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기독교강요(1559년, 최종판) 제
II 권
De Cognitione Dei Redemptoris in Christo, quae Patribus sub Lege
primum, deinde et nobis in Evangelio patefacta est.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주 하나님 지식, 처음에는
율법 아래에서 믿음의 조상들에게 드러내었고, 그
다음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밝히 드러내었다.
기독교강요
II권
제 1 장
Adae lapsu et defectione totum humanum genus maledictioni fuisse
addictum, et a prima origine degenerasse: ubi de peccato originali.
아담의
반역과 타락으로 전 인류가 저주에 떨어지고 원상태는 부패하였다: 원죄론
1.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인간의 탁월성 그러나 타락한 인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고대 희랍 격언이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인간이
자기 인생을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인생은 더욱 비참하다. 인생은
결국 눈뜬 소경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은 매우 귀중하기 때문에 악용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철학자는 자기 자신을 알라고 가르치면서 인간의 가치의 우수성을 아는 것을 목적으로 유도하였다.
인간에
대한 지식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창조할 때에 주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선천적인 우수성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특성이 하나님께서 주신 성품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아담의 타락 이후에 불행하게 된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
반역한 인간의 모습을 보면 지심으로 겸손하고 부끄러움으로 위축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다(창
1:27).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마음 속에 선(善)에
대한 열심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넣어 주셨다. 인간은
야수(野獸)와
구별하는데 고귀성이 있는데, 인간이
스스로 우둔함과 미련으로 인하여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이성과 이해력을 부여 받은 것을 감사하고, 거룩하고
정직한 생활을 함으로써 궁극적 목표인 복된 영생을 향하여 매진해야 한다. 최초의
인간 탁월성을 생각하면서, 그와
대조되는 우리의 추악하고 부끄러운 상태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께 반역하여 원상태에서 타락하였다. 이
첫범죄가 근원이 되어 우리 자신에게 증오심과 불쾌감을 갖으며, 동시에
진정한 겸손을 갖도록 한다.
2. 인간의
본성은 칭찬을 좋아하며, 칭찬
속에서 자아도취로 파멸하게 된다
여기에
하나님의 진리(Dei veritas)가
우리 자신을 살피도록 요구하는 것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이 자기 능력을 믿는 모든 것과 자랑할 만한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순종하는 길로 인도하는 지식을 구하라고
요구한다. 지혜와
행동의 진정한 목표에 도달하기를 원한다면 이 원칙(자기부정과
순종)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부끄러움으로 위축되어 있는데 그러한 부정적인 것에 매여 있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성품을 생각하는 것이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칭찬해 줄 것을 간절히 바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
자신을 높이 평가하면, 인간은
자신을 과신하는 경향도 있다. 이러한
맹목적인 자기애(自己爱)는
모든 인간에게 있는 천성이다. 자기들에게
있는 천성을 가증하다고 여길 필요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누릴 필요도 없다. 인간은
선하고 복된 생활을 누릴 풍부한 능력을 타고 났고 외부의 지지가 없어도 스스로 자신을 신뢰할 수도 있다. 비록
비교적 겸손한 태도를 취하며 하나님께 조금은 양보를 해서 만사를 자기의 공로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공로를 분배한 결과에는 자랑과 과신의 근거가 여전히 자신에게 남아 있다.
사람은
자존심(自尊心)이
골수에 박혀 있으며,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매혹적 언행을 가장 기뻐한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일반 대중 앞에서 칭송을 받는 것처럼 인간을 기쁘게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를 만족하게 이런 예찬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거기에
도취(陶醉)하면
칭송하는 사람들을 속이며 자신은 철저한 파멸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귀에 들려오는 모든 허탄한 칭송을 믿고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숙고하며 주의해야 한다. 칭송에
속아서 건전한 이해력과 진정한 덕성이 있는 우리 자신을 버리고 없애며, 경솔한
돌진을 계속해서 결국 멸망에 빠진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꾀에 넘어지고 말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있는 탁월성만 추구하면 결국 자기 인식은 향상하지 못할 뿐더러 파멸에 이르고 만다. 우리의
탁월성은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과 순종하여, 자신을
조성한 창조주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다.
3.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에서 갖는 위로
지혜의
둘째 부분은 ‘인간에
대한 지식’이라는
인류의 공통된 판단과 하나님의 진리가 일치한다. 그런데
이 지식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큰 차이가 있다. 육신적인
판단에 의하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이해력과 정직만을 믿고, 담대하게
덕(德)을
닦으려고 노력하며, 모든
죄악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스스로 죄를 억제하며 탁월하고 존귀한 경지를 향해서 정성껏 노력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을 표준으로 하여 자기를 세밀히 검토하는 사람은 결코 용기와 과신(過信)을
찾을 수가 없다. 자기
성찰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낙심하며, 일체의
자신을 맡기고 인생을 바르게 지도해 줄 것이 자기 안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시조 아담에게 주었고, 또
우리 심장에 의와 선을 향한 열정을 불러일으킬 인간 본래의 고귀성을 잊지 않기를 바라신다. 우리의
처음 상태나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생각할 때 우리는 영생을 생각하며 하나님 나라(Dei regnum)를
사모하게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인간의 교만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만을 꺾고 겸손하게 만든다.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이
존재의 목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고귀한 것이다. 인간은
타락한 상태에서도 자기의 고귀성을 사모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안에서 기뻐할 원인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우리가 말하는 것은 그에게 믿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첫째로, 인간은
자신이 창조되며 귀한 천상(天上) 성품을
받은 무슨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 이
지식에 힘입어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내세(來世) 생명에
대하여 묵상할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둘째로
자기의 재능과 재능의 부족함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
부족함을 알게 될 때에 사람은 무능에 비통할 것이 아니라, 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고 의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