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설교

여호수아 1장) 제목: 강하고 담대하라.

형람서원 2006. 11. 1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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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설교)

 

여호수아는 모세가 느보산에서 떠나고(1절),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에 섰습니다. 광야 40년동안 모세의 시종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최고의 지도자로서는 이제 처음입니다. 그 첫 과업이 바로 요단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구속사적 성경 보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광야까지 인도한 이스라엘 최고의 선지자입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다시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백성을 모세처럼 구원하는 선지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 물을 올리며, 만나로, 메추라기로 그리고 많은 이적들을 모세처럼 행한 선지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구원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요단강을 건너는 구원 사역을 여호수아가 이루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주리라고 약속한 땅을 성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땅의 성취도 완전한 성취가 되지 못합니다. 비록 완전한 분배는 했지만, 완전한 성취를 하지 못합니다. 땅의 완전한 성취는 다윗에 가서야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다윗의 땅의 성취도 완전한 성취가 되지 못하는 데 그것은 12지파가 균등하게 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에서 기획된 모습) 제국적인 땅의 성취를 갖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이 가나안 땅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1:1-9절까지는 반복적으로 읽어도 매우 은혜스럽고 당당한 마음을 얻게 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세 번에 걸쳐서 반복됩니다. 세 번 걸쳐서 반복되는 것은 매우 강조적인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말씀이 매우 정확하고 강조적으로 들려지고 있습니다.

 

첫째) 강하고 담대하라 = 땅을 주리라.(6절)

         땅은 3절 말씀에 "주었노니"의 완료형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미 주어진 땅을 차지하는데도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갖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실존적인 모습입니다.

 

        팔복에서 땅은 온유한 사람에게 주어진 복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갖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동산 중개인이 이용한 상술은 "두려움"입니다. 온유 = 강하고 담대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강하고 담대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홍해는 열린 바닷길을 건너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은 열리지 않는 강을 건너야 합니다. 강한 여리고성에서 전투를 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땅을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법이 좀 어색하지만)

 

둘째)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 (7-8절) = 율법을 지키라.

         그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왜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실존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우 강한 담력이 필요합니다.

 

         율법을 지킬 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7절) 율법은 항상 제사를 동반합니다. 율법만으로도 의를 이룰 수 없으며, 제사로만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사울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아말렉 전투에서 좋은 짐승들을 남겼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율법을 지킬 때 좌로나 우로 치우지지 않아야 합니다.

 

         율법책은(8절)  1) 항상 입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교육은 읽기 교육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전 교육입니다. 신명기 6장은 기독교 교육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교육할 때 이것 저것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칩니다. 어디 서든지, 어떻게든지 여호와의 율법을 입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2) 이 입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꼭 암기가 필요합니다. 이 암기는 묵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묵상은 성경을 놓고, 묵상지를 놓고 묵상도 하겠지만, 오늘 말씀을 머리 속에서 묵상이 되어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당시에 책을 들고 다닐 수 없음) 묵상은 동일한 말씀을 계속해서 되네이고, 다시 생각하는 훈련입니다. 그 동일한 말씀 속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생동감있게 나오는 것을 경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을 새삼 느끼게 될 것입니다.

                                3) 이렇게 교육되어지고, 묵상되어진 말씀은 몸으로 직접 실천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 실천이 바로 길갈에서의 할례입니다. 여리고, 즉 적진을 앞두고 모든 백성들이 할례를 행합니다. 그것은 율법의 실천을 위한 결단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셋째)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9절)

        이것도..... 왜 그리스도인이 두려워하고 놀라는지 알 수 없지만, 너무나 쉽게 발생하는 일들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 두려움은 죄에서 파생된 아주 근본적인 모습입니다. (창세기 3장) 두려움은 결국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대상에 집중하도록 하게 됩니다.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심"을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의 실수는 범죄했을 때 하나님을 피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지만 피해버렸습니다. 숨었습니다. 두려움은 결국 죽음입니다.

 

        놀라지 말라 = 놀람은 적들에 대한 놀람과 놀라운 기적에 대한 놀람이 있을 것입니다. 적들의 세력에 대한 놀람은 두려워 말라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 놀라운 기적에 대한 놀람은.... 놀라운 기적을 보고 너무 흥분되어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놀라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놀라운 기적만 보일 뿐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한 나라입니다. 세계가 놀랐지만, 결국 한국 백성들도 놀랐습니다. 놀란 한국 백성들은 자기 정체성이 잃어버렸습니다. 여리고성에 놀란 백성들은 아이성을 가볍게 봅니다. 승리에 거만한 백성들은 여부스 족속에게 속아버립니다. 교회는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해야합니다. 이 놀라운 부흥과 성장에 정말로 놀라버린다면 부흥과 성장은 정지하고 결국은 쇄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는 천국을 소유한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갖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놀라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우리는 너무나 많이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또 강력하게 우리의 심령을 쳐야합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마음을 담대히 하라!! 나 여호와가 항상 너희와 함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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