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교회의 순결과 일치(연합)

형람서원 2007. 10. 1.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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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유일교회에서 출발한 기독교는 2000년이 지난 지금 다양한 분파들이 존재합니다.

 

다만 325년에 정죄된 이단인 아리우스 이단과 451년에 정죄된 네스토리우스 이단은 기독교에서 공식적인 명칭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네스토리우스는 경교로 동쪽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기독교의 이름으로는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로 많은 기독교 종파의 발생은 정통과 이단의 분류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모든 기독교종파들이 정통의 범주에 편입되었습니다.

 

기독교 종파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동방교회의 희랍정교회, 러시아정교회, 시리아정교회로 분류되고

서방교회는 개혁교회(장로교), 루터교회, 로마교회, 감리교, 성결교, 오순절, 침례교로 크게 대별됩니다.

 

이렇게 많은 분파들은 교회의 일치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일치의 과정에서 일치를 거부한 분파가 미국에서 메이첸을 중심(1920-1936까지)으로 일어났습니다.

 

구 프린스톤 신학자들의 이러한 태도야말로,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소위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 논쟁에서, 메이천으로 하여금 그 논쟁의 중심에 있도록 만들었다. 사실, 메이천은 자신이 근본주의자로 불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개혁신학자로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천은 당시 용어대로 정의하여 근본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다.
당시 근본주의 운동은, 자유주의 또는 근대주의 신학에 반대하는 범교단적인 보수연합세력의 결집이었으며, 오늘날의 왜곡된 용어의 사용과는 분명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근본주의 운동은 오늘날 용어상 구별이 필요하다.
19세기 후반부터 1930년대, 정확히 말하면 메이천 박사가 미합중국 장로교회에서 목사직이 박탈된 1936년까지와 그 이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자를 우리는 근본주의 운동으로 부르고, 후자(1936년 이후)를 "신근본주의"로 부른다.
1936년 이후의 신근본주의 운동에서는, 1936년 이전과는 달리, "분리의 교리"(Doctrine of Separation)를 주장할 뿐만 아니라, 1차 분리를 넘어 2차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신학적 맥락에서 구프린스톤 신학 전통의 마지막 주자 메이천은 1920년대와 1930년대 근본주의 대 현대주의 논쟁에서,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보수연합세력의 결집인, 근본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논쟁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신학적 자유주의는 기독교의 한 형태가 아니라, 기독교와는 뿌리가 서로 별개인 다른 종교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치에서 "교리의 순결"의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칼빈 또한 로마교회에서 분리하면서 교회 일치를 강조한 신학자입니다. 즉 순결, 성령의 역사가 전제되지 않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모두가 속임수이며, 하나님을 향해서 대적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순결이 없는 교회 일치는 세속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죄속함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 연합은 세상과 일치하려는 세상 운동입니다.

교회는 항상 일치를 추구했다는 것이 성경과 기독교역사에서 증명합니다. 그러나 그 일치를 추구하는 선결은 성령의 역사와 피의 구속의 확증입니다. 그리고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해가 교회를 교회되게 하였습니다. 교회는 분명히 일치를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한 믿음을 구성하는 교회가 되어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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