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마태복음의 첫번째 강해 준비(마1:1-17)

형람서원 2014. 12. 20.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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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의 첫번째 강해 준비(마1:1-17)
 닉네임 : 이세령  2014-12-20 18:04:04   조회: 48   
필자 주: 이번주에는 원고가 늦었습니다. 다음 주간부터 주초부터 진행되는 작업을 차례로 업그레이드 할 예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댓글을 통해서 독자들이 참여를 하실수 있습니다. 이 작업을 마태복음이 마칠때까지 지속적으로 할예정이고, 함께 참여하는 분들을 중심으로 다른 본문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절기나 교회력으로 인해서 중간에 다른 본문들이 삽입될 수 있습니다. 


2014.12.21 주일 설교 준비

본문 마1:1-17 (창12:1-3, 삼하7:8-16)

설교 작성을 돕는 과정이 다음과 같이 진행한다. 
본문에서 출발하여 주해를 통한 저자의 의도 그리고 원독자와의 대화(기록목적)를 탐구하여 얻어진 진리의 결론을 현재의 독자와의 대화의 한 형태로서 설교를 작성한다. 

1. 본문 확정
1) 신약의 경우 N-A 28판이 나왔다. 필자의 경우 27판을 가지고 있다. 28판이 인터넷으로 발표가 되었기에 참고한다(http://www.nestle-aland.com/en/read-na28-online/). 오늘 본문의 경우 사람 이름의 철자법에 대한 경우 한 두 가지와 16절에 대한 이문이 있는 것을 제외하곤 별 논쟁이 없다. 
2) 16절의 이문의 경우
처녀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이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를 낳았다
여기서 기존의 본문은 마리아에 의해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고 함으로 낳다의 신적수동태 동사이고, 이문은 요셉이 주어가 되어서 다른 족보의 인물들과 같이 낳다의 능동태 동사가 사용된다. 대다수의 사본들이 이문보다는 현재 본문을 선호한다.
신적 수동태는 행위를 강조하고, 그 행위를 행하는 주체가 하나님이시다. 의역하면 하나님이 낳으셨다이다. 
3) 따라서 본문을 그대로 확정하여 번역한다. 

2. 본문의 번역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야곱과 낳았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았고, 아미나답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았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았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았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았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았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았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았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았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았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았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았고, 아몬은 요시아를 낳았고, 
요시야는 바벨론으로 이주할 때에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
바벨론으로 이주한 이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았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아고,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았고, 아비훗은 엘리야김을 낳았고, 엘리야김은 아소르를 낳았고,
아소르는 사독을 낳았고, 사독은 아김을 낳았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았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았고, 맛단은 야곱을 낳았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가 태어났다. 
모든 세대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세대이고,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주할 때까지 열네 세대이고, 바벨론으로 이주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세대이더라.

3. 본문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
1) 아브라함의 자손이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1절이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거룩한 구속역사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다윗의 언약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담고 있다. 
다윗의 자손은 다윗 언약의 성취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연결된다. 창12:1-3 한 나라를 형성하는 약속이 모든 나라 민족들에게 복이 된다. 마28:18-20절의 지상 명령이 그 성취의 내용이다. 

2) 족보에 등장하는 5명의 여인들이 족보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문제에 답변을 위해서 다양하게 질문할 수도 있다. 사라와 리브가와 라헬과 레아와 같은 족장들의 아내들이 등장하지 않는가? 족장들의 아내들과 족보의 여인들이 차이가 있는가? 
왜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4명의 여인들이 등장을 하는데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와 마리아를 언급하기까지 여인들이 등장하지 않는가? 왜 다윗의 아내는 밧세바라는 이름이 아니라 우리야의 아내로 소개되고 있는가? 이후로 여인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절정의 다윗 정권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로서 다윗의 나라도 무너져서 결국 둘로 나뉘이고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가 된다. 마태복음에서 여자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4명의 여인들과 마리아의 경우는 연속인가 아니면 불연속인가? 다르게 말하면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과의 차이점이 있는가? 
대부분 이방 여인들이다. 마리아의 경우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인이 아이를 가졌다. 각자가 역사의 방향과 성격에 의미있는 기여를 했다.
죄인들이라는 견해와 이방인들이라는 견해가 있지만 모두 약점이 있다. 오히려 각 경우가 구속사의 한 전환점을 이루는 사건들이다. 여인들이 투입됨으로서 역사를 바로 잡는다. 
다말의 경우 유다의 씨를 보존했고, 라합의 경우 하나님이 주신 땅에 대한 신앙으로 이스라엘의 약속 성취에 기여하고, 룻의 경우는 기업 무름을 통해 다윗의 조상으로 역할을 하고, 우리야의 아내는 절정에 있던 다윗의 권력이 가진 부패상을 증거하면서 다윗 왕국의 한계를 보임과 동시에 솔로몬을 왕위에 세우는 역할을 한다. 마리아의 경우는 처녀로 잉태하여 임마누엘의 성취를 이룬다. 
여기서 'ek(by or from)'라는 전치사를 사용하는데, 마리아의 경우는 성령이 대신한다. 따라서 앞서 여인들 가운데 거룩한 역사를 이끈 성령과 마리아의 잉태에 나타난 성령은 동일한 역사이다. 
거룩한 역사를 위해서 이끄는 힘은 이방인 여인들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동참하게 한다. 마리아의 잉태는 물론 그러하다. 
추문과 기사를 통해서 구원 역사에 여인들의 등장이다. 마리아의 처녀 잉태도 그러하다. 
이방인들의 피와 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족보이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그 역사가 계속되었다. 

3) 왜 마태의 족보는 아브라함에게서부터 내려오는가? 
누가의 경우는 왜 반대로 기술되고 아담과 하나님께로 올라가는가? 
요한의 경우는 왜 창조로부터 예수님을 연결하는가?
마가는 기원의 문제를 제외하고 시작을 세례 요한부터 한다. 그 이유는?
이런 모든 것이 저자의 원 독자들과 관련된 것인가?
마태의 경우 구약의 인용이 자주 나타나는 현상과 비교할 때, 독자가 유대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다윗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의 존재를 알리고 그의 사역을 소개하는 것이 저술전략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이방인에게도 열려있는 나라가 천국임을 소개한다. 

4) 족보의 구성은 어떻게 되는가?
(7*2=)14*3 구성의 의미는?
다윗 왕과 바벨론 포로가 마디로서 하는 역할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나라가 다윗 왕을 통해서 일차로 성취되지만 그러나 온전한 나라가 되지 못해서 결국 망한다. 그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의 도래가 필요함을 말한다. 
1:1과 17절이 교차 대칭구조(chiasmus)를 형성한다. 
예수 그리스도/ 다윗/ 아브라함(1)/ 아브라함/ 다윗/ 예수 그리스도(17) 

5) 족보와 마태복음의 목적과는 어떻게 상관하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 혹은 왕국으로 표현하면서 천국의 도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나라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를 예수님을 통해서 보인다. 구약의 율법의 성취에 관심을 가진 저자는 직접적인 구약 성취를 인용을 통해서 하고 있다. 

4. 본문의 핵심 주제
메시야가 오시기까지의 거룩한 역사는 약속의 복음을 믿는 믿음의 역사이다. 

5. 설교를 위한 구성
제목: 거룩한 역사와 복음
서론: 족보는 압축적인 역사이다. 
본론:
1) 예수님의 족보는 거룩한 역사이다. 
2) 이 족보에는 믿음의 여인들이 참여하였다. 
3) 여인들의 믿음의 뿌리는 성령의 역사이다. 
결론 예수님의 성육신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역사를 굳게 세우는 기초이다. 

6. 설교 구성을 위한 구체적인 설명
1) 족보는 거룩한 역사를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 구성의 중심이 되는 아브라함, 다윗, 바벨론 포로로 거쳐 예수님께 이어지는 역사의 일관성을 언약과 약속을 중심으로 이해한다.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족보와 역사이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세 가지의 약속이 의미있다(창12:1-3). 민족과 땅과 이름의 창대이다. 세 가지는 합쳐서 나라를 말한다. 아브라함이 떠나야 할 것도 고향(본토), 친척, 아비 집으로서 약속된 세 가지와 같다. 땅과 사람과 권력질서이다. 결국 세상나라를 떠나서 하나님이 약속한 복이 되는 나라를 소망하면서 나아간 것이 아브라함이고, 이스라엘의 의미이다. 
다윗에게 준 언약은 삼하7장에 나오는데, 이름을 창대하게(위대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으로 권력과 질서를 공고히 하시는 것이다. 권력이 아들에게로 연속되고,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어 성전을 지음으로 나라를 확고히 세운다는 약속이다. 
이렇게 세워진 권력을 잘못 사용한 다윗의 정권이다. “우리야의 아내”라는 표현이 이를 지적한다. 그리고 다윗의 왕권은 바벨론 포로로 귀착되고 망한다. 그러나 실패한 역사속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는 계속되었다. 메시야가 오시기까지.

2) 거룩한 역사에 참여한 여인들의 명단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거룩한 역사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역사에 참여한 여인들이다.
다말은 유다 집의 씨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유다로부터 옳다 인정을 얻는다(창38:26)
라합은 가나안을 이스라엘에 주었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여 생명을 보존하여(수2:9)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다(수6:25).
룻은 나오미의 하나님을 섬기기로 하고 베들레헴으로 가서 기업의 권리를 얻어서 다윗의 조상 오벧을 낳았다. 
우리야의 아내는 불륜으로 아이를 잃어버렸지만 솔로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과(삼하12:24-25) 다윗의 맹세를 따라서 다윗의 왕권을 세웠다(왕상1:17).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졌다(마1:18-19)

3) 여인들이 가진 약속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은 자녀를 얻어서 역사를 보존하였다. 
자녀들을 낳았다는 진술의 일관성이 이렇게 표현된다. 

3절에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5절에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5절에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6절에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16절에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렇게 여인들이 등장해서 아이를 낳음으로 그들의 믿음을 증거했다. 이런 모습을 공통적으로 “00에게서”라고 했다. 여기에 적당한 전치사가 모두 ‘ek(영어로 by 혹은 from)’가 사용되었다. 

16절에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다는 진술을 마1장 18, 20절에서는 약간 다르게 적고 있다. 
18절에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20절에는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성령으로’라는 표현에서 사용된 전치사가 바로 앞에 ‘마리아에게서’에서 사용된 동일한 전치사 ‘ek(by)’이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면,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조상들, 유다가 베레스와 세라를 낳은 것에도 다말에게 성령으로 잉태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라합이 이스라엘 백성이 되고 아이를 낳은 것도 마찬가지이고 룻이 오벳을 낳은 것도, 우리아의 아내가 불륜의 자식을 희생물로 잃어버리고 다시 다윗의 아내로서 솔로몬을 낳은 것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여인들이 믿음으로 거룩한 역사에 참여하였다. 거룩한 역사를 이루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의 뿌리는 성령의 역사임을 말하고 있다. 

7. 설교 적용을 위한 논의들

우리가 성탄을 앞두고 있다. 
세상은 어지럽다. 파키스탄 탈레반이 어린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서 서양교육을 받는다고 교사와 학생들을 백명 이상 죽이는 테러를 벌렸다.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에 대한 보복으로 수백명을 색출하여 죽였다. 
한국에서는 땅콩 회항이라고 하는 기가 막힌 힘의 갑질이 있다. 반면에 텔레비전에서 미생이라는 드라마로 재벌집의 딸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평범한 직장인들이 살아내야 하는 삶의 애환을 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권력의 핵심부에서 영향을 미치려는 세력들 간에 암투가 일어나고 있다. 
이번 주간에는 통진당이 민주주의 사회를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해산되고 의원직들이 상실되게 되었다. 이것을 놓고 사람들의 입장을 칼질 할 후폭풍을 생각할 때, 정당이 심판 대상으로 오른 것이나 진보의 섣부른 행보나 모두 안타깝다. 
어수선한 세상이다. 

오늘도 힘과 폭력 권력과 돈 그리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춤을 추는 세상을 살고 있다. 교회는 이런 세상 속에서 성령으로 말미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망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주님의 교회와 주의 백성들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생명을 가졌다. 성탄의 계절에 기억할 것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거룩한 믿음이 바로 우리를 소망없는 세상 가운데에서 거룩한 역사로 참여시키는 유일한 힘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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