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연구

Re:기독교의 본질 - 제 4 강

형람서원 2008. 7. 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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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강

 

이전 강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도래를 선포한 예수. 우리는 구약적이고 예언자적인 심판의 날에 대한 설교로부터 이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내적인 도래의 개념에 이르기까지 모든 진술과 형식이 그 안에서 내포되어 있음을 보았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악마의 나라가 붕괴되고 사신(邪神)들은 정복된다는 의미이다. 예수는 악마를 몰아내고 인간을 해방시켰다. 여기서 우리의 주제를 떠남. 복음서에 등장하는 [미친] 사람에 대해서는 병적 현상(정신병)에 대한 설명이다. 정신병자들은 자신이 악령에 잡혀있다고 주장한다. 정신병자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인격의 감화력이다. 그러한 인격이 악마를 억압하고 위협하며 결국 환자를 치유하는 것이다. 당시 팔레스타인에 많은 해악의 세력을 놀랄만한 능력으로 추방했다. 요한의 의심에 대해서 예수의 새로운 시대에 대한 답변을 하였다. 요한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게 되었다.

 

(2) 하나님 아버지와 인간정신의 무한한 가치

 

현대인의 사고와 지각으로는 그리스의 메시지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관념과 인간정신의 무한한 가치와의 관련해서 파악될 때 가장 직접적이고 명료하게 이해될 수 있다. 예수의 메시지에서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본질을 알 수 있는 것으로 ① 주의 기도 ②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할 것이 아니라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됨을 기뻐하라 ③ 참새 두 마리가 동전 한 닢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④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다.

먼저 주의 기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평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며, 기도를 들어주심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다. 자기의 욕망을 하늘로 보내거나 지상의 행복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미 지니고 있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그가 살고 있는 하나님과의 일치를 확보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그 마음에 심원한 평안이 깃들여 있고, 또 온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과 자기 영혼의 내적인 관계에 집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다. 기도는 모든 것으로부터 초월하고 영혼은 오직 그 하나님과 함께 있는 높은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런 상태에서 네 가지를 구한다. 일용할 양식, 매일의 죄와 유혹(誘惑)과 생활상의 악이다. 주의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삶 전체에서 적용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하나님의 나라와의 내적 결합 그리고 영원한 복음의 소유와 악으로부터의 보호에 대한 기쁨에 넘치는 확신이 복음(福音)이다.

둘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됨으로 기뻐함. 하늘에 기록됨에 대한 관념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는 겸손하면서도 자랑스러운 확신보다 더 강력한 종교적 체험이다.

셋째, 하나님의 섭리. 참새가 팔리는 것의,, 머리털까지 세신 하나님. 모든 영역, 가장 미소한 영역까지도 하나님께서 지배하신다는 확신은 존재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넷째, 예수는 자기 목숨, 즉 인간의 가치를 최상의 위치에 두었다. 플라톤은 정신의 영원한 기원을 주장했지만, 지식적 정신이며 맹목적으로 물질과 대치시켰다. 예수의 선포는 인간의 가치를 지상에서 최고로 높임으로 희랍인의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 나는 최근에 진실로 위대한 사람의 가치는 모든 인류의 가치를 끌어 올린데 있는 것이라는 말을 읽었다. 인류의 가치를 끌어 올리는 일. 예수가 인류 역사에서 유일하게 인류의 가치를 높은 단계로 선양하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 인간에 대한 최고의 평가는 가치의 경도(傾倒)에 근거된 것이다. 자기 제물을 과시(誇示)하는 자를 어리석다고 부르고 경고한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를 다시 불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은 거처럼 지극히 단순하게 말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섭리(攝理), 하나님의 아들, 영혼의 무한한 가치는 복음 전체가 표현하는 것이다.

[종교] 종교는 유일하게 인생의 기초와 의의를 드러내고 최고요구로서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다. 종교는 여러 가지 세계현상 전체를 자기 자신에게 예속시켜 자기만이 참이라고 한다면 종교는 그것들에 대항한다. 종교는 오직 하나의 체험만을 주지만, 그 중에서 새로운 세계의 상이 성립되는 것을 허용한다. 사람에게 참된 경건은 알든 모르든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실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3) 보다 나은 의와 사랑의 계명

 

복음 전체는 이 범위에서 이해될 수 있다. 예수는 그 당시에도 바리새인에게 깊은 도덕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복음에는 독특한 윤리적인 사상이 표출된다.

첫째, 예수는 윤리와 외적 예배, 그리고 기술적, 종교적인 행실과의 결합을 예리한 절단으로 용해(溶解)했다. 예수는 사랑과 자비 그 자체를 추구했다. 둘째, 인간의 성향은 도덕적이다. [보다 나은 의], 산상설교에 나타난 대부분의 인간의 성향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성향인데, 그것은 인간의 관계(關契)와 인간의 과오(過誤)의 각개의 여러 부분을 관통하는 것이다. 셋째, 이기적인 것과 의식적인 것의 결합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도덕적인 것으로서 인식한 모든 것을 그는 오직 하나의 근거, 오직 하나의 동기, 즉 사랑으로 환원시킨다. 넷째, 도덕적 요소를 이분법적 요소의 혼합에서 해방, 공적 종교와의 결합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즉 복음은 일반적인 도덕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도 오해한 것은 아니다. 종교와 도덕. 산상설교에서의 지복은 겸손(謙遜)이다. 예수는 겸손과 사랑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설교에서 그의 윤리와 종교가 근본적으로 결합되고, 모든 외적인 것, 특수한 것으로부터 이탈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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