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기독교강요

기독교강요(42) 영혼의 목적은 예배하는 것

형람서원 2015. 12. 7.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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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42) 영혼의 목적은 예배하는 것
고경태 목사(한국성경연구원)
기사입력 2015-12-07 오전 2:01:00 | 최종수정 2015-12-07 02:01  

기독교강요 1권 제15장 5-6

5. 신의 본성이 영혼에 유입되었다는 오류의 기원마니교세르베투스

우리는 고대에 있었던 마니교도의 망상(妄想)을 제시하는데세르베투스가 그 망상을 이 시대에 다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마니교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생기를 인간에게 넣으셨다”(창 2:7, inspirasse Deus)는 말씀을하나님의 본체에서 어떤 무한한 신성이 인간에게 유입되었다고 주장하는 그릇된 사상이다이 마귀적인 오류(diabolicus error)가 얼마나 어리석고 추악한지 지적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만약 하나님의 본질(Dei essentia)이 인간의 영혼에 유입되었다면 인간에게 있는 변화와 고뇌 그리고 무지까지도 하나님의 본성이 혼합될 것이다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본성이 혼합되면하나님의 본성(Dei naturam)이 인간의 변덕스러움과 함께하며 인간의 변덕이나 부패 등도 하나님의 속성이 될 수 밖에 없다.

바울이 말씀한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행 17:28)는 것이 하나님과 동일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격에서 그의 소생이다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것은 사실이지만영혼도 천사와 동일하게 창조된 것을 바르게 인지해야 한다모든 창조는 하나님 본성이 유입한 것이 아니라 무()에서 시작된 존재이다창조주는 창조주이시고피조물은 피조물이다.

오시안더도 이 문제에 있어서도 환상에 빠져 스스로 불경건한 오류에 말려들었다마니교도의 신의 본성의 유입을 주장하는 것은 인격으로 오시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Spiritus gratia et virtute)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이다주의 영(Domini Spiritu)은 분명히 우리 안에서 일하시지만우리를 하나님과 동일본체(Deo consubstantiales)로 만들지는 않으신다.

6. 영혼에 대한 정의나 기능보다 목적을 묵상한다

"영혼"을 정의(Animae definitionem)하는 것을 철학자들에게서 찾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데플라톤만은 인간의 영혼이 불멸의 실체라고 주장한 한 사람이다플라톤은 신()의 형상이 영혼 안에 있다고 생각하였다(quod imaginem Dei in anima considerat).

영혼이 무형의 실체인 것은 성경에서 배웠다(Porro ex Scriptura ante docuimus esse substantium incorpoream). 영혼이 공간적으로 제한을 받지 않는데 육체 속에 거하며 육체의 모든 부분에 생기를 주고육체의 각 기관에 적절하고 유용한 행동을 줄 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며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자극한다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타락하여 흔적으로 있는데인간이 행하는 미신(迷信)이다.

인간이 자기 명성에 대한 관심수치심 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이러한 시작과 원인은 인간이 의()를 함양하도록 태어났다는 것이고곧 종교의 씨앗(religionis semen)이 내재된 것이다인간이 하늘을 묵상하도록 영혼에 새겨져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함으로써 완전한 행복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영혼의 주된 활동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는 것이다그런데 18세기에 영혼을 부정한 이성주의에서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없고 목표도 없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않은 인간은 존재의 근거를 포기하고 파괴하기 때문에 경박하며 괴로움을 당한다이러한 이성의 충돌에서 영혼의 기능이 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부패한 인간의 기관은 서로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인간은 괴로움에서 적당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육체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면서 해결하려고 한다.

칼빈은 영혼의 기능에 대하여 논의는 철학자에게 맡기고경건의 덕을 세우는 것에 전력함을 피력한다재미나 말솜씨가 아닌 덕을 세움에 목적을 둔다칼빈은 영혼에 정신이성,상상력(menti, rationi, phantasiae)의 세 가지 기능(tribus animae facultatibus)과 의지,분노욕망의 세 욕구를 제시하였다이러한 분류들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연구가 큰 덕을 주지 않는다그러나 영혼의 능력이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영혼을 구분을 짓되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구분을 짓도록 하자철학자들은 할 수 없는 구분이다철학자들은 단지 인식만을 목표로 하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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