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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남의 "종교개혁과 교회직분의 개혁: 개혁파 신학을 중심으로" 간략한 독서

형람서원 2024. 7. 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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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교회직분의 개혁: 개혁파 신학을 중심으로" 「성경과 신학」 85 (2018): 35-69 ("The Reformation and the Reform of Ecclesiastical Office in the Reformed Tradition" Bible and Theology 85 (2018): 35-69.

Written in Korean; Abstract and Bibliography in English Included.

Hyo-nam David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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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itanism

종교개혁은 구원에 관한 교리의 개혁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개혁이었다. 왜냐하면 교회과 성도의 구원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 개혁의 핵심에는 직분의 개혁이 있었다. 개혁자들은 초대교회를 지나 중세교회를 거치면서 확립된 교회와 교회의 직분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전통이 성경에서 심각하게 이탈하였다고 보고 이를 개혁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교회의 가시적인 모습에 교회의 본질을 두는 로마 카톨릭 교회론에 반하여 교회의 무형성을 강조했던 루터는 교회의 직제를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한 것도 아니다. 만인제사장 교리를 통해 잘 드러나 는 루터의 직분에 대한 이해는 비록 성숙된 모습은 아니지만 개신교 직제론의 기초가 되었다. 루터보다 조금 늦게 개혁에 동참했던 쯔빙글리는 재세례파를 논박하면서 직제론을 전개했다. 비록 초기 형태이기는 하지만 그는 장로들이 다스리는 교회정치체제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하지만 장로를 교회의 독립된 항존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루터와 쯔빙글리는 공히 구제의 기능을 집사직에 두기 보다는 시정부의 역할에 맡겼다. 하지만 개혁파 직제론의 골격은 이룬 사람은 부처였다. 그는 교회의 직분을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구분하였는데, 이 사중직제론은 개혁파 직제론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부처의 직제론은 칼빈에게서 더욱 정교화 되었고, 구체화되었다. 특히 목사와 교사를 구분하여 실천하였고, 구제를 담당하는 집사직에 대해서 강조했다. 이러한 개혁파 교회의 직제론은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회의 원리로 강화되어 등장했다. 존 낙스에게서 시작된 스코틀랜드 교회의 직분개혁은 17세기에 이르러 장로회주의로 완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에 이르러 교회의 정치체제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개혁파의 사중직제론이 유지되었으나 목사와 교사의 구분이 약해지고, 다른 직분들이 목사직을 돕는 역할로 수렴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주제어: 개혁파 직제론, 종교개혁, 존 칼빈, 개혁파 정통주의, 사중직제, 마틴 부처

논문리뷰

  1. 김효남은 개혁파 직분에 대한 논문을 <성경과 신학>에 개제했는데, 평범한 논문으로 보입니다. 주된 내용은 개혁파의 직분은 사중직제론(목사, 교사, 장로, 집사)이었다는 것이고, 스코틀랜드 교회에서는 삼중직제론이 된 것으로 장로회주의의 완성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개혁파 정통주의의 정치체제로 진행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최종적으로 개혁파의 직제론을 사중직제론이 유지되었다고 주장하며, 약해졌다고 주장하는데 논리 이탈이 될 것입니다. 계속되었으면 약해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중직제론은 칼빈이 제세하는 직제론으로 개혁파 정통주의의 직제론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개혁파 정통주의, 칼빈 사후에 형성된 개혁파 진영에서는 새로운 직제론을 형성시키지 않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오히려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앤드류 멜빌에 의해서 삼중적 직제론, 감독제가 아닌 장로주의가 구체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2. 김효남은 집사 직분에 대한 강조가 있습니다. 집사가 구제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으로, 아마도 한국 교회의 집사 직분이 형식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러한 강조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3. 김효남은 직분론을 만인제사장주의와 연결시킨 것은 좋지 않습니다(41쪽). 만인제사장주의는 직제론이 아니라 성도의 자격과 직업소명설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김효남은 Klug의 견해를 반복하고 있는데,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ugene F. Klug, “Luther on the Ministry” Concordia Theological Quarterly vol. 47/4 (October 1983): 294.

루터에게서 장로교적 치리장로의 제도를 말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42쪽). 집사직은 말씀을 봉사하는 직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임시 직분은 영어를 정확하게 기록해주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traordinary도 임시직으로 번역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집사직은 계시에 의한 직분으로 사도직과 함께 가장 오래되고 고유한 직분입니다. 그런데 세계교회와 한국교회에서 여성직분론을 주장하는분들이 집사직을 달라는 주장은 없는 것은 특이한 일입니다.

4. 사제주의 타파는 직분론이 아니라, 교회의 기능을 예전주의에서 복음선포로 개혁한 것입니다. 미사와 고해성사를 수행하는 사제가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고 성례를 집례하는 일인데, 성례를 집례하기 위해서 장로회는 치리장로와 협력하여 진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5. "사도는 지역에 제한되지 않고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의미하며 열쇠의 권세를 손에 가지고 있는 이들로서 , 초대교회에만 국한되지 않고 어느 시대나 존재할 수 있는 직분이다."(김효남)의 주장은 위험한 내용입니다. 사도는 초대교회가 아니라 예수께서 지목하신 이에게만 해당되는 고유직분입니다. 교회는 사도 바울까지 사도로 사도권을 견지합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주 예수를 믿으며 섬깁니다. 참고로 로마 카톨릭의 사도의 직분을 추구하는 직제주의이고, 신사도주의는 사도의 권능을 따라 사도권의 계승을 주장하는 형식주의입니다. 우리의 사도성은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의 유효성 - 사도의 가르침을 계속함 - 에 있습니다.

혹 츠빙글리가 그렇게 주장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반드시 뒤에(각주 등에) 자기 견해를 피력해야 한다.

츠빙글리는 집사직분을 두지 않았다고 제시했다. Charles H. Parker, The Reformation of Community: Social Welfare and Calvinist Charity in Holland, 1572-1620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101.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집사는 계시 직분이기 때문에, 집사 직분이 없는 것은 바람직한 교회로 보기 어렵다.

6. 마틴 부처는 루터의 직제가 아닌 사중직제론을 구현했다. 김효남은 마틴 부처의 직제론에 개혁파 정통주의의 직제론과 등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칼빈 이후에 형성된 개혁파 정통주의의 직제론을 강조하기도 한다.

7. "오웬을 비롯한 회중주의자들과 웨스트민스터 회의에 참석했던 스코틀랜드 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교회의 직분에 있어서 비슷한 생각을 가졌고 , 잉글랜드의 장로교주의자들은 이들보다 더 계급적 인식을 가지기는 했지만, 감독제를 반대하고 교회의 직분을 목사와 교사 , 치리장로 , 그리고 집사로 규정했던 것은 동일했다"(김효남, 58쪽) . [Provincial Assembly of London], Jus Divinum Ministerii Evangelici. Or The Divine Right of the Gospel-Ministry: Divided into Two Parts... (London: John Legat and Abraham Miller, 1654), preface. Joel R. Beeke and Mark Jones, A Puritan Theology: Doctrine for Life (Grand Rapids: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2), 642을 보라. 김효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오웬은 회중주의자(독립파 청교도)로 잉글랜드 장로파 청교도와 같지 않다. 1648년 12월에 독립파 청교도 크롬웰은 의회에 있는 다수의 장로파 의원을 무력으로 축출시킨 뒤에 독립파로 구성해서 의회를 구성했다(잔부의회). 즉 1646년 당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는 스코틀랜드 언약도의 장로주의, 잉글랜드 청교도의 장로주의, 잉글랜드 청교도 독립파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 동상이몽을 묶을 1643년 엄숙한 동맹과 언약을 독립파가 파기했다고 보아야 한다. 1649년에 찰스 1세를 처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중주의는 치리장로의 기능은 인정하지만, 장로주의처럼 목사직분에서 분리시키지 않는다. 매우 큰 차이이다. 김효남은 큰 차이로 인식하지 않고 미미한 차이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엘 비키(Joel Beeke)와 마크 존스(Mark Jones)가 말하듯, 감독제인 국교회에서는 그 역할을 찾기 어려 운 평신도 장로(lay elder)의 개념을 교회 안에 회복하는 것은 청교도들이 추구했던 교회 개혁의 중요한 요소 였음은 분명하다"(60쪽) Joel R. Beeke and Mark Jones, A Puritan Theology: Doctrine for Life (Grand Rapids: Heritage Reformation Books, 2012), 649. 비키와 존스가 부당한 주장을 한 것이다. 청교도에 장로주의가 있었지만 결국 독립파에 의해서 추축되어 세력이 약해졌고, 찰스 2세의 복권으로 명맥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존 오웬의 독립파 청교도도 현재 교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청교도가 평신도 장로를 두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장로파 청교도와 독립파 청교도의 차이를 무너뜨리는 부당한 제시이다. 최소한 독립파 청교도가 장로파 청교도를 축출하지 않았다면 가능할 일이다. 1948년에 존 오웬, 토마스 굳윈이 핵심 종교 지도자였다.

김효남의 논문을 간략하게 읽어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직제론 이해인가로 보았는데, 장로파, 개혁파(네덜란드), 독립파 청교도, 장로파 청교도 등을 한 묶음(사중직제론)으로 동일화시키는 성향으로 보여 간략한 리뷰를 한다. 네 종파는 네 종파의 신학 특징이 잘 부각되어야 교파의 존재 목적이 성립될 것이다. 동일한 신학 성향이라면 당연히 교파 연합을 해야 한다.

스코틀랜드 언약도와 잉글랜드 장로파 청교도들도 에라스투주의(Erastism)를 놓고 갈등을 보였다. 학문은 사상을 예리하고 구분하면 좋은 성과로 볼 수 있다. 여러 의견을 뭉클어서 제시하는 것은 혼란을 정리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좋지 않다.

https://www.academia.edu/36673577/_%EC%A2%85%EA%B5%90%EA%B0%9C%ED%98%81%EA%B3%BC_%EA%B5%90%ED%9A%8C%EC%A7%81%EB%B6%84%EC%9D%98_%EA%B0%9C%ED%98%81_%EA%B0%9C%ED%98%81%ED%8C%8C_%EC%8B%A0%ED%95%99%EC%9D%84_%EC%A4%91%EC%8B%AC%EC%9C%BC%EB%A1%9C_%EC%84%B1%EA%B2%BD%EA%B3%BC_%EC%8B%A0%ED%95%99_85_2018_35_69_The_Reformation_and_the_Reform_of_Ecclesiastical_Office_in_the_Reformed_Tradition_Bible_and_Theology_85_2018_35_69_Written_in_Korean_Abstract_and_Bibliography_in_English_Included?email_work_card=title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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