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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본질 - 하르낙

형람서원 2006. 9. 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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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 기독교(基督敎)의 본질(本質)


▶영문 essence of Christianity


▶내용 :

 

 

 


기독교의 본질

 

 

(essence of Christianity / Das Wesen des Christentums)

 

 

 

1. '기독교의 본질'이란 개념의 신학적 발달:

(1) 초기의 견해들: 초대
교회가 형성되면서 그 안에 민족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언어적인 면으로나, 문
화적인 면에서, 여러가지의 차이점들이 나타나게 되자,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
이냐는 문제가 교회의 처음 시작부터 대두하게 되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여러
면에서의 차이점들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초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본질'
이란 문제를 다음의 두가지의 기본 원리 아래서 해석하였다. 즉 기독교는 영원
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음이 그 하나요, 기독교는 보편적인 구원을 가지고 있다
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조직상으로나 신학적인 면에서 또 예배형태상으로도 폭
넓은 질서를 나타내 보이는 이러한 초대교회의 통일성은, 단순히 하나의 외적인
제도나 교리, 혹은 전례의 단일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하나 되게 해
주시는 역사'에서 이뤄진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평안의 매는 줄 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
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
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3-6)
'기독교'란 개념 곧 그것이 본질상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문제는 신약성경
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기독교'란 개념이 '유대교'란 개념에 대응하여
교회 안에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사도 교부'(그리스도의 직제자들에 뒤이어
나타난 1-2세기의 기독교 사상가들)시대 이후였다.

 

한편 '유대교'란 개념을 바
울은 갈 1:13에서 사용하였다. 그것은 유대인 신앙과 생활을 특징적으로 나타
내기 위하여 사용한 말이었다. 그런데 기독교란 말을 기독교인의 신앙과 생활
을 특징지우는 뜻을 가진 말로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안디옥의 감독(주교)이었
던 이그나티우스였고, 그 문서 이름은 <Letter to the Magnesians>였다.

 

따라서 기독교란 용어는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그 생활을, 회당생활을 하는 유대인
및 유대교적 전통을 그대로 고집하는 소분파적 유대교 기독교인들의 신앙 및 생
활과 뚜렷이 구별하기 위해서 후대에 새로 지어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란 용어가 처음 형성된 때부터 그 안에는 어떤 모종의 경향
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즉 이 용어는 기독교의 교훈적인(didactic) 측면, 바꾸
어 표현하면 기독교의 이론적인 근거에 대해 강조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알렉
산드리아의 필로(Philo)는 주전 1세기 말과 주후 1세기 초엽에 걸쳐 활약하던
유대교의 철학자였다. 그는 이미 유대인의 종교를 '진정한 철학'이라고 해석하
였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도 이와같이 이론적이면서 체계적인 원리를 세워보
려는 시도가 기독교 변증론자들 가운데에서 나타났다. 이 변증론자들은 2세기
와 3세기에 기독교의 신앙을 지적인 면에서 변호하였던 사람들이었다. 그리하
여 2세기 중엽의 철학자이며 변증론자였던 순교자인 유스티누스(Justin Martyr)
는 기독교를 '진정한 철학'이라는 말로 높이 추켜 세웠다.

 

그렇지만 유스티누
스는 이 철학이란 말을 하나의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 그 이상으로 해석하였다.
즉 이 철학(기독교)은 올바른 삶을 사는 것 곧 올바른 도덕 생활을 하는 것까지
를 포함한 것이었다.

이러한 교훈적인 원리에 따라 해석된 기독교는 구약성경의 신앙 뿐만 아니
라 유대교를 벗어난 그밖의 종교의 역사에 대한 성취로써 인식되었다. 이러한
견해-즉, 2세기 후반부에 큰 활약을 보였던 기독교의 한 철학적 신학자인 알렉
산드리아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의 해석 가운데에서 이 견해가 나타
난다-는 초대 교회의 변증론자들에게 결정적인 지침으로 계속 존속하였다.

 

4세
기와 5세기에 걸쳐 활약하였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신앙이란 "이
세계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라고 말하였고, 아우구스티누스보다 약간 빠르게, 교
회 역사가 카이사랴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는 기독교 신앙을 일컬
어 "최초의 유일한 참 종교"라고 말하였다. 이 말의 뜻은 기독교란 세상이 창
조된 이후 인간들이 가졌던 신앙 가운데에 늘 내재되어 있었던 종교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인 견해가 신약성경의 '로고스 교리'(Logos doctrine)-여기
서 '로고스'란 하나님의 말씀(Word), 즉 신적인 이성(reason)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수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존재하면서 하나님의 계시원리를 능동적
으로 수행한 분임을 가리키게 됨-와 연결되어지자 이것은 기독교(참종교)를 '자
연종교'와 동일시하는 결과를 빚어냈다. 이 자연종교란 바꾸어 말해서 합리적
인 종교이고,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들과 철학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의
씨앗들이라 할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이런 견해를 "진리의 강은
하나이다"라는 구절을 통해 간명하게 표현하였다.

기독교란 하나님께 대한 예배, 하나님에 대한 지식, 도덕성, 이런 것들을
통합한 것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견해는 오랫동안 '기독교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라는 개념적 정의가 내려지는 것을 방해하였다. 그런데 결국 '기독교의 본질'
에 대한 정의는 5세기 갈리아 교회의 수사였던 레린의 빈켄티우스(Vincent of

Lerins)가 하나의 공식적인 말로 표현함으로써 정립되었다.

 

즉 기독교 신앙이
란 "어디서나,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믿어져 오는 것"(quod ubique, quod se-

mper, quod ab omnibus creditum est)으로 정의되었다(기독교의 본질을 통일성
속에서 찾으려 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초대 교회에서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확고하게 생각되어져 오던 기 독교 신앙생활 및 그 신앙적 가르침의 통일성이란 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또한 '참' 종교와 '거짓' 종교의 계열이 문제되면서 이루어진 교리의 발전
은, 수많은 이단운동들과 교회 바깥에서 오는 비판들과의 관계성에 연루되어 있
었기 때문에, 보다 이전의 약간 덜 엄격한 뜻으로 생각되었던 '통일성'이란 개
념은 점차 정통교회의 정통교리의 신학적인 정의에 대한 '동조'라는 개념으로
바뀌어 갔다(통일성이란 개념의 타락). 독일의 신학자인 하르낙(Adolf von H-

arnack)에 의하면 이 때 기독교는 헬레니즘화-곧 기독교를 희랍 철학의 범주들
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을 말함-되어 갔고 신학은 원래 전례학 및 윤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점차 이것들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이다.

 

 

(2) 중세와 종교개혁시대의 견해들: 이러한 이론적인 발전은 결국 중세의
철학-신학운동에까지 이르렀다. 중세의 이 운동은 이성과 계시 간에 균형을 잡
아 보려는 것으로 스콜라주의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이 종말을
고하자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이 종교개혁은 기독교의 본질이 기독교
의 '순수한 가르침'에 근거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기독교의 신앙생활 및 기
독교의 가르침의 통일성은 이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아주 극적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또한 기독교를 지식화하는 과정도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각각
다른 신앙고백 형태들을 낳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통일성의 종언의 또 한
이유). 이러한 신앙고백들은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뿐만 아니
라 로마 가톨릭 교회도 16세기에 열렸던 트렌트공의회의 신앙선언을 통해 자기
들의 신앙고백을 형성하였다.

한편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하나의 특
수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그 이전의 교회개혁들과는 달
리 가톨릭 교회 자체 내의 한 종교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개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을 출현시킨 교회개혁이었다. 그리고 이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저마다
자기 교회가 초대 교회의 전통에 바로 선 참다운 교회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합동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자, 이들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기독교가 생겨난 처음의 5세기 동안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공통신앙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신앙.교리, 교회 치리 방식, 예배 등에 있어서의 모든 개혁들이 초대 교회
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통일성이란 근거 위에 형성된 기준에 맞는 것이라면
이 모든 교회들의 합동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러한 수렴작용은 실행할 수 없는 것임이 판명되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 신학
자들은 우선적으로 기독교의 본질이란 것을 교의적 면에서의 교리란 개념에만
한정하여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끊임없는 논쟁이 거듭되었고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출신의 독일 루터교 신학자인 게오르그 칼릭스투스
(Georg Calixtus, 1656년 사망)는 다음과 같은 공식, 즉 "본질적인 것들에는 통
일성을 이루고 있고, 비본질적인 것들에는 다양성을 가지며 모든 일에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란 공식을 근거로 하여 기독교의 공통 본질의 합의점
을 찾아내려고 하였다.

16세기 말엽고 17세기 초엽의 합리주의적인 교리신학에 반동하여 독일의
루터교 신비주의자이며 신학자였던 요한 아른트(Johann Arndt)는 기독교의 본질
을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여 '참 기독교'라는 말을 새롭게 지어냈다.

 

그리고 이
'참 기독교'란 거듭난 사람들이 가지는 신령한 기독교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형식적인 정통 교회의 교리들을 지식으로서 인정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한 사람이 영적으로 거듭 나는 것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종교개혁 후의 교회사에 있어 독특한 현상의 하나는 <Four Books of True Chr-

istianity>(1606년에 쓰여지기 시작하였음)라는 요한 아른트가 쓴 책이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기독교 교파의 신도들에게 널리 애용되는 신앙 지침서가 되었다
는 것이다.

 

 

아른트의 견해에 근거하여 기독교의 고유한 본질은 한 개인이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있다고 보는 것과 일치하여 발생한 것이 17세기에 그 모습을 드러낸

'신비주의 신학'이었다. 하나의 퇴화된 기독교를 다시 '참 기독교'로 복귀시켜
놓으려는 면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영적인 체험에서 찾으려는 아른트의 견해는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교회 개혁의 중심적인 주제가 되었다.

 

 

(3) 근대의 현대의 견해: 기독교의 본질의 개념은 계몽운동(17세기와 18
세기) 의 초기 단계에 그때 막 생겨난 역사비평 방식과 관련되어서 서구의 지
성사에서 본격적으로 문제시되게 되었다. 그리고 단 한 세대라는 짧은 시간 동
안에 이 문제에 관하여 세 사람의 독창적인 영국 사상가들이 매우 중요한 업적
을 이뤄놓았다. 즉 존 로크(John Locke)의 <The Reasonableness of Christia-

nity>(1695), 존 톨랜드(John Toland)의 <Christianity not Mysterious>(1696),
그리고 매튜 틴달(Matthew Tindal)의 <Christianity as Old as the Creation>(

1730)이 그것들이다.

 

이 세 저술들의 밑바닥에는 기독교의 본질은 합리적인 종
교라는 것이며 이 합리성은 모든 시대이 교회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임
이 상정되어 있음을 나타내 보여주고자 하는 계몽주의 신학적인 시도가 깔려 있
었다. 한편 18세기 독일의 교회 역사가이며 신학자였던 요한 잘로모 제믈러(

Johann Salomo Semler)는 사적인 개인신앙과 공적인 공공신앙 사이에 하나의 구
별을 지으려는 것과 관련하여 '기독교의 본질'이란 어귀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었다.

 

제믈러는 개인 신앙이란 한 개인 신도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이며 신
앙적인, 또한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법
적인 면에서 타당하게 결정되어진 교회의 신조들을 신학적으로 또 교의적으로
정의를 내리는 것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러한 제믈러의 견해
서 볼 때에 기독교의 본질이란 개인 신앙의 영역에 속한 것이었다.

계몽운동 기간의 학자들이 기독교의 본질을 하나의 기본적인 보편종교 원
리에서 발견해 보려는 노력을 보였었음에 반해서,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활약
하였던 독일 신학자 쉴라이어마허는 한 종교에서 본질적인 것은 단지 어떤 임의
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어떤 명확한 신앙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쉴라이어마허가 주장한 것은, 기독교의 본질이란 기
독교의 역사적인 형태를 따로 떼어놓은 채 어떤 추상적인 원리로서만은 이해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가 도래하면서 역사주의는 점점 더 중대성을 띠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순전히 역사적인 물음으
로서 부각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주의 방면의 학술연구는 기독교를 총체적으
로 역사적인 상대주의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왜냐하면, 이 역사
비평적인 연구 가설들은 "신도가 내적으로 어떤 신앙으로 몰두해 있는" 상태를
신앙적인 혹은 영적인 상태라고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독교를 역사적인 상대주의 속으로 몰아넣는 연구가 나오게 된 것은 기 독교의 본질을 '예수의 생애' 연구를 통해서 확증해 보려는 시도들-이 연구는

19세기 독일의 학자 쉬트라우스(David Friederich Strauss)가 처음 시작하였다-
이 실패한 후에 특히 일어났다.

한편 기독교의 본질을 교의의 역사란 측면에서 확증해 보려는 아돌프 폰
하르낙의 노력은 여러 갈래의 종교사학적인 연구방법을 자아냈다. 한편 스웨덴
교회의 대주교였던 나탄 죄더블롬(Nathan Soederblom)은 1932년에 자신이 죽고
난 다음에 발행딘 그의 강의집에서 기독교의 두가지 뚜렷한 점들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하나는 기독교 안에 새로운 점이 있다는 것은 "메시지나 가르침이
아니라, 한 역사적인 인물 곧 한 진정한 인간 존재였던 예수"이다. 그리고 다 른 하나는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일어난 '잔인한 사건'을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
으로 보는 '야만적 관념'"이라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중요하게 눈여겨 볼
것은 독일 신학자였던 트뢸취(Ernst Troeltsch)가 <The Absoluteness of Chri-

stianity>(1902)라는 저서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즉 기독교는 절대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주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인간 구원에 근
본적인 조건으로 여겨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가 역사적 으로 유일한 것이란 메시지로서, 기독교는 세계의 다른 종교들과 여유있게 경쟁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경쟁에서 절대성에 대한 선공세적인 이데올로기적 주
장을 내세워 순수한 영적 논쟁을 제지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2. '기독교의 본질'이란 개념의 윤리적 발달 및 기타의 발달:

(1) 윤리적
및 교회일치운동의 입장에서의 견해들: 기독교의 본질을 교리적인 면이나 조직
신학적인 면에서 찾도록 그 관점이 옮겨지게 되자-이것은 중세기와 종교개혁 시
대에 그 면모를 잘 볼 수 있다-급진적인 교회 부류에서 이에 대한 반동이 발발
하였다. 이 그룹의 교회들은 기독교의 본질을 윤리적인 언어를 가지고 정의하
였다. 즉 이들은 '세상'을 배척하고, 또한 교회가 '낡은 아이온'(old aeon: 세
상을 말함)과 얽혀드는 것을 특히 비난하였다.

 

그리하여 중세기에 도덕적 개혁
을 부르짖고 일어났던 소분파들이 출현한 그 시대 이래, 마태복음 5-7장에 있는
예수의 산상설교는 급진적인 교회나 소분파들의 신도들이 자기들의 가장 중요한
지침으로 여기게 되었다. 또 산상설교를 보면 수많은 교회들에의 기독교인들에
게 교회일치적인 호소 역할을 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이런 교회들 내에는 루
터교나 칼빈주의의 지방 공인 교회들(territorial churches: 이 경우는 어떤 한
지방이나 국가에서 그 지역의 공식적인 종교로 확립되어 있는 경우임) 내에 있
는 어떤 교회 운동(예를 들면, 경건주의 운동)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나 산상설
교의 이와같은 에큐메니칼한 측면은 여러 숱한 교회들에 의해 무시되어져 왔다.
루터교회와 개혁교회는, 때때로 자유파 교회들(예를 들자면, 감리교회, 침례교
회, 회중교회 등등)이 주장하는 '완전의 윤리'가, 세상에서는 악한 상태를 완전
히 극복할 수 없으며 따라서 완전한 덕의 단계에까지 이를 수는 없다는 것을 다
르치는 성경의 칭의의 교리를 근본적으로 오해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18세기 영국에서 완전한 덕을 설교하면서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
리는 영국 국교회측과 루터교, 장로교 등의 교회로부터 맹려란 반대를 받았다.

19세기와 20세기에 벌어진 역사적인 대파국들 특히 두 차례의 세계 대전들
은 기독교의 본질이란 문제를 하나의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만들어 주었고, 그
리고 이 기독교의 본질이 새로운 중요성을 띠고 있음을 나타내 주었다. 20세기
에 들어와 에큐메니칼 운동이 벌어지면서 기독교의 공통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여러가지 다른 시도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중의 하나로서 기독교의 본질을
기독교의 윤리적 측면에서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근거 위에서 시도된
운동으로서는 기독교 교회들이 처음엔 에든버러에서(1910), 그 다음에는 스톡홀
롬에서(1925) 모여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일'에 관하여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
다. 그러나 하나의 '순수한' 공동체를 설립하는 데 공통의 윤리적인 일과 윤리
적 활동만으로는 충분치 못함이 드러났다.

 

또한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를 만드
는 것에는 한 공식적인 신앙교리가 필수적임이 느껴졌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
에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발족되었다. 이 세계교회협
의회는 기독교의 본질이 기독교 세계 전체에 걸쳐 하나의 공통 기도 즉 '주기도
문'을 드리는 데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와같이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해답은 역사적인 환경들 때문에 모든 시대
마다 새롭게 구해져야만 했다.

 

 

(2) 종말론적인 견해들: 20세기 내내 신학은 기독교의 본질을 예수의 참
면모 및 예수가 설교한 급격히 도래할 하나님의 통치라는 것에서 나타나는 종말 론적인 성격에서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였다. 19세기 덴마크의 철학 키에르케고
르(S. Kierkegaard)가 제시한 방향을 따라 종말론적인 견해를 고수한 신학자들
은 다음과 같은 비판적인 질문을 던졌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 속에
서 그 문화, 그 문제들, 그 여러가지 혜택들 또 그 세상이 주는 쾌락 뿐만 아니
라 세상을 위한 노동들을 모두 함께 공유하면서 어떻게 기독교인으로서의 실존
을 유지해 갈 수 있는가?"

 

하지만 종말론적인 기대감을 안고 있는 이 질문은,
기독교의 본질을 위기적인 실존적 이해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것을 시도하는
개념들을 전복시켰고 오히려 기독교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필요성을 제기
하였다. 즉 마르크스 철학에 접근하여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란 기독교의 메
시지는 점점 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 속에 들어 있는 사회-윤리적인, 또
사회-유토피아적인 내용으로 축소되었다. 그리하여 인격적인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더불어 내세에 대한 신앙마저도 또한 허물어졌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그 자체 내부의 비판과 외부의 비판 어느 쪽으로 보아도, 마르크스주의 사회-혁 명적인 계획 쪽을 향하고 있는 하나의 '희망의 원리'로 축소되고 말았다. 이러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기독교를 20세기의 기독교의 본질이란 면에서 생각해 볼
때에, 기독교 신앙에 관한 다음과 같은 하르낙의 말들은 아마도 아직도 적절한
듯이 보일 수 있다.

"(기독교가) 인류의 문화 및 인류의 진보를 위해 이뤄놓은 것이 무엇인가
를 먼저 묻고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독교의 가치를 평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미 기독교에 상처를 입힌 사람이다. 삶의 의미는 항상 초세계적으로만 펼쳐
진다." 
내용출처 : [기타] 임마누엘성경;http://cafe.naver.com/xpoemcity 

(출처 : '[신학해설]기독교(基督敎)의 본질(本質)'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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