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이야기

칼빈 시편 주석 독서를 시작하면서

형람서원 2012. 10. 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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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 시편 주석 독서를 시작하면서

 

칼빈 주석을 독서하는 것은 칼빈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학도로서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창훈 목사가 서울 방배본 교회를 개척하면서 첫 번째 설교과업으로 칼빈 주석 독서를 근거로 설교를 계획하였다. 이에 사랑하는 후배가 앞서감에 즐거움과 도전을 느껴 늦은 감이 있지만, 칼빈 주석 독서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전에도 시도하였지만 이루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주석의 독서를 순서로 늦어도 끊임없이 진행하려고 한다. 먼저 시편 주석을 선택한 것은 시편의 이해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칼빈의 시편 주석에서 기독론적 주해를 탐구하길 원한다.

 

고경태 목사

 

1. 서문

 

칼빈은 서문을 인사로 시작한다. “경건하고 진실된 독자에게 문안합니다.” TO THE GODLY AND INGENUOUS READERS, GREETING. 칼빈의 시편 주석은 헌사가 없이 독자에게 주어지며, 자기 인생의 반추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교회”에 자신의 주석이 유익되기를 의도하며 기대했다. 이 시편 주석은 칼빈이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3년 동안 시편 주해 강의를 통해서 진행되었다. 강의실에서 진솔하게 진행되었던 강의가 주석으로 완성된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신실한 사역자로 마틴 부처(Martin Bucer)를 지목하며, 그의 영향력을 제시했다. 부처는 칼빈에게 주석 방법론을 보여주었고, 부처의 시편 주석이 있었지만 칼빈은 자신의 시편 주석을 발행하였다. 그것은 강의를 통해서 주위에서 책으로 출판이 독려되었기 때문이다.

시편 주석은 프랑스어로 계획하였으나, 집필의 시작에 라틴어로 전환되었다. 칼빈의 라틴어 저술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또한 칼빈은 자신의 강의 내용이 와전되어 출판되는 것을 우려하여 스스로 자신의 이름으로 주석을 집필하였다. 그래서 훈련받지 못한 독자들에게 중요한 도움을 주려고 했다.

 

칼빈은 시편을 “보물(treasury)”로 규정하고, 보화를 말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였다. 경솔한 주석으로 보화의 다양하고 찬란함에 손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시편을 “영혼의 해부학(An Anatomy of all the Parts of the Soul)”이라 하였다. 시편을 어느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인간의 모든 혼란된 감정을 생명으로 바꾸심이 시편에서 잘 나타난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명령과 선포를 주시지만, 시편에서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고백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는 위선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칼빈에게 시편은 기도의 책이다. 칼빈은 시편에서 기도가 하늘의 가르침(celestial doctrine)에 도달하는 훈련도감의 형식으로 제시했다.

 

진실되고 진솔한 기도자는 먼저 자기의 부족함을 느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나온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것은 영혼의 평화이다. 인간은 육체의 장애에서 오는 흔들림에서 기도하게 된다. 힘이들면 들수록 더욱 기도에 힘쓴다. 기도의 문이 닫혀 응답이 없더라도 기도에 더욱 힘쓴다. 좌절과 실패에서도 불굴의 노력으로 기도하여 상을 받는다. 그것은 육신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경건의 삶을 증진하는 것이며, 험한 풍파에서도 영혼의 평정을 갖게 된다.

시편에서는 바른 기도를 하는 참된 방법을 보여준다. 칼빈은 기도의 특권(privilege)을 주석을 통해서 부각시키려 한다. 특권이란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자기의 내면도 말할 수 있는 자유와 허용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은밀한 것도 하나님께는 허심탄회하게 고백할 수 있다. 이것은 무오의 법칙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달콤한 향기(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하셨다. 어떤 성경에서도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움과 사역에 대한 위대한 찬양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로서 보살피시며 염려하여 주신다. 그래서 시편에서는 하나님을 바르게 찬양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훈련시킨다. 이 훈련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달콤함을 맛보게 된다. 하나님의 의지하며 찬양할 때, 자신의 부족함과 환경의 혹독함에도 불구하고 달콤함을 맛보게 된다.

 

[칼빈의 인생 회고] 칼빈은 자신의 인생을 다윗의 삶과 비교함을 크게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칼빈은 다윗을 “고난의 인생”으로 규정했다. 칼빈이 이해한 다윗은 수많은 원수들에게 포위된 인생으로 보았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섬긴 신실한 백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목자인 다윗을 왕으로 세움을 칼빈은 비천한 자기를 영광스러운 복음의 설교자와 사역자(the honorable office of a preacher and minister of the gospel)로 세움으로 대비시켰다.

 

칼빈의 자신의 유년시절이 아버지의 인도를 따라서 신학과 법학을 공부했는데, 아버지의 뜻은 부의 축적에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 칼빈에게 하나님의 섭리의 은밀한 보호가 있어 교황주의의 우상에 헌신하던 그가 갑자기 변화(sudden conversion, subita conversio)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teachable, docilis). 이 변화는 칼빈의 일생에서 전혀 뒤집히지 않는 철저한 변화였다. 칼빈이 가진 내적 확신은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 칼빈은 회심하여 1년이 지나기 전에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놀랐다. 칼빈은 대중을 떠나서 조용히 학문을 연구하려했지만 자신이 의도한 것처럼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칼빈을 대중적인 주목을 끌도록 하셨다. 칼빈은 1536년에 [기독교강요]를 저술하여 날조된 세계에 대해서 증명하였다. 1557년에 칼빈은 [기독교강요] 초판에 대해서 기독교 핵심 진리의 개요로 평가했다.

칼빈이 제네바에 머물게 된 것은 윌리암 파렐(William Farel) 때문이었다. 1536년 9월, 칼빈은 스트라스부르크를 목표로 했지만, 파렐을 통한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칼빈은 제네바에 머물게 되었다. 당시 제네바는 비레(Peter Viret)의 사역으로 교황주의에서 벗어났었다(1536년 5월). 칼빈은 제네바를 극심한 혼란과 사악하고 위험스러운 도시로 평가했다. 은거생활을 원했던 칼빈에게 너무나 혹독한 환경이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스투라스부르크에서 머물게 되었다(1538년 4월-1541년). 다시 제네바에서 칼빈을 초대할 때에 머뭇거리는 그에게 부처는 파렐처럼 엄중하게 권고했다. 결국 칼빈은 제네바로 귀환하여 사역하게 되었다. 칼빈은 이러한 인생의 여정을 다윗의 일생에 비교하였다.

 

칼빈은 사단이 교회를 전복시키기 위한 획책에서 생명을 걸고 변호하고 있다고 하였다. 헛된 가르침은 믿음이 없고 천국의 가르침(교리)을 경멸하는 자들이었다. 칼빈은 1557년 이전 5년 동안 심각한 갈등을 제시했다. 이러한 시련의 근원은 교회 안과 밖에서 있었다. 그들은 칼빈이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제시한다고 힐난했다. 교회의 공적인 원수들의 공격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형제라는 부류들의 공격에 대해서 심각한 상처를 제시했다. 그리스도의 종의 권위를 갖는다하고, 교회의 권위로 헛된 가르침을 일삼는 무리는 칼빈에게 큰 압박이 되었다. 이러한 심각한 어려운 상황에서 칼빈은 시편을 묵상함으로 극복할 수 있음을 제시했다. 성경 시편을 읽는 독자나, 칼빈 주석을 독자는 내적 감정이 하나님의 보물로 평안함을 누려야 한다.

 

칼빈은 주석하면서 “단순한 문체”(a simple style of teaching)의 원칙을 제시했다. 그리고 반대자들의 견해에 대해서는 언급을 될 수 있는데로 피했다. 수 많은 자료의 제시보다 교회의 건덕(the edification of the Church)에 관심이 있다. 칼빈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역이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했다. 칼빈의 저작을 읽음으로 교회를 더욱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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