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란 무엇인가?
"'진리'(眞理, truth, ἀλήθεια, veritas, אמח)란 무엇일까?" 진리를 말하지 않는 시대, 진리를 알려고 하지 않는 시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진리는 고정된 앎이나 관념이 아니다. 진리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행위다”(안토니오 네그리: 2006, 45). “진리는 과정이다” 옥스퍼드대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David Deutsch)는 The Beginning of Infinity(2011년, 원제 “무한의 시작”), “Explanations That Transform the World(세계를 전환하는 설명들)”이라는 부제로 저술을 출간했다. 진리는 “불변한 어떤 가치”가 아니라 “미래에 도달해야 할 어떤 가치”로 전환되었다. 이런 진리 개념의 대전환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칸트는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진리를 평가할 수 있는 표준에 대해서는 회의했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명제에 대해서 평가할 수 없고 결국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진리에 대한 열정이나 탐구를 포기했다. 혹 진리를 탐구하는 학도들은 과정, 변화에서 진리를 찾으려 한다. 진리는 어디에,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예수님은 진리를 알도록 요구하셨고, 진리를 알아야 자유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즉 진리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자유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철학에서는 선취(先取, 예기(豫期), Antizipation)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데, 현재 비록 진리를 소유하지 못했을지라도 미래에 획득될 진리를 선취적 개념으로 앞당겨서 느낄 수 있다는 개념이다. 미래에 파악하게 될 진리로 현재 어떤 자유나 유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논리가 정당하지 않다. 그것은 미래에 주어질 진리의 성격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최고선(最高善)’으로 규정한다할지라도 선의 특성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파악하지 못한 진리가 어떤 선이나 유익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막연한 기대일뿐이다. 우리시대에는 ‘희망고문’이라는 어휘가 나타났다. 미래에 없을 것으로 현재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진리가 없는 세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진리가 없기 때문에 자기 주관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누구도 자기 주관대로 사는 삶을 방해하거나 저지할 수 없는 사회구조까지 구축한다. 사회가 규약으로 진리없이 살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다. 그러나 “진리는 있다”. 세계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가치는 증명하지 않아도 경험하며 보고 있다. 그것은 태어난 사람은 죽는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다. 시작이 있다면 마지막은 필연적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 7:2, 4).
진리는 있는데, 진리를 알지 못한다.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에 있다고 스스로 자평하지 않아야 한다. 미래에 있는 진리는 현재에 방종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 있는 진리는 현재에 규범과 확실성을 제공한다. 진리는 무엇인가?(What is Truth?) 진리를 탐구하는 인간에 ‘진리’는 상대적이고 파편적이고 임시적일 뿐이다. 그러나 뱀처럼 지혜롭게 취한다면(마 10:16), 진리는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불변할 것이다. 성경에서 뱀이 긍정적으로 사용될 때이다. 뱀은 본래 지혜를 상징한다. 의사의 상징도 뱀(rod of Asclepius)이다. 참고로 대한의사협회의 지팡이에 있는 두 마리의 뱀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Hermes)의 상징이고, 의학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의 지팡이는 한 마리의 뱀이라고 한다. 뱀은 이 세상의 지혜의 최고의 위치에 있는데,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지혜로는 진리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잠 1:7, 9:10).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참고문헌]
안토니오 네그리, 『귀환』, 윤수종 역(서울: 이학사, 2006).
데이비드 도이치, 『진리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김혜원 역(서울: RHK, 2022).
박수범, “칸트 진리론의 구조”, <범한철학>, 75권 No4(2014).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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