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란 무엇인가?(1)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목사와 신도
장로회(長老), 장로교, 장로파(長老會, 敎, 派, Presbyterianism)는 프랑스 사람, 제네바의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과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John Knox, 1514-1572)의 신학을 기본으로 합니다. 미국을 통해서 은둔의 나라(혹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장로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한기독교장로회”가 있습니다.
칼빈 신학으로 형성되어 유지되는 교파는 스코틀랜드 장로파(언약도)와 네덜란드 개혁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소수의 네덜란드 개혁파를 지향하는 교파가 있고, 우리나라에서 태동한 장로파와 개혁파를 융합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또 존 칼빈과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를 융합하려는 개혁파 시도도 있습니다.
우리는 장로파이지만 보다 “역사적 개혁파 신학”을 이루기 위해서 마틴 루터의 신학 이해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김영규 박사는 “엄밀한 개혁파 신학”을 위해서 17세기 개혁파 문헌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개신교 교파에는 “예수교”와 “기독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로교는 “예수교”가 첫 이름인데, ‘야소교(耶蘇敎)’에서 변환된 이름입니다. 감리교와 침례교는 “기독교(基督敎)”가 첫 이름입니다. “예수교”신천지회, 대한“예수교”침례회 등 이단에서 “예수교”를 지칭하며 집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교, 기독교에 대한 논의가 아닌, 장로교에 대해서 논의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기독(基督) 야소(耶蘇)”에서 헬라어 음역을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장로파는 “대한예수교”와 “대한기독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로회, 장로교, 장로파 등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장로교’란 어휘를 사용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장로교는 150여년의 교회 역사를 갖고 있지만, 장로교 정치 원리에 의해서 교회가 형성되지 않고 선교적 절박성에서 – 네비우스의 선교 정책(3자, 자립, 자치, 자전) - 의해서 생존한 독특한 장로교 교회입니다. 한국 장로교는 세계 장로교에서 가장 강력한 위상을 갖고 있지만, 장로교 정치 원리에는 부합하지 않는 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Presbyterian(장로교), Baptist(침례교), Methodist(감리교) 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앞에 ‘예수교’, ‘기독교’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참고 침례회는 기독교한국침례회, 감리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예수교대한감리회, 성결교는 예수교성결교, 기독교성결교 등이 있습니다. 우리 땅, 1885년 4월 조선 제물포에 (북)장로파 선교사 언더우드, (북)감리파 선교사 아펜젤러가 들어왔습니다.
교회당(敎會堂)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00교회”라는 명패가 있었는데, 그 이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00교회 예배당”으로 사용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와 “예배당”을 구분해서 사용했는데, 언제부턴가 교회와 예배당(건물)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옛날처럼 교회와 예배당(교회당)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모임 공지에서 “00 교회”에서 “00 교회당”에서라고 하면 됩니다.
우리는 “기독교(예수교)” 그리고 “장로파, 감리파, 침례파....” 그리고 “교회와 예배당”을 구분되어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미국 선교사의 활동으로 개신교(장로파와 감리파)가 형성되었고, 그 이전 천주교는 예수회 사제들이 명(明), 청(淸) 나라 시절에서 들어왔습니다. 청 나라 시대에 예수회 사제들이(특히 프랑스 사람) 조선에 들어와서 활동했습니다. 대한민국 땅에 들어온 외래 종교는 불교, 유교,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외래종교가 500-1,000년 정도 시간을 보내면 외래 종교라는 느낌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대한민국에 들어온 것은 150년 정도입니다(1884년 기준). 그럼에도 상당히 문화에 젖어들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교(기독교)라는 거대 카테고리에 개신교 장로파와 감리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가 개신교 전유가 된 것은, 개신교보다 200년이 앞선 로마 카톨릭 사제들이 “천주교”라는 명칭을 별칭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근 천주교도 자기를 기독교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주장은 타당합니다. 개신교가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의 범주에 개신교, 로마 카톨릭(천주교), 동방정교회 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기독교’라고 사용하는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장로파 교회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저는 전라도에서도 은둔의 동네에 세워진 한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성경이 좋아서 예수님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그 때는 장로교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SCE 수련회에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교리 등등을 들었지만, 교회에서 뚜렷하게 배우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성경을 더 알기 위해서 신학교에 진학하려고 했고, 교단 신학교에 입시하여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는데, 장로교의 목사였습니다. 강도사 인허, 목사 안수에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대,소요리 문답이 성경에 합당한 가르침으로 준수한다고 공적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신학교에서 각인된 소리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아닌 “개혁주의 혹은 보수신학”이었습니다. “장로교 신학”이란 말은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자유주의, 현대신학을 변호해야 하며 개혁신학을 보수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장로교 교단 신학교에서 장로교 신학이란 규범에 대해서 잘 듣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체험한 것은, 제가 어떤 개혁파 목사를 만났고, 그분은 장로교의 표준문서를 취하지 않으며 거부한다는 말을 듣고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개혁신학을 사랑하는 장로파 목사에게 개혁파 목사가 장로파 표준문서를 취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쉽게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개혁파의 세일치신조(Three Forms of Unity, TFU)를 취하면서 장로교 표준문서를 취하지 않는다는 사역자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장로교에 속한 사역자이기 때문에, 장로교 표준문서(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없어도, 나의 표준문서를 배격하면 호혜주의(互恵性, reciprocity)에 따라서 배격하는 상대의 주장을 용인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법리적으로 저는 장로교 사역자의 자격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가 비록 장로교에 대해서 무지하여도 장로교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일단 인정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 그 분은 저의 제언을 잘 용인해주셔서, 비록 표준문서는 다르지만 교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장로, 집사 직분자를 세울 때에 표준문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대해서 조금씩 정리도 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저의 문제뿐만 아니라 직분자들도 임직 서약을 할 때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준수를 공적으로 서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가르치면서 스스로 장로파 교회의 목사라고 자처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신자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표준문서로 신앙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장로파 목사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표준문서로 신학하며 설교하며 목양하는 사역자입니다.
그렇다면, 장로교 목사인 저는 장로교 신자를 양육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인을 양육해야 할까요? 한국 장로파는 세계 장로교에서 가장 많은 성도의 숫자를 갖고 있지만 영향력은 해외 신학자들에 - 장로파 신학자가 아닌 – 의해 신학 개념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로파 선교사들이 해외 선교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을 세우며 양육하려고 노력했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장로파 교회 사역자들은 장로교 신자를 양육하려고 했을까요?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려고 했을까요? 아니면 단순하게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으로 관리하고 있었을까요?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인을 세우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상당히 무모하지만 장로교 신자로 양육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제가 장로교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록 그리스도인, 예수교인이지만, 예수교 장로회의 사역자로서 장로파 신자를 양육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신자가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될 것이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장로교 목사이며 장로 교회를 이루는 사역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종파 교회와 함께 협력하며 주 예수의 교회를 세우며 증진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분깃을 지키는 것이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예수교인)과 장로파 신자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저는 장로파 교회는 1세기 예루살렘 교회와 역사적 연속성에 대한 견지와 함께, 천상의 주 예수의 통치를 명료하게 인지하며, 주 예수의 말씀이 주일 강대상에서 선포됨을 인지하는 신앙 체계라고 제언합니다. 장로 교회의 강력함은 역사적 신앙이 매우 굳건하면서 또한 천상의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해서 민감한 의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파의 원천인 스코틀랜드는 왕도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 있는 지체로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추구했습니다. 1세기 교회는 승천하신 주 예수를 직접 목격한 성도들이 세운 교회이며, 그 예수께서 다스리시며(사도행전, 요한계시록), 다시 오실 것을(요한계시록) 믿었습니다. 1세기 교회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 예수를 경험한 사도와 성도들이 이루렀고, 그들은 천상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기관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그의 피로 사신 교회”(행 20:28)를 섬겼습니다.
역사적 신앙, 사도적 신앙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1세기 예루살렘과 안디옥 교회)과 장로파 신자(16세기 스코틀랜드 교회)는 한 믿음으로, 동일한 주님을 믿으며 교회를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개신교 교파가 있는데, 각 교파별 특징을 드러내고 정진하며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로교 신자라면 장로 교회 세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감리교 신자, 침례교 신자,,,, 어떠한지 잘 알지 못합니다. 장로교 사역자가 감리교 교회, 침례교 교회 세우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것이며, 장로교회라고 이름하면서 침례교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것도 합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침례파, 감리파 사역자나 교회에서 장로교 이룸을 추구할 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장로교 신자는 예수, 천상의 주 예수께서 만유를 다스리시며 교회의 사역자의 선포로서 다스리심을 믿습니다. 진정한 장로교인은 그리스도인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장로파 목사는 장로교 신자를 양육하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산골에서 사역하는 교회에 한 청년이 방문하여 함께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청년에게 그리스도인이 아닌 장로교 신자를 양육할 것이라고 제시했습니다. 그 청년은 왜 그러해야 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답은 간명하게 내가 장로교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그리스도인이 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것이 좋겠지만 정통 교회(보편 교회)가 없으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우리는 역사 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역사를 부정하고 새로운 길을 주장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성경적 신앙과 역사적 신앙은 병존하는 것이지 대치나 대척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변함없이 땅의 주인이시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성경을 근거로 어느 한 점에서 바른 교회가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만유의 주께서 찬양을 받지 않았을 때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되기에 절대 받아드리면 안 됩니다. 도나투스파, 재세례파의 맹점입니다. 혹자는 AD 313년 관용령(밀라노 칙령)에서부터 교회가 타락이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여 기존 교회에 대해서 부정하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기성 교회, 기존 교회 등으로 현존하는 교회를 향해서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장로 교회는 많은 개신교 분파 중에서 한 분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장로교회의 모습은 만개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어느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근원지인 스코틀랜드보다, 우리에게 선교했던 미국보다 더 강력한 장로교 세력을 갖고 있는 지역입니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현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최덕성 박사는 한국에서 교회가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로 정통 유교의 진리관(진리의 확정성)과 기독교 진리관이 유사했기 때문이라고 제언합니다. 어떤 연구자는 유교가 가진 맥락과 장로교가 가진 장로 체계가 잘 부합된 면도 있다고 제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오순절주의, 침례교, 감리교 등에서도 장로를 운용하는 사례가 상당합니다. 장로 제도를 운영해서 장로교라면, 한국의 개신교는 거의 모두가 장로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교는 “(치리)장로”라는 교회질서 이전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라는 표준문서를 이해해야 합니다.
1907년 “조선야소교장로회(朝鮮耶蘇敎長老會)” 독노회(獨老會)가 설립될 때에 선교사들은 표준문서로 인도연합장로교회가 작성한 “12신조”로 세웠습니다. 1960년대에 장로파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信徒揭要書)”라고 표준문서로 세웠습니다. 게(揭)는 게양대(揭揚臺), 게시판(揭示板) 할 때 쓰는 '게(揭)‘로, 깃발처럼 상징으로 세우며 대표 문서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장로교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대, 소요리 문답를 표준문서로 하여 유지되고 있습니다. 좀 더 간략하게 말하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500여년을 지나면서 장로교이면서도 표준문서를 자체로 작성하여 유지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지 복음을 전도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장로파 신자가 죄사함과 영생의 복음을 전파해서 그리스도인, 장로파 신자로 양육하는 것이 합당한 체계라고 생각합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도하기 위한 목적은 아닙니다. 이 문서를 작성할 때에는 왕국의 믿음을 총합하기 위해 작성된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피선교지인 우리나라는 복음을 전도해야 합니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서 간략한 문장을 사용하였습니다. 무슨 모양으로든지 주의 이름은 전파되고 전파되어야 합니다. 세례 문답에서는 신앙고백서에 대한 교육이 없지만, 직분자 세움에서는 신앙고백서 교육을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표준문서가 다른 장로파나 감리파와 갈등에서 예수님이 전파된다면 서로 기뻐할 일입니다(빌 1:18). 저는 장로교 목사로서 힘써 주 예수를 전파할 것입니다. 감리파 목사도 침례파 목사도 주 예수의 복음을 전파한다면 좋습니다. 모든 종파들이 합력이든 갈등이든, 주 예수를 전파하는 모습이 충만하길 기대합니다. 장로교는 모든 종파 중에서 복음 전도에 가장 열심히 앞서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선교적 교회 - 아직 기독교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 - 입니다. 기독교가 5% 이상이면 선교적 교회가 아니라고 평가한다고도 합니다. 일본이나 스리랑카는 기독교 인구가 1%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사회 문화 저변에 기독교 문화가 정착되는 것을 기독교적 사회라고 평가합니다. 우리 사회 저변에서 교회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사회에 융화되고 있다는 표징입니다. 다만 부정적이고 조소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교회가 좀 더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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