿음으로 선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들음에서(since I heard, ἀκούσας) 났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로 인해 감사한 것은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또 그들의 믿음이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으로 나타난 진실한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성도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인한 감사보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고 그의 믿음이 참되며 자라고 있다는 사실로 인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바울은 감사하고 기도했다(16절, I have not stopped giving thanks for you, remembering you in my prayers.).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the God of our Lord Jesus Christ), 영광의 아버지(the glorious Father)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πνεῦμα σοφίας καὶ ἀποκαλύψεως)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람’이시고(딤전 2:5) ‘마지막 아담’과 ‘둘째 사람’이시고(고전 15:45, 47) ‘의인’이시다(행 7:52). 하나님께서는 또한 ‘영광의 아버지’이시다.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세 가지이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주시기를 구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죄사함의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없다(요 17:3).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은 이제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혹은 영]’이 필요했다. ‘계시(啓示)’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려주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려주셔야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마 11:27; 막 4:12). 신앙생활의 시작에도 또 진행에도,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와 지식이 필요하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지식을 이미 얻었으나 그의 지식은 자라고 확고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큰 복이다.

[18절] 너희 마음 눈(the eyes of your heart)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the riches of his glorious inheritance in his holy people).

둘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를 구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은 부활과 천국과 영생이며 그가 우리에게 주신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은 천국의 영광과 복을 가리킨다. 그것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롬 8:18)이며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고후 4:17)이며 또 ‘지극히 귀한 보석 같은 영광’(계 21:10-11)이다.

[19절]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셋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인들로 믿어 구원받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했다. 죄로 인하여 어두워졌고 심히 무감각해졌던 우리를 깨우쳐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그의 능력의 일이시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결코 다시 살 수 없었다. 믿음은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능력의 결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이 능력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하신 자들을 오늘날도 구원하신다.

[20절]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역사(役事)하여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 오르게 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의 표이었다. 죽음은 인류 역사 수천 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 큰 세력처럼 보였고, 사람의 절망들 가운데서 가장 큰 절망처럼 보였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가장 큰 절망을 단번에 극복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의 사건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상에서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심도 놀라운 사실들이다. 성경은 이 두 가지 사실들을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사도행전 1:9, 10,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베드로전서 3: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21절] 모든 정사(政事)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 ‘정사(政事)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모든 이름들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셨다. 빌립보서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물론, 불신자들이나 이방 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무시하고 그의 신적 영광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지한 세상이 그를 인정하지 않고 그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뿐이지, 그는 아버지와 함께 동등한 권세를 가지시고 동등한 영광을 누리신다.

[22절]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And God placed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appointed him to be head over everything for the church,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오른편에 앉게 하심은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심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유의 주이시다. 만물은 그의 발 아래 있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다. 만물 중에는 인류의 원수인 사탄도 포함되며 사탄도 마침내 그리스도의 발 아래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의 발 아래 굴복할 것이다(시 110:1; 롬 16:20).

높임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골로새서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머리’라는 말은 ‘우두머리, 주’라는 뜻이다. 그가 교회의 우두머리이시므로 교회는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 또 교회의 지도자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마 23:10). ‘머리’라는 말은 몸의 머리라는 뜻도 가진다. 머리와 몸이 나뉠 수 없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잠시라도 분리될 수 없는 생명적 관계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잠시라도 존재할 수 없다.

[23절]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everything in every way. ἥτις ἐστὶν τὸ σῶμα αὐτοῦ, τὸ πλήρωμα τοῦ τὰ πάντα ἐν πᾶσιν πληρουμένου. * 육체(σάρξ, flesh)와 τὸ σῶμα(body, 몸), sarx는 통합적 의미를 갖는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개인이시지만, 또한 새 인류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인류가 선택되었고(엡 1:4)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으며(엡 1:10) 구원받는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 모두가 한 새 몸을 이룬다(엡 2:15). 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표현된다.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적으로, 온 세계적으로 교회를 통해 충만히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전도, 곧 지역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의 기지(基地)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충만한 성취인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충만한 성취이며 완성이다. 교회의 충만은 수적인 면에서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 전체가 다 구원받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성경과 역사가 증거하는 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역적으로, 시대적으로 쇠퇴하는 단체가 아니고 수적으로 성장하고 충만해져 가는 단체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의 기도의 내용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내용이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자. 우리는 무엇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아는 복을 누리기를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눈을 밝히셔서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활과 천국과 영생의 소망을 더 깨닫고 그 천국과 영생의 영광을 더 깨닫기를 원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무지하고 연약한 우리를 그의 능력으로 구원하셔서 구주 예수님 믿고 구원 얻게 하셨다. 우리는 오늘도 그의 능력을 의지하며 이 험한 세상을 산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역사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가 교회의 머리 되심을 알고 그에게와 그의 모든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천사들과 모든 사람들의 이름들 위에 뛰어나신 이름이시다. 이 세상은 그를 모를지라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높이고 그의 영광을 찬송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과 주님과 왕이시다. 교회는 오직 성경에 계시된 대로 그의 뜻과 교훈에 겸손히 복종해야 한다. 교회의 본분은 오직 성경말씀을 믿고 복종하는 것이다.

형람서원 고경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