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광주

[스크랩] 풍암정...광주 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 15호

형람서원 2010. 2. 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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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광주 북구 충효동 718소재.(원효계곡 하류)김덕령의 동생 풍암 김덕보가 낙향하여 지낸 정자로 정면,측면 모두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그리고 좌우에 1칸씩 온돌방을 두었다. '풍암'이라는 명친은 단풍과 바위가 어우러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김덕보의 자는 자룡,호는 풍암으로 의병장 김덕령의 아우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큰형 덕홍이 금산에서 순절하고,작은형,덕령은 모함을 받아 죽고,작은 형수마저 정유재란때 추월산에서 왜적의 화를 피해 순절해 집안은 풍비박산이 된다. 그후 모든것을 잊고자 원효계곡의 이 정자에 머무르며 도학과 경륜을 쌓으며 운둔생활을 한다. 사후 영조때 두형과 더불어 의열사에 추배되었다. 건물은 계곡에 기대어 축을 단정하게 쌓은후 기단을 쌓아 안정감있고 단아하다.

2.풍암정사 현판...정자의 또다른 이름(풍암정사)이나 주변의 집터를 보면 학당을 짓고 학문을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정사'란 공부를 가르치는 곳을 의미한다.(아날로그 시절에는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네요.원래 있었던 건지 아님 중간에 걸린건지 아시는 분 글 올려주세요.)

3. 정홍명이 쓴 풍암기, 임억령,고경명,안방준,정홍명,김덕보등의 제영을 새긴 판각이 걸려 있어,많은 문인들이 출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1614년 (광해군6)기암 정홍명(송강 정철의 네째 아들)이 쓴 '풍암기"의 내용으로 보아 1614년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송파 임식, '호남 절의록'을 쓴 의병장 우산 안 병준, 제봉 고 경명등의제영을 세긴 판각이 걸려 있어 이로 미루건데 이곳에는 이름있는 문인들이 김덕보가 지내기 이전부터 출입하였다고 미루워 볼 수 있다..

 

 

 

4.눈덮인 풍암정

소나무옆 큰 바위에도 '풍암'이라 새겨져 있다. 500년전에도 저 바위는....500년후에도 저 바위는....

정홍명의 풍암기에따르면 바위를 끼고 100여구루의 단풍나무가 있었다는데...그래서 단풍나무'풍' 에 바위'암'이 합쳐져 풍암정이 되었는데 단풍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가을이면 서리를 맞은 단풍이 물에비춰 물빛이 단풍이고 단풍빛이 물빛이라고 정 홍명이 노래했는데.....큰 바위 앞 나무는 건재하지만 정자 뒷쪽의적송 세 구루가 구름다리 건설공사로 인해 뿌리가 말라 죽어 아쉬움...다행히 공사는 멈췄지만....

 5.'송 필용'씨의 비온 후의 풍암정

 

 6.들리나요?원효계곡의 물소리...

 

출처 : 대동문화-초등학교문화예술교육강사
글쓴이 : 박성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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