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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즈의 신학에 대한 이상웅 교수와 신원균 교수의 평가 입장

형람서원 2024. 4. 22.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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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즈의 신학에 대한 이상웅 교수와 신원균 교수의 평가 입장

1. 이상웅 교수의 옹호적 논평 글:
에드워즈가 직접 전가론자인지, 간접 전가론자인지에 대해 후대 학자들은 대립한다. 바빙크처럼 찰스 핫지도 간접전가론mediate imputation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핫지를 계승한 워필드, 그 계열의 신학자 존 머리, 거스트너, 베르카우어, 쉐드 등은 직접전가론 immediate imputation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일찍이 추천한대로 제발 에드워즈의 원죄론을 정독하라는거이다. 대가들 사이에 저렇게 독법이 갈리는데, 누가 뭐라고 했다고 하면서 에드워즈를 비개혁주의자로 깍아내리는 것은 정공법이 아니다. 원죄론만 제대로 읽어도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핫지, 워필드, 바빙크 누구도 에드워즈가 칼빈주의자/ 개혁주의자가 아니라고 깍아내리지 않았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죄의 전가 교리 연구(한국개혁신학회 2018년 58호), 초록 보기:
[본 논문은 죄의 전달 교리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관점을 고찰하였다. 바빙크는 에드워즈가 직접 전가를 부인한다고 하고, 에반스, 호튼, 오토는 에드워즈가 실재론을 주장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핫지, 웨들, 스톰스, 스위니, 조현진, 강웅산 등은 에드워즈가 실재론이나 간접 전가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며, 직접 전가론의 주요 사상과 실재론이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평가한다. 에드워즈의 『원죄론』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결과, 죄의 전달에 대한 에드워즈의 관점은 실재론이 아니며 간접 전가론도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에드워즈는 아담과 그 후손들의 관계를 구성적 실제라는 개념으로 보고 뿌리와 가지에 비유하여 설명함으로써 직접 전가론과 실재론의 장점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혁신적인 설명 방식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2. 신원균 교수 비판적 논평 글:
원죄론에서 ‘죄의 전가’종류는 개혁파의 ‘직접전가론’(죄책+오염)와 펠라기우스, 자유주의의 ‘간접전가론’(부패와 오염)로 나눠집니다. 간접전가론은 원죄의 죄책 전가를 부정하고 부패와 오염만 전가됐다고 주장하며 원죄론을 파괴하는 자유주의의 대표적 죄론입니다. 이런 중요한 죄론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원죄론’은 논란의 대상에 있습니다. 즉 개혁파의 많은 학자들 중 에드워즈가 직접전가론자인지, 간접전가론자인지에 대한 평가논란이 있습니다.

에드워즈 전공자들은 에드워즈를 옹호하기 위해서 에드워즈가 직접전가론자임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개혁파 장로교 신학자들 가운데서는 바빙크, 핫지, W. 커닝햄-비판적, 워필드, 머레이-옹호적 평가로 나뉩니다. 어느 쪽이 맞는가는 학자들에게 맡긴다 해도 개혁파의 대학자들조차도 에드워즈의 원죄론을 평가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즉 에드워즈가 그만큼 원죄론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헷갈리는 것입니다. 바빙크와 핫지가 에드워즈의 원죄론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그냥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에드워즈의 이런 불명확함 때문에 그의 제자들 그룹에서 간접전가론을 더 강하게주장하며 원죄를 부정하는 미국의 자유주의 그룹이 태동합니다. 이들은 에드워즈의 직계제자인 테일러, 홉킨스, 에몬스 등으로 구성되는 ‘뉴헤이븐신학파’들입니다.

이 외에도 속죄론의 성질에서 개혁파의 ‘형벌대속만족론’과 알미니안주의의 ‘정치론(통치)’이 있습니다. ‘정치론’은 휴고 그로티우스(1583-1645)가 제시한 것으로 예수님의 속죄를 공의의 만족 성격이 아니라 죄를 억제하는 도덕적 우주적 통치개념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박형룡 박사는 이 정치적 속죄설은 개혁자들의 속죄교리와 소키누스의 그것 사이에 중도를 제시하는 것이며, 알미니안파의 속죄관으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이런 ‘정치론’적 속죄 개념을 조나다 에드워즈가 수용했다고 비판합니다.

에드워즈는 훌륭한 개혁주의자이지만 장로교도는 아닙니다. 특히 그의 원죄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등은 상당히 주의해서 살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에드워즈의 단점을 학문적으로 제대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에드워즈는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바르게 평가하는 일들이 이제부터라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박형룡박사, 인간론--에드워즈도 간접전가론자라고 핫지와 윌리엄 커닝함이 말하였으나 월필드는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였다. 존 머리는 상세한 논증으로 월필드의 해명에 응원하였다.]
[박형룡박사, 기독론--미국 신영란 신학자 몇 사람(에드워즈, 드와이트, 에몬스)의 채용한 바 되었고 최근의 어떤 신학자들의 저서에서 지지되었다. 이것이 어느 역사적 교회의 신조에 체현된 일은 일찍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알미니안파의 속죄관으로 인정된다.]
[헤르만 바빙크--그러나 무엇보다도 영국으로부터 와서 뉴잉글랜드로 들어간 청교도 칼빈주의와 스코틀랜드로부터 남부와 중부, 서부주에 안내된 장로교회 칼빈주의 사이에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 칼빈주의의 두 형태는 1647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기초로 가지고 있지만 둘 안에 있는 신구학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뉴잉글랜드에서 첫 번째 가장 뛰어난 신학자는 조나단 에드워즈이다.
신학적으로 그는 아르미니우스주의와의 싸움을 주도하였다. 그는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사변들을 통하여 칼빈주의를 강화하였지만 실제 이미 카메론에게서 일어났던 자연적이고 도덕적인 중대성과 의지의 자유, 원죄와 속성에 대한 특별한 이론을 통하여 칼빈주의를 약화시켰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에 대한 칼빈주의적인 교리를 주장하고 프랑스 소무르학파와 같이 원죄의 거절과 속죄의 보편성을 연합시켰던 에드워즈주의자들, 새신학의 사람들, 새 빛들의 아버지였다.] 헤르만 바빙크 저, 김영규 역 『개혁주의 교의학 Ⅰ』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8), 225-231

(신원균목사, 분당한마음개혁교회,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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