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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장 선행(2), 선행의 범위」
WCF 16장에서 “선행”에서 기독교에서 정의하는 선행에 대해서 제시합니다. “선(善)”은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본성입니다. 본성에 의한 것은 부적합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부단한 경책과 경주가 필요합니다.
1) 선행으로 공로를 이룰 수 없습니다. WCF 16장 5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에 대해서 어떤 공로가 될 수 없슴을 고백합니다. WCF에서 공로가 없음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차이(infinite distance)로 제시합니다. 인간은 어떤 선행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공로를 세울 수 없습니다. 혹 주어진 모든 임무를 완수했을 지라도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눅 17:10). 사도바울은 사역의 마지막에서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딤전 1:15).
그리스도인은 선한 행동은 성령에 나온 것(proceed)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약하며 불완전합니다. 이러한 불완전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견딜 수 없습니다. WCF에서는 성도의 상급보다는 성도의 불완전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2) 영원한 그리스도의 중보로 용납되며 상급이 됩니다. WCF 16장 6절에서는 여전한 성도의 불완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용납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은혜의 공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선행으로 영생에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중보로(through Christ)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성도에게 상급이 있는 것도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성도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에도 독생자 안에서 상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방패, 큰 상급으로 소개했고, 시편 16장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자신의 상급으로 찬양했습니다.
3) 중생하지 못한 사람의 선행은 사람에게는 유익하나 하나님께는 무익하지만 장려됩니다. WCF 16장 7절에서는 중생하지 못한 사람의 선행에 대한 고백입니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 높은 윤리와 선행을 보이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도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의 선행은 사람에게 선하고 유익하여도, 순결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도 하지 않습니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선행은 권장되며, 악행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선을 행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Sola gratia 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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