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가 성경해석(혹은 인간)을 억압한다"고 주장한 것이 300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교회와 사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럼에도 그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더욱 강화하며 상식에서 진리처럼 사용되고 있다.
교리는 성경해석을 구원얻을 지식으로 세우는 규범이다. 아무리 많은 성경해석이 산출될지라도 교리를 떠나서 산출된 의미는 구원과 관련이 없다. 인문학적 성경읽기와 성경해석은 구원과 관계가 없다. 인문학에는 사회 정의 등 여러 공공 개념이 있다. 그러나 구원은 땅의 일이 아닌 천상적 성격으로, 오직 죄사함과 영생에 관련된 부분이다. 성경해석에서 죄사함의 주님을 합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 길이 교리에 있다. 그리고 교회가 한 믿음으로 세울 수 있는 길은 교리 외에 다른 방편이 없다. 그 교리를 소외시키거나 부정하면 교회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교리와 성경 관계를 왜곡시키거나 이탈시키려는 시도가 있다. 오직 성경이 교리의 중요성을 약화시키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경은 교리를 강화시키기 위한 종교개혁의 표어이다. 그런데 계몽철학과 그의 시녀 자유주의에서 오직 성경에서 교리를 제거시켰다. 오직 성경으로 교리의 내용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것이 종교개혁에서 시도한 것이다. 교리를 떠난 성경에서 드러난 의미는 윤리적 의미, 심리학적 의미, 사회공공성의 의미 등에 이른다. 이러한 가치는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이지만 구원과는 관계없다.
교리는 믿음의 주를 고백함에서 발생한 것이다. 즉 믿음의 주로 말미암아 교회가 세워졌고,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주를 고백했다. 그런데 거짓교사가 다른 믿음의 주를 교회의 주님으로 세우려고 했고, 믿음의 주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허용하지 않았다. 교회는 한 믿음의 주를 믿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한 믿음의 주를 교회에 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 믿음의 주는 동일한 믿음의 주이다. 그것은 주님의 이름이 동일하다. 그 동일한 이름에서도 상태에 대한 심각한 토의가 교리 결정이다. 우리시대의 심각성은 주님의 이름이 동일하다면 그것으로 너무 만족해야 할 수준이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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