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스크랩] 가부장 제도

형람서원 2017. 9. 2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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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 제도  기독교인문학 / Go marus Hall 

4분 전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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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권제, (父權制, patriarchy 패트리아키) 또는 가부장제(家父長制)는 남성이 권력을 가진 남성중심(위키백과). 


가정을 "가부장제도"라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함이 있다. 


그리고 고대사회는 "모계 사회"였다는 주장에도 불편함이 있다.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권력 쟁투 관계가 아니라, 사랑과 생명 관계이다. 가정은 권력 쟁투 현장이 아니라, 생명 조성과 탄생 그리고 양육 기관이다. 가부장제도 혹은 모계 중심이라는 말에는 가정을 계급 투쟁 현장으로 평가하는 것 같아 불편함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부장제도가 더 맞지 않다. 


호주제도가 있고, 재산권이 아버지(남편)에게 있다고 해서 가부장제도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경제권은 어머니(곳간 열쇠)에게 있다. 정상적인 가정은 부부가 유별하고, 독단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없다. 가정은 생명유지를 위한 기본 수단이고, 생존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편이 있었을 뿐, 계급 쟁취를 위해서 갈등하고 투쟁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위키백과에서 "가부장제도"의 기원으 엥겔스의 <가족, 사적소유 및 국가의 기원>에서 시작했는데, 가부장제 기원에 대해서 고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을 로버트 M. 스트로저가 연구를 통해서 가부장제도의 정확한 기원을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엥겔스는 세계 역사를 갈등과 계급 투쟁으로 재구성한 인물이다. 그 시작을 사회의 기본 구조인 가정에 적용하기 위해서 "가부장 제도"라는 것을 창안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역사를 생존과 탐욕의 역사로 본다면, 가정은 생명과 번성을 위한 기본 구조가 된다. 가정에서 생명이 번성해야 하고, 다산을 장려하게 된다. 그러나 엥겔스의 원리에 입각한 가부장제도로 본다면, 가부장에서 소외된 여성은 가부장을 혁파하고 평등을 이루어야 한다. 생명출산에 대해서 관심은 사라진다. 성행위도 성행위 자체로 제한될 것이다. 


->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을 구매하고 기다리면서, 가부장제도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맞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혼인해도 성을 바꾸지 않는 독특한 문화가 있고, 재산 경영권은 여성에게  전적으로 부여한다. 부부유별이기 때문에 아내의 방에 남편이 함부러 들어갈 수도 없다. 남편은 아내의 요구를 이유없이 거부할 수 없었다.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신앙과지성사, 2017)

예수와 여성, 교회와 여성, 한국 기독교인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어떻게 봐야할까? 최대로 양보할 때, 한국교회에서 여성도 배려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수준조차 여성을 존중하는 상식 있는 남성 한국 기독교인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남자에 의해 배려 받아야할 존재? 왜냐하면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기 때문에?

한국 교회의 여성 페미니즘 대화 속에 이 책 저자의 고민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예수님은 소외된 계층(class)에 초점을 맞추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개인에게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이는 여자 남자, 각 개인이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가치를 지녔다는 선포입니다!“

한국 교회의 지배적 남자 목사들과 남자 교인들이 너무 많이 듣고 읽으면서도 놓치고 있는 성경의 선언,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언은 그렇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여자들은 보조적 위치, 남자의 보호와 배려를 받는 위치에 놓여있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 고정관념을 저자는 다시 건드린다. 겨우 여성 총대 몇 명을 교단 총회에 참석시키는 결정조차 뛰어난 진전으로 위로하여야 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흔들림 없는 남아선호, 남존여비, 가부장제 질서와 유사함을 느끼게 하는 한국 교회의 주류적 생각은 버겁다.

“예수와 초대 교회가 여성에게 우호적이었다. 여성이 기독교 신앙과 공동체를 세우고 지키는 데 사도적(apostolic) 역할을 수행했다. 즉 예수가 적극적 페미니스트/여성주의자였다”

이 저자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아래와 같은 네 가지의 결론을 주장한다.

1. 예수는 페미니스트(여성주의)였다. 그리고 추측건대 제자들 또한 그의 뜻을 따랐을 것이다.
2. 예수는 이혼과 재혼을 금기시하지 않았다.
3. 누가복음과 제사복음서의 원형 사본들이 사실은 여성에 의해 기록되었을 것이다.
4. 여성들에 의해 모아지고 전해진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저자는 레너드 스위들러(Leonard J. Swidler, 88)이다. 그는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그의 책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Jesus was a Feminist) : 복음이 증거하는 혁명적 관점(What the Gospels Reveal about His Revolutionary Perspective)(신앙과지성사, 2017년)에서 이 네 가지의 주장과 결론을 뒷받침할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할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아 메시야' 를 기억하여야 할 이유도 이 책 전반에 깔려있다. 처음 나는 이 책에서 예수를 대신하여 표기하고 있는 예수아 라는 표기가 불편했다. 사실 지나친 친 이스라엘, 친유대주의 경향을 가진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예수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인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아(메시야)로 부르는 고백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만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그 표현과 고백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할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서양의 잘생긴 유럽인 정도로 예수를 생각하는 절대 다수의 기독교인들의 일상적 오해와 착각을 저자는 맞서고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노골적이거나 은근한, 부드럽거나 거친 가부장제 의식에 쩔어있는 남자들이 베푸는 호의와 시혜가 아니다. 남자의 보조적 존제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의 뜻과 질서라고 흔들림없는 믿음과 삶을 살아가는 그 수많은 한국교회의 여성들이 있다. 이 책 저자의 고민을 통해 그 굳건한 믿음이 흔들릴 기회를 누리기를 원한다.



출처 : 한국개혁신학 연구원
글쓴이 : 고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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