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 헌사
헌사 Calvin's Dedication
올리카의 공작, 빌라의 궁내관, 리투아니아 대공국 대원수, 그리고 대법관이시고 대단히 영명하시고 대단히 존귀를 받으실 만한 군주 니콜라스 랏지빌 전하에게 삼가 문안드립니다.
칼빈이 두 국왕에 대한 이름이 빠져 있는 것에 대한 해명 - 두 국앙이 자신들의 이름 때문에 칼빈의 주석이 좋아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름을 뺀 것이다. 칼빈은 “내가 이 저작으로 인하여 나 자신의 이익이나 어떤 개인적인 명성을 구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자기의 순정성과 두 국왕의 오해를 제시한다. 그리고 칼빈은 “그들이 그처럼 욕망하고 또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그 기분을 그들의 기분대로 내버려 둔다면, 어찌되든 아무도 분개하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1)라고 제시하여 바울의 고백(빌 1:18-20)과 유사하다.
NICOLAS RADZIWILL는 칼빈을 싫어하는 두 군주가 있지만, 복음을 사모함으로 칼빈을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그를 I think you most worthy to have your name appear in the spiritual building of Christ’s temple =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으로 생각하며, 니콜라스의 호의와 애정 그리고 복음을 수용하고, 예배를 유지함에 사도행전 주석을 헌사하게 됩니다. 폴란드 왕의 절대적 신임으로 뛰어난 명성에 의해서 헌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제시합니다.2)
칼빈이 말하는, NICOLAS RADZIWILL의 탁월한 미덕(rare virtue)은 많은 사람들이 경건(godliness)에 열중한 모습을 싫어함에도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빛을 받음으로 이러한 위협을 물리쳤습니다.
교회의 타락을 회복하려고 하는 영주가 없음은 자신의 나라의 혼란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칼빈은 이 영주들이 개혁을 싫어하고 두려워하지만, 이것은 사탄의 공격으로 평가하며, 그리스도의 깃발(under Christ his banner) 아래서 거룩한 전쟁(holy war)을 계속할 것을 독려하며, 자신 또한 격려를 합니다.
칼빈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왕국은 첫째 복음의 가르침(the doctrine of the gospel), 둘째 성도들의 모임(the society of the godly)입니다. 복음의 가르침으로 그리스도는 그 교회를 모으시고 또 그것이 모였을 때에 그는 그 가르침으로써 통치합니다. 복음의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된 사람들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re truly accounted the people of God)이 됩니다. 칼빈은 누가가 이 두 사실을 사도행전을 통해서 생생하고 분명하게 제시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창세 이전부터 항상 다스리시고 계셨습니다. 그 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시고, 복음을 완성하시고, 지상 왕국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심판주로서 영광스럽고 명백하게 나타내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눈을 그에게 돌린다면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3) 칼빈은 복음이 스파르타의 용사들을 유화시켜 온순하고 점잖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복음) 단지 잔인한 야수를 길들일 뿐만 아니라 승냥이나 사자나 곰까지도 어린 양처럼 순하게 하며 날카로운 창을 긴 자루가 달린 괭이로, 검을 보습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스파르타의 “관악기의 아름다운 음악”과 성령의 “하늘의 기쁨의 화음”으로 비교하여 성령의 강력한 능력을 웅변합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하늘에 있으며, 이 땅에서 성령으로 이루어집니다.
매우 영명하신 군주여!(보소서, 가장 고상한 군주여, most noble prince)
칼빈은 시대가 요구하는 군주상을 “부드러운 영향력(such kind of temperature)”을 갖은 사람으로 제시합니다. 누가에 의한 교회의 기원(시작) = 하나님의 능력, 진리의 능력, 성령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이길 수 있는 수준까지 향상된 복음의 진보로서 소수의 연약한 사람들(겨자씨)이 무기도 없이 진리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앙의 씨앗을 뿌림으로 마침내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비록 군주에게 하나님께서 칼을 주셔서 아들의 나라(the kingdom of his Son)를 방어하도록 했지만, 초대교회의 성도들과 같은 용기와 견인성이 없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의 이 노력이 교회 전체에 유용한 것이 되기를 저는 바랄 뿐입니다.”
실로 가장 영명하신 군주시여, 나는 다시 한번 간원하며 개인적으로도 호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적절하게 시작하셨던 바와 같이, 원컨대 그리스도의 주권 지배에 마음을 두시고 또 당신 자신이 전적으로 거기에 전념하시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을 촉진하기 위한 좋은 보조자가 되실 뿐 아니라 그 용감한 기수가 되시도록 말씀을 드립니다. -> 참된 종교의 바른 형식과 훌륭하게 세워진 교회의 질서를 세움(one consent a true form of godliness, and a well framed and reformed order of the Church.)
이 일에는 like overworn soldiers, you should give yourselves to idleness and rest. = 쉴 수가 없습니다.
첫째로, 당신을 괴롭히는 외부의 적이 없을지라도 당신들의 내면으로부터 생겨날 재난이나 장해를 방지하는 일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NICOLAS RADZIWILL 외부의 적으로 스탄카루스(Stancarus, 이태리 신학자), 브란다타(George Blandrata, 이태리 의사), 셀베투스(Servetus, 스페인 신학자, 의사)로4) 서로를 위해서는 관대하지만, 순수한 기독교 교리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혐오와 공격을 갖고 있습니다. 칼빈은 이러한 공격을 ‘페스트’로 비유하였습니다. 이 복음의 훼방, 독(毒)을 방지하기 위해서 “거룩한 평화의 믿을 만한 수호자로서 적정하고 훌륭한 통치의 형태를 당신은 확립시켜야 합니다. 교리의 순결은 교회의 생명인 것처럼, 바로 기율은 육체가 그것과 하나로 결합해야만 그 강한 힘을 보유할 수 있는 힘줄에 비할 수가 있습니다.”5)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좋지만, 외형의 교회만을 공경하는 것이 문제 godly ministers of pure and sound doctrine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 머리되심,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심을 성령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When mention is made of the Church, whose head is the Son of God, and which he, who is the fountain of life eternal, doth always quicken by his Spirit, how ridiculous a thing it is to bring forth a body without a head, and, secondly, a dead carcass.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내용이며 본질이시며 머리이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신성모독(heir sacrilegious violence=the Pope)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작정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그 복음의 가르침을 통하여 가장 큰 자로부터 가장 작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다스린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는 유일한 제사장으로서, 그의 죽음의 속죄 제사를 통해서 아버지의 노하심을 녹이는 것, 즉 그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계속해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의 피는 우리들의 죄의 영원한 속죄 행위이며 우리들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죄 씻는 정결의 수단이요, 그의 순종은 우리들의 완전한 화해이라는 사실이고, 그는 우리들의 기도가 그의 은혜로 인하여 가납(嘉納)되게 하는 유일한 도고이십니다. 우리들은 그의 보호 아래 감싸 주시는 신실한 우리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사실이며, 우리들의 육신의 죄를 제어하여 의와 거룩한 것으로 우리를 다시 지으시고 그 자신만이 우리 안에서 복된 삶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신다는 사실입니다.
Upon this condition hath the heavenly Father made him the head of the Church, that he may govern all men from the greatest to the least, by the doctrine of his gospel; that he may be the only priest to reconcile the Father continually, as he hath once appeased his wrath by the sacrifice of his death; that his death may continually purge our sins; that his blood may be the only washing; that his obedience may be a perfect satisfaction; that he may be a (continual and) sole intercessor, through whose means our prayers may be heard; that he may be a faithful defender and tutor, that he may, by his aid, defend us; that (the vices of our flesh being tamed) he may reform us unto righteousness and holiness; that he alone may begin and finish in us a blessed life.
칼빈은 위의 제시를 로마교회에 제시하여 용납한다면 교회로 인정하겠다고 합니다. 교회의 최소한의 요건이 될 것입니다. 로마교회는 교회의 머리 = 교황, 유일한 제사장 = 교황, 사제이며, 도고자 = 성인에게 기도함, 우리의 보호자 = 사제, 대부(代父)로서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로마교회의 교황제도는 복음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배제되며, 날마다 희생 제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계속하는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수여된 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강조하면서 성령의 역할을 약화시킵니다. 즉 로마 교회에 교리의 순정성이 얼마나 부패되어 있는지에 대한 증명입니다.
공허한 교회의 법(vain canons)을 의지하는 교황주의자들 또한 공허할 뿐만 아니라, 참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큰 위로로써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즉 비록 교황제도주의자들이 제 아무리 제 아무리 거만하게 교회의 칭호로써 우리를 대항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분명한 적에 대해서만 싸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명하시고 가장 뛰어나신 각하여, 이제 작별의 인사를 드립니다. 주께서 그 성령으로써 언제나 당신을 인도하시고 모든 방법으로 당신의 품위를 높여 주시며 당신의 거룩한 사업에 최후까지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제네바에서 1560년 8월 1일 존 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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