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독서(2) 지식과 지혜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인식론(epistemology)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고대교회에 신학은 사도들의 체험적인 믿음에 의해서 존재에 대한 믿음과 묵상을 전개했다. 고대교회의 신학이 비록 알레고리칼한 성경해석이었지만, 정통교리를 이룰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러나 중세교회에서 사도의 믿음과 가르침을 떠남으로 종교개혁에서 고대교회의 바른 믿음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성경”이 되었다. 루터는 단순히 중세로마교회의 과오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칼빈은 교회의 원형을 고대교회로 삼고 바른 교회를 세우려고 개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는 인식론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참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존재와 본성에서 시작한다. 칸트는 Prolegomena (序說)를 처음에 제시했는데, 전체의 내용을 함축한 것이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이중지식(duplex notitia, twofold knowledge)으로 전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칼빈의 전개의 특징은 전체에 각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되는 것이 있다. 성경, 성부, 성자, 성령, 인간, 죄는 [기독교강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한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지식(knowledge, 知識)”을 추구한다. 지식은 notitia 혹은 cognito 인데, 칼빈은 notitia를 사용하는데, cognito와 구별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notitia와 cognito가 중세시대는 구분해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도 지식(知識)과 지식(智識)을 구분하지 못한다. 중국어에는 지식(知識)과 견식(見識)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제시하는 것은 칼빈이 “학(學, ~shopy)”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지식”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이 체계화되면 “신학(神學, scientica)”이 된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신학체계를 이루는 것보다, 성경을 읽는 가이드북으로 의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와 성경을 읽으면서 자기 신학(scientica lux mea)을 하도록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첫 문장이 “참되고 굳건한 지혜(true and sound(solid) wisdom, vera demum ac solida sapientia)”을 제시한다. 칼빈은 “지혜”를 두 지식의 융합으로 보았다. “지식”을 순서대로 제시하여, “지혜”는 모든 지식을 통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과 지혜는 상호 순환적인 모습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시 110:10, 잠 1:7, 9:10). 그래서 칼빈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함(Coram Deo)을 제시하며, 하늘의 복과 인간의 비참함이 교차된다. 그러나 오직 주 안에서 죄와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 된다.
지식, 신학, 지혜는 각 다른 영역이 아니라, 상호연관을 갖는 중요한 과정이다. 지식 없는 지혜는 불가능하고, 지혜 없는 지식은 화석(化石)일 뿐이다. - 형설청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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