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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悔改)에 대한 바른 고찰(考察), 최낙범 박사

형람서원 2024. 9. 2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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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悔改)에 대한 바른 고찰(考察)

최낙범 박사(총신교수, 새순교회)

우리가 사는 시대를 가리켜 메시지의 홍수시대라고 한다. 이 말의 의미는 많은 메시지를 들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듣기 좋은 메시지만 선호하고 듣기 싫은 메시지는 선호하지 않는데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듣기 좋은 메시지만 들으면 안 된다. 듣기 싫은 메시지도 하나님의 말씀인줄 알고 함께 들어야 한다. 그래야 바른 신앙생활이 가능하다.

특히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듣기 싫은 메시지를 더 잘 들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역사로 무의식 가운데 영적으로 이미 출생했고, 또 하나님의 백성으로 출생한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변화되고 계속 자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입맛대로 말씀을 골라 듣는 것이 아니라 선포되는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알고 잘 들어야 한다.

그러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의식적으로 듣고, 의식적으로 해야 할 첫 번째 신앙행위는 무엇일까? 그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려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듣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회개하는 일을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의식적으로 하는 일이다.

여기서 회개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회개는 어원적으로 구약에서 나함(ם)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 뜻은 “후회하다”, “애통하다”, “슬퍼하다”이다. 한마디로 “회개하다”는 뜻이다. 그 예는 예레미야31:19,욥기42:5~6에서 알 수 있다. 슈브( ב וּשׁ)라는 단어가 있다. 그 뜻은 “돌아서다”, “돌아오다”이다. 한마디로 방향의 전환을 뜻한다. 그 예는 역대하7:14에서 알 수 있다.

신약에서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라는 단어가 있다. 그 뜻은 “회개”이다. 한마디로 지식, 감정, 의지 등 모든 면의 변화를 뜻한다. 그 예는 마태3:8, 행11:18, 고후 7:10에서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회개에 관한 가장 보편적인 단어이다,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라는 단어가 있다. 그 뜻은 “후회하다”, “회개한다.” “다른 생각을 갖는다.”이다. 그 예는 막1:15;6:12;눅10:13.11:32에서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의지의 강력한 전환을 표시하는 의지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에피스트레포(ἐπιστρἐΦω)라는 단어가 있다. 그 뜻은 “돌아선다.” “전환한다.” “다시 돌아간다.”이다. 이 단어는 내적변화의 결과로 오는 외형적 삶의 변화를 뜻하고 있다.

이 단어들을 종합하면 회개란 어떤 것으로부터 돌아섬이다. 회개는 잘못된 길에서 바른 길로의 방향전환이다. 회개는 죄를 멀리 떠나고 선을 가까이 추구하는 인격적인 결단이다. 회개는 자아중심으로부터 하나님중심으로의 방향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서 제88문의 진술을 보자. 여기서는 “사람의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면서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고, 89문에서는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우리 죄 중 마음으로 슬퍼하고, 더욱 더 중오하고 그것을 피하는 것”이라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제76문의 진술을 보자. 여기서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생명에 이르는 회개란 성령과 말씀에 의해서 죄인의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구원의 은혜이다. 그로써 자기의 죄의 위험성과 더러움과 추악함을 보고 느끼고 통회하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달고 자기 죄를 몹시 슬퍼하고 미워하는 나머지 그 모든 죄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범사에 새로 순종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끊임없이 동행하기로 목적하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볼 때 회개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이식받고 거듭날 때 자신의 죄악을 그대로 두지 않고 외적인 신앙 행위가 의식적으로 반드시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과거에 하나님께 지은 온갖 더러운 죄와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회개는 성령으로 거듭남이 단 한번이듯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근본적인 회개로서 구원서정에서 한번 일어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하기에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는 의식적으로 이런 회개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거듭난 자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거듭난 자들에게 일어나야 할 근본적인 회개가 바르게 일어나지 않는다는데 심각함이 있다. 그 결과, 신앙생활도 바로 되지 않게 된다. 이 말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성화(聖化)를 위해 회개가 계속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거듭날 때 일어나는 근본적인 단 한 번의 회개가 바르게 일어나지 못하므로 신앙생활을 할 때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거듭날 때 일어나는 근본적인 회개의 부재로 인해 구속공동체에 많은 갈등과 분쟁, 많은 상처와 고통이 야기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회개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이해되어야 할 것은 죄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그것은 죄가 무엇인지를 바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정한 회개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죄에 대한 바른 개념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면 회개와 관련된 죄란 무엇인가? 여기서 죄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난 윤리적인 죄, 도덕적인 죄, 법률적인 죄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난 본질적인 죄를 말한다. 즉 이 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겨야 할 피조 인간이 하나님께 독립을 선언하고 하나님을 떠나 버린 죄, 그래서 우상을 섬기며 자기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 온 죄를 의미한다.

그 결과,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권위에 도전하고 자신의 영광을 탈취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공의를 발동하고 자신의 진노를 쏟아 부으셨다. 그 현장이 어디냐고 하면 그곳이 바로 십자가이다. 이곳은 사실 죄인인 우리가 못 박히고 고난을 당하므로 우리가 죽어야 할 곳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구속중보자요, 인류의 새 대표자인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곳에 못 박히게 하시고 우리 대신 죽게 하신 곳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받을 죄에 대한 진노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받으셨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 인간이 지은 죄가 무엇이고, 우리 인간이 지은 죄의 비참함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 준다.

이런 사실은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불경건 죄와 불의의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진노를 받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 앞에 엎드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지은 죄를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이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성령하나님이 우리가 회개하도록 마음의 완악함을 녹여 주시고 회개의 마음을 주사 회개하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회개는 거듭날 때처럼 성령의 역사에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능동적이어야 하고, 그리고 의식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성령이 회개하도록 역사해도 죄를 회개할 책임은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때의 회개가 원리상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의 옷을 입는 것으로서 반복되지 않고 단 한 번만 되어지는 상태의 변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이런 회개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면 거듭난 자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지은 무서운 죄를 어떻게 회개해야 바른 회개가 될까? 여기서 거듭난 자들이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바른 회개는 단도직입적으로 인격적인 회개를 말한다. 이것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지적인 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여기서 지적인 변화란 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으로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즉 거듭난 자는 자신이 아담 안에서 죄인으로 태어났음을 자각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것은 인격적인 회개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그 이유는 인격적인 회개가 지적변화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에 대한 인식이라는 단계에만 머물면 인격적인 회개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반드시 감정적인 변화에로 연결되어야 한다.

둘째, 감정적인 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여기서 감정적인 변화란 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결과로서 죄에 대한 올바른 느낌을 갖는 것이다. 즉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생각하며 그것 때문에 고통하고, 그것 때문에 슬퍼하고, 그것 때문에 근심하며, 그것을 증오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감정적인 변화는 마음중심으로는 죄를 통회하고, 눈에서는 눈물을, 입술로는 죄 용서받기를 갈망하고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세상적인 고통·슬픔·근심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절대로 후회가 없다. 반드시 소망이 있다. 그러나 인격적인 회개는 감정적인 변화에만 머물면 안 된다. 이것은 의지적인 변화로 연결되어야 한다.

셋째, 의지적인 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여기서 의지적인 변화란 지적인 변화, 감정적인 변화와 연결된 것으로서 회개의 결정적 요소요, 회개에 대한 최종단계의 변화이다. 즉 의지적인 변화란 자신이 하나님 앞에 범한 죄를 발견하고 그 죄를 마음으로 통회하고 슬퍼하며 입술로 고백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그 죄를 끊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인격적인 회개에 있어서 이 단계가 가장 어렵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죄악 된 본성을 갖고 태어났고, 죄악 된 본성을 갖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거듭난 자가 해야 될 인격적인 회개란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지은 죄를 놓고 지적으로 죄를 인정하고 감정으로 죄를 통회하며, 의지로 죄를 끊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른 회개요, 이것이 진정한 회개요, 이것이 인격적인 회개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는 인격적인 회개의 실례를 들 수 있다. 그것은 누가복음 15장 11절에서 24절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이다. 그 내용을 보면 둘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가서 사는 중에 그것을 다 허비하고 흉년이 들자 돼지를 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탕자는 마침내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 과정이 세 단계로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 구나”(17절)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탕자는 스스로 돌이켰고, 또 그는 자신이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회개의 첫 번째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18,19절)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탕자는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아버지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있다. 이것이 회개의 두 번째 단계이다.

세 번째 단계는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20절)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갔다”는데 있다. 만일 그가 처음 두 단계를 진심으로 경험했다고 해도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진정한 회개와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동시에 진정한 회개의 기쁨과 평화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회개할 때 부분적인 회개를 하지 말고 바른 회개요, 진정한 회개인 인격적인 회개를 해야 하겠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볼 때 참된 회개는 죄를 용서해달라고 눈물로 고백했다고 해서 완전해졌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세상 가운데 살면서 온갖 죄를 짓던 자리에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길 간절히 소망하고, 또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면 갈 곳 없는 고아임을 고백하며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구하

며, 또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 후 그를 온전히 믿고 그만을 의지하며 그와 함께 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듭난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에 감사하며 그 앞에 엎드려 철저히 회개하는 일이다. 지난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세상구습을 쫓던 더러운 죄들을 빨리 끊어버리는 일이다. 왜냐하면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받을 만한 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머뭇거리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가 우리를 멸망시킬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사실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가 임하므로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다.

또 죄를 회개만하고 그대로 있으면 안 된다.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방향전환을 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우리를 찾아 끊임없이 유혹하고 말 것이다. 어디 유혹으로 끝나겠는가. 마귀는 더 강한 유혹과 더 악한 시험을 동원하여 우리를 넘어뜨리고 우리를 멸망시키고 말 것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죄를 짓는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믿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회개와 믿음을 별개의 문제로 취급하고 넘어 갈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기 전 우상을 섬기며 지었던 온갖 죄와 죄를 짓게 했던 악한 욕망과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 가치관과 선한 욕망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리고 세상나라보다 하나님나라가 더 크게 보여야 한다. 인간이 만든 금과 은보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우리 인간을 십자가에서 구속하신 예수의 이름과 권세가 더 크게 보여야 한다. 이런 가치관 전환과 함께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주어진 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 이유는 이런 삶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믿지 않는 죄로 말미암아 망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영원한 지옥 불에서 고통을 당하는 불행한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 앞에 지은 모든 죄를 끊어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믿음으로 사는 일이다. 이것만이 우리가 구원받는 길이요, 이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 기회가 주어졌을 때 빨리 회개해야 한다. 또 하나님을 믿고 그를 의지하며 그를 섬겨야 한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이 있다. 그것은 회개와 믿음이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삶을 위해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해야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거듭난 후의 회개와 믿음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단 한번 반드시 해야 될, 그리고 전 인격적으로 해야 될, 그리고 의지적으로 해야 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일을 실천하므로 사죄의 은총과 함께 의롭게 되는 은총을 경험해야 하겠다. 더 나아가 이 일을 실천하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

중앙대학교 철학과 졸업(B.A).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및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졸업(Th.M), 숭실대학교 대학원 졸업(Th.M). 미,Kernel University 대학원 졸업(조직신학박사, Th.D). 총신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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