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교회교의학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형람서원 2024. 1. 1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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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은 13권의 대작이지만 미완성 체계이다. <교회교의학>은 1932년에 I/1(말씀론) 출판하면서 시작해서 1967년 IV/4(화해론, 세례론)까지 13권을 출판 뒤에 1968년에 사망했다.

 

1932 Die Kirchliche Dogmatik I/1 (하나님의 말씀론)

1938 Die Kirchliche Dogmatik I/2 (말씀론)

1940 Die Kirchliche Dogmatik II/1 (신론)

1942 Die Kirchliche Dogmatik II/2 (선택론)

1945 Die Kirchliche Dogmatik III/1 (창조론)

1948 Die Kirchliche Dogmatik III/2 (창조론)

1950 Die Kirchliche Dogmatik III/3 (창조론)

1951 Die Kirchliche Dogmatik III/4 (창조론)

1953 Die Kirchliche Dogmatik IV/1 (화해론)

1955 Die Kirchliche Dogmatik IV/2 (화해론)

1959 Die Kirchliche Dogmatik IV/3-1 (화해론)

Die Kirchliche Dogmatik IV/3-2 (화해론)

1967 Die Kirchliche Dogmatik IV/4 (세례론)

 

바르트는 V권을 성령론으로 계획했다고 한다. 바르트의 신학은 창조주(3권) – 화해주(4권) – 구속주(5권)의 구도이다. 3권에서 창조주, 4권에서 화해주, 5권에서 구속주를 다루려고 했다. 그런데 5권(구속주 성령)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러나 I권과 II권에서 성령에 대한 이해를 전개했다.

 

필자는 칼 바르트가 정통 신학에서 구속주(Redeemer)를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하던 것을 ‘성령’으로 전환시킨 것을 지적한다. 칼 바르트에게 구속주는 성령이다(Karl Barth asserted that, the Redeemer is the Holy Spirit). 이것은 <교회교의학> I/1, § 12 “성령 하나님”과 <교회교의학> I/2, 2장 하나님의 계시 3부분 “성령의 부어짐”으로 §16,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자유, §17. 종교의 지양으로서의 하나님의 계시, § 18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으로 개략적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V권에서 체계적으로 진술하려고 했다.

 

1835년 스코틀랜드에서 방언과 예언 운동을 주도했던 운동가인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은 자기 체계가 로마 카톨릭만이 지구에서 동일하다고 평가하고, 어빙주의(Irvingism)를 카톨릭 사도 교회(Catholic-Apostle Church)으로 규정했다. 1878년 독일로 넘어가서 새사도 교회(New Apostolic)로 활동했다. 바르트가 성령을 구속주라고 규정한 것은 바르트 신학의 절정이 성령이라는 것이다. 바르트가 로마 카톨릭을 많이 비판하는 것 같은데, 로마 카톨릭의 카알 라아너(Karl Rahner, 1904-1984)는 바르트의 신학을 채용해서 로마 교회 신학을 재구성했다. 서철원 박사는 라아너가 로마 교회의 신화 사상을 바르트 사상으로 현대화했고, 불트만의 비신화화한 현대 비평적 사상을 채용해서 로마 교회 신학을 완전히 현대화했다고 평가했다(“카알 라아너의 기독론”, <신학지남> 1994년 겨울호(241호)에서)

 

칼 바르트는 박사학위(Ph.D나 Th.D)는 없지만 7개의 대학에서 명예박사(D.D)를 받았다. 명예박사(名譽博士)는 honorary doctor라고 해야 하는데 표기는 D.D(doctor’s degree)라고 한다. 박사는 Ph.D나 Th.D, 그리고 D.D가 있다. 바르트는 박사학위가 없는 박사, 명예박사이다. 우리는 바르트와 함께 했던 샬롯데 키쉬바움이 참여한 <교회교의학>에서 그녀의 역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바르트는 1927년 <기독교교의학개론, Die christliche Dogmatik im Entwurf>을 출판했는데, 키쉬바움을 만나는 시점에서 <교회교의학>으로 집필 방향을 바꿨다.

 

칼 바르트의 신론은 특이하게 유일신인 ‘삼중일신(Dreieinigkeit, triunity)’ 후에 제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바르트의 신 개념이 ‘삼중일신’인데, 신론(II권) 앞 부분에서 취급한다. 칼 바르트는 계시를 ‘삼중적 형태(dreifachen Gestalt, Threefold form)’로 제시하며 삼중일신을 설명했다(KD., I/1. §8. 계시에 있어서의 하나님). 그래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필자는 ‘계시일원주의(one circle of Threefold Revelation)’라고 평가했다. 칼 바르트의 신론은 <교회교의학> II권에서 제시한다. 그런데 II권에서 논하는 것은 신인식이다. 바르트는 신존재에 대해서는 논함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계시 안에 있는 신론(1권), 인간이 인식하는 신론(2권)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교의학> 3권, 4권, 5권으로 자기 신학을 구도했다.

 

바르트의 신학이 그리스도 중심론적 신학(기독론 중심의 신학)이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많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쉼없이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엑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가 인식했다고 규정한 신”을 근거로 체계화했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예수가 신을 바르게 인식했고, 신의 뜻을 바르게 수행한 유일한 인간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를 맺었고, 성령이 그것을 성취해 가는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과 화해를 이루는 구속을 성령이 하기 때문에 성령이 구속주(The holy spirit is the redeemer)라는 것이다.

 

칼 바르트에게 신(神)이 있는가?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있기 때문에 신이 있다.” 이러한 표현을 상대적 지식이라고 하고, 대상성이라고 한다. 반틸 박사(Van Til)가 이러한 점에 대해서 심각하게 반응하면서 ‘전제주의(presuppositionalism)’를 주창했다. 반틸 박사는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이 존재했고 존재한다”라고 고백한 것이다. 바르트는 “인간이 없이 신이 있다”고 증명이 불가능함을 주장한다. 그래서 바르트의 신학은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으로 분류한다. 불가지론자에게 “신이 있다고 확정하는 것”은 불쾌한 행동이고, “신이 없다고 확정하는 것”에는 어떠할지 의문이다.

 

신학의 표준이 ‘인간 인식’에 있는지 ‘신 존재’에 있는지를 구분하면 되겠다. 마틴 부버의 마주섬의 신비는 ‘나와 너(I-Thou)’의 관계로 제언했다. 부버는 인간이 행하는 ‘나와 그것(I-It)’의 관계를 거부하고 나와 너(I and Thou)의 관계로 전환을 주장했다. ※ Thou는 2인칭 단수형이다. 현대 영어에서 2인칭 대명사 you는 단수, 복수가 같은 형태이다. 현대신학은 “대상성이 없는 신”을 창안했다고 보아야 한다. 바르트의 신은 행동하는 신(Acting God)으로 대상으로 존재하는 신(Being God)이 아니다. 바르트에게 창조주는 아버지이고 화해주는 아들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신은 만유의 창조주이시고 죄인인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속죄제사를 수행하신 구속주이시다(duplex cognitio Dei creatoris et redemptoris by John Calvin). 

고경태  ktyhbg@hanmail.net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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