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정상회담: 통일이 보다 경제 발전으로...
“남과 북의 정상회담”이라는 말 자체가 커다란 인식의 변화가 온 것입니다. 과거 이데올로기 교육 시대에는 북한의 지도자에게 “정상(頂上)”이라는 말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북의 김정일을 ‘정상’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미 북한을 정식적인 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公和國,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 정당한 양 국가로 서로 인식함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분단의 역사 이후에 양 체제의 정상들이 서로 만난 것은 민족의 대역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청년 세대에게 통일에 대한 큰 개념이 없지만, 386세대까지는 통일은 민족의 가장 큰 열망이었습니다. 민족정신 때문에 통일을 추구했지만, 이제는 경제원리 때문에 통일을 추구합니다. 이제 대한민국도 다민족 국가에 진입하여 민족정신보다는 공동체 정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공동체의 유익은 항상 문화와 경제의 유익과 직결됩니다. 특히 북한과의 교류와 통일은 문화적인 요인보다 경제적인 요인으로 접근합니다.
세계 경제의 포탈로서 한반도의 활용을 위해서는 북한의 개방이 필수적이며, 통일이 된다면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으로는 다양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 중심의 사회에서 상실되는 인간성(민족애)등은 더욱 심각한 경제적 손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즉 참된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어, 문화 수준을 향상하기 위해서 동등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왕(king)은 경제의 CEO와 대중문화의 STAR입니다. 국가의 기조 또한 통일제일주의에서 경제를 향상 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결정됩니다. 통일을 시키는 대통령보다,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대통령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와 문화 중심의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원하는 대로 더욱 전문가적 소양을 함양해야 합니다. 진정한 인간성은 섬김(봉사)과 사랑(자비)입니다. 즉 비록 경제전문가가 되지 못하고, 문화의 스타가 되지 못한다할지라도 섬김과 사랑만 있으면 이 시대에는 주도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통일이 되든지 되지 않든지 경제와 문화 수준에 유익한 것을 판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대정신이 아무리 변하여도, 기독교의 원리인 섬김과 사랑의 삶의 방식은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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