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성경] 마태복음 9장. 무리를 불쌍하게 여기는 메시아(찬 446)
1. [마 9:1-8] 중풍병자를 고쳐 죄사함의 권세를 선언하셨다. 8장에서는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셨고, 9장에서는 중풍병자의 친구들과 함께 왔다. 예수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셨다(2절). 예수께서 죄사함의 선언을 하는 것을 보고들은 서기관은 신성모독이라고 평가했고(3절), 예수는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6절). 서기관의 원리인 “죄사함은 하나님만이 하신다”는 것은 유효한 문장이다. 인자는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 8장에서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칠 때에는 이방인에게 은혜가 임함을 선포했다.
2. [마 9:9-13] 마태를 부르셨다. 예수께서 세리 마태(레위)를 부르셨다. 예수는 마태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종교적 경건과 무관하게 살던—과 함께 앉아 식사하셨다. 예수의 행동은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심각한 문제였다. 죄사함 선언은 서기관에게, 세리들과 식사는 바리새인에게 문제였다.
그러한 바리새인에게 예수는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인을 회복할 구속주가 필요하다(12-13절). 예수의 음성(가르침)은 자칭 의인인 바리새인은 들을 수 없고, 심령이 상한 자가 들을 수 있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백성에게 긍휼을 원하셨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호 6:6). 예수는 백성에게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구주라고 말씀하셨다.
3. [마 9:14-17] 금식은.... 예수께서 금식에 대해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대화하셨다(14-17). 사두개인, 바리새인,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한계에 대해서 밝힌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엄격한 금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세례 요한이 지시한 예수께서 금식이 없자 질문을 한 것이다. 금식의 방법과 목적은 마태복음 6장에서 제시했다. 왜 바리새인과 세례 요한은 금식을 했는가?
예수는 생베 조각에 낡은 옷을 붙이는 것을 금지한다고 하셨다. 생베 조각은 유대주의, 율법주의라고 보아야 한다. 예수는 유대인이 갖고 있는 유대주의(율법주의, 성전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하셨다.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넣어야 한다. 성령은 죄사함을 받은 사람에게 내주하신다. 죄사함은 단 번에 이루신 사함이다(벧전 3:18, 유 3, 롬 5:8).
4. [마 9:18-26] 관리의 딸과 옷자락을 만진 혈루증 여인을 고치심. 예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요구로 딸이 아픈 집으로 가셨다(18절). 그 가는 길에 12해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이 예수의 겉옷을 만져 치료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구원을 선언하셨다(22절). 그리고 들어간 회당장의 집은 이미 호상군을 불러 애곡하고 있었다(23절). 그러나 예수께서 인정하지 않고 소녀를 일으키셨다(25절). 예수는 죽은 자를 살리는 권세를 가지셨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어려운가? 구원시키는 일이 어려운가? 둘 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5. [마 9:27-34]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신들려 말 못하는 이를 고치셨다. 예수는 두 맹인의 외침(다윗의 자손)에 의해서 고쳐주셨다. 그것은 다윗의 자손이 눈 뜨게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자손은 이스라엘을 회복할 정치적 메시아인가? 약한 자의 음성을 듣고 위로하시는 메시아인가? 그리고 예수께서 귀신에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셨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귀신의 왕으로 규정했다(34절). 어떻게 귀신들려 말을 못한다고 규정했을까? 어떤 최면 혹은 술법으로 말을 못하게 했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출애굽기에 애굽의 술사들이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고, 나일 강의 물을 피로 만들게 하는 능력과 같다. 어떤 자들이 술법으로 말을 못하게 한 뒤에 예수께로 데려 왔는데, 예수는 그것을 풀어 회복해주셨다. 아마도 술사들은 귀신을 들리게 할 수는 있어도 회복시키는 능력은 없었을 것이다.
6. [마 9:35-38] 백성을 불쌍하게 여기는 메시아 왕은 백성을 통제하고 부리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왕의 부하들은 왕의 힘을 받아 더 심하게 통제하고 압제한다. 그러나 예수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 메시아이시다(35절). 그리고 무리를 볼 때 여전히 권력에 부착된 불쌍한 모습을 보셨다. 20세기 니체는 교회가 권력의지의 생산기관이기 때문에, 권력을 파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예수는 권력의지(굴종)한 상태를 불쌍하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 무리를 인도할 목자가 없었다. 권력의지에서 벗어나도 새로운 울타리가 없으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권력의지에 벗어난 유일한 기관이 교회여야 한다. 그런데 20세기 니체의 눈에는 오히려 교회가 권력의지의 온상이었다. 그래서 주님의 예언은 적실하다. 20세기 기독교화된 유럽 사회에 얼마나 많은 목사가 있었겠는가? 백성은 추수할 일군을 보내달라고 외쳐야 한다(38절). 거짓 선지자(목자)에게 자기의 영혼을 위탁시켜서는 안 된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도둑에게 열쇠를 맡기는 것은 자기 책임이다. 자기 영혼의 안위를 위해서 일군을 구해야 한다(마 7:7).
8. 전능하신 하나님, 주 예수의 사역을 볼 때 겸양과 능력과 사랑을 봅니다. 주 예수께 부름을 받아 종된 사역자들을 배출해 주옵소서. 그리고 신실한 주의 자녀들이 주의 종들과 함께 복된 주님의 교회를 이룰 수 있도록 복을 주옵소서. 주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와 몸된 지체들을 부르셔서, 주 앞에 나온 백성의 영광과 찬양을 받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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