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국가는 공동선(共同善·common good)과 공공성(公共性· publicness)/ 공공선(公共善, public good) 을 두 축으로 형성됐다.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사회의 위기가 오는 두 요소의 균형과 결합을 통해 공공선(公共善)을 이루는 것이 근대국가의 목표이다"
국가와 공공선/공동선 : 절대선과 개별선 사이의 마키아벨리
절대선과 개별선 사이의 마키아벨리
State and the public-common good : Machiavelli between the absolute good and the particular good
저널정보
- 한국정치사상학회
- 정치사상연구 학술저널
- 정치사상연구 제18집 1호
- 2012.5 33 - 52 (21page)
- 김경희 (성신여자대학교)
이 글에서는 마키아벨리(Machiavelli)에게서 나타나는 공공선(公共善)/공동선(共同善) 개념을 절대선(絶對善)과 개별선(個別善)의 긴장관계 속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절대선은 전체의 관점이 강조된 공(公)이 과도할 때 나타나는 개념이며, 개별선은 부분과 개별이 강조된 공(共)이 과도할 때 등장하는 개념이다. 전체가 강조되어 부분이 사상(死狀) 될 때, 공공선은 절대선화 된다. 반면 부분과 개별이 강조되는 개별선은 공동체를 파편화의 경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전체와의 조화 속에서 사고되어야만 한다. 공공선의 두공 개념, 즉 공(公)과 공(共)은 긴장관계에 있다. 전자의 공이 권력을 독점한 이에 의해 사사화될 때, 공공선은 절대선화 되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독점으로 인한 억압과 배제의 정치를 생산하게 된다. 반면 후자의 공은 부분과 개별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전체의 관점을 간과하기 쉽다. 부분과 개별이 강조되면 파당화의 경향을 낳게 된다. 그리고 사사화와 파당화는 같은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부조화와 불균형 그리고 불만족의 정치이다. 마키아벨리는 공(公)과 공(共)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올바른 공공선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
This paper explores the concept of the public-common good in Machiavelli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bsolute good and the particular good. The absolute good reveals itself if the wholeness overwhelms the parts of society. The particular good stems from the emphasis of the latter. Machiavelli catches the tension between the absolute good and the particular good. He stresses the public order for the common good which comes from the common sense and solidarity of citizens. But the public good concept can be absolutized if the prince or the ruler monopolizes the power. On the other hand, the common good concept can be particularized and factionalized if the parts of the society search for their own interests. Machiavelli tries to keep balance between the absolutization of the ‘public’ concept and the particularization of the ‘common’ concept.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개별선, 공동선, 최고선의 관계와 형이상학적 근거
The Relation of Particular Good, Common Good and the Highest Good and its Metaphysical Foundation according to Thomas Aquinas
저널정보
- 대한철학회
- 철학연구 학술저널
- 철학연구 제130집
- 2014.6 219 - 246 (28page)
- 이상섭
개별선과 공동선은 서로 대립적인 관계 또는 우월관계에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토마스 해석자들 사이에 대립적인 의견이 존재한다. 어떤 학자들은 토마스의 텍스트들이 개별선에 대한 공동선의 우위를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다른 학자들은 반대로 개별선의 우위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면밀히 검토하면 토마스는 개별선과 공동선의 대립이 아니라 양자의 통일을 주장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토마스의 윤리학 및 정치철학은 개인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지만, 토마스에게서 개인은 단순한 개별자가 아니라 종적인 본성에서 일치하는, 개별화된 본성을 가진 개별화된 보편자이다. 한편 토마스에게서 선은 존재자의 완전성을 의미하며, 존재자의 가능성이 전체로서 완성되었을 때에만 그 존재자는 단적인 의미에서 선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개인이 개인으로서의 완성만을 추구한다면 부분적 선만을 추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단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의 선은 공동체를 통해서 실현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토마스에 따르면 공동체의 목적은 구성원들이 덕에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덕이 그것을 가진 인간과 인간의 행위를 선하게 만드는 것인 한 공동체는 구성원 각각의 완성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별선은 공동선을 통해서, 다시 공동선은 개별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상호간의 일치가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공동선을 통해서 실현되는 개별선이 올바른 목적지향을 갖지 않는 한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단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의 선은 최고선과의 정당한 질서관계 속에 놓여 있는 공동선과 개별선의 통일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Do the particular good and the common good stand in relation of opposition or superiority each other? With regard to this question, some argue that the relevant Thomas texts reveal the superiority of the common good over the particular good, while others argue for the superiority of the particular good. The argument of this articles is, however, that closer examination of texts shows that Thomas Aquinas seeks to the unity of the common good and the particular good instead of seeing the conflict between them. It is true that Thomist moral and political theory emphasizes the value of the individual, but it should be noted that for Thomas the individual as individual does not exist, but shares specific formal determination with other members of the same species and, therefore, is the individualized, concrete universal. Good, meanwhile, means perfection which each being pursues and a thing is called good in the absolute sense when it actualizes its potentialities as a whole. An individual person is said to pursue only partial good, if it only seeks its perfection as an individual. The nature of individual person should be fully realized only in and through the community pursuing the common good. But the aim of living together which is rooted in the nature of human being as a rational being is for its members to live virtuously. The political community is said to try to bring its individual members to perfection, since the virtues are what renders human beings and their acts good. In this sense the particular good of the individual person is achieved through the pursuit of the common good and the common good is realized through the pursuit of the particular good so that they coincide each other. But this unity remains imperfect, when it would not be rightly ordered to its due end which is non other than the highest good, that is God. Accordingly the goodness of the human being in an absolute sense lies in the unity of the particular good and the common good rightly oriented towards the highest good, which is also called common good which every being pursues.
공동선(公同善, common good) 과 공공선(公共善, public good) : 공동선(共同善:common good)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나 여러 사람에게 선(善)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 유의어로 개인을 포함하는 사회 전체를 위한 선을 뜻하는 공공선(公共善)이 있다. 공공선(公共善)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을 포함한 국가나 사회 또는 온 인류를 위한 선이다. 유의로 공중선, 공동선이 있다. 공동선과 공공선을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의 문화 유형론으로 설명한다면,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분리모델)는 더더욱 아니며, 그렇다고 ‘문화와 역설적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역설모델)도 아니며, 또한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도 아니라 ‘문화의 그리스도’(일치모델)에 가까운 개념이다.
공공선을 실현하는 리더십
리더는 공공선(公共善)과 공동선(公同善)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후자는 여러 이익을 조정함으로써 이룰 수 있지만, 전자는 개인적 욕망의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다. 공공선은 이익 중심의 사고를 넘어 가치 중심의 관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 대부분의 문제는 서로의 이익을 조화롭게 조정하는 것이 사회적 행동의 목표다. 하지만 어떤 사안은 가치를 옹호함으로써만 적절히 다루어질 수 있다. 대중이 이익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도 대의에 대한 감각도 갖고 있다. 그것은 인간됨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의가 존중되는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도 리더의 책무다. 민주주의가 집단이기심으로 발현되지 않도록 리더는 공공선의 작동에 유념해야 한다.
송용원 | 『하나님의 공동선』
성서유니온 | 2020. 07. 27. 출간 | 272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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