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1일 목요일
사무엘하 6:1~11
제목: 성급한 열심과 잘못된 지식
정치와 외교 문제를 안정시킨 다윗은 예루살렘 성에 법궤를 옮기고 성전을 건축함으로 완전한 신정국가를 실천하였다. 그 시작부터 여호와의 궤에 대한 성급한 열심을 낸 다윗과 언약궤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갖은 웃사로 백성들이 경악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1-5절.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도중
1-2절.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30,000명을 선출하여 하나님의 궤(the ark of God)를 메어 오려 한다(1-2절). 하나님의 궤가 귀환 후에 있었던 장소는 '바알레유다'(Baale of Judah)이다. 마땅한 도성이 없었던 사사 시대와 첫째 왕인 사울의 시대 그리고 다윗의 불안전한 통치기간 약 70년 동안 하나님의 궤는 거의 방치된 수준에 있었다. 다윗은 이 하나님의 궤를 도성으로 옮겨 진정한 여호와의 나라를 외형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개정개역 “메어 오려”는 영역의 ‘bring up’이다. 쉬운성경은 ‘옮김’으로 번역했다. 개정개혁의 ‘메어 오려’는 것은 후 문맥에서 수레로 운반하는 것과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단순히 옮기는 뜻으로 번역해야 맞다. 그래야 여호와의 진노도 설명할 수 있다. 다윗은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성대하게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려는 시도를 했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다윗이 선한 의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했지만, 불법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3절. 하나님의 궤는 새 수레에 실려서 아비나답의 집에서 운반이 시작되었다.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가 수레를 잡았다. 아비나답은 레위 지파로서 언약궤를 보존하는 복된 가정이었다. 그러나 언약궤가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있에서 언약궤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교육되지 못했던 것 같다.
4-5절. 다윗은 언약궤를 옮겨가는 것에 기쁨이 가득했다.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이 여호와의 은혜에 착념된 것처럼 기쁜 일은 없다. 다윗은 찬양대를 조직하여 찬양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이동하였다. 다윗이 여호와를 향한 열심히 얼마나 특심했는지는 찬양대를 조직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찬양을 사모하는 백성이 되자.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6-8절. 웃사의 죽음
나곤의 타작 마당에서 소들이 뛰어 언약궤가 흔들릴 때에 웃사가 언약궤에 직접 손을 대었다(6절). 여호와께서는 웃사의 잘못으로 치셔서 하나님의 궤 옆에서 죽도록 하셨다(7절). 웃사의 죽음은 다윗에게 큰 충격(was angry, was displeased)이었다. 다윗의 분노는 ‘하나님을 향한 분노’와 ‘웃사의 죽음에 대한 자기 무지에 대한 분노’로 구분되어 이해되었다.
웃사는 하나님의 궤에 대한 지식이 없음으로 죽음을 당했다. 하나님 앞에서는 왕의 명령이 우선하지 않고, 여호와의 규례가 우선한다. 그러므로 언약궤의 담당자인 웃사와 아효는 다윗의 운반방법을 저지했어야 하며, 또한 흔들리는 수레에서 떨어지려는 언약궤에 손을 대어서도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분노하지 않으시고, 웃사에게만 분노하셔서 웃사만 죽임을 당한다. 그것은 언약궤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레위인의 관할에 있기 때문이며, 레위인들은 율법을 내용과 해석을 백성들에게 잘 교육해야 할 의무도 있다. 그래서 모르고 죄를 짓는 일이 없어야 한다. 목사들은 교우들을 잘 교육하여 모르고 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열심과 권세를 갖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꾸준한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마땅히 알아야 될 신앙지식이 없는 것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9-11절. 오벧에돔의 집으로 간 여호와의 궤
다윗은 웃사의 죽음으로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일을 중단한다(9절). 여호와의 궤는 오벧에돔의 집으로 들어간다(10절).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3 개월동안 머물게 된다. 오벧에돔은 고핫 자손(대상 26:1-4)으로 레위 지파이다. 가드 사람이라고 한 것은 그가 가드 태생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오벧에돔의 온 집에 복을 주셨다.
다윗은 여호와의 진노의 모습에 두려움에 쌓여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일을 중단해 버렸다. 다윗이 그렇게 사모했던 여호와의 진노로 거룩한 사역이 중단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의 진노에도 거룩한 사역의 진보는 쉬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분노 중에라도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바라보며 전진해야 한다. 분노, 두려움 때문에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다윗 또한 여상한 인간이기에 거룩한 여호와의 사역을 진노의 무서움 때문에 중단하고 만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변함없이 오벧에돔의 집에 특별히 복을 주신다(11절).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시기도 하지만, 다윗의 마음을 위로하여 다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함이다. 실패에 포기하지 않고, 원인 분석과 대안으로 전진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방향성은 결정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나아가는 길은 누구도 맊을 수 없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법을 알아 순종하게 하시옵소서. 부지에 지은 죄악을 간과하지 마시고 주의 신실한 법을 가르쳐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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