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하나님의 집(the household of God)”이고,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딤전 3:14-15).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우리말은 통합적 의미를 갖고 있다. ‘집’을 영어로 하면 home, house, household, family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집’은 house, 단순한 건축물은 아니고, household, 즉 그 건축물 안에서 활동하는 인격 공동체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그리스도께 부름(calling)을 받은 인격들이 모인 공동체가 규범대로 예배하는 장소이다. 그 집(교회)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the church of the living God).
그리고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the pillar and foundation of the truth)”이다.
우리는 대학을 “학문(學問)의 전당”이라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진리의 상아탑(眞理 象牙塔)”이라고 한다. “진리의 상아탑”은 계몽철학 시대에 순수 이성에 대한 확신에서, 순수한 학문을 지향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진리(veritas)’는 대학 표어의 기본 어휘이다. 우리는 대학을 학(學)으로 생각하고, 서양은 진리(veritas)로 생각한다. 그런데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우리는 대학을 취업 기관으로 생각하고, 서양은 학문(學問) 기관으로 생각한다. 대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 학문 기관이 되어야 한다. 진리가 없이 열심히 노력하는 기관이 아니라, 확고한 진리를 밝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혹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더라도 진리를 찾으려는 순수한 이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 대학이 이제 더 이상 진리의 기관이 되지 않은 것이 무척 아쉬운 일이다. 또 학문성도 포기한 것 같아 아쉽니다. 우리의 최고 인재들이 의학 대학에 가려고 전념한다는 뉴스는 우리 미래를 매우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도 진리 기관이라는 것을 잘 인지해야 한다. 목회자들이 세미나를 개최할 때에 “목회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도 세미나를 개최할 때 “목회적 적용”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어떤 주제가 목회적 효용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목회와 긴밀하게 관계되어 있지만, 즉각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우리말에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한다. 백년 뒤에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세속 교육도 그러한데, 교회 교육은 어떨까? 교회의 사역자가 진리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소홀히 하거나, 양보할 때에 백년 뒤의 상태는 상상할 수 없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말을 정확하지만, 그 명제에 근거해서 현재 태만하거나 자기 욕망을 채울 수단으로 그 명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유럽, 미국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왔다. 대한민국 교회는 세계에서 16세기 종교개혁 가치를 확고하게 고수하는 강력한 위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신학 정보와 체계에서는 많이 미흡하다. 의지와 지식에서 지식의 소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교회도 1세기 주 예수께서 창립하신 교회에 연속성을 갖고 있다. 그 교회는 서진(西進)을 했는데, 대한민국 교회가 소멸되면 다음 서쪽에서 받을 교회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대한민국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대한민국 교회 사역자들의 목회 역량은 매우 뛰어나다. 그러나 “진리의 기둥과 터”에 대한 탁월성은 증명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교회를 세울 뿐만 아니라, 서진의 가능성을 줄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교회가 세계 교회의 중심이 되면 좋겠지만....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길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교회의 역할은 “진리의 기둥과 터”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있는 수 많은 신학교들(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에게 그 임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역자에게 그 임무가 있다. 오늘도 진리를 사모하며 수호하는 7,000명의 용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뜻은 엘리야도 7,000명도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그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는 사역자들이 진리를 탐구하며 전파하며 계승하는 일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세계에 주의 복음이 충만하기를 기대한다.
목회는 교회 회원의 숫자 증진이나 관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진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숫자나 관리는 일반 회사 관리와 차이가 없다. 신천지는 진리의 성령이 없이도 숫자가 증진되고 있다. 넷트워크 마케팅 회사는 진리의 성령이 없어도 체계적으로 관리되어 유지 발전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진리의 성령이 없으면 반드시 쇄락하고 사라진다. 교회의 사역자는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인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진리를 파악하여. 보수하며. 계승하며. 확장시키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참고로 교회에서 ‘개혁(Reformed)’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합당하도록 교정하여 진리에 가깝도록 나가는 것”이다. 사회에서 개혁은 없었던 가치를 창출해서 새롭게 하는 것이지만, 교회에서 개혁은 복음에 합당한 가르침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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