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창세기 42, 18:38. 제목: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형람서원 2007. 6. 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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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2장 18-38절


제목: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내용: 요셉은 자루에 돈을 넣고, 또 정탐의 누명을 씌어서 시므온을 볼모로 잡고 베냐민을 데려오면 독실한 자로 인정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노중에서 본 자루에 가득한 돈은 함정으로 이해하기 충분하여 야곱은 베냐민을 보낼 것에 대해서 완고하게 반대한다.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8-24절)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린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요셉은 인정하기에 형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그것(하나님의 섭리와 요셉이 용서함)을 알지 못하고 있고, 그 과거의 죄에 매여 후회와 분열이 있습니다(21-22절).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미움과 시기 속에서도 자신의 경륜을 이루어가십니다. 인간의 악함이 하나님의 가장 심오한 사역으로 연결됩니다(고전 1:25).


28절) 하나님은 식언치아니시고(민 23:19), 시험하지 않습니다(약 1:13). 그러나 급박한 형제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시험한다고 두려워합니다. 자신들의 죄악의 해결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일어난 유사한 일이어서 더욱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2.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2절) 르우벤은 시므온이 볼모로 잡힌 것에 대해서 “그의 피 값”이라고 한탄합니다. 요셉의 버림의 작정에 대한 그들의 괴로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고한 시므온을 요셉의 죄의 값으로 데러간다는 생각은 초보적인 단계일 것입니다. 우리가 죄책으로 인하여 죄의 보상에서 르우벤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죄의 속죄(씻기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가능하며, 십자가의 피의 속죄의 고백을 담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38절) 야곱은 시므온의 볼모, 르우벤의 간청에도 베냐민을 잃지 않겠다는 결심만 있습니다. 여전히 야곱은 편향적인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지만, 형제들은 베냐민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전혀 불만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동반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부조리와 모순, 불공평에서 분노와 증오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먼저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편애적인 야곱을 인정하고 존경할 수 있는 형제들처럼, 편향적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 영화 “밀양”을 생각하며... 영화 “밀양”에서 속죄에 대한 일반인의 견해에서 본 교회의 속죄 교리의 신비에 난색함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경륜은 일반인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인데, 인간이 이해못함의 한계에서 교회의 속죄 방편을 확정했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는 죄인이 하나님께서 용서하면 다 용서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이해입니다. 우리는 르우벤처럼 항상 죄책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을 믿음을 고백하면서 서있습니다. 완전한 자유가 한번 고백으로 이루어지지만, 실제적인 자유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의해서 피해 받은 사람에게 당당하게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비록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었지만, 피해자에게는 보상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막가파’의 일원들이 감옥에서 예수를 믿었고, 그들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는 용서해주었지만, 나로 인해 피해 받은 저 사람들의 아픔을 회복해줄 수 없다.”는 한계에 탄식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구속은 정확하게 믿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더욱더 엄격한 윤리가 적용됩니다.

  잘못된 기독교에 대한 판단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외인들은 단순히 보이는 현상으로 기독교를 판단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이 되어 세상의 썩어짐을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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