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6일 토요일
사무엘하 3:17-26
제목: 아브넬과 요압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권계를 불순종하고 이스라엘 장로들을 회유하여 다윗에게로 옮겨가는 기회주의 행동을 한다. 다윗은 이 아브넬을 포용하지만, 요압이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17. 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러번 다윗으로 너희 임금 삼기를 구하였으니
18. 이제 그대로 하라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셨음이니라 하고
19. 아브넬이 또 베냐민 사람의 귀에 말하고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온 집이 선히 여기는 모든 것을 다윗의 귀에 고하려고 헤브론으로 가니라
17-19절. 이스라엘 장로들을 회유하는 아브넬
아브넬(Abner)은 이스보셋의 무능에 불만을 갖은 장로들을 회유하여 다윗에게 마음을 옮기는데 성공했다. 아브넬이 호소한 것은 경제적 강성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먹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브넬을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백성들의 마음을 제휴카드로 갖고서 헤브론으로 들어간다. 아브넬은 장군이 아니요 기회주의적인 정치가로 권모술수에 능한 자라고 볼 수 있다.
이스보셋의 무능은 아브넬과 장로, 백성들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 여하에 있지 않지만, 세상 나라는 통치자의 능력에 관련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의 계절을 사모한다. 이 땅에서 기회를 따라 변하는 카멜레온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사자로서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아브넬과 같은 권모술수에 속지 않는 길은 먼저 세상의 유익을 쫓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20. 아브넬이 종자 이십인으로 더불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 다윗이 아브넬과 그 함께 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더라
21. 아브넬이 다윗에게 고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하게 하고 마음의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저가 평안히 가니라
20-21절. 아브넬을 환대하는 다윗
아브넬은 20명의 수행단을 이끌고 헤브론에 입성한다. 다윗은 그들을 환대한다. 잔치를 베푼 것은 아브넬과 협약이 이루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윗이 아브넬을 포용하는 것은 어떤 의도인가? 권모술수에 능한 간신 아브넬의 청(請)을 듣는다. 아마도 다윗의 특징은 무조건적인 포용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히 여기셨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은 말씀하지 않는다. 다만 요압의 불순종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만 피력될 뿐이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포용력을 길러야 한다. 내가 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22.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23. 요압과 그 함께 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혹이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저가 평안히 갔나이다
24.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가로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저를 보내어 잘 가게 하셨나이까
25.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의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왕의 출입하는 것을 알고 모든 하시는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26. 이에 다윗에게서 나와서 사자들을 보내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가에서 저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22-26절. 다윗의 행동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하는 요압
22절. 다윗이 아브넬과 함께 협약을 할 때에 요압은 전쟁터에 있었다. 중요한 사안에 요압이 전쟁터에 있는 것은 다윗이 요압의 상태를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배제했다는 의견이 설득적이다(재인용, 호크마 주석. Pulpit Commentary, Lange, The Interpreter's Bible).
요압은 다윗의 합당하지 못하게 생각되는 행동에 대해서 심한 거부를 표현한다. 요압도 아브넬을 거부한 이유는 다윗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위치와 동생에 대한 복수심뿐이다.
아브넬과 요압의 공통점은 언약의 나라 회복에 관심이 없다. 오직 자기의 권력과 명예에만 관심이 있다. 다윗은 이러한 사람을 데리고 언약의 나라를 완성시켰다. 다윗의 인내와 지혜를 알 수 있다.
요압은 왕의 행동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불순종하는 행동을 한다(26절). 불순종은 마음을 하는 불순종과 행동으로 하는 불순종이 있다. 요압은 둘이 다 실현됨으로 다윗의 신하가 아닌, 자기 목적을 위한 사람임을 증명한 것이다. 다윗은 그 요압을 자기의 최고의 참모로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끼리 모여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다윗은 자기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지혜로워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전천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에 권모술수가 난무하지만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오직 주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과업을 완수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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