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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의 데살로니가 지역 복음전파를 우리도 해야한다, 하석준 목사

형람서원 2024. 10. 2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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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바울 사도의 데살로니가 지역 복음전파를 우리도 해야한다Ⅰ(241027)

성 경 : 데살로니가전서 2 : 1 - 12

2024.10월. 아시아 최초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의 작가가 세계의 문호들 앙드레 지드(좁은문), 알베르 카뮈(이방인, 페스트) 헤밍웨이(노인과 바다), 펄벅(대지), 헤르만 헤세(데미안) 등의 반열에 섰다. 대한민국의 문학 수준을 200여 국가가 연구하게 됐다.

따라서 한강 작가의 책을 찍어내기 위해서 인쇄소가 24시간 2교대 근무, 서점가, 제지 공장(현재 책 인쇄 종이 600 TON 필요) 뿐만 아니라, ‘한강’의 아버지 한 승원의 책 판매 증가, 장흥이 들썩이고, 광주광역시도 반응하고, ‘한강’ 작가의 저서가 청소년 권장 도서로 추천되고, 악동 뮤지션의(이찬혁과 이수현) 노래 등에서 ‘한강’ 작가의 영향력과 반응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목사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신자로서 삼가 우려할 부분이 있다. ‘한강’ 작가의 저서를 읽는 사람이 ‘동성애’를 비롯한 반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오염되거나 통념화될 수 있다. 문학이란 인간의 개연적 실상을 담는다는 점에서 어떤 서술이나 묘사가 가능할 수 있지만, 문학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물구나무서기로 나무가 되거나 과거의 문제가 없어지고 새로운 삶을 선사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호의로만 죄용서와 구원으로 새로운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따라서 한강 작가의 저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녀 손이 있는 아버지로서, 할아버지로서 불편함이 있다. ‘여성 문제(페미니스트: 남성 혐오, 성평등)’ ‘성 소수자의 문제’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을 동의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허는 일이요. 자라나는 자녀·손에게 부정적 트라우마를 심는 일이다. 고로 자녀들을 둔 어버이들은 ‘한강’ 작가의 책을 올바른 판단력이 형성된 후에 읽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채식주의자:육식=남성=폭력, 2023년 경기도 교육청이‘성교육 도서’의 유해성을 문제 삼음,전국2024.10.22.‘학부모단체연합(전학연)에서 '채식주의자' 등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도서를 초.중.고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 비치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 [출처]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아이들이 읽어도 좋은 책일까?).

한강 작가의 글이, 역사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데도,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주지 못하는 데도,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데도,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데도, 영생의 몸을 입게 하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방법과 길이 없는 데도, 많은 사람이 한강 작가의 글에 대단한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나는)는 예수 그리스도께 어떠한 영향을 받고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 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안에서 구원받았고, 부활하여, 영생의 몸을 입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상속자가 되었다. 양자가 되었다. 백성이 되었다. 이 소망 때문에 “이 몸에 소망에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찬송488장).” 찬송하고,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찬송85장)” 찬송하고 예배한다.

하나님께 찬송하고 예배하는 우리의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공한 인생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보다 더 성공한 인생이 없다. 돈이 없어도, 명예가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집이 없어도 성공한 인생이다. 예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상에 죽고 부활하심을 믿는 사람마다 저주와 죽음을 면제받고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끝까지 아니, 영원히 책임져주시고 붙들어주시는 분이 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마음에 새기고, 마음이 뜨거워야 한다. 눈물이 나야 한다. 이러한 은혜와 사랑은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지 않은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사랑이지 않은가? 이 사랑을 마음에 새기자. 그리고 우리도 이제 그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2장 1절과 2절을 보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1)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2).”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전도자로 평생 산 바울은 당시 매우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바리새파 유대인이었다. 가말리엘 문하생이었다. 율법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최고의 지성과 권력과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금수저 집안이다. 서울대 법대나 의대를 수석 입학하고 수석 졸업하여, 대법원장이고, 혹은 서울대 병원 원장이었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자기 마음대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바로 그가 복음의 부름을 받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믿고 전도자가 되었다. 바울 사도의 인생이 확 바뀌었다. 세상의 가장 고상한 지식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아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세상에 그 어떤 지식도 죄를 용서하고 부활하고 영생의 몸을 입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 살게 할 수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영생의 몸을 입고 사는 길을 열어주셨다.

따라서 바울은 자기와 같이 어리석게 저주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로 평생토록 살았다. 그런데 바울의 복음전파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동족들에게 버림받았다. 매를 맞았다. 돌에 맞았다.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깡패들과 싸움 중에 복음전파를 하였다. 살아생전 한 명의 영혼이라도 전도하기 위해서였다.

바울 사도가 세 안식일 동안 전도하여 세워진 데살로니가 지역 교회였지만 이방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로 굳게 믿었다. 바울의 전도가 헛되지 않았다. 바로 그 사실을 데살로니가 지역의 교회 자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이 이전과 달라지고 사랑의 선행을 하고 영생의 몸을 입고 영원히 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였다(1).

데살로니가 지역의 교회를 세운 바울은 자기가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복음을 그들에게 전했는가를 말했다. 빌립보에서는 루디아를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다. 귀신 들려 점치는 여자를 귀신에게 놓이게 한 일로, 그 점치는 여자를 통해 돈을 벌던 주인이 법정에 고소하여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감옥 문이 열리고, 간수장과 그 가족이 모두 바울의 전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게 되었다. 이렇게 빌립보교회가 세워졌다(행16:31).

바울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와서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할 때 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다고 성경대로 증명하였다. 그랬더니 헬라 사람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믿고 따랐다. 그 일로 유대인들이 시장의 주먹잡이들을 동원하여 성을 소란케 하고 바울과 믿는 사람들을 끌어내어 그들을 욕하고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쫓아냈으나 쫓겨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대로 전도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받게 하였다(2).

바울이 이렇게 전도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했던 이유는, 사람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곧 생명의 근원이시오. 근거이신 하나님을 아버지 삼고 사는 일이, 죄 용서와 의롭게 됨이요. 구원이요. 부활이고 영생의 몸을 입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하나님 앞에서 영생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세상에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아니 개인의 종말이 오기 전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받아 영생의 몸을 입고 사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요3:16). 그 인생은 평생을 통해서 부를 얻고 권세를 얻고 명예를 얻었을지라도 평생을 헛산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죄용서와 의와 구원과 영생의 몸을 입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그 멸망의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가장 귀한 일이 전도다. 전도는 사람으로 영생의 몸을 입고 하나님 앞에 살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도적같이 오신다. 그 끝날이 오기 전에 전도하자. 전도자의 삶을 사는 개인과 가정을 부족함이 없이 인도하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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