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교회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기적은 무엇이 다른가요?

형람서원 2006. 9. 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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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기적은 무엇이 다른가요?


 

김기호
기독교변증가.
현재 베일러대학교(Baylor University, 텍사스주) 교회-국가학과(Church-State Studies)에서 박사과정 중.
바이올라대학교 (Biola University)에서 기독교변증학(MA)을,
연세대학교에서 철학(BA, MA) 및 정치학(MA)을,
서울신대에서 신학(BA)을 공부했다.
역서로는『만민법』(이끌리오), 『리더십의 그림자』(두란노),
『소망』(IVP), 『느헤미야 리더십』(두레) 등이 있다.

 

기적과 종교의 진실성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기적은 기독교의 진리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신론 철학자인 버트란트 러셀은 기적이 기독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다른 종교에도 기적이 있다고 말한다. 기적이 기독교의 진리성을 입증한다면, 다른 종교의 기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다른 종교의 기적도 그 종교의 진리성을 입증하는 것인가? 만일 각 종교에서 기적을 없앤다면, 그 종교가 유지될 수 있는가?

 

기적에 대한 비판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기적을 자연법의 침해라고 주장한다. 스피노자 역시 기적의 가능성을 부인한다. 그의 자연주의적 비판에 의하면, 기적이라는 개념 자체는 자기모순적이다. 그는 자연과 신을 동일하게 본다. 그래서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신의 행동은 신 자신의 본성에 위배하는 것이 되기에, 기적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입장을 수용한 신학자는 슐라이에르마허이다. 그는 절대적인 기적을‘자연의 상호 관련성을 확실하게 중단시키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서 기적은 제거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대의 과학주의는 신의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학과 과학만능주의를 구분해야 한다. 과학만능주의는 유물론적 철학을 가진 세계관일 뿐이다. 기적은 과학적인 영역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는 철학적인 문제와 신학적인 문제에 속한다. 기적은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유신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전능한 인격적 신의 존재를 믿는 유신론적 세계관만이 신의 행위로서의 기적을 가능하다고 믿는다. 창조주인 하나님은 자연법의 운행에 개입할 능력과 권리가 있다. 기적은 자연법칙을 넘어서 간섭하는 하나님의 특별행위이다. 기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다양한 종교의 기적에 대한 진실성 평가
필자는 기적이란 자연법을 초월하여 역사하는, 인격을 가진 초자연적인 신의 의지적 행위라고 본다. 따라서 모든 종교는 기적을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면밀하게 재분석되어야 한다. 첫째, 각 종교는 초자연적인 절대적 인격적 신을 믿는가? 둘째, 각 종교의 창시자들은 기적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가? 셋째, 각 종교의 창시자들의 기적이 후대에 문헌적으로 조작된 것은 아닌가?

이 세 가지 기준은 종교의 기적에 대한 진실성을 판단하는 데 유효한 기준들이다. 첫째, 어떤 종교들은 초자연적인절대적인 신적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런 종교의 철학적 전제는 기적의 가능성을 배제하거나 기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둘째, 종교 창시자들이 기적을 폄하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거나 공개적으로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면, 그 종교의 기적의 진실성은 의심될 수 있다. 즉 진실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있다. 셋째, 각 종교의 창시자의 기적을 담은 문헌이 창시자의 사후에 오랜 시간이 경과된 것이라면, 그것은 후대에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붓다의 원시불교와 기적
첫째, 기적을 초자연적인 인격적 존재의 행위로 정의한다면, 불교는 논리적인 면에서 기적이 아예 불가능하다. 불교의 철학적 입장은 범신론적 세계관을 가정하고 있다. 범신론적 세계관에서 신은 비인격적인 궁극적 실재이다. 그래서‘인격적인 신적 존재의 자유로운 행위’로서의 기적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무신론과 마찬가지로 범신론에서는 기적이 전혀 설자리가 없다. 기적을 인격적인 신의 행위로 규정한다면, 불교처럼 인격적인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종교가 기적을 통해서 그 종교의 진리성을 입증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둘째, 불교의 창시자인 고마타 싯다르다(BC 563-483)는 기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해탈에 이르는 참선을 통해 초자연적인 능력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추구하지 말라고 말했다. 가령, 고마타 싯다르다가 물 위를 걸어서 강을 건너기 위해 20년 동안이나 고행을 한 수도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붓다는 그에게“약간의 배 삯을 내면 강을 건널 수 있는데 왜 헛된 노력을 하는가”라고 비판한다. 또한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는 어떤 어머니의 청을 거절한다. 붓다는 영원한 신적 존재를 언급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자기 가르침의 진리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기적 행위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붓다가 기적을 행했다는 이야기들은 그의 근본적인 입장과 다르다.

셋째, 붓다의 기적에 대한 기록이 후대에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붓다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문헌으로 기록된 것은 붓다의 사후, 최고 700년 정도의 시간적 격차가 존재한다. 붓다가 기적을 행했다는 불경 기록의 진실성을 판단할 근거들이 부족하다. 붓다가 원래 기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원시불교의 철학적 전제는 인격적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불교의 기적들은 초자연적이며 절대적이고 인격을 가진 신적 존재에 의한 기적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무함마드의 이슬람교와 기적
첫째,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AD 570?-632)는 기적을 통해서 종교적 권위를 입증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기적은 오직 알라만이 할 수 있다. 나는 단지 평범한 경고자일 뿐”(수라 29:50)이라고 했다. 무함마드는 모세가 그의메시지를 입증하기 위해 기적을 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기적들은 바로의 마술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도록 설득한다. 무함마드는 주위사람들이 기적을 행해보라고 하였을 때에, 자기는 단지 도덕적 메신저라고 말했다(수라17:90-93).

둘째, 무함마드의 입장과는 달리, 일부의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기적을 행했다고 믿고 있다. 회교의 전승집 하디스(Hadith)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불신자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 달을 둘로 갈랐다. 그는 노새를 타고 승천하고, 친구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주고,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나뭇가지로 강철검을 만드는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이런 회교의 기적들을 담고 있는『하디스』는 610-634년경에 무함마드의 어록을 편찬한 것인데, 이 책은 무려 무함마드의 사후 약 150년 후에 출간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함마드는 자신이 기적을 행했다고 한 번도 주장한 적이 없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은 후대의 이슬람 지도자들에 의해서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요가와 단학 등의 수련법에 대한 비판
첫째, 기적과 인간의 초능력 행위는 다르다. 인도의 요가나 우리의 전통수련법은 특별히 인간의 잠재적 초능력 계발을 강조한다. 요가나 단학은 현대인들의 건강법으로 많이 소개되고 있다. 요가는 극도의 신체통제를 요구한다. 가령 오랜 기간 금식하는 것, 극도의 추위와 더위를 참는 것 등이다. 그렇지만 신체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은 초능력적인 행위가 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초능력의 주체는 수행자일 수 있지만, 기적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둘째, 요가나 민족 전통 수련법들은 일종의 범신론적 세계관이다. 범신론자들은 신의 개입(기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神)인데 기적이 있을 필요가 없다. 셋째, 요가나 단학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수련법이 아니라 일종의 윤회적 세계관을 가진 범신론적 종교이다. 그 수행법과 명상법들이 범신론적 종교적 가르침과 종교의식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이 이에 현혹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연현상과 마술은 기적이 아니다
첫째, 월식이나 일식 같은 반복되는 자연현상은 기적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모세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바닷물 갈림 현상이 있다. 그것은 달의 인력이 작용해서 발생하는 자연현상이지,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과는 분명히 다르다. 성경에 의하면, 홍해의 강물은 둘로 갈라져 물벽이 형성되고, 강 가운데는 마른 땅으로 변했다(출 14:21-22).

기독교변증가인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박사에 의하면, 기적이란“사건이 발생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연적 원인에 의해서 산출될 수 없는 사건”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희귀한 자연현상은 결코 기적이 아니다. 둘째, 마술은 기적이 아니다. 진정한 기적은 마술적 속임수와는 전혀 다르다. 오락으로서의 마술은 순진한 속임수로서, 마술이 어떻게 행해지는지를 모르는 대중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기적은 오락이 아니다. 어떤 속임수도 포함되지 않는다. 마술은 인간이 인간을 속이는 행위이지만, 기적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이다.

 

사단의 거짓 기적의 특징
단연코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에 참된 기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다른 종교에 기적이 분명히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가령, 무당이 날선 칼 위에서 춤을 추거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 종교는 언뜻 보아 기적이라고 생각되는 범주의 사건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진정한 기적과 거짓 기적을 구분하는 일은 크리스천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먼저 사단으로부터 나오는 거짓 기적의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사단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 전능한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은 없다. 사단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골 1:15-16). 그래서 사단은 하나님의 기적과 표적을 흉내를 낼 수 있을 뿐이다(살후 2:9). 모세의 기적을 모방하던애굽의 술객들은 모세의 땅의 티끌을 이를 만드는 셋째 재앙을 흉내 내지 못하고 실패를 자인한다. 그들은 바로에게“이것은 하나님의 권능”(This is the finger of God, 출8:19)이라고 보고한다. 둘째, 거짓 기적의 특징은 비술행위(occult)와 결부되어 있다. 비술은 반복되는 주문, 비밀종교의식, 매개물을 통해서 강신술과 초혼술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나 요가, 단학 등의 초인적인 행위들은 비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셋째, 거짓 기적은 도덕적인 악과 결부되어 있다. 넷째, 사단의 거짓 기적은 오류 가능성을 가진다. 그리고 즉각적이고 영속적인 기적을 동반하지 않는다. 가령, 바디매오의 눈의 시력과 시신경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즉각 회복되며 완치된다. 그러나 사단의 거짓 기적은 그런 창조적이고 영속적인 능력이 없다. 다섯째, 사단의 거짓 기적과 표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한다. 성경은 사단의 역사로 거짓 기적(살후 2:9)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사단은 미혹하는 영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거짓기적은 조잡한 모방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기적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과 비교할 때, 예수님의 기적은 독특하다. 첫째, 신약성경의 기적, 특히 예수님이 행한 기적은적대자와 불신자를 포함한 대중 앞에서 행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둘째, 예수님이 행한 기적은 목격자들이 생존한 첫 세대에 기록되었다. 가령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한 예수의 출현은 실제로 부활사건이 발생한 지 5년 이내에 기록된 것이다. 무수한 증인들이 생존해 있었던 당시에 기적에 대한 성경의 진실성은 한 번도 의심받지 않았다. 예수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 간섭해 들어온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기적과 축사를 행했다. 심지어 당시의 적대적 세력들, 역사가들, 현대 대부분의 신약비평가들도 예수님이 기적을 행한 사실에 대해서 조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셋째, 기적을 폄하했던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기적을 확고한 증거로 사용하신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은 그의 메시야성의 진실성(눅 7:22)을 입증한 것이다.

 

성경에서 기적의 목적
진정한 기적이 발생하는 철학적 전제는 유신론적 세계관이다. 기적은 하나님의 특별한 행위로서, 세상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된 세계 안에 간섭할 능력과 권리를 가지고 있다. 사단의 거짓 기적과는 달리, 진정한 기적은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진정한 기적은 자연법을 초월하는 사건이다. 물 위를 걸으신 것은 중력의 법칙을 벗어난 기적이다. 오병이어를 통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질량보존의 법칙을 초월한 기적이다. 둘째, 진정한 기적은 즉각적인 결과와 영속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병자들을 즉시 완치하셨다.

구약성경에서 기적의 목적은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시고 세우셨다는 확증을 위한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기적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들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니라”(요 20:30-31). 예수님은“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요 10:25)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Lord)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signs)과 기사들(wonders)과 여러 가지 능력(miracles)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히 2:3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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