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 교수 성경과 설교 세미나[요한복음] 강의 요약 및 정리
정리자: 고경태 목사
--------------------------------------------------------------------
본 요약은 교수님의 강의를 수기한 것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그대로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본인의 책임입니다. 교수님의 글을 계속 발췌해서 함께 읽으며 도움을 받기 원하신다면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아직 시작이기 많이 부족하지만 주소록이 정비되면 교수님의 글을 발송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
요한복음 제 4 장
4:1-26; 예수 그리스도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기를 그리스도로 증거함
물, 다섯 남자를 가진 여인에게 평안과 만족이 없다. 즉 사마리아 여인의 목마름은 육체적인 목마름이 아니라 영적인 목마름이었다. 정오에 우물에 온 여인의 갈증 상태는 더욱 심각한 지경이다. 사마리아 수가 성 우물은 깊은 곳에 있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우물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시는 생수는 누구나 마실 수 있는 물이다(대조가 됨).
요 4:1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1.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요한보다 더 많은 제자들을 삼은 줄을 바리새인들이 알아차렸다.
2.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 준지도 그들이 알아차렸다.
3. 바리새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모든 관심을 다 집중하였다.
요 4: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1. 예수 자신이 세례 준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세례주었다.
2. 예수 자신은 세례요한의 세례를 반복할 필요가 없었다.
3.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증거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세례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세례의 목적이 된다.
요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 이 우물물을 마시는 자는 일시적인 육신적인 목갈함 만을 해결할 뿐이다.
2. 당신의 영혼이 그렇게 갈급해하는 물은 이 우물물로 해결할 수 없다.
지금 당신이 필요로 하는 물은 이런 샘물이 아니다. 그런 물은 날마다 떠가면 된다. 그러나 당신의 영혼이 필요한 물은 영생에 이르게 하는 물이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 내가 주려는 물은 몸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물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에 이르게 하는 물이다.
2. 그 물은 생명의 물이어서 마르지도 않을 뿐더러 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는 물이므로 참 생명의 물이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이다.
3. 이런 물을 주는 내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 예수께서 ‘생수의 강’이시다.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해야 한다. 예수께서 생수이시고, 생명이시고, 영생 자체이시다. 복음이 선포되면 목마르지 않게되며 영적 갈증이 해소된다. 교회의 성장은 곧 복음 선포에 달려있다. 많은 교회 프로그램이 있지만 교회 성장의 결정은 설교에 있다. 그래서 목사는 설교에 집중해야 하고,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는 릭 워렌의 설교 세미나에서 복음 설교를 전할 것을 결심하고 복음 선포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성도들이 감격과 은혜 생활을 하며 교회가 은혜 중에 성장하고 있다. 복음이 선포되면 교회는 변하고 성장하게 되어 있다. 과연 우리 교회, 나의 교회에 와서 성도들이 사마리아 여인이 갖는 목마름에 해소되었는가? 영적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생명의 물이신 예수 복음 뿐이다. 예수의 생명이 자꾸 부프러 오드록 설교를 해야 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영생의 물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인 성령의 사역으로 성도의 목마름은 해소된다. 머리와 가슴이 온전히 소생하게 된다.
3년 신학과정에서 나오는 설교에 한계를 만나 많은 설교 세미나에 다니게 된다. 그러한 세미나를 통해서 생수가 계속 나오고 있는가? 생명의 원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기에 오직 예수만을 전하는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
생명이기에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한다. 생명의 양식을 받음은 마치 365일 항상 밥을 주식으로 먹는 것과 같다. 밥은 하루에 3번 먹어도 질리지 않고, 생명을 전하는 복음 설교는 일주일에 두 세 번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더 많이 예수를 전해야 한다. 예수를 전하게 되면 설교가 간단하게 된다. 설교에 미사여구가 필요가 없음으로 간단해지고 설교가 단축된다(현대인들은 짧은 설교를 좋아하는데....)
설교자는 생명의 원천만 전하면 감사와 존경을 받게 된다. 설교자에게 위임된 것은 생명의 원천을 전하는 것이지 다른 내용, 다른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서 창조 사역과 함께 연결하여 말씀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창조주를 말하는 것이 요한복음이다. 구원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와 역사의 섭리까지 말한다.
요 4: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1. 여자는 말거리의 방향을 바꾸어 자기에게로 향하던 말의 방향을 유대인 남자에게로 향하였다.
2. 당신은 선지자임에 틀림없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내 사정을 그렇게 잘 알 수 있습니까 하였다.
요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1. 유대인 남자를 선지자로 지목하였기 때문에 평소에 궁금한 종교생활에로 말거리를 바꾸었다.
2. 우리와 우리 조상은 이 산 그리심 산에서 경배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고 하니 어느 것이 맞느냐고 물은 것이다.
3. 예루살렘에 가서 경배해야만 바른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까? 라고 물은 것이다.
요 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1. 하나님을 경배하는 참 예배는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이나 지역이 문제가 아니다.
2. 예루살렘과 그리심산에서만 예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므로 특정지역을 벗어나서 보편적인 예배가 이루어질 것을 밝힌 것이다.
메시야가 오신 후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어떤 특정한 지역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고 세계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가 올 것임을 밝히 보이신 것이다.
2.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이런 예배방식은 모든 인류가 다 해야할 일이다.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들만이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한다. 이런 예배는 장소와 종족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모든 백성들이 다 자기들의 자리에서 예배해야한다.
3. 장소에 국한하지 않고 아버지를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한 것은 많은 인류종족이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아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을 말한다.
4. 예배와 그리스도를 연결하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진 찬양과 경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합당한 예배라고 밝히는 것이다.
요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1. 사마리아인들은 그냥 조상 때부터 해온 대로 관습과 풍습대로 하나님을 경배할 뿐이고 실제로 하나님을 알아서 경배한 것이 아니다.
이방종교를 따르는 자들이 하는 예배의 방식일 뿐이다.
2. 유대인들은 천지의 창조주를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섬겼다.
3. 하나님의 계시와 언약체결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백성으로서 땅위의 종족들 중에서 오직 하나의 백성이 되었다.
4.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이스라엘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5. 이런 하나님의 경륜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만 구원이 나오도록 되어있다.
요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1. 그러나 지금은 메시야가 왔으므로 율법의 방식으로 드리는 경배나 알지 못하고서 습관대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
2. 참으로 경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하는 자이라고 한 것은 의식으로 형식으로 아니고 온 심장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대로 경배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런 예배는 그리스도 오시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3. 그러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뜻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은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심을 따라 예배하고 성령으로 인도받아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함을 말한다.
4. 세상의 구주인 그리스도가 가르치고 계시하는 대로 드리는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다.
그리스도의 이름 밖에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도달한다는 보장이 없다. 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신들 곧 잡신들을 예배하는 것이다.
5. 외적인 의식이나 장소에 국한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메시야가 오신 이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성전예배나 율법이 가르친 의식에 의해서 예배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진순한 예배의 예표일 뿐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이지만 돌과 나무로 지은 성전에서의 예배도 참된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그것은 의식으로 육체적으로만 드리는 예배일뿐이었다.
6. 영으로 아버지를 경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온전한 심장으로 온 정성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7. 진리로 예배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 예배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가 아버지를 아는 참 지식을 가져왔다. 그리스도의 계시와 가르침으로 예배하는 참된 예배를 말한다.
8. 아버지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은 그렇게 예배할 때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말한다.
9. 곧 지금이라고 한 것은 메시야가 지금 오셨으니 지금부터는 메시야의 가르침과 그의 영으로 예배해야한다고 밝히는 것이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1.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외적 의식적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2.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진리의 지식으로 예배해야한다.
요 4: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1. 사마리아 여인은 바른 예배모범의 설립은 메시야가 와서 해결할 것으로 알고 있었다.
2. 메시야가 와서 바른 예배모범을 확정할 것이므로 당신이 말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비쳤다.
요 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1. 이만큼 아는 여인에게 자기의 신분을 밝히는 것이 바르다고 여겨서 자기의 신분을 메시야로 밝혔다.
2. 이제껏 유대인들에게도 자기의 입으로 말하지 아니한 것을 이방여인 사마리아여인에게 자기의 신분을 밝혔다.
3. 그리스도는 자기의 신분을 밝히므로 이방여인을 구원하기로 하셨다.
4. 그리스도는 자기의 신분을 밝혀 이방여인을 구원하시므로 사마리아로 통과한 뜻을 이루셨다.
>> 19절,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를 ‘선지자’로 바꿔 불러 인식의 변화를 말해준다. 사마리안인들은 그리심 산에서 종교생활을 했지만, 메시야의 도래에는 참 예배는 지역적인 특성을 벗어나서 어디에서나 예배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인류 종족이 메시야의 가르침을 받아 영의 방식으로 예배하게 된다. 이러한 예배가 가능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선결과제임으로 예배와 그리스도가 연결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찬양과 경배가 참 예배가 된다.
메시야께서 오심으로 율법으로 드려지는 예배나 습관적인 예배나 성전 제사가 필요없게 되었다. ‘영과 진리’는 의식이나 형식이 아니라 온 심장으로 드려지는 예배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로 예배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받은 백성, 그리스도의 심장을 따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이다.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예배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복음이 바르게 제시(창조와 구원)되는 것이다. 창조주께서 창조의 본래 아름다움에서 비참에 이른 부패 덩어리(mass corruptio)룰 구원하시기 위해서 땅위에 오셨다. 이러한 구원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받을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설교에 달려있는데, 설교에서 무엇을 전하느냐가 관건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한 것을 바르게 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이 진리이다. 사람의 변화는 의식이나 형식으로 불가능하다. 의식화된 교회는 교회를 화석화시켜 결국 교회가 소멸된다(유럽 교회의 역사가 증명함). 캅바도기아 교회는 초기에 지하 45Km의 길이의 굴을 파서 은거 생활을 하였지만 왕성한 교회의 모습을 갖았다. 그러나 땅으로 올라온 교회는 630년에 사라센 제국의 침략에서 소멸되고 말았다. 지금 터어키에는 신자보다 선교사가 더 많이 활동하고 있을 지경이다. 이 원인이 풍요해진 교회가 말씀을 외면하고 의식에 치중했기 때문이며, 부유해진 교회가 속죄의 복음을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복음으로 교회가 세워졌지만, 교회의 세속화는 급진적으로 확산되어었다. 세속화된 교회는 복음 선포가 없으며, 사죄의 복음이 없다. 이러한 교회는 흔적도 없이 땅에서 사라져 버렸다.
요 4:27-38; 양식을 구하러 간 제자들에게 이 이방여인을 구원하는 것이 자기의 양식이라고 밝힘
4:27;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선생을 이상하게 여김
4:28-29; 여자가 전도자가 되어 수가성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림
4:30;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보러 나옴
4:31; 밥을 구해왔으니 잡수시기를 청함
4:32-33; 다른 양식이 있다고 하니 어리둥절
4:34; 자기의 양식은 육신의 양식이 아니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밝힘
4:35; 곡식을 추수하려면 넉 달이 지나야하지만 이미 추수하게 되었다고 밝혀 영적 추수는 추수시기가 언제든지 임을 밝힘
4:35-38; 제자들도 영적 추수꾼 임을 밝힘
>> 사마리아 여인은 이제 ‘전도자’가 되었다. 복음은 목사보다 전도자가 전한다. 목사가 복음을 전해야 되지만 전도자를 세워서 전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교회 원리에 합당하다.
34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함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구원 사역을 하셨다. 그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35절. 구원받은 백성은 영생에 이르게 된다. 예수께서는 씨를 뿌리고 제자들은 거두게 된다.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두게 된다는 주님의 말씀이다(37절). 한 사람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고, 제자들은 거두는 사역을 교회를 통해서 이루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다. 그들은 예수의 구원을 예언하였고, 육신으로 강생한 메시야를 보기를 갈망하였다. 성령께서는 선지자들에 메시야의 강생과 부활을 선포하며 예비하도록 하셨다. 예수의 사마리아 사역을 통해서 사마리아인들이 믿게 되었다. 예수께 직접 보고 들음으로 확실한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
요한복음 제 5 장
요한복음 5장은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내용으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의 모습이 전개된다.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전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구원 사역을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전함으로 전개한다.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사역은 죽은 자를 살리는 부활과 같다(11-12절). 38년된 병자가 살릴만한 가치가 있는가? 세상 모든 사람이 38년된 병자와 같다. 예수께서 병자를 살리신 목적은 사람 노릇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이기 위해서는 영혼과 육신이 모두 치료되어야 한다. 천사가 타락하면 악마가 되지만, 그리스도인이 타락하게 되면 더 악해진다. 치료받지 못한 영혼의 피폐가 드러난다.
유대인들은 계명 위에 자기들의 안식일 규례를 두었다. 그들의 잣대로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함으로 규정하고 박해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신 것은 메시아의 자격이 아닌, 안식일에도 일하시는 하나님, 안식일의 제정자로서 치료하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작정을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하늘의 지식을 땅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범위 안에서 판단한 것이다.
21절. 하나님의 일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를 믿는 자이다.
22절. 심판은 하나님의 일이다. 형벌을 주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은 전적으로 아들에게 맡겨짐으로 심판 또한 아들에게 위임되었다. 심판의 표준이 ‘복음’이다. 즉 구원과 심판의 내용이 ‘복음’으로 동일하다. 복음을 선포하면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복음이 선포되면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불신자에게는 이미 심판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기 객관화이다.
43절. 유대인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다. 불신자가 예수를 영접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복음을 전도하는 것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예수를 영접하게 됨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 [열매맺는 전도법] 집필자인 장일권 목사는 평신도를 전도자로 세워 복음을 전하게 한다. 그것은 복음 전도가 생계 수단이 아니라 복음 전도에 목적이 있음을 어필하기 위한 것이다.
45절. 모세의 고발. 고소는 율법의 기능이다. 모세가 고소한다는 말은 율법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 모세의 율법이 고소한다는 것이다. 모세가 말한 선지자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음에 대한 지적이다. 모세가 믿었던 선지자, 모세가 도래를 예언했던 선지자인 메시야는 모세의 율법을 믿고 따르는 자는 믿게 된 다는 것이다. 모세를 믿지 않으면 영의 세계는 더욱 알지 못한다. 율법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아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의 인정을 좋아했다. 칭찬에 굶주린 사람들의 피폐가 드러난다. 그래서 거짓 칭찬, 그릇된 칭찬을 좋아한다. 에고(ego)가 충족받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에고의 충족을 위해서 율법의 미명 아래 서로 고발하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었다.
요한복음 제 6 장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심.
7절. 200데나리온은 남자 8개월분의 임금(안식일을 제외함)이다.
10절. 물고기는 큰 물고기가 아니라 잔쟁이로 매우 작은 물고기이다. 어린아이가 먹을 점심이다. 이 오병이어로 남자가 5,000명을 먹이셨는데, 여성, 어린아이, 노인까지 합산한다면 약 20,000명으로 추산할 수 있다.
예수께서 감사 기도함은 모든 먹거리의 근원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을 인정한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백성에게 만나를 먹인 것은 굶주린 백성에게 양식을 준 것이다. 광야의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다. 그러나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먹이신 예수는 직접 백성에게 양식을 제공하신다. 그러므로 모세가 율법의 중보자인 것처럼 자신이 구원중보자이신 것을 계시하신다(5:46-47). 모세로부터 만나를 먹은 백성은 광야에서 죽었지만, 생명의 떡을 먹은 백성은 영생하게 된다. 즉 예수께서는 참 양식을 백성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 율법세계에는 은혜(공짜)가 없다. 그러나 주께서 주신 양식은 거저 주신 양식이다. 믿고 먹는 자에게는 영생이 이르는 참 양식이지만, 믿음이 없으면 여전히 양식에 불과하다.
유대인들에게 구원은 영생이 아니라 율법을 잘 지키고 자손들이 잘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영생은 조상들의 묘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조상들의 뼈에 닿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는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 영원히 사는 것이다. 세상의 죄를 속량하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에게 구원은 잘 먹고 사는 것 뿐이다. 거룩하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27절.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영생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다. 갈릴리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다. 현재에도 유대인들은 나사렛에서 메시야가 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여전히 현세에 매여 사는 것이며, 율법의 고소 기능만을 탐닉하고 있는 것이다. 영생은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서만 알게 되며 소유되게 된다.
32절. 만나를 먹은 사람은 광야에서 죽었다.
33절. 그러나 하나님의 떡 =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 먹는 사람은 영생한다. 만나는 하늘에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은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생명을 공급해주어 주림이 없게 하신다. 예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 되어 믿는 자에게 죽지 않는(immortal) 영생을 주신다. 아버지께서는 제자들은 예수께로 이끌어 예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신다(44절).
46절. 하나님을 본 자가 하나님을 뵈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뵈었고, 계시를 하는 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떡(33절)이며 생명의 떡(35절)이신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배부름이 있고, 하늘에서 내려온 떡(41절), 생명의 떡(48절)을 먹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 한 번만 먹으면 되고, 한 번만 믿으면 된다. 주의 살이 찢기움은 죄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죄사함의 교리가 있는 기독교는 인간 이성으로 받을 수 없는 진리 체계를 갖고 있다. 이성으로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하게 되면 결과는 기독교가 소멸되게 됨을 역사가 증명하였다.
52절. 유대인들이 사람의 살과 피를 먹음에 대해서 강력하게 항의하여도 예수께서는 자기 주장을 강조하셨다. 유대인과 예수가 양보할 수 없는 평행선을 만나게 된 것이다.
유대교 정통파(근본주의)는 약 5%로 추정한다. 이 5%가 유대교 생명의 원천이다. 유대인들은 신령한 것, 내세를 알지 못하고 현세의 구원만을 추구하였다. 현재도 그렇다. 율법으로 3500년 가르침에 매여 있기 때문에 현세 밖에 없다. 율법은 현세를 위한 법이다.
로마교회는 요한복음 6장을 성례전으로 받아드렸다. 그것은 그들의 성례전 방식을 정당화하기 위한 그릇된 성경 해석의 제시이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성례전이 아니라, 생명의 떡이신 예수가 제시되며 강조되어야 한다.
광야에서 먹은 만나는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예수 생명의 떡은 영생이 확증되고 확보되는 것이다. 생명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죄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의 독을 몸에서 제거해야 된다. 동방교회는 죄의 제거가 하나님의 신성의 주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는 십자가로 제거된다고 강조하였다. 십자가의 흘리신 예수의 피가 인간의 죄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생명이 있음을 자신이 승천하심으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62절).
요한복음 7장은 다른 복음서와 다른 점은 ‘형제들이’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오려보내는 것이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
--> 본인이 직접 노트 필기한 것을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많이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빠른 시일에 요한복음이 정리되어 주석이 출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카페를 이용하여 다양한 정보 교류의 장을 열려고 합니다. http://cafe.daum.net/KARTHEM
그리고 요약된 노트가 있다면 카페에 자료를 오려주신다면 함께 자료가 공유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수님의 원문을 제공하지 않는 것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수님께서는 아무렇게 생각하지 않으시지만, 예고편이 본편과 같다면......
[한국 개혁신학 및 선교 연구원]은 이제 창립되었습니다. 서로 바쁜 사역 일정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미진한 점들이 많이 있지만 함께 교제한다면 풍성한 개혁 신학의 개진과 성경의 심오한 세계를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 신학도의 강단에 하나님의 능력 있고 권세 있는 말씀이 선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의하실 것은 고경태 목사 010-8525-0288 ktyhbg@hanmail.net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224801-04-003084 서철원 (한국개혁신학연구원) 농협 087-02-374691 서철원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우체국 014035-01-002322 서철원 (한국개혁신학연구원) |
'서철원 - 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철원 [기독론] 요약 -펌- (0) | 2008.12.21 |
---|---|
자랑스런 신학자 서철원 교수 (0) | 2008.12.17 |
깊이 있는 성경 이해, 영혼의 감동을 주는 성경과 설교 연구 (0) | 2008.11.03 |
서철원 교수 성경과 설교 세미나 (0) | 2008.10.21 |
서철원 교수 성경과 설교 세미나 (0) | 2008.09.25 |