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고] 빌 1:12~26 기뻐할 이유

형람서원 2008. 11. 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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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일 주일

 

빌립보서 1:12~26

제목: 기뻐할 이유

 

사도 바울은 오직 복음의 전파됨으로 기뻐하고, 그리스도께서 존귀됨으로 기뻐한다. 바울에게 유익한 것은 그리스도임으로 살든지 죽든지 유익하다. 사도 바울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복음이 전파되며 믿음의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전파되며 그리스도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는 살든지 죽든지 모든 것이 유익하다. ※ 살든지 죽든지 상관없다는 말과 살든지 죽든지 유익하다는 말이 다른 의미로 보인다.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2-13절. 복음의 진보(I) = 시위대 안에 복음이 전파됨

                    바울은 자기가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먼저 로마 황실의 군대에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 변방의 백부장들이 예수를 영접하였지만, 로마에 있는 황실 군대와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로마의 병사들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갇힌 감옥을 본 것이 아니라, 감옥을 지키는 로마 군사를 보았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복음을 전함으로 죄수와 간수의 차이가 극복되고 복음이 전파되었다. 나의 처지가 비록 매우 비관적일지라도 내가 복음을 전해야 될 사명자라는 것을 잃지 않고 기회를 찾는 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4-18절. 복음의 진보(II) = 모두가 복음을 전함

                  이제 바울의 고난과 투옥이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더욱 나아가도록 하는데 기폭제가 되었다. 고난은 성도를 좌절시키지 않는다. 고난을 극복한 성도는 복음을 더욱 담대히 전할 수 있는 전도자가 된다. ‘담대히 전함(14절) = 착한 뜻으로 전함(15절) = 부끄러워하지 않음(20절)’으로 견준다. 둘 모두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고 그리스도만을 전파하려는 것이다.

      어떤 부류는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부류는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사도 바울은 모든 방식을 모두 기뻐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전파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지 기뻐해야 될 일이다.

      사도 바울이 기뻐할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복음 전파는 특별히 더욱 하나님께서 관할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들이 시기와 질투로 시도한다할지라도 자라게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기뻐하고 기뻐할 일이다.

 

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19-21절. 복음의 진보(III) = 모든 것이 유익함

                    바울은 자신의 투옥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기폭제와 촉매제가 되는 것으로 인해 기뻐했다. 하지만 바울 자신이 투옥되어 있는 것을 즐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 자신도 풀려나기를 바란다. 또 석방을 위해서 기도를 격려하고 있다. 성도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19절)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전혀 의심이 없다(20절). 성도의 기도가 그렇게 유익함으로 성도들은 힘써 교회의 사역자와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성도의 생명과 죽음에서 존귀함을 받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부끄럽지도 않고 담대히 살아갈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유익을 받는다면 성도에게는 어떠한 것도 동일하다.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2-26절. 바울의 삶의 목적 = 성도의 유익

                     육신으로 사는 것은 열매이지만(22절),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유익보다는 못하다(23절). 목회를 잘하는 것이 열매로서 성도에게는 유익이 되지만 세상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고 힘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영화는 상상할 수 없이 기쁜 일이다. 그래서 바울은 차라리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신 것은 성도를 위함이다(24절).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사역을 통해서 항상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바울의 사역의 목적이다. 바울이 사랑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교회를 세웠고 사랑했다.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바리새인으로 잘난체하며 살았을 것이다. 구약의 여호와를 섬긴다면서 자기 잘난 맛으로 살아가야 했던 바울이 구주를 만나, 참된 여호와 종교로 돌아온 것이다.

 

[기도] 주님! 나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이 존귀케 하옵소서

                   나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이 전파되게 하옵소서

                   나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유익을 받게 하옵소서

                    내가 주의 종이 오니

                    주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여 주의 복음을 수종들게 하옵소서

                     살든지 죽든지 복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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