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과 타종교의 차이점
이단은 한 공동체 안에서 다른 믿음 체계를 가진 집단이고, 타종교는 다른 공동체에서 다른 믿음 체계를 가진 집단입니다.
이단은 기독교에서 갖고 있는 전형입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국교가 되는 과정에서 다른 믿음에 대해서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타종교에서도 여러 믿음 체계가 있지만, 심하게 갈등하지만 이단 논쟁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슬람은 수니파(80%)와 시아파(20%)가 정통 논쟁을 합니다. 서로 정통이라고 말하지만 서로에게 이단이라고 말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슬람 안에 신비주의적 성향의 종파도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 이단 논쟁이 없는 이유는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안에는 이단 논쟁이 명확하게 존재했습니다.
이단은 아나떼마로 정죄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저주, 아나떼마를 선언했습니다. 그 전례를 따라서 이단에게 아나떼만, 정죄, 저주를 선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안에 이단과 정통이 있지만, 이단에는 구원이 없음을 명확하게 확증합니다. 우리가 정통과 이단이라고 하지 않고, 이단과 정통이라고 하는 것은 이단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정통파는 이웃의 잘못에 대해서 침묵하며 인내하는 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이단은 구원하는 교리에 대해서 참지 못하고 비난과 비판을 시도합니다. 결국 교회 안에서 이단 논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통파는 구원하는 믿음 체계,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됨을 굳건하게 견지하기 때문에, 이단은 거치는 돌에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이단은 시작이 같고 끝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을 풀이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이단은 heresy로 저주받을 거짓 교리 체계입니다. 즉 시작이 같지 않으며 끝도 같지 않는 집단입니다. 기독교 정통파는 시작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으면 반드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성취된다고 믿습니다. 같은 나무에서 다른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돌감람나무인 우리는 참감람나무에 접붙혀주셨습니다. 그리고 돌감람나무에게 참감람나무 열매를 맺히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돌감람나무이지만 참감람나무 열매를 맺힐 수 있는데, 우리는 물리적 성분이 아닌 영적 양식을 먹기 때문입니다.
이단은 교단이 회의를 통해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교단의 회의에서는 교단의 내부 규약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단은 교단의 범위를 넘어선 기독교 교회(에큐메니컬 교회)가 정죄한 교리 체계입니다. 현재 교단들이 정죄하는 수준은 교단을 변호하기 위한 수준입니다. 즉 누구도 보편교회적 권위의 이단 정죄를 할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는 한 교단이 이단으로 정죄하면 함께 그 정죄에 동참하는 미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A 교단의 결정과 B 교단의 결정이 다른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교단들의 결정을 잘 살펴야 합니다. 다만 교단과 분리된 이단연구소의 결정은 교단적 권위가 없을 때에는 사적 결정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한국 교회는 교단연합체에서 이단을 검증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교단연합체는 교단연합 사역이 목적이지 이단을 검증하고 회복시키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은 교회들이 연합체를 통해서 이단 정죄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습니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경전을 기본으로 합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경전으로 합니다. 기독교 안에는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분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경전 체계에 대해서 존중하며 기독교 범주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즉 경전이 다르면 종교가 다릅니다. 다른 종교는 경전이 다릅니다. 그런데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기독교 경전과 공통된 부분이 있어 분류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종교개혁 시대 루터나 칼빈은 이슬람 교리를 이단으로 분류시켰습니다. 기독교 지역에서 발생된 종파이고, 유사한 경전 체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와 이단의 차이는 인간성에 대한 왜곡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른 종교는 인간성에 부합한 즉 상식선을 준수하려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이단은 상식선을 파괴하고 자기 교리 체계로 사람을 미혹시키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이단 종파에서 매우 심각한 윤리 형태들이 나타납니다. 16세기 뮌스파 반란의 재세례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주장되었습니다. 많은 이단 종파들은 가정과 단절, 갈등을 기본 요소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자기집단화로 스스로 게토를 만들기도 합니다.
인간성의 회복은 기독교 복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상식선의 유지는 일반 종교에도 많습니다. 황금률은 일반종교와 기독교의 공통된 가르침입니다. 역지사지,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 때문에 인간성이 증진됩니다. 인간생명존중과 번성 그리고 덕이 향상 됩니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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