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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필요'로 조작된 '가짜 역사'

형람서원 2006. 4. 1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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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필요'로 조작된 '가짜 역사'

[ 기독신문 2006-04-11 오후 3:29:35,   조회수 : 100 ]

이른바 <유다복음>이란 무엇인가


신약성경 권위 빙자한 수많은 영지주의 관련 문서 가운데 하나
"예수가 유다의 배반 요구" 번역부터 오류 ··· 비평 가치조차 없어
 
 
"예수가 유다의 배반을 요구했다"고 번역한 문장은 명어판으로 발표된 문서의 오역, 또는 곡해이다. 유다가 할 일에 대한 예수의 예고이거나 유다의 의도를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는가!
 
교회에 불어온 황사
 
이른바 '유다복음'의 내용이 발표되면서 전 세계에 적지 않은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비기독교/반기독교 인구가 3/4이 넘는 한국은 발표 시점을 전후하여 마치 이 문서 하나로 교회를 침몰시키거나 적어도 기독론에 심각한 손상이 있는 것처럼 각종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주도적 흐름은 이 문서가 가룟 유다의 모습을 "예수의 요구에 순종하며 신학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예수를 배반한, "구원사역의 완성을 위한 귀중한 도구"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과 달리 예수는 유다를 용서하고 사막으로 보내 참회토록 했다", "유다가 예수를 로마군에 밀고한 배신이 사실은 예수의 지시와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예수는 죽음으로써 육체를 벗어나 참된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진리를 유다에게만 알려줬다"는 등, 사실 '유다복음'과도 상관없는 엉뚱한 글들도 보인다.
 
 
오역, 또는 곡해에 근거한 비약
 
이 문서는 예수와 유다 사이에 있었던 대화에 나타난 "비밀"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유다가 강조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다를 구원사역의 사명을 받은 사람이나 유기라는 이름의 선택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다.
 
"예수가 유다의 배반을 요구했다"고 번역한 문장은 영어판으로 발표된 문서의 오역, 또는 곡해이다. 이 문장은 곱트어 사본 56쪽의 18-20행에 들어있는데, 번역 팀은 이를 "But you will exceed all of them. For you will sacrifice the man that clothes me"로 옮겼다. 이를 다시 우리말로 옮겨보면 이렇다. "그러나 너는 그들 모두를 능가할 것이다. 네가 나를 감싸고 있는 사람을(아마 육체를) 제물로 드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예수의 요구, 명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다가 할 일에 대한 예수의 예고이거나 유다의 의도를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는가! 유다의 배반에 대한 이런 성격의 표현은 공관복음 모두에서 발견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요한복음 13장 27에는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행하라"는 예수님의 명령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말씀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없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 '차코사본'의 이른바 '유다복음' 일부.
 
 
엘 미냐 문서에서 '유다복음'까지
 
'유다복음'이라는 이름이 붙인 이 문서는 1970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160Km 가량 떨어져 있는 엘 미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이곳에서 남쪽으로 300Km를 더 내려가면 영지주의 문서로 널리 알려진 '토마복음'이 발견된 낙 하마디가 있다). 이때 발견된 문서 전체를 학자들은 쥬리히의 한 고문서상의 이름에서 빌려온 '챠코 사본'(Codex Tchacos)으로 이름 지었는데, '유다복음'은 33쪽에서부터 58쪽에 들어 있다. 원래 서기 180년경에 저술된 그리스어 책의 곱트어 번역판으로 서기 220-340경에 복사된 것으로 밝혀졌다.
 
'유다복음'이라는 이름은 이 문서의 서두, 곧 "예수님이 유월절을 지내시기 전 일주일 동안 가룟 유다와 가졌던 대화에서 말씀하신 계시의 비밀 기록"이라는 문구와 주인공의 하나로 등장하는 유다란 이름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문서를 서기 180년경 프랑스의 리용에서 감독으로 있었던 이레니우스의 책(이단에 대항하여, Against Heresies, I,31,1)에 언급되어 있는 '유다복음'과 동일시하는 것도 이 이름을 사용하도록 부추긴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서가 과연 이레니우스가 지적한 가인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그 책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레니우스가 묘사한 가인주의자들의 특징이 이 문서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신자들이 믿는 것과는 좀 다르게 예수를 소개하고 정경 복음서와는 크게 다른 내용을 가진 책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이 발견되면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종식시킬 수 있는 것처럼 부산을 떤다.
 
많은 위서들 중 하나일 뿐
 
사람들은 신자들이 믿는 것과는 좀 다르게 예수를 소개하고 정경 복음서와는 크게 다른 내용을 가진 책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이 발견되면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종식시킬 수 있는 것처럼 부산을 떤다. '토마복음'이 발견되었을 때 그러했고, (신약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사해 사본들이 발견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위서(僞書), 위경(僞經), 또는 가경(假經)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책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다. 복음서와 관련된 책만 몇 적어본다고 해도 '히브리인의 복음', '에비온 복음', '이집트인 복음', '빌립 복음', '맛디아 복음', '베드로 복음', '마리아의 출생', '유아기 복음' 들이 있다. 정경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준 정경쯤으로 인정받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일찌감치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의 책도 있다. '유다복음'은 후자에 속한다.
 
위서란 무엇인가? 후대에 성경의 인물이나 존경받는 위인의 이름을 빌려서 자신의 얘기 또는 생각을 채워 넣은 책이다. 따라서 그 주 내용은 빌려온 이름의 삶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저자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 또는 철학이다. 신약성경과 관련하여 빈번히 출몰했던 위서는 영지주의와 관련이 있었다.
 
 
'유다복음'은 사건보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것도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다루신 정경 복음의 기록과는 달리 허황된 얘기들로 가득차 있다. 이런 책에서는 계시하는 자가 아니라 홀로 신비한 지식을 습득하는, 유다로 분장한 저자가 진정한 주인공이다.
 
영지주의 문서 
 
영지주의는 여러 종교나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 주기도 한 일종의 혼합주의로서, 그 전성기는 2세기이고 확산 범위는 당시 로마 제국 전역이었다. '유다복음'이 저술된 시기와 장소는 이에 아주 근접한다. 영지주의는 이 사상 안에 워낙 다양한 생각들이 얽히기도 하고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 계보를 그리거나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다음 두 가지만은 그 공통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현실의 세계를 부정적으로 다룬다.
둘째, 신적 계시로 얻는 신비한 비밀 지식의 획득으로 이 세계를 탈출하고 영원 또는 구속의 세계로 들어간다.
'유다복음'은 사건보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것도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다루신 정경 복음의 기록과는 달리 허황된 얘기들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예수로 하여금 유다에게만 "이 세상 너머의 신비" 또는 "천국의 신비"를 말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유다는 세상 누구도, 또 어떤 천사도 다른 존재도 듣거나 보지 못한 모든 비밀을 배운다. 정경 복음서와 그래도 관련지을 수 있는 내용은 예수께서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다는 첫 두 줄과 유다의 배반에 대한 예고와 그 실현을 알리는 끝부분 정도이다.
이런 요소들은 영지주의의 가장 큰 특성에 속한다. 유명한 이름 뒤에 자신을 감추고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자신의 신앙이나 철학을 전달하는 고대 기법이다. 이런 책에서는 계시하는 자가 아니라 홀로 신비한 지식을 습득하는, 유다로 분장한 저자가 진정한 주인공이다.
 
 
'유다복음'의 예수
 
'사람들을 비웃는 예수!' 필자가 이 문서를 읽으며 받은 가장 강력한 첫 인상이었다. 정경 복음서의 예수는 결코 웃지 않으셨고 제자들의 몰이해에 대처하는 예수님의 방법은 비웃음이 아니라 동정과 친절한 지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다복음'의 예수는 그런 인자한 선생이 아니라 불러 모은 제자들을 비웃고 멸시하는, 그래서 "제자들이 분노하고 선생을 욕하는" 못난 스승이다.
 
저자는 예수를 영지주의자로 만들기 위하여 그가 "세상에 나타나셨다"고 표현했다. 때로는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시지 않았지만 어느 틈에 아이처럼 그들 가운데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신관은, 사람들 안에 내재하며 화를 자극하는 신이다. 예수는 "인간 세대"를 부정하며 이 인간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거룩하고 위대한 세대"를 긍정할 뿐만 아니라 수시로 인간세대와 위대한 세대 사이를 왔다 갔다 하신다.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이 문서의 거의 모든 내용을 거론해야 할 것이다.
 
 
맺는 말
 
이러한 문서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해설하고 비평할 가치가 있을까? 최근에 이런 문서는 한 둘이 아니다. 역사를 빙자하여 만든 책들, <예수는 신화다>, <다빈치 코드>, <아사전>, <불제자 예수> 등도 있다. '유다복음'은 1800년 전에 특수한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낸 비슷한 책이다. 오래 되었다고 해서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150여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복음서의 핵심을 뽑아 권위를 보장받고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보통 수법인 것이다.
 
글=정훈택 교수/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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