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교회 이야기

[스크랩] 니케아 정교회(이스탄블 니케아 회의)

형람서원 2006. 4. 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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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성벽

니케아(Nicaea)


현재명은 이즈닉이다. 이즈닉(Iznik) 호수의 동쪽면에 위치한 이즈닉 마을이 고대 니케아이다. 니케아는 제 1회 세계 종교회의가 있었던 장소이다. 전설에따르면 니케아는 포도를 재배하는 방법을 알려준 디오니수스(Dionysus) 신에의해 세웠졌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주변에 포도원을 많이 볼 수 있다. 주전 316년 리시마쿠스가 이 도시를 정복하고 그의 아내 이름을 따라 니케아라 불렀다. 아랍, 비잔틴 오토만, 20세기 그리스등 나라에의해 부셔졌던 성벽은 여전히 현 도시의 대부분을 두르고 있다. 니케아인으로 제일 유명한 인물은 니케아의 힙파쿠스(Hippachus, 주전 146-126)인데 그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108개의 별에대한 목록을 만들었다. 그는 천문학을 하란과 에뎃사의 선생들에게서 배웠고 경도와 위도의 교차점을 이용하여 위치를 밝히는 과학적인 방법을 발명하였다. 그는 또한 달과 지구의 크기를 측정하기위하여 시차(視差, parallax)를 이용하였다. 초기 기독교의 성장에대하여 딜레마에 봉착했던 비두니아의 총독, 플리니(Pliny)는 트라얀(Trajan) 황제 때 니케아에 머물렀다. 그는 자신의 지역 기독교인에대한 보고를 했고 트라얀은 자비와 권위에 대한 충성을 동시에 요구하였다. 플리니는 자신의 보고서에서 기독교인들은 동이 트기 전 함께 모여 그리스도가 마치 신이기가 한 것처럼 찬양하며 절도와 간음과 기타 부도덕한 범죄를 범치 않기로 다짐하는 비밀집회를 가졌고, 플리니가 이 집회를 금지하였을 때도 계속해서 '천하고 과도한 미신행위'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트라얀 황제는 기독교인에대한 법적 절차가 정립되지 않았고 죄의 성격을 볼 때 국가가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면서까지 색출해야할 극악한 것이아니기에 고발이 접수되었을 때만 수사하고 그때도 신들에게 예배하지 않을 경우 처벌해야한다고 명령하였다. 이 법은 수세기동한 기독교인에대한 로마의 입장으로 굳어졌다. 이즈닉의 주요 교차로에 성 소피아 박물관이 있다. 이 건물은 789년 제 7차 종교회의가 열렸던 장소이다. 폐허는 유스티안시대의 기초를 포함하고 있고 1331년 회교사원으로 되었다가 15, 16세기에 불에타서 폐허로 있다가 터키과 그리스 전쟁 때 마지막으로 불탔다. 끝이 잘라진 회교사원 탑은 매년 봄마다 찾아오는 황세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제 1차 종교회의는 호수변에 있는 콘스탄틴의 궁전에서 열렸다. 궁전의 돌들은 도시의 남서쪽 모퉁이가 물에 침수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건물의 모양을 추정하기 어렵다. 16세기에 이즈닉의 도자기공들은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은 타일을 만든는 사람들이었다. 색채감과 예술성있는 디자인에 더하여 토마토 색은 특이한 것이다: 1560-1620년에 이즈닉에서 생산된 타일에서만 이 색이 나타난다. 아일렌드 학자에의하면 이 이 기술은 1580년 로도스에 가기까지 했으나 이 색의 비밀 전수가 중지되면서 이 색은 더 이상 만들어 지지않았다. 어떤이들은 그 재료가 고갈되어 전수되지 못했다고 하나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 타일은 이스탐불의 토카프 궁전 벽과, 이스탄불의 사원, 에딜렌의 셀리미예 사원에서 볼 수있다. 이즈닉의 고고학 발물관에서는 동전들과 석관과 함께 이 타일들을 잘 볼 수 있다.

출처 : 성화사랑
글쓴이 : 고마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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